〈 359화 〉 359. 뉴비 교육(5)
* * *
마법사 뉴비가 발현시킨 라이트 마법의 광채로 시력을 빼앗고, 그 틈을 타 검사 뉴비들은 에린을 뒤따라 돌진했다.
에린이 곧장 점프하여 홉 고블린의 머리를 터뜨렸을 때, 검사 뉴비들은 당황해 있는 고블린들의 처리에 전념했다.
홉 고블린을 제외한다면 고블린들의 숫자는 총 열아홉 마리.
마법사 뉴비의 라이트 마법으로 시력을 빼앗은 틈을 타 재빠르게 한 마리라도 제거를 해두어야 했기 때문이다.
“하앗!”
힘찬 기합 소리와 함께 양손으로 내려친 검사 뉴비의 검이 고블린의 머리를 깨부쉈다.
두개골을 깨부수고 살을 베는 감각은 모험가 길드에서 교육받았던 기초 훈련과는 전혀 다른 실전의 감각.
그것이 너무도 낯설어 검사 뉴비는 손을 작게 떨었다.
또 다른 검사 뉴비 또한 마찬가지였다.
크르악!
눈부시게 만드는 빛으로 두 눈을 봉인 당한 고블린 하나가 동족의 비명에 본능적으로 무작정 칼을 휘둘렀다.
검사 뉴비는 허공에 대고 칼질을 하는 조잡한 공격을 맞아줄 생각이 없었다.
한쪽 팔에 착용한 라운드 실드로 고블린의 공격을 방어하며 앞으로 돌진했다.
카앙!
“으아아!”
고블린의 칼질이 검사 뉴비의 방패에 가로막힘과 동시에, 검사 뉴비는 고블린의 몸째로 방패를 밀어붙이며 돌벽으로 몰아세웠다.
키아악!
듣기 싫은 고블린의 탁한 비명이 지하 유적 회랑의 내부에 울려 퍼졌다.
고블린이 반쯤 미쳐 발광하듯 칼과 맨손을 휘둘러 몸부림을 쳤다.
하지만 라운드 실드에 막힌 고블린의 공격은 뉴비에게 닿지 않았다.
검으로 고블린의 목을 관통하고 나서야, 고블린의 숨통이 끊어졌다.
크륵!
앞에서 고블린 무리를 휘젓고 있는 와중, 적절하게 들어오는 궁수 뉴비의 지원사격으로 처리한 고블린들의 숫자는 도합 여덟.
총 개체 수인 열아홉이라는 숫자에 비하면, 한참이나 뒤처지는 숫자다.
하지만 뉴비들의 성적이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나쁜 수준도 아니다.
결국, 몇 초 동안 밝은 광채를 유지하고 있던 마법사 뉴비의 라이트 마법 또한 효과를 잃고 사라졌다.
“후….”
하지만 긴장의 끈을 놓을 틈은 없었다.
아직 고블린들이 열한 마리나 남아있었기 떄문이다.
뉴비들은 거칠어진 호흡을 고르게 쉬면서도 주위를 살폈다.
어두워진 시야를 횃불로 겨우 밝혀진 내부를 응시하며 적들의 위치를 파악했다.
퍼엉!
공기가 터져나가는 소리에 회랑의 내부의 인원들이 일제히 한 장소로 시선이 쏠렸다.
서슬 퍼런 푸른색의 날카로운 마력이 담겨 있는 에린의 레이피어가 향한 끝에는 두 번째 홉 고블린의 머리가 터져버려 존재하지 않았다.
아래로 길게 내려뜨린 남청색의 묶음 머리가 떠올라 흔들리면서 눈 깜짝할 사이에 홉 고블린 두 마리를 처리한 에린의 위용은 뉴비들의 넋을 빼놓기에 충분했다.
멍한 표정을 지으며 행동을 멈칫한 뉴비들을 보고, 에린은 인상을 찡그렸다.
“넋 놓지 마! 움직여!”
“아, 예!”
연약해 보이는 여성의 체구에서 터져 나온 일갈은 순간 몸을 굳히고 있던 뉴비들의 몸을 일깨우는 데 효과적이었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남은 고블린들의 숫자를 정리할 때.
에린도 곧바로 세 번째 타겟을 향해 시선을 옮기고 행동을 개시했다.
크오오오!
우렁찬 함성과 함께 홉 고블린이 거대한 나무 둔기를 들어 올렸고, 자신을 향해 돌진해오는 에린의 머리를 향해 있는 힘껏 내려찍었다.
“흥.”
느리고 힘만 강하게 실린 단조로운 공격과 직면한 에린은 작게 코웃음을 쳤다.
저런 공격을 얌전히 맞아줄 정도로 자신은 그렇게 허술하지 않았다.
가속하고 가속했던 다리의 움직임에 급브레이크를 걸어 돌진을 멈추고 옆으로 점프하며 코스를 변경한다.
콰직!
1초만 늦었더라도 발목이 으스러졌을지도 모르는 간발의 차.
거대한 나무 몽둥이가 그대로 바닥을 내려찍어 몽둥이의 표면이 갈려 나갔다.
서걱
채소를 썰 듯이 깔끔하게 잘려나가는 홉 고블린의 양손.
크륵?
양팔의 감각이 갑자기 사라진 것을 시작으로 홉 고블린은 자신의 몸에 일어난 현상에 의문을 품었다.
크, 크르륵!
이윽고 나무 몽둥이를 쥐고 있던 양팔이 바닥으로 떨어져 나가고, 절단된 단면으로부터 솟구치는 피 분수와 함께 뒤늦게 고통을 자각하기 시작한다.
크아아아!
쿵! 쿵!
절단된 양팔을 들어 올리며 고통스럽게 비명을 지르고 발을 동동 구를 때마다, 유적의 내부가 그 충격에 세차게 진동했다.
하지만 그 혼란 속에서, 에린은 추가적으로 세 번째 홉 고블린의 양쪽 다리를 절단시켰다.
서걱
크아아아!
거대한 체중을 지탱하고 있던 양다리를 잃은 세 번째 홉 고블린이 무력하게 바닥으로 쓰러져 갔다.
에린은 양팔과 양다리를 잃은 홉 고블린의 몸을 두 동강 내기 위해 레이피어를 들어 올렸지만, 마무리 공격을 짓지는 못했다.
쩌저적
“아.”
레이피어의 검신이 마침내 부러져버렸다.
“…또 네.”
에린은 인상을 찡그렸다.
외부의 충격을 받으면서 내구가 다한 것이 아닌, 에린의 마력을 모두 수용하지 못해 내부에서부터 버티지 못하고 맞이한 한계.
이것은 점점 성장하고 있는 에린의 마력량을 무기가 감당해내지 못하면서 생긴 결과이다.
그렇다고 은현이 선물해준 레반테인을 구미호의 도움도 없이 에린 혼자서 뽑아내기엔 아직 역량이 부족한 것도 사실.
벌써 네 번째나 다름없는 무기의 한계는 한창 전투에 몰입하고 있던 에린의 집중을 깨뜨렸다.
“어쩔 수 없지.”
모두 자신의 수준이 어중간해서 벌어진 결과다.
하지만 레이피어가 부러졌다고 하더라도, 부러진 검의 칼날은 아직 존재했다.
‘적어도 한 방 정도는….’
양팔과 다리를 절단시켜 몸통만 남은 홉 고블린은 어차피 이 이상 전투를 이어나갈 수 없다.
노린다면 마지막 홉 고블린을 노려야만 한다.
생각을 마친 에린은 곧바로 행동으로 옮겼다.
자세를 낮추고, 온 힘을 다리에 집중시킨 에린은 빠른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움직임을 따라오기는커녕 두 눈으로, 쫓는 것조차도 힘겨워 보이는 마지막 홉 고블린의 뒤를 점거했다.
이후 크게 점프한 에린이 부러진 레이피어의 칼날을 홉 고블린의 목 뒤 경추 부위를 정확히 찔렀다.
푸욱
목 뒤를 찌르면서 성대까지 관통당한 홉 고블린은 제대로 된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후우….”
무기는 버리게 되었지만, 처음 예상했던 홉 고블린 네 마리를 모두 정리하자, 에린은 작게 숨을 토해내며 뉴비들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끄으으!”
갑옷의 틈새 사이, 고블린의 단검에 옆구리를 찔려 비명을 지르던 전사 뉴비는 이빨을 꽉 깨물려 검을 휘둘렀다.
고블린의 목을 베어낸 뒤, 옆구리에 박힌 단검을 뽑자,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주위에 남은 고블린의 숫자는 도합 다섯.
앞선에서 또 다른 전사 뉴비가 버텨주고, 궁수 뉴비의 견제와 지원 끝에, 후열의 마법사 뉴비의 한 자릿수 마법으로도 충분히 정리가 가능한 숫자다.
“야! 괜찮아!?”
세 뉴비가 남은 고블린들을 모조리 정리하고 나서야, 전투는 끝을 맺었다.
파티원들의 상태를 살피던 궁수 뉴비가 옆구리에 칼을 맞아 쓰러지는 전사 뉴비를 부축했다.
허리를 부축하자 손에서 느껴지는 축축하고 따뜻한 액체가 피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궁수 뉴비의 안색이 굳어져 갔다.
“어, 어떻게….”
계속해서 출혈이 이어지고 있는 검사 뉴비의 상태에 궁수 뉴비의 머릿속이 새하얘져 갔다.
“길드에서 교육받았던 응급 처치. 기억해?”
“아….”
곧장 자신에게로 다가온 에린의 물음에 궁수 뉴비가 작게 탄식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피로 얼룩져 있던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멍한 표정으로 얼을 타고 있던 정신을 일깨우고 행동을 시작했다.
검사 뉴비의 몸을 바닥에 눕히고, 그의 경갑을 벗기고 옷을 찢어 옆구리의 상처를 살폈다.
‘…배운대로 하는 거야. 배운대로.’
모험가 길드에서 배웠던 응급 처치의 기초 교육을 떠올리고는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허리춤에 차고 있던 파우치에서 소독약이 든 병과 붕대를 꺼냈다.
“크으윽!”
마개를 따자마자 곧바로 소독약을 상처 부위에 들이붓자, 따끔한 감각에 검사 뉴비가 전신을 비틀었다.
“참아.”
에린은 고통에 몸부림을 검사 뉴비의 양어깨를 단단히 붙잡으며 고정했다.
상처를 소독하고, 약을 바른 다음, 상처를 붕대로 압박했다.
“일어날 수 있어?”
“괜…찮아. 고마워.”
아직도 옆구리가 쓰라린 검사 뉴비는 동료들의 부축을 받으며 힘겹게 일어났다.
에린은 파우치에서 붉은색 액체가 들어있는 포션을 상처를 입은 뉴비에게 건넸다.
“받아.”
“이건…?”
뉴비들은 멍한 표정으로 에린이 내민 포션을 바라보았다.
“…포션?”
은현의 제조 비법으로 탄생한 비약을 희석하여 제작된 상급 포션은 그 효능과 높은 값어치를 인정받아 현재 모험가 길드 내에서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었다.
아무리 모험가라는 직업에 발을 들이민지 얼마되지 않다고 하더라도, 모험가 길드 내부에 거래되는 포션의 시세 정도는 파악하고 있었기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어느 정도의 재력을 가지고 있길래, 비싼 포션을 상비약으로 들고 다닐 수가 있을까.
“곧바로 낫지는 않지만, 상처의 회복에 도움은 돼.”
“하, 하지만 이런 비싼걸….”
“알면 다치지 마. 모험가는 몸이 재산이야. 이런 비싼 포션의 신세를 지고 싶지 않다면 그만큼 강해지고 경험을 쌓아서 포션을 쓸 일을 만들지 않으면 되는 거야.”
단호한 에린의 태도에 검사 뉴비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에린이 내민 포션을 받아들였다.
“감사합니다….”
“좋아. 그럼….”
에린은 굳은 표정으로 고블린의 시체 뒤, 적나라한 나체로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여성의 무리를 확인했다.
“…….”
고블린들의 체액으로 잔뜩 더럽혀진 여성들의 나체를 한번 응시했다.
전신에는 칼에 베인 상처들이나 구타로 인해 파랗게 들어버린 멍들이 가득하다.
이미 숨통이 끊어지며 움직이지 않는 두 여성의 모습에 에린은 떠올리기도 싫은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다.
정말 너 같은 게 어떻게 고위귀족님들의 눈에 들었을까.
외모는 반반하니까 얼굴 때문이었을까?
응? 에~린? 정말로 궁금해서 그래. 어떻게 너 같은 게 공작님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을까~?
범죄자의 딸 주제에.
아버지한테 여쭤본 적이 있는데. 아르미타스 공작님이 저 아이를 변호해줬데.
어머, 공작가문에서? 왜?
모르지 얼굴은 반반하니까. 찾아가서 다리라도 벌려준 거 아니야?
신분의 차이에 숨어서 자신을 조롱하고 비방했던 수많은 학생의 목소리.
그 상황을 주도하며 가장 앞장서서 자신을 괴롭혔던 동급생들의 최후는 너무나도 처참했다.
집안을 비롯해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생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모험가를 시작한 전 귀족 자제들의 말로.
“바보들.”
에린은 한심한 그들의 마지막을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이들은 신참인 뉴비치고는 강한 전력을 가졌다.
귀족의 태생으로 선천적으로 많은 마력의 보유량을 가지며 태어났고, 성장기에는 검술이나 마법 등 고등의 교육을 받으며 자신들의 실력을 갈고닦아 왔을 터.
방심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장비가 부실했기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면 양쪽 다일 수도 있다.
죽기 전까지 고블린들에게 자신의 몸을 희롱당해야만 했던, 너무나도 참혹하면서 허무한 결말.
나체의 상태로 고블린들의 체액으로 더럽혀진 두 여성은 유품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것도 보이지 않았다.
“…가자.”
에린은 뉴비들을 데리고 아르미타스령으로 복귀하기 위해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만 했다.
고블린의 토벌은 완수.
하지만 선행했던 뉴비 파티 세 명은 이미 사망했다는 싸늘한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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