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0화 〉 350. 타락한 영웅(3)
* * *
“으, 으으….”
딱딱한 나무 바닥에 누워있던 페데리카가 인상을 찡그리며 조금씩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흔들리는 방 내부에서 꿈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여기는….”
두 눈을 뜨자마자 펼쳐진 낯선 환경에 페데리카는 당황한 표정으로 주위를 바라보았다.
공간 전체가 규칙적으로 휘둘리는 듯한 감각은 페데리카의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만들기 충분했다.
“나는 분명 석수하고….”
정신이 희미하기는 했지만, 페데리카는 공석수의 등에 업혀서 일주일을 가까이 무리한 행군을 이어왔다는 것까지 잊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뒤늦게 광활한 방 안에 자신이 혼자만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두려움에 떨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석수…. 석수는…?”
흔들리는 방 내부에서 공석수의 모습을 찾았지만,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뭐야…. 뭐냐고! 여기 도대체 어디야!”
꿈속에서 전신을 불태워지고, 많은 남자에게 강간을 당했던 감각이 현실에서 경험했던 것처럼 생생하다.
꿈을 꿀 때마다 정신 속에 강하게 각인된 그 끔찍한 경험들은 지속해서 페데리카를 괴롭혔다.
“석수야…. 석수야 어디 있어….”
결국, 정신이 피폐해지고 병을 얻어 지금껏 자신을 돌봐주었던 공석수에게 의존하게 되는 성향이 강해졌던 결과.
그 부작용이 여실하게 드러났다.
자신의 곁에 공석수가 없다는 것만으로, 혼자라는 것만으로 극도의 불안감을 느끼며 전신을 오들오들 떨었다.
끼이익
“흣!?”
경첩이 달린 나무문이 열리는 작은 소리 조차에도 움찔 떨며 비명을 지르고 양손으로 자신의 손을 감쌌다.
자신의 팔을 비비며,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를 진정시키고 불규칙 적인 호흡은 그녀의 동요가 얼마나 커다란 상태인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오? 뭐야. 일어났잖아?”
나무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낸 비릿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입을 연 남자를 따라 수많은 남자가 들어와 페데리카 이외엔 텅 비어있던 방 안의 내부를 가득 채웠다.
“뭐…야. 너희들은….”
긴장과 불안함으로 가득한 경계의 색을 띄우며 페데리카가 양팔로 자신의 몸을 감싸듯이 방어적인 태세를 취했다.
“궁금하냐?”
“킥킥.”
낄낄거리며 그녀를 비웃고 있는 가운데, 한 남자가 무리에서 튀어나와 주저앉아 있는 페데리카의 앞에 섰다.
“내가 누군지 아나?”
“…….”
담담하게 자신을 내려다보며 지금 당장이라도 죽일 듯한 증오를 품고 있는 남자의 물음에 페데리카는 대답하지 못했다.
“모르겠지. 나도 네 얼굴을 처음 보니까. 그런데….”
남자는 무릎을 굽혀 자세를 낮추고는 페데리카의 머리채를 거칠게 잡았다.
이윽고 반대쪽 손으로 그녀의 뺨을 있는 힘껏 때렸다.
“네가 한 짓을 모르는 건 아니야.”
짜악!
“꺄악!”
강하게 고개가 옆으로 돌아갈 정도의 타격은 순간 정신을 잃을 정도로 강렬했다.
페데리카는 얼얼한 뺨의 통증이 뒤늦게 찾아오면서 눈물이 핑 돌 뻔했던 것을 참아내고 자신의 따귀를 후려친 남자를 노려보았다.
그녀의 시선을 받아들인 남자는 이내 입을 열었다.
“나는 말이지. 네 마피아의 조직원이 망하게 만든 마을의 주민이었어.”
“……!”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는 남자의 목소리에 페데리카가 두 눈을 크게 뜨며 동요했다.
“느닷없이 우리 마을을 습격하고, 창고의 곡식과 재산들을 모조리 털어갔지.”
게다가 남자와 노인들은 모조리 죽이고 어린아이와 여자들은 납치해갔다.
여자들은 조직원들의 성 처리 도구로, 제대로 성장하기 전이었던 어린아이들은 노예로 팔아버리면서.
브로디아 마피아는 사비로스 공작가를 비롯한 다수의 고위 귀족들의 뒤처리를 해주면서 뒤 사회의 권력을 꽉 쥐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그들의 처벌을 할 수가 없었다.
사비로스 공작을 포함한 고위 귀족 파벌에 소속되어 있는 귀족들의 영지는 절대로 건드리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합의로.
브로디아 마피아는 힘없는 약자들을 철저하게 유린하고 이익을 착취하며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조직으로 점점 자신의 규모를 키워나갔다.
그 결과 고통을 받아야만 했던 것은 일방적으로 당해야만 했던 백성들, 즉 민간인들이다.
“이 정도면 내가 이 자리에서 너를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다고 생각하는데?”
“나는…나는 모르는 일이야! 모두 아버지가…!”
“지랄하고 있네.”
짜악!
“꺄악!”
다시 한번 강하게 후려쳐지는 충격에 페데리카의 뺨이 새빨갛게 부어올랐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은 말이야. 모두 네 마피아 조직원들에게 피해를 잃고 모든 걸 잃은 사람들이야.”
누군가는 고위 귀족들의 눈 밖에 나면서, 약소 귀족의 지위와 영지를 잃었다.
누군가는 마을을 습격당하여 가족과 친구를 잃었다.
누군가는 사기를 당하여 평생을 모았던 자신의 재산과 일궈왔던 인생의 노력을 잃었다.
누군가는 그냥 자신의 욕구를 풀기 위해 이 자리에 온 것이기도 했지만.
그들 중 다수가 각자의 이유와 사정을 가지게 된 그 근원이자 악이었던 인물 중 하나가 자신들의 두 눈앞에 있는데,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죽이고 싶을 정도로 밉고, 자신이 당했던 고통을 그대로 되돌려주고 싶었다.
“오…지 마….”
하나 같이 증오와 분노가 가득한, 욕정이 가득한 부정적인 감정들로 가득한 남자들이 페데리카를 에워쌌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그녀에게 접근했다.
주저앉아 있는 바닥을 기어, 뒤로 이동하던 페데리카는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뒤로 계속 이동을 하던 것도 한계.
이윽고 방 안의 벽을 맞대고 도망칠 곳이 없어진 페데리카가 다시 한번 외쳤다.
“오지 마아아아!”
“잠깐 멈춰라.”
비명에 가까운 애원이 섞인 외침으로 행동을 멈추지 않았던 남자들의 움직임이 단 한마디의 명령에 일제히 행동을 정지했다.
이후 목소리가 들려온 방문 쪽으로 시선을 옮기고 목소리 주인의 얼굴을 살폈다.
양손을 구속한 한 남자를 끌고 온 레이넌을 발견하고 일제히 행동을 멈추고 이후의 그의 명령을 기다렸다.
“그건 누구입니까. 두령?”
“저 여자의 부하.”
자신에게 끌고 온 남자의 정체를 묻는 부하의 질문에 레이넌은 답했다.
이후 휘청거리는 공석수의 몸을 집어 던지듯이 방안에 밀어 넣었다.
“크윽!”
레이넌의 손에 밀려 힘없이 바닥에 쓰러지면서 정면으로 얼굴을 들이받는 충격에 신음했다.
“서, 석수야!”
◆ ◆ ◆
“원한다면 만나게 해주지. 단 내 질문에 대답해라.”
“…뭐지?”
“네 마피아 조직을 무너뜨린 자. 누구지?”
레이넌은 하루아침에 브로디아 마피아를 괴멸시키고 페데리카와 공석수를 도망자의 신세로 만들어버린 자의 정체를 물었다.
본래라면 자신과 자신의 부하들이 언젠가 무너뜨릴 계획이었다.
브로디아 마피아의 본거지나 다름없는 사비로스 공작령에 보내두었던 밀정이 황급히 마차를 타고 돌아와, 보고한 내용에 큰 충격에 빠졌다.
정체불명의 골렘을 소환하여 카지노 사비아의 건물을 때려 부숴 붕괴시킨 것.
지하 블랙마켓에서 비밀리에 사육되고 있던 마수의 존재를 지상으로 꺼내어 모조리 까발려버린 것.
그리고 모조리 정리되어 있던 마피아 조직원들.
일련의 모든 과정이 단 하룻밤의 몇 시간 사이에 일어났다.
과감하면서도 신속하고, 치밀하게 짜인 일련의 사건들은 페데리카의 권력, 재물, 인맥 등의 모든 것을 앗아가는 결말로 이어졌다.
이 과정들의 하나하나에 페데리카와 마피아 조직원들에 대한 누군가의 악의가 담겨 있었다.
“말해라. 누구냐.”
도저히 개인의 힘으로 계획할 수 있는 수준의 일들이 아니었으며, 레이넌의 가장 큰 흥미를 품었던 점은 따로 있었다.
그 악의를 오로지 페데리카와 마피아 조직원들에게만 향했다는 것.
뒷사회를 주름잡는 마피아 조직을 통째로 괴멸시키면서, 아무런 연관이 없는 민간인의 사상자는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이 보고를 듣고 레이넌은 확신했다.
자신과 자신의 부하들과 마찬가지로 페데리카에게 복수를 계획하고 실행시킨 또 다른 인물들이 존재한다고.
지금부터라도 만나고 싶고, 자신과 함께 하자고 권유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렇기에 밀정을 보냈던 부하의 보고를 듣고, 공석수의 위치를 추적하며 한계가 다다른 타이밍에 수면향으로 공석수와 페데리카를 잠재워 납치했다.
이후 피로가 누적되어 잠에 취해 일어나지 못하는 그들의 몸을 이 장소로 옮긴 것이다.
“…나도 모른다.”
“모른다고?”
공석수의 대답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그 대답에 레이넌은 인상을 찡그리며 되물었다.
더 자세하게 설명하라는 눈짓을 이해한 공석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마 신분도 이름도, 동행한 자들과의 관계도 모두 가짜겠지.”
그 정도로 치밀하게 준비했으며 신속하고 철저하게 무너뜨린 그들이 자신들의 정체가 될 수 있는 단서를 남겨뒀을 리가 없다고, 공석수는 설명했다.
레이넌은 그럴 법하다고 납득했다.
“인원 구성이나, 머리카락, 눈동자의 색깔 같은 생김새도 모른다는 건가?”
“인원은 네 명. 남자 하나와 여자 셋이었다. 조사한 바로는 두 명의 아내와 여동생을 데리고, 카지노로 여행을 온 주제를 모르는 귀족 가문의 막내 아들이었지. 생김새는….”
공석수는 잠시 말을 멈추고 과거의 기억을 회상했다.
숫자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전력의 차이로 자신들을 압도했던 은색머리카락의 남자를 떠올리고 말을 이었다.
“남자의 외모는 백은발의 머리카락에, 핏빛 같은 붉은 눈을 가지고 있었지.”
“……!”
공석수의 말을 들은 레이넌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백은발의 머리카락과 붉은 눈동자라는 외모는 곧바로 과거의 누군가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내 작게 고개를 가로젓고 동요하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냉정을 되찾았다.
자신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인물과 동일인물일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녀석은 죽었어.’
동료들과 함께 그의 시체를 안장하고 묘비를 만들어 넋을 기렸다.
그런 외향을 가진 인물이 이 세상에 그밖에 없다고 단정 지을 수도 없다.
그 이외에는 본 적도 없었지만, 절대로 동일인물이 아닐 것이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재차 공석수에게 물었다.
“확실한가?”
“…확실하다.”
“…그렇군.”
작게 고개를 끄덕인 레이넌은 바닥에 쓰러져 있는 상태로 말을 했던 공석수의 멱살을 붙잡아 들어 올렸다.
“크…으.”
허름한 옷은 그대로 찢어져 버리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위태위태했으나 레이넌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레이넌은 부하와 함께 방을 나와 이동했다.
마치 무거운 물건이 든 자루 주머니를 바닥에 질질 끌며 옮기듯, 공석수의 몸이 바닥에 질질 끌려갔다.
“잠깐 멈춰라.”
이윽고 페데리카를 가둬둔 방에 도착하자마자, 방안에서 일을 벌이려는 부하들의 행동을 제지했다.
“그건 누구입니까. 두령?”
“저 여자의 부하.”
자신에게 끌고 온 남자의 정체를 묻는 부하의 질문에 레이넌은 답했다.
이후 휘청거리는 공석수의 몸을 집어 던지듯이 방안에 밀어 넣었다.
“크윽!”
레이넌의 손에 밀려 힘없이 바닥에 쓰러지면서 정면으로 얼굴을 들이받는 충격에 신음했다.
“서, 석수야!”
“저 여자, 못 움직이게 막아.”
“예.”
공석수의 모습을 발견하고 반색과 걱정이 담긴 얼굴로 페데리카가 황급히 그에게 다가가려 했지만.
레이넌의 명령에 순식간에 양팔을 붙잡혀 양팔을 구속당했다.
“이거 놔!”
양팔을 레이넌의 부하들에게 붙잡혀 움직임을 제한당하고 있는 페데리카를 보고 공석수가 다급히 몸을 일으키려 했을 때.
“아가….”
“잘 가라.”
우드득!
“씨….”
레이넌이 순식간에 쓰러진 공석수에게 다가갔다.
마력을 전개한 신체 강화를 하고, 다리에 힘을 실어 몸을 일으키려는 공석수의 목을 사정없이 짓밟았다.
어마어마한 각력에서 비롯된 힘이 단숨에 그의 목뼈를 부러뜨리고, 기도를 짓밟은 발을 움직여 부러뜨린 그의 목 자체를 아예 으스러뜨린다.
20년을 가까이 페데리카를 보좌하고 조직 내에서 가장 강한 전력이었던 무인의 최후는 너무나도 허망했다.
일주일에 가까운 오랜 행군으로 인해, 체력도 정신력도 닳을 대로 닳아 한없이 약해진 상태에서 제대로 된 싸움조차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것이다.
“아, 아….”
많은 이들 가운데, 단 한명 만이 공석수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석수야. 석수야….”
정신이 피폐해져 가면서,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된 자신을 유일하게 돌봐주고 지탱해준 단 한 사람의 죽음은.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피폐해진 끝에 간신히 유지하고 있던 페데리카의 정신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