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8화 〉 358. 뉴비 교육(4)
* * *
“읍…우웨액!”
결국, 참지 못한 검사 뉴비 한 명이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는 위액을 구토해냈다.
횃불로 밝혀진 시야로 보이는 남자의 시체는 그만큼 끔찍했다.
구멍이 뚫려 있는 복부로부터 구더기가 끓는 광경은 뉴비들에게는 너무 그로테스크한 광경이다.
궁수 뉴비와 다른 검사 뉴비도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돌리는 가운데, 계속해서 시체의 상황을 살피는 것은 에린과 마법사 뉴비뿐이었다.
“…….”
아직 1년 차에 불과한 에린에게도 상당히 그로테스크한 광경이기는 했지만, 오히려 패닉 상태에 빠진 뉴비들의 모습 때문에 에린은 냉정함을 되찾을 수 있었다.
발걸음을 옮겨 사망한 남성 뉴비에게 다가갔고, 마법사 뉴비가 에린의 뒤를 따라 걸었다.
횃불을 가져다가 사망한 남성 뉴비를 비추면서 시체의 상태를 관찰한 다음, 자신과 마찬가지로 시체를 관찰하고 있던 마법사 뉴비에게로 흘끗 시선을 옮겼다.
“어떻게 생각하니?”
“…잘 모르겠습니다.”
복잡한 표정으로 자신이 없어 보이는 마법사 뉴비의 대꾸에 에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틀려도 괜찮아. 한번 말해 봐.”
“이 남자의 파티가 고블린 소굴 토벌 의뢰를 받아들이고 출발한 건 3일 전입니다. 그런데 이 시체의 부패는….”
빨라도 너무 빠르다.
구더기와 벌레들이 꼬인 정도가 ‘약 1주일 이상 동안 방치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
“이곳이 지하이기 때문이야.”
“지하입니까?”
“습하고 더우며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는 장소니까.”
시체의 부패에 대한 진척이 평균보다 훨씬 빠르다.
“복부의 이 상처 보여?”
에린은 손가락으로 안쪽으로 크게 움푹 파인 시체의 옆구리 부분을 가리켰다.
골반 부분부터 가슴 아랫부분까지 동그란 원을 그리며 안쪽으로 깊게 파여 있는 상흔.
“커다란 둔기로 얻어맞은 거야. 딱 한 방인데도 이렇게 크게 움푹 파일 정도로.”
“…….”
“몸집이 왜소하고 허약하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고블린이 이런 커다란 상흔을 남길 수가 있을까?”
“불가능합니다.”
마법사 뉴비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부정했다.
지름이 20cm는 되어 보이는 커다랗고 단단한 둔기를 사람의 살을 찍어내고 늑골을 부러뜨릴 정도로 어마 무시한 힘으로 휘두르는 것이 일반적인 고블린에게 가능할 리가 없다.
“결국, 일반적인 고블린 토벌이 아니었다는 뜻이지. 네 짐작이 맞았어.”
마법사 뉴비가 우려했던 대로, 먼저 이 의뢰를 받아들여 수주했던 3인 뉴비 파티의 전멸에는 범상치 않은 이유가 존재했다.
“고블린 중에서도 상위개체의 등장 가능성을 생각하고 계신 건가요?”
“응.”
에린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보다 훨씬 작은, 1.5m도 되지 않는 키와 빈약하고 왜소한 체구를 가진 고블린은 한 마리 정도는 일반 여성이라도 쉽게 제압할 수가 있다.
그렇기에 그 번식력을 기반으로 끝도 없이 둥지를 트고, 씨가 마르지 않는 고블린은 주로 신참인 뉴비들이나 동위계 모험가들에게 맡겨지곤 한다.
하지만 약하다고 방심을 할 수도 없는 점이, 둥지를 잃거나 쫓겨나 독자적으로 행동하는 개체가 아닌 한, 10개체 이상이 무리를 지어 합동으로 공격을 해오기 때문이다.
제대로 전투 훈련을 받지 못했거나 방심을 하게 된다면, 무리를 지어 행동하는 고블린을 처리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작업이 아니다.
고블린이 상대적으로 다른 마수들에 비해 약하다고 평가를 받는 점을 비롯해 방심을 하게 되는 것도 큰 원인.
아무리 9살의 어린 아이라도 2명 이상이 독을 묻힌 칼을 이용하여 죽기 살기로 달려든다면, 다 큰 성인이라도 무시할 수는 없는 법이다.
고블린은 번식력이 높다는 특성상 철저하게 물량전이나 기습을 활용하는 것에 특화되어 있다.
“어쩌면 그냥 고블린이 아니라…. 홉 고블린이나, 고블린 챔피언 같은 상위개체가 있을지도 몰라.”
일반적인 고블린보다 더 몸집이 크고 육체가 강력한 개체들.
그 개체들이 섞여 있다면 확실히 3명으로 구성된 뉴비 파티만으로는 힘겨웠을지도 모른다.
“고블린의 전투력이 아무리 약하다고 해도, 너희들은 뉴비야. 특별히 경계하고 진형을 잘 유지하며 틈을 보여서는 안 돼.”
“…네.”
“알겠습니다….”
마법사 뉴비의 대꾸를 시작으로 다른 뉴비들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뉴비들은 조금은 역한 시체의 냄새와 그로테스크한 광경의 충격에서 이성을 되찾은 듯 보였다.
하지만 그런데도 인상을 찡그린 표정을 풀어지지 않았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패닉에 빠졌던 정신을 차릴 수는 있었지만, 이 냄새와 광경은 도저히 익숙해 지지가 않았다.
‘…범상치 않은 애네.’
에린은 흘끗 마법사 뉴비를 보며 속으로 감탄했다.
인상을 찡그리면서도 시체의 조사와 주변 상황을 파악하면서 정보 수집과 생각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자신이 이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하고 앞으로의 행동 방침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하는 마법사 뉴비의 모습은, 이번이 첫 의뢰라고는 보기 힘들었다.
고작 1년 차인 자신이 타인을 평가하고 눈여겨본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지만.
에린은 이런 사람이 끝까지 살아남아 경험을 쌓고, 베테랑 모험가로서 성장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만약 전투가 벌어졌을 때를 가정하고 기본적인 진형을 조금만 수정하자.”
전열과 후열 등의 기본적인 진형은 바뀌지 않았다.
수정사항은 만약 홉 고블린이나 고블린 챔피언 같은 상위개체가 등장했을 시, 그 개체는 에린이 맡는다는 것뿐이다.
“그리고 두 의뢰 중에서는 생존자의 구출을 우선시할 거야.”
시체로 발견된 남성 뉴비의 동료인 두 여성 뉴비의 생존이 확인되지 않았다.
남자는 가차 없이 죽이고, 여자들은 산채로 데려다가 자신들의 노리개로 사용하는 고블린들의 종족 특성상 살아있을 가능성은 충분했다.
하지만 그들이 온전한 상태로 살아있을 것이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고, 에린은 미리 뉴비 파티원들에게 마음을 다잡으라는 경고의 의미를 담아 말했다.
‘딱히 걔들이 걱정되거나 구해주고 싶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뉴비들을 교육해야 하는 현재의 입장 상, 그냥 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에린은 시체가 된 남자의 손에 쥐어져 있는 검을 떼어내어 뉴비들에게 건넸다.
남성 뉴비의 사망 사실을 모험가 길드에 보고하기 위한 유품을 챙긴 것이다.
검사 뉴비는 시체가 쥐고 있던 검을 허리춤에 찬다는 것이 저항감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이것이 의뢰의 일부인 이상,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했다.
“좋아. 이제 이동하자.”
“예.”
에린과 뉴비 파티는 실종된 두 여성 뉴비를 찾기 위해, 유적의 더 깊숙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유적의 지하 내부로 깊이 들어갈수록, 피와 내장의 썩은 냄새는 더욱 짙어졌다.
“우욱….”
공기를 타고 코로 스며들어오는 구역질이 날 정도로 심한 악취의 냄새.
검사 뉴비가 인상을 찌푸리며 헛구역질을 억지로 멈추며 자신의 코를 막았다.
하지만 그 노력이 무색하게 중열에서 전방위의 경계 태세를 취하며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여성 궁수 뉴비는 그 냄새를 참지 못했다.
“으…우, 우웨액!”
결국, 견디지 못해 무릎을 꿇고 토하는 궁수 뉴비를 보고, 선행하여 걷고 있던 에린이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며 궁수 뉴비의 상태를 살폈다.
“죄, 죄송해요….”
베테랑인 금위계의 모험가와 파티를 맺었다고는 하지만, 모험가 일의 현실을 자각하고 그 괴리감에 무릎을 꿇었다.
구토하고 한심한 모습을 보이며 파티에 방해가 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한 궁수 뉴비가 황급히 민망한 표정을 지으며 에린에게 사과했다.
“아니, 괜찮아. 처음이니까.”
첫 의뢰를 통해서 현실을 깨닫고 그 괴리감에 적응하는 일은 뉴비에게는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의 경우에는 은현이 전면적으로 나서서 케어를 해주며 많은 신경을 써주었지만, 이 뉴비들은 다르다.
이 괴리감에 적응하기 위해 스스로 많이 노력해야 할 터.
‘현이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은현과 함께 던전이나 유적 조사를 하면서 모험가의 기초를 다졌을 때.
그로테스크한 시체들과 참을 수 없는 악취들에 결국 참지 못하고 바닥에 토를 했던 자신의 흑역사를 떠올렸다.
“으….”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추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줘 버린 자신의 흑역사가 머릿속으로 떠오르자 에린의 인상이 자연스레 찌푸려졌다.
“에, 에린님도 기분이 별로이신가요?”
“어? 어. 응. 뭐, 좋지는 않지.”
에린의 인상도 그렇게 좋지만은 않다는 것의 원인이 남성 뉴비의 시체나, 이 악취 때문이라고 뉴비들은 멋대로 착각했다.
“움직일 수 있겠어?”
“…네.”
에린의 물음에 궁수 뉴비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태세를 정비했다.
“죄송해요.”
“괜찮아. 그래도….”
에린은 짧게 충고했다.
“앞으로도 모험가 일을 계속 하고 싶으면 익숙해져야 해.”
“…네.”
여성 뉴비를 비롯한 뉴비들 전원들 한 번씩 훑어보며 말한 에린의 충고를, 뉴비들은 곧바로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모험가 길드에 의뢰되는 의뢰 중, 가장 레벨이 낮은 수준의 고블린 토벌이라지만, 뉴비들은 이 첫 의뢰를 통해서 모험가라는 직업이 얼마나 녹록하지 않은 일인지를 자각했다.
어쩌면 자신들의 미래도 방금 전 보았던 남성 뉴비처럼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얼마든지 존재한다.
유적의 내부 깊숙한 곳으로 계속 이동하여 탐색을 개시하면서, 에린은 횃불을 이용해 시야를 밝히고 동굴 바닥을 꼼꼼하게 살폈다.
3일 전, 이곳의 고블린을 토벌하러 온 뉴비 파티 중 남성은 시체로 발견되었지만, 파티의 구성원이었던 두 여성 뉴비는 찾지 못했다.
발자국과 시간이 오래 지나 말라버린 핏자국.
그리고 무언가를 끌고 간 흔적들.
에린은 고블린 무리가 두 여성 뉴비를 끌고 내부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고 추측했다.
이어서 횃불의 빛도 닿지 않는 어두운 곳에서부터 타박타박 발소리가 들려왔다.
남들보다 감각이 좋은 에린만이 그 소리를 듣고, 본능적으로 전방을 향해 감지를 펼쳤다.
“…온다.”
아마도 횃불의 빛을 발견하고 접근해오는 것일 터.
“흣!”
짧게 중얼거리는 에린의 경고에 뉴비들은 곧바로 긴장하며 각자의 무기를 쥐고 경계의 태세를 취했다.
“다들, 진형이나 미리 짜두었던 전략. 모두 숙지하고 있지?”
“네.”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하는 뉴비들의 대꾸에 에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선행하여 앞으로 뛰기 시작하는 에린을 뒤따라, 네 명의 뉴비가 일제히 앞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르륵?
일제히 들리는 다수의 발소리와 함께 의문을 품은 고블린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집중되었고.
에린과 모험가 파티가 들어선 곳은 사방이 돌벽으로 깔린 회랑이다.
그르륵!
이윽고 고블린 무리도 모험가 파티를 발견하고 무기를 들어 올려, 모험가 파티를 향해 돌진해왔다.
마법사 뉴비가 에린이 미리 조언해준 대로, 곧바로 영창에 들어갔다.
…그거면 되는 겁니까? 공격마법이 아닌데요?
그거면 돼. 너 혼자 이 유적에 있는 모든 고블린들을 쓸어버릴 필요는 없으니까. 실제로 그럴 여력도, 여건도 안 되지?
마력의 양도, 구사하는 마법의 수준도 그렇게 뛰어난 편이 아니라는 자신의 주제를 잘 알고 있던 마법사 뉴비는 순순히 에린의 지시를 따랐다.
[한 자릿수 마법]
[라이트]
에린을 비롯한 두 검사 뉴비가 땅을 박차고 앞으로 달려나갔다.
마법사 뉴비는 스태프의 끝을 횃불로 시야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는 전방의 어둠 속을 향해 내밀었다.
‘밝기는 최대한 밝게, 이 공간을 가득 채울 수 있을 정도로.’
상대적으로 어둠 속에서 눈이 잘 보이는 고블린들과 어둠 속에서 불리한 뉴비들의 격차를 줄이고, 그 격차를 단번에 역전시킬 방법.
에린 양. 제 조언이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싸움에서 자신 쪽에 불리한 상황이 놓였을 때는 그 불리한 상황을 최소한 대등하거나, 또는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으로 역전시키는 수단을 강구하는 것이 수단의 정석입니다.
제라드의 조언을 떠올리고, 에린이 마법사 뉴비의 마법을 활용하여 급하게 마련한 수단.
스태프의 끝에 광채가 생겨나더니, 그 빛은 태양처럼 찬란하게 빛났다.
에린과 전사 뉴비들, 궁수 뉴비는 전열과 중열에서 그 빛을 등지고 과감하게 앞으로 뛰어들었다.
고르으으!?
회랑의 내부가 환하게 밝혀지면서, 이곳에 둥지를 트고 있던 고블린들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다.
수는 총 22마리.
그중에 홉 고블린이 3마리.
뉴비들이 상대하기에는 버거운 전력을 가진 홉 고블린들은 사전에 미리 에린이 맡기로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맑고 깨끗한 빛에 갑자기 노출된 고블린들은 눈이 부셔 자신들의 두 눈을 질끈 감고는 비명을 질러댔다.
돌진을 시작하고 질주를 멈추지 않았던 에린은 우왕좌왕하는 고블린들을 제쳐두고, 가장 앞쪽에 있던 덩치가 큰 홉고블린 하나를 향해 더욱더 가속하여 달려갔다.
자세를 낮추고 허리춤에서 두 자루의 레이피어 중 한 자루를 뽑아 들었다.
[갤러해드 세검술]
[질풍사(?風?)]
신체의 마력을 양다리에 집중시켜 단숨에 해방하자 놀라우리만치 높은 허공으로 에린이 점프했다.
폭풍 같은 강렬한 마력이 담긴 에린의 검신이 그대로 홉 고블린의 머리를 관통했다.
퍼엉!
살점을 비롯해 단단한 뼈와 두개골까지도 으스러뜨릴 정도로 강력한 공격에 직격한 홉 고블린의 머리가 터져나갔다.
뉴비들의 싸움 또한 시작되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