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7화 〉 357. 뉴비 교육(3)
* * *
여성 뉴비의 마음속은 초롱초롱한 눈빛과는 달리, 굉장히 냉정했다.
존경심이 섞인 말투와 태도를 통해서 듣는 사람의 자존감을 치켜세워주고 아부하는 계산이 들어가 있는 냉정함.
즉 지금 여성 뉴비가 보여주고 있는 것은 내숭이다.
‘…대단한 애네.’
작은 키와 귀여운 인상은 많은 남성에게 보호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외모다.
그 외모를 이용하여 이성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모습과 행동을 본능적으로 연기하는 능력은 에린을 순수히 감탄하게 만든다.
기본적으로 생각하는 바의 얼굴이 그대로 드러나는 편으로, 생각을 감추거나 연기하는 것에 소질이 없는 에린에게는 없는 재능이다.
그녀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몸과 얼굴의 장점을 아주 잘 활용하고 있는 여성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순수하게 그녀의 성격과 능력에 감탄한 것뿐.
그녀의 의도를 도저히 칭찬할 수는 없었다.
‘감히 현이한테 접근하려고 해?’
의도가 무엇이든, 이런 내숭까지 연기해가며 은현에게 접근하려는 것이 좋은 의도일 리가 없다.
에린은 씨익 미소지었다.
“어…?”
여성 뉴비는 얼굴을 굳혔다.
에린의 미소가 굉장히 꺼림직했기 때문이다.
에린은 발걸음을 멈추고 여성 뉴비에게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대어, 귓가에 그녀만이 들을 수 있는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꿈 깨.”
“흣!?”
에린 스스로도 이런 목소리를 낼 수가 있었던 걸까 싶을 정도로 차갑다 못해 싸늘한 목소리.
그 목소리를 들은 여성 뉴비는 어깨를 움찔 떨었다.
“네가 접근해도 될 사람이 아니야.”
“…….”
“널 걱정해서 하는 말이야. 나한테 들킨 걸 다행으로 여겨. 다른 분에게 걸렸으면, 너는….”
만약 일리아나나 엘레노아에게 걸렸다면 그때는 이미 끝났다.
무엇이 끝났다는 것일까.
머릿속으로 다양한 상상들이 오가는 가운데, 그 의미를 이해한 여성 뉴비는 말을 잇지 못했다.
꿀꺽
침묵 속에서 침을 삼키고는 안색을 싹 굳히는 여성 뉴비의 표정은 등을 보인 상태인 동료 모험가들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아, 아니야….”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여 평정을 가장한 여성 뉴비가 자신의 파티원들을 안심시켰다.
“…에린님. 죄송합니다. 제가 실언을 한 것 같아요.”
다행히도 여성 뉴비는 곧바로 고개를 숙이며 에린에게 사과를 했다.
세상에는 건드려서는 안 될 사람이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챈 것이다.
“응. 이해해준다면 나야 고맙지.”
에린은 곧바로 자신이 한 경고의 의미를 알아들은 것에 작게 숨을 내쉬었다.
은현이 겨우 이런 여자에게 농락을 당할 남자는 아니었지만, 접근한다는 것 자체가 그렇게 기분이 좋은 것이 아니었다.
“후…우….”
여성 뉴비도 긴장을 풀고 작게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지금 이 순간, 그녀는 에린과 자신 사이의 격차를 확실히 인식했다.
여성 뉴비는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고, 사람의 마음을 파고드는 것이 능숙한 만큼, 눈치는 물론 머리 회전이 빠른 편이다.
자신이 속한 파티의 교육을 맡아주겠다는 ‘1년 만에 금위계 등급을 달성한 솔로 여성 모험가’인 에린에 대한 정보 수집은 사전에 이루어두었다.
모험가 길드 내부에서 그녀의 명성이나 소문은 이미 자자해서 정보 수집이라고 할 수 있는 수준도 되지 못했다.
모험가로서의 실력은 물론, 검문소의 위병과도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나, 많은 사람에게 호감을 얻고 있는 그녀의 천성은 대단했다.
‘쯧.’
많은 사람이 에린에게 호의를 품고 좋아한다.
검문소 위병들의 태도를 보고서, 여성 뉴비는 확신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그녀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나 지위 주위의 인맥에 혹해 무언가를 기대하고 에린에게 호의를 품지 않는다.
순전히 ‘에린 헤르샤’라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여성의 매력에 이끌려 호의를 품는 것이다.
‘내가 싫어하는 타입이야.’
여성 뉴비 자신은 필사적으로 많은 남자에게 사랑받는 타입의 이상의 여자를 연기해서 호감을 얻는 한편, 에린은 다르다.
연기가 아닌, 정말로 가만히 있어도 남성들의 호감을 끌어당기는 재능.
처음 에린을 보자마자, 넋을 놓고 멍하니 바라보던 세 명의 남자 파티원들.
파티의 홍일점인 자신과 파티를 결성했을 때도 헤벌쭉하며 얼굴을 붉히긴 했지만.
마치 운명의 첫사랑을 발견한 것 같은 표정을 짓는 반응만 봐도 자신과의 차이는 역력하다.
그것이 질투가 나면서, 자신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자각시켜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패배감을 불러일으킨다.
‘아니, 아니지. 냉정하게 생각하자.’
이 영지의 유력자들과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는 에린과 친해져서 나쁠 것은 없었다.
에린의 경고는 자신의 스승인 은현에게 수작을 걸지 말라는 것.
그 경고를 알아듣고 발을 뺀 순간, 에린의 분위기는 곧장 부드러워졌다.
이 경고만 잘 지키고 허튼수작을 부리지만 않는다면, 관계의 개선도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조심히, 거리를 두고 다시 시작하자.’
자신이 너무 앞서 나가, 하마터면 큰일을 치를 뻔했다는 것을 자각한 여성 뉴비는 신중하게 행동을 옮겼다.
의뢰를 신청한 마을이 있는 곳까지 걸어가는 동안, 에린은 뉴비들에게 간단한 교육을 이어나갔다.
모험하면서 꼭 챙겨야 하는 물자나, 있으면 좋은 장비들의 유무.
에린이 눈여겨본 것은 뉴비들의 기초적인 체력이나 마인드다.
‘그럭저럭 괜찮은 것 같네.’
모험가의 특성상 영지의 외곽에서 활동하는 경우가 많은 만큼 모험가들은 그만큼 많이 움직이고, 적게 쉬어야 하는 것이 기본이다.
당연히 하루 이틀 거리를 걷는 것도 아니고, 짧게는 4~5일 정도에서 길게는 1개월까지.
그 긴 시간을 버틸 수 있는 장기간 보존 식량이나 노숙 장비 등은 모험에서 그들의 무기만큼 가장 필요한 필수 요소 중 하나.
그 장비들이 들어간 무거운 배낭을 짊어진 네 명의 뉴비들은 불평불만 하나 하지 않고 에린의 뒤를 따라왔다.
제대로 된 마력의 운용방법과 신체 강화를 통해서 모험가로서 최소한의 기본 소양은 갖추었다는 이야기다.
그만큼 아르미타스 지부의 모험가 길드가 뉴비들의 교육에 체계적으로 많은 힘을 쏟으며 열을 올리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너무 많은 체력의 소비도 그다지 좋은 선택이 아니다.
정작 본격적으로 전투가 벌어질 때, 체력방전으로 제 실력을 드러내지 못한다면 그것만큼 멍청한 짓이 따로 없다.
“오늘은 이곳에서 노숙이야.”
아직 해가 지지도 않은 이른 낮이었지만,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뉴비들의 체력을 가늠하고 노숙을 결정했다.
“알겠습니다!”
에린의 휴식 선언이 떨어지자, 뉴비들은 반색하며 곧바로 등에 메고 있던 짐을 풀기 시작했고, 야영의 준비를 시작했다.
에린의 지시하에 두 전사 뉴비가 각자 작은 소형 텐트를 두 개 설치하는 동안, 마법사 뉴비는 모닥불을 피웠고 궁수 뉴비와 에린은 각자 5인분의 식사 준비를 맡았다.
“에린님은 요리도 할 줄 아시나요?”
“솔로로 활동하다 보면 이런 것도 어느 정도 익숙해져야 하니까.”
“그렇군요.”
담담히 고개를 끄덕인 여성 궁수 뉴비는 처음처럼 순수하고 발랄한 컨셉의 여자를 더는 연기하지 않았다.
어떻게 눈치를 챈 것인지는 모르지만, 에린에게 들킨 이상 이 이상 내숭을 떨어보았자 좋을 것이 없다는 판단이었다.
역시나 계산적으로 판단이 빠른 뉴비였다.
텐트의 설치가 완료되고 모닥불 앞에 앉아 에린을 포함한 네 명의 뉴비는 간단한 저녁 식사 시간을 가졌다.
에린은 그릇에 담겨 있는 스프를 떠먹으며 입을 열었다.
“이번 의뢰의 내용. 기억하고 있는 사람?”
에린은 간단하게 화제를 전환하기 위해 뒤따라오고 있는 뉴비들에게 말을 걸었다.
세 남성 뉴비 중, 마법사 뉴비가 손을 들고는 대답했다.
“고블린 소굴의 토벌입니다.”
“응. 그리고?”
마법사 뉴비는 긴장한 표정으로 사전에 수집했던 정보들을 입에 담았다.
“실종된 모험가들의 수색입니다.”
자신들의 임무는 에린과 함께 실종된 모험가들의 수색을 함과 동시에, 그들이 수주했던 의뢰, ‘고블린 토벌’을 완수하는 것이다.
이미 3일 동안 연락이 끊인 모험가 파티의 소식에 모험가 길드는 그들의 임무 수행을 실패로 판단하여 내린 결정이었다.
“그러면 해야 하는 건 뭘까?”
“…….”
마법사 뉴비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머릿속으로 떠오른 생각을 정리하고 제대로 조리 있게 설명하기 위해서다.
두 검사 뉴비나, 여성 궁수 뉴비는 마법사 뉴비의 말을 조용히 기다렸다.
“정보 수집입니다.”
“정보? 흐응. 계속 얘기해 봐.”
“저희가 완수해야 할 고블린 토벌과 연관된 정보입니다. 예를 들어…. 어째서 이 토벌 의뢰를 수주했던 모험가들은 소식이 끊겨버린 원인이 무엇일까? 같은….”
첫 모험을 하는 뉴비들치고는 괜찮은 대답이 나왔다는 사실에 에린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정보는 중요하지. 토벌해야 하는 고블린의 숫자는 몇 마리일지, 소굴의 위치, 고블린들의 구성, 그 이외에 다른 위험 요소는 없었는지. 등등.”
“겨우 고블린의 토벌일 뿐인데. 그렇게까지 신경을 써야 하는 건가요?”
검사 뉴비는 조금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투덜거렸지만.
에린이 무언가 말을 하기도 전에, 그의 말을 반박한 것은 같은 뉴비 파티의 마법사 뉴비다.
“겨우 고블린 토벌인데, 모험가가 실종되었다. 그렇게 가볍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야.”
“…….”
“실종된 모험가들은 우리와 같은 뉴비로 이루어진 3명의 모험가 파티야. 인원이 우리가 한 명 더 많다고는 하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변수로 인해 실종된 그 모험가 파티처럼 우리도 실종되지 않으리라고 확신할 수 있어?”
“그, 그건….”
마법사 뉴비의 질문에 검사 뉴비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말을 버벅거렸다.
오히려 자신이 생사도 불분명한 채로 실종될 수도 있다는 말을 듣자마자 안색을 창백히 굳혔다.
‘대단하네.’
에린은 마법사 뉴비의 의견에 순수하게 감탄했다.
모험가로서 받게 되는 첫 번째 의뢰치고는 상황을 파악하고 생각하는 방식이 굉장히 냉철하다.
모험가라는 직업 이전에 무슨 일을 해왔는지 궁금한 생각이 들 정도.
하지만 에린은 마법사 뉴비의 개인적인 사정을 깊게 파고들지 않았다.
모험가들 사이에서는 자신들의 과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그렇게 선호하지 않는 편이기도 했고, 에린도 그 정도로 궁금한 것도 아니었다.
“맞아. 정보의 수집과 그 상황에 맞는 판단을 빠르게 하는 것은 모험가로서 꼭 필요한 능력이야. 상황이 수시로 빠르고 살벌하게 바뀌는 와중에, 자칫 잘못된 판단을 내렸다가는 그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 마련이니까. 꼭 명심해둬.”
“…알겠습니다.”
고개를 숙인 검사 뉴비는 선배 모험가이자, 금위계인 에린의 조언을 달게 받아들였다.
“다 먹었으면 슬슬 정리하자. 정리가 끝나면 바로 불침번을 정할게.”
휴식을 취하고 3교대로 불침번을 돌아가며 선 끝에 아침을 맞이한 다음 날.
에린과 뉴비 파티는 의뢰의 내용 속에 적혀있는 고블린 소굴이 존재하는 고대유적의 입구에 도착했다.
“유적….”
토벌대상인 고블린들이 자리를 잡은 것으로 추정되는 곳은 던전이 아닌, 고대유적.
꿀꺽
그 지하로 들어가는 입구의 앞에 선 뉴비들은 침을 꿀꺽 삼키며 숨을 멈추고 있었다.
“들어가자.”
선두에 선 에린의 뒤를 따르는 형태로 파티는 유적 지하로 천천히 내려갔다.
“…어?”
횃불을 이용해 어두운 시야를 밝히고, 지하의 유적 내부를 탐방하던 도중.
에린은 바닥에 쓰러져 있는 한 사람의 모습을 발견하고 발걸음을 멈췄다.
뒤따라 걷던 네 명의 뉴비들도 에린이 발견한 사람의 모습을 발견했다.
“흡!?”
살과 장기가 썩으면서 생긴 역겨운 냄새들.
그 살점들을 파먹기 위해 꼬인 벌레들이나 구더기들의 향연은 이제 막 처음 모험가 일을 시작한 뉴비들에게는 너무 자극적인 광경이었다.
“우, 우웁!?”
숨을 삼키고 코를 향해 찔러 들어오는 역겨운 냄새들을 막기 위해 양손으로 자신의 코와 입들을 틀어막았다.
뉴비만큼 커다란 충격을 받지는 않았지만, 에린까지도 행동을 멈추고 표정을 굳힌 이유는 그녀 또한 이 상황이 당황스러웠기 때문이다.
썩어버린 시체의 얼굴이 자신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남자의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3인으로 구성된 뉴비 파티라고 했었는데….”
설마 그 뉴비 파티가 이 파티였을 줄은, 에린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구더기와 벌레들이 들끓는 참혹한 남성 뉴비.
에린과 같은 아이테르를 다녔던 재학생이었으며, 귀족 가문이 몰락하면서 모함가의 길로 전향하게 된 동급생의 최후는 굉장히 비참했다.
“그러면 남은 두 명은….”
에린은 눈앞의 남성 뉴비와 파티를 이루었을, 자신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었던, 전 귀족 출신의 여성 뉴비 둘의 모습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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