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4화 〉 354. 반란의 시작
* * *
“우웨액!”
레이넌과 박창훈은 선상 위에서 바닷물 위에 구토하는 남자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검은색의 머리카락, 바닥에 질질 끌릴 정도로 옷자락이 기다란 로브를 입고 있는 남성은 속에 있던 모든 것을 게워내는 구토를 마치고는 자신의 입을 닦았다.
“역시 배는 거지 같아….”
“…마리우스.”
“엉?”
사령술사 마리우스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레이넌을 발견하고는 눈웃음을 지었다.
“아아, 복수는 끝났나?”
“그래.”
꺄악!
문이 열려있는 선실 내부에서 들려오는 한 여자의 비명.
한창 레이넌의 부하들이 납치한 페데리카를 데리고 재미를 보고 있는 와중의 한창.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모양이군.”
페데리카가 농락당하고 있을 선실 내부를 응시한 마리우스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마치 감미로운 음악을 듣고 있는 것처럼, 여자의 비명을 들으며 미소를 짓고 있다.
“관심이 있다면 합류해서 즐겨도 상관없다.”
“뭐? 내가? 저기에 끼라고?”
여자를 강간하고 있는 상황에 흥미를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레이넌의 허락에 마리우스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이내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는 이미 나의 몸과 영혼을 비롯한 모든 것을 나의 신에게 바치기로 맹세했다. 더러운 인간 여성으로 경건한 나의 몸과 영혼을 더럽힐 수는 없지.”
마리우스는 이미 자신에게 사령술이라는 은혜를 내려준 초월자, ‘망자의 여왕 메디아’를 자신의 신으로 모시며 경견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많은 인간을 학살하고, 그 시체를 사령술로 되살려, 자신의 군단으로 만들어 조종하는 악랄한 방식으로 또다시 많은 인간을 학살하는 재앙을 반복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활성화하고 있는 악의 근원.
하지만 그가 품고 있는 사고상식과 행동은 경건한 마음으로 신을 모시는 신실한 성직자의 모습 그 자체다.
어딘가 뒤틀려 있고, 커다란 괴리감으로 모순되어 있으면서도 직선적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고통스러워하고 절망이 서려 있는 저 여자의 비명일 뿐이야. 하하, 정말로 아름다운 음색이군.”
“…미X 놈.”
“킥킥.”
악질적인 취향을 가지고 그것을 즐기고 있는 마리우스를 보며, 레이넌은 인상을 찡그리고는 중얼거렸다.
질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레이넌의 욕설에도, 마리우스는 그 시선을 즐기며 실실 웃을 뿐이었다.
자신이 이미 미쳐있다는 것은 자신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저 비명을 듣고, 저 비명 속에서 느껴지는 공포와 절망의 감정을 느끼면 느낄수록, 자신의 심장은 더욱 세차게 뛰고 더욱 자극적인 소리를 원한다고 애원하고 있는데.
“읍, 우웨액!”
하지만 그런데도 파도로 흔들리는 선상의 감각은 도저히 적응하기 힘들었다.
마리우스는 다시 한번 바다를 향해 구토하고, 배 속에 남아있던 것을 모조리 게워냈다.
“끄으윽…젠장.”
“그렇게 멀미가 심했다면 굳이 따라오지 않아도 좋았을 텐데.”
“나는 말이지. 사람의 비명이 있는 곳에 있는 게 더 마음이 안정되어서. 이런 멀미쯤은…우웨액!”
“야! 제대로 끌어!”
“아오, X발! X나 무겁네!”
다시 한번 속을 게워내던 마리우스는 옆쪽에서 목이 으스러진 시체를 바다에 던지려던 것을 발견했다.
“…흐음?”
그것을 유심히 보던 마리우스는 시체의 전신을 한번 훑어보더니 레이넌의 부하들에게로 달려갔다.
“이봐! 이봐! 멈춰!”
“뭐, 뭐야! 이 X끼는!?”
“야, 두령과 협력 관계에 계신 분이잖아! 아가리 찢어지고 싶냐!?”
“그 시체! 지금 바다에 던지려는 거냐!?”
“…그런데?”
부하의 긍정을 들은 마리우스는 이내 레이넌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어, 어떻게….”
“……?”
전신을 파르르 떨며 공석수의 시체를 응시한 마리우스의 모습은 명백하게 이상했다.
무섭거나, 두려운 표정이 아닌, 흥미와 희열이 가득한 표정.
“이렇게…이렇게 훌륭한 시체를 바닷속에 수장시키려고 하다니!”
“…뭐?”
감탄 어린 표정으로 외치는 마리우스의 발언에 레이넌의 부하들은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마리우스는 그런 부하들의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레이넌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이봐! 친구! 이 시체, 내가 가져도 되겠지?”
“…뭐에 쓰려고 그러지?”
마리우스는 실실 웃으며 자신의 머릿속 생각을 있는 그대로 입에 담았다.
“당연히 사령술을 이용해서 병사로 활용할 생각이다! 정말로 잘 단련된 신체군! 그리고 듣자 하니, 지금 이 배의 선실 안에는 이 남자에게 특별했던 여자가 지금 자네의 부하들에게 범해지고 있는 상황이라지?”
“…그렇다.”
“이 시체에 시체 주인의 영혼을 다시 강령시켜서, 그 여자의 앞에 가져다 둔다면 어떻게 될지 생각해보았나?”
그 상황을 상상한 마리우스는 마치 재미있는 연극을 기다리는 것처럼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나의 사령술로 되살아난 남자는 절대로 나의 명령을 거스르지 못하지. 자신의 소중한 여자가 많은 남자에게 강간을 당하는 것을 두 눈으로 보고도, 손가락 하나를 까딱하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반대로 여자 쪽에서도 시체가 되어서도 죽지 못해 살아있는 자신의 소중한 남자가 자신이 강간을 당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광경이란 뜻이지.”
그것은 틀림없이 페데리카나, 공석수에게나, 양쪽의 정신과 영혼에 큰 타격을 입힐 수밖에 없는 커다란 절망이다.
“…….”
“워매….”
하지만 그 발상과 사고방식이 너무나도 악질적이라, 레이넌은 물론, 그의 부하들까지 입을 벌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들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마리우스의 인상은 확실하게 박혀버린 것이다.
‘이 X끼는 진짜 제대로 미X놈이다.’
타인의 절망을 더욱더 깊은 바닥으로 끌어 내리고, 그때의 표정을 보며 즐기는 악질적인 마리우스의 성향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신을 모시고 있다는 경건한 마음을 가진 사령술사 신자는 그 상황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에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이 인생을 망친 장본인 중 하나인 페데리카와 공석수에게 자비를 베풀 생각은 절대로 없었다.
“좋을 대로 해라.”
“그래! 고맙다!”
이토록 강력한 육체와 그 육체를 가지고 있던 강자를 자신의 종으로 부릴 수 있다는 것은 마리우스의 전력 향상을 의미한다.
‘이것이라면, 그 개자식의 발을 묶어둘 수 있는 수단으로라도 쓸 수 있겠지.’
마리우스는 페르니아스 왕국에서 조우했던 무리를 떠올렸다.
특히나 단 한 순간에 자신의 양팔과 양다리를 절단시켜버린 백은발 머리카락의 붉은 눈을 가진 남자에게 가지게 된 대항심은 남달랐다.
자신을 무력화시켰던 그 압도적인 힘의 차이.
그 남자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자신도 그에 상응하는 전력을 만들어 낼 필요가 있었다.
마리우스는 순간, 자신의 신, 메디아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네가 현이를? 후후, 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해봐.
사룡의 소환을 대가로 자신의 소멸할 예정이었던 자신의 영혼과 육체를 복구시켜, 다시 하계로 내려보낸 마리우스의 신.
메디아는 그녀의 일방적인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은현을 죽여도 되냐는 마리우스의 물음에 흔쾌히 승낙해줬다.
마리우스의 최종 목적.
첫 번째는 에레니아 신성국의 멸망.
두 번째는 대륙에 혼란을 일으켜 많은 희생을 만들어내고 자신의 신인 초월자, 메디아를 불러내는 것이다.
자신의 목적을 방해하는 은현의 존재는 배척해야 할 대상이었다.
설령 그가 자신이 모시는 신의 사랑을 받는 존재라고 할지라도.
오히려 메디아는 정말로 자신의 신자가 그런 위업을 발휘할 수 있는지, 호기심을 갖고 있었다.
어서, 어서 내 사랑을 만나러 가고 싶어.
메디아는 하계에 현신하여 은현을 만날 수 있게 되는 날이 머지않았다는 것에 잔뜩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준비하겠습니다. 저의 신이시어.
회상을 마친 마리우스는 곧장 레이넌의 허락 아래에 공석수의 시체를 받아들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곧바로 선실의 바닥에 강령의 의식을 위한 마법진을 그리고 사령술을 발동시켰다.
“하하! 그 여자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기대가 되는군!”
이 공석수라는 남자가 모셨던 여자는 언데드가 되어버린 이 남자의 모습을 보고 어떤 표정을 지을지.
그리고 언데드가 되어버린 이 남자는 많은 남자에게 강간당한 여자의 꼴을 보고 어떤 표정을 지을지, 상상하는 것 만으로 벅찬 기대가 차올랐다.
마리우스가 그렇게 멀미로 속에 있던 것을 모두 게워내고, 공석수의 시체를 가지고 선실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 레이넌은 입을 열었다.
“하선하자마자, 곧바로 준비해라.”
그 말을 끝으로 레이넌은 등을 돌려 선실 내부로 발걸음을 옮겼다.
레이넌과 마리우스가 나눈 약속은 간단하다.
마리우스는 레이넌이 렌디르 왕국을 무너뜨릴 수 있도록 협조를.
레이넌은 마리우스가 자신의 모국인 에레니아 성국을 무너뜨릴 수 있도록 협조를.
서로의 이해가 일치하여 생긴 상호 협력의 관계.
자신의 목적은 그저 이 분노를 렌디르 왕국에 표출하는 것뿐이다.
‘왕국의 귀족들이 밉다.’
자신의 가족과 아이들, 자신의 사람들을 모두 빼앗아간 사람들이 밉다.
이렇게 될 것을 알았다면, 동료들과 함께 제국의 황제를 처치하고 전쟁을 끝내기 위해 그런 노력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들도 밉다.’
영웅 중 하나인 자신의 노력으로 이룩한 평화 속에서, 자신은 가지고 있던 전부를 빼앗기고 몰락하여 인생의 나락을 경험하고 있을 때.
자신을 몰락시킨 고위귀족들뿐만이 아니라, 아무것도 모르고 하하 웃고 떠들며 행복한 인생을 보내고 있는 렌디르 왕국의 백성들 전체가 미웠다.
[흐흐, 잘 무너지고 있군.]
렌디르 왕국에 걷잡을 수 없는 분노를 표출하고 있는 레이넌을 보며, 그와 계약을 진행했던 악마, 벨페고르의 정신체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성이 무너지고, 오염된 정신을 장악하여 증오와 분노의 감정을 점점 더 증폭시킨 결과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때마침 훌륭하게 분노와 증오를 끝도 없이 쏟아 보낼 수 있는 대상까지 존재하니, 레이넌의 타락은 더욱 심각하게 진행되어 갔다.
이제는 그에게서는 과거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많은 사람을 돕고 좀 더 좋은 나라를 만들어보고자 노력했던 평민 출신의 귀족이자 영웅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는 부하들에게 약탈과 강간을 서슴없이 지시하고 오로지 분노와 증오의 감정을 표출하여 렌디르 왕국의 멸망만을 바라는 ‘악인’이 있을 뿐이었다.
‘이 나라가 너무나도 밉다.’
그렇기에 바라는 것은 왕국의 국민 전체의 고통과 비명들.
설령 그것이 이 대륙의 멸망이라 할지라도, 아내와 아이들을 잃은 자신에게는 더는 이 대륙을 지켜야 할 이유를 가지지 못했다.
오히려 계약한 악마의 정신 오염으로 인해 그의 사고방식은 점점 더 나쁜 방향으로 발전되어 갔다.
‘이 세상이 너무나도 밉다.’
어두운 새벽.
드디어 선착장에 도착한 레이넌은 선상 위에 나와 두령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곧바로….”
이날을 위해서 15년만을 기다려왔던 레이넌은 감회에 젖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렌디르 왕국을 친다.”
첫 시작은 이곳, 포르테나령의 점령.
이곳이 점령되었다는 소식이 퍼지는 것을 기점으로, 레이넌이 렌디르 왕국 영토의 곳곳에 심어둔 자신의 부하들이 일제히 폭동을 일으킬 것이다.
그 수는 종합해보면 약 2만.
겨우 2만의 병사들로 왕국을 무너뜨린다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자신의 목적을 위해 레이넌은 15년 동안 다양한 준비와 때를 기다려왔다.
그중 하나가 사령술사 마리우스와의 협력이다.
게다가 사비로스 공작령이 갑작스레 쇠락하게 되면서 큰 타격을 입은 지금은, 의도치 않게 레이넌에게 찾아온 천운 같은 찬스.
“모조리 빼앗아도 좋다. 전부 죽여도 좋다. 아무 여자나 범해도 좋다. 너희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해라. 그것이 내가 바라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두령!”
우렁찬 대답을 뒤로하고, 배에서 뛰어내린 수백의 부하들.
“너, 너희는 무엇…크헉!”
선착장에서 경계 임무를 서고 있던 위병들을 처리하고는 곧바로 경계의 태세를 취하는 병사들을 망설임 없이 학살하기 시작했다.
포르테나령의 침략은 시작되었다.
시작된 영지의 참상을 선상에서 물끄러미 바라보고는, 레이넌은 천천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시작할게.”
그것은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아내와 두 자식에게 건네는 말.
이 침략과 렌디르 왕국의 국가 전복은 레이넌이 자신 때문에 죽어버린 가족들에게 바치는 장례식이다.
“지켜봐 줘.”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