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6화 〉 356. 뉴비 교육(2)
* * *
트리샤의 부탁은 에린의 두 눈을 크게 뜨게 만들며 당황케 하기 충분했다.
자신이 지금 잘못 들었나 싶은 표정으로 에린이 말을 더듬었다.
“뉴…뉴비의 교육이요?”
“응.”
트리샤는 에린이 들은 게 맞는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에린은 인상을 찡그리며 단박에 거절했다.
“트리샤님. 저 그런 거…못해요.”
길드의 접수대에서 다른 모험가들이 에린을 두고 수군거렸던 것처럼.
“저, 이제 1년 차잖아요….”
자신은 겨우 1년하고도 조금 지난 젊은 모험가다.
에린이 쌓아온 경력과 실적은 확실히 자신이 보아도 대단하다고 자부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에린은 자신이 누군가를 가르치며 교육한다는 것을 지금까지 전혀 생각도 해보지 못했다.
“하지만 에린은 금위계이기도 해.”
“그래도…. 저보다 경험도 풍부하시고 훌륭하신 분이….”
“에린 네게 이 부탁을 하는 데는 다양한 이유가 있어.”
현재 아르미타스령에서 활동을 하는 금위계 모험가의 숫자는 보고된 것만 일곱 명.
그중 한 명이 된 에린에게 뉴비 모험가들의 교육을 부탁하는 것에는 확실한 이유가 존재했다.
“첫 번째는…그나마 에린에게 부탁을 하기가 쉽다는 나의 개인적인 연줄 때문이야.”
“…네.”
에린은 솔직한 트리샤의 타산적인 그 생각이 그렇게 싫지만은 않았다.
당연한 이유라는 것에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하는 에린을 보고, 트리샤는 말을 이었다.
“두 번째는…이 교육을 무작정 아래 등급인 은위계나 동위계 모험가들에게도 맡기기가 어렵기 때문이야.”
“은위계 모험가라면….”
에린은 고개를 갸웃했다.
동위계라면 몰라도, 이미 은위계라면 모험가 업에서 산전 수난을 다 겪고 베테랑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닌가.
“모험가들은 기본적으로 손해를 싫어하고 효율을 추구하니까. 굳이 뉴비들을 육성하여 후진 양성에 시간을 쏟아붓는 것보다, 직접 돈이 되는 의뢰를 선호해.”
정해져 있는 쥐꼬리만 한 보수와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뉴비들을 데리고 일일이 하나하나 가르쳐주며 교육하는 일.
높은 보수와 명예, 경력과 실적을 쌓을 수 있으며, 일확천금의 대박을 터뜨리는 경우도 가끔 존재하는 일.
두 사이에서 모험가들이 어떤 쪽을 우선시하며 선호를 할 것인지에 대한 결론은 당연히 후자였다.
“게다가…모험가들 사이에는 순수하게 좋은 의도로 뉴비들에게 접근하는 모험가들만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아….”
에린은 트리샤의 말의 의미를 알아듣고 작게 탄식했다.
지난 철호단의 경우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의 등을 처먹은 사태를 우려하고 있다.
뉴비들의 교육을 맡아줄 경험이 많고 실력 있는 모험가를 가장하여, 어떤 불순한 의도와 생각을 가지고 뉴비들에게서 부당한 이익을 착취하는 경우를 걱정했기 때문이다.
“순수하게 호의로 모험가들의 후진을 양성하겠다는 이유로 교육에 선뜻 승낙을 해주는 모험가들이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니까. 사람의 속을 모두 들여다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특히나 최근의 철호단 사건으로 모험가 길드에서 뉴비들이 불안에 떨고 다른 모험가들을 경계 어린 시선을 띄우는 경우도 자주 생기기 시작했다.
이런 경우는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좋지 못하다.
뉴비들은 다른 모험가들의 파티 권유나 그들의 접근에 경계하게 되고, 모험가들은 다짜고짜 의심과 경계를 받게 되면서 기분이 상할 수밖에 없으니.
모험가 길드의 내부에 흐르는 분위기는 굉장히 미묘했다.
최근에는 귀찮게 굳이 뉴비들을 데려가지 않고 자신들끼리 파티를 결성하여 뉴비들을 배척하는 경우의 풍조도 생겨나고 있었다.
“그래서 이 상황에서 내가 떠올린 사람이 에린이야.”
반면 에린의 경우에는 이야기가 다르다.
이 영지의 주인인 공작 가문의 사위인 수은의 뱀이라고 불리는 남자의 제자.
가지고 있는 인맥이나 실력, 신원도 확실하고, 트리샤가 개인적으로 쌓아온 친분으로, 아무런 이유도 없이 다른 사람에게 해가 가는 행동을 하는 여자가 아니라는 확신도 있다.
특히나 엘빈과 함께 둘이서, 뉴비들을 속여 부당한 이익을 갈취해 왔던 철호단의 비리를 모조리 파헤치고, 길드를 영지 밖으로 퇴출하게 만든 사건이 퍼져나갔다.
에린은 뉴비들 사이에서 떠오르는 작은 영웅이었다.
베테랑 모험가들에 대한 경계심을 풀고, 베테랑과 뉴비들 사이의 불화를 풀어낼 수 있는 인물로 제격인 셈.
“게다가 딱히 꼭 뉴비들을 잘 가르쳐서 성과를 내달라는 것도 아니야. 그냥 사례의 하나로 만들어 두고 나중에 참고하고 싶은 것도 있어. 에린의 모험가 교육 사례를 바탕으로 더 좋은 계획과 커리큘럼을 짤 예정이기도 하고.”
“…….”
이렇게까지 이야기를 하는데, 차마 입이 찢어져도 못하겠다고 무작정 말을 늘어놓을 수가 없어진 에린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할…게요….”
결국,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숙이며 승낙의 의사를 밝힌 에린의 반응에 트리샤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정말!?”
“…네.”
“고마워! 정말 고마워! 에린! 나중에 내가 꼭 보답할게!”
◆ ◆ ◆
“…그래서? 네가 교육을 맡았다고?”
“…응.”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피곤한 기색을 역력히 드러낸 에린의 대답을 들은 엘빈은 작게 고개를 숙였다.
“푸흡.”
“아! 왜 웃어!”
확실하게 들은 엘빈의 웃음소리에 에린이 발끈하며 소리쳤다.
귀까지 새빨개진 것이 명백하게 부끄러워하고 있던 에린은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웃음을 터뜨린 오빠의 모습에 괜히 짜증이 났다.
“그래서? 나한테 그 얘기를 하는 이유가 뭐야.”
엘빈은 보육원을 찾아와 자신에게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는 연유를 물었다.
부끄러움이 가득했던 에린의 표정은 엘빈의 질문에 다시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순순히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했다.
“…나 어떡하지?”
“뭐 어쩌라고?”
“아니…. 뉴비들한테 도대체 뭘 가르쳐야 해?”
“…….”
막연한 에린의 질문에 엘빈은 인상을 찡그렸다.
겨우 그 고민 탓에 자신을 찾아왔단 말인가?
“지금 그걸 나한테 묻는 거냐?”
등급도 경력도 자신보다 한참이나 위인 여동생이 조언을 구한 대상이 자신밖에 없었다는 것이 더 어처구니가 없다.
“물어볼 사람이 없었어….”
에린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정말 하나같이 대단한 사람들뿐이다.
각자의 영역에서 강력한 무력을 발휘하고 있는 일리아나나 제라드 같은 영웅들부터, 알렉스나 엘레노아 같은 고위 귀족의 신분을 가진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 어떻게 이런 하찮은 고민을 늘어놓을 수가 있을까.
그나마 동년배의 친한 동성이라고는 에이라 정도였지만, 에이라는 아르미타스령이 아닌 수도 페르닌에 있다.
만약 자신의 지인들에게 이 고민을 말하는 순간, 부끄러워서 쥐구멍에 숨고 싶은 기분을 느낄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에린이 상담과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은 엘빈뿐이다.
“…하아.”
이상한 데서 어수룩한 면모를 보이는 여동생의 모습에 엘빈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너는 그 녀석한테서 뭘 배운 거야?”
“…현이한테?”
“그래.”
“이것저것 배웠지. 몸을 만드는 기초나, 검술이나 체술부터 일리아나님과 함께 마력의 운용방법도 배웠고, 모험가로서 활동하기 위한 기본적인 것들도 있고.”
과거에 은현한테 배웠던 것들을 막힘없이 술술 말하는 것을 듣고 엘빈은 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그 녀석한테 배웠던 것들을 그대로 가르쳐주면 되는 거 아니야?”
“현이한테 배웠던 것들을?”
에린은 은현에게 가르침을 받던 초창기의 기억을 떠올렸다.
아파아! 온몸이 아프다고!
한 세트만 더 하면 쉬게 해줄게.
그 얘기만 벌써 세 번째야! 이 거짓말쟁이! 으아앙!
체력과 몸의 기초가 전혀 만들어지지 않았던 몸을 만들기 위해서 피눈물을 흘리며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버텨왔던 시간들.
“…….”
“문제 있어?”
에린이 실시간으로 표정이 적나라하게 안 좋아지자, 엘빈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오빠는 현이가 사람을 훈련 시킬 때, 어떻게 훈련을 시켰는지 본 적이 없으니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야.”
“……?”
자신을 가르칠 때도 그렇고, 아르미타스 기사들을 훈련 시킬 때, 그것을 옆에서 직접 체험해 보기까지 했던 에린은 은현이 자신을 가르쳤던 것처럼 하라는 엘빈의 의견을 곧이곧대로 채용할 수 없었다.
“그래도…의견은 고마워.”
은현에게서 배운 모든 것들을 그대로 똑같이 재현할 필요는 없었다.
특히나 뉴비들에게 필요한 것은 몸을 만드는 훈련 같은 것이 아니라, 모험에서 필요한 지식이나 판단능력을 쌓는 경험을 시켜주는 것이 중요하다.
“갈게.”
“그래. 이상한 소문 안 나게 잘하고 와라.”
“쓸데없는 사족까지 붙이지 마!”
에린은 보육원을 나가면서도 빽하며 엘빈에게 소리를 질렀다.
◆ ◆ ◆
“안녕하십니까!”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영지의 바깥으로 나가는 성문 외곽.
검문소에서 위병의 검문을 받기 전, 교육을 받기로 한 뉴비 모험가들은 우렁찬 목소리로 허리를 숙여 에린에게 인사를 건넸다.
“어, 응…. 그, 그래….”
그 목소리가 너무나도 기운차서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한데 모을 정도.
뉴비 모험가들과 에린의 모습을 발견한 검문소의 위병들이 킥킥대며 에린을 보고 외쳤다.
“이봐. 아가씨! 모험가 길드에서 들었다고! 이제는 신참들의 교육까지 맡는다지!?”
“이야! 아가씨를 본지도 1년이 지났는데 벌써 저런 후배들을 거느리고 다니고 말이야! 정말 대단하군그래!”
“노, 놀리지 말아요!”
에린은 붉어진 얼굴로 자신을 보며 재미있다는 듯 농담을 던지는 위병들에게 외쳤다.
“킥킥. 이봐. 신참들 영광으로 알라고. 이 아가씨가 어떤 아가씨냐 하면….”
“아이참! 잡담하지 말고 빨리 검문이나 해주세요!”
에린은 자신을 놀리려는 위병의 말을 차단하고, 황급히 화제를 돌렸다.
“하하! 잘 배우라고! 신참들!”
에린의 유명세 때문인지, 위병들의 검문은 매우 빠르고 간결하게 이어졌다.
이번에 에린이 뉴비들을 데리고 향한 의뢰는 신참인 신참과 동위계의 등급 모험가들을 대상으로 의뢰가 되는 ‘고블린 소굴 토벌’이다.
3일 전, 한 모험가 파티가 이 ‘고블린 소굴 토벌’의뢰를 수주하고 길드를 나간 뒤로, 그들의 행적이 묘연해졌다.
모험가 길드 측에서는 에린의 교육이 붙은 파티를 이 고블린 소굴 토벌 의뢰에 배정하였고.
먼저 의뢰를 수주하고 떠난 파티의 행적을 조사하고, 고블린 소굴의 토벌을 완수하는 것이 이번 의뢰의 목적.
에린이 목적지까지의 거리와 소요 시간, 중간에 마을을 들러 보충할 물자 등으로 생각에 잠겨 있던 차.
“대단하세요! 위병분들과 그렇게 친하시다니!”
영지를 나와 의뢰지를 향해 걸어가던 도중, 한 뉴비가 두 눈을 반짝이며 에린에게 말을 걸었다.
“그…런가? 잘 모르겠는데….”
에린은 마치 친한 언니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처럼 놀라운 친화력을 발휘하는 여성 뉴비의 말에 어색하게 대답했다.
그들과의 관계는 나쁘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생각해보면 어느 순간부터 인사를 하면 받아주고, 가볍게 대화를 나누면서 자연스레 웃음을 지었던 적도 자주 있었다.
검문소의 위병들에 대한 에린의 인상은 그냥 자신의 부끄럽거나 곤란한 모습을 보고 즐기는 짓궂은 아저씨들이다.
“에린님! 에린님은 어떻게 해서 그렇게 강해지셨나요?”
“나? 음…. 글쎄….”
에린은 뭐라 설명을 하지 못해 곤란한 표정을 짓다가, 대강 얼버무리기를 선택했다.
“스승님을 잘 만났으니까.”
한두 번 받아본 것이 아닌 질문에 적당한 대답을 해두고, 흘끗 뒤를 바라보며 파티의 멤버 구성을 살폈다.
파티의 인원은 총 넷.
전사계열의 검사 둘.
마법사 하나.
궁수 하나.
전열을 검사 둘이 막아서고.
중열에서 궁수가 전방위 시야를 밝히며 전열의 후열을 엄호.
후열에서 강한 화력을 선보일 수 있는 마법사의 마법.
모험을 갓 시작한 뉴비들치고는 정석적이고 제대로 된 구성과 포지션이다.
아마 모험가 길드에서 배운 규칙과 정석을 토대로 추천해준 조합일 것이라고 에린은 추측했다.
“그 수은이라는 분이시군요! 혹시 저희도 만나 뵐 수 있나요?”
활을 등에 메고 있는 여성 뉴비의 뜬금없는 부탁에, 에린의 고개가 홱 돌아가 여성 뉴비와 시선이 마주쳤다.
“현…스승님을?”
“네! 혹시라도 저희에게 무언가 좋은 조언이라도 해주시면 감사할 것 같아서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자신의 몸을 꼬며 애교를 부리는 모습에 에린은 조심스레 여성 뉴비의 감정을 읽어 들였다.
‘…뭐야. 얘?’
에린은 발걸음을 멈추고 여성 뉴비에게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대어, 귓가에 그녀만이 들을 수 있는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꿈 깨.”
“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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