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8화 〉 348. 타락한 영웅(1)
* * *
에린과 엘빈이 무작정 철호단 길드의 내부로 쳐들어가 혼란의 상황을 만들어내는 동안.
아르미타스 기사들의 역할은 그들이 영지 내부에서 벌였던 악행에 대한 증거의 수집이었다.
과거 전 귀족 가문의 자제였던 현 뉴비 모험가들 이외에도, 피해자가 존재할 가능성은 다수 존재했다.
그 피해자의 파악과 철호단 길드에게 이번 허위매물 사기의 공모를 제안했던 사기꾼의 체포, 실제로 판매할 예정이었던 싸구려 무기의 매물 수거 등.
엘빈과 에린이 철호단 길드를 찾아가고, 좀 과격하지 않았을까 싶었던 수준으로 난동을 부리면서, 길드원들은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순조롭게 체포를 하여 심문실로 옮겨질 수 있었다.
“고생했어. 에린.”
“헤헤. 아니에요.”
품에 안아주며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엘레노아의 행동에 에린은 미소지으며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이윽고 엘빈에게도 시선을 옮겨 그의 노고를 칭찬했다.
“엘빈도 고생했어.”
“아닙니다. 맡은 바의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고개를 숙이며 예를 다한 엘빈은 담담한 표정이었다.
은현에게 종속된 정령으로써, 그의 아내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
“두 사람이 앞에서 나서준 덕분에, 기사단이 증거 수집과 공모를 제안했던 사기꾼의 체포에 전념할 수 있었던 거야. 본래에는 네 역할도 기사단이 해야 했던 역할이니까.”
“아니에요. 저도 엘레노아님께 도움이 되고 싶어서 나선 일인 걸요.”
자신의 품 안에서 고개를 가로저으며 별일이 아니라는 듯 말을 하는 에린의 말에 엘레노아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엘빈은 조만간 이번 일에서 소모한 마력을 보충할 수 있는 마석을 준비하도록 할게.”
“감사합니다.”
엘레노아는 다음으로 자신의 품에 안겨 얼굴을 묻고 있는 에린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에린은…이번 일, 그 사람이 돌아오면 한번 말해볼까?”
“현이한테요?”
“응. 내가 직접 옆에서 거들어 줄 테니까, 한번 상을 달라고 졸라보자?”
“정말 좋아요! 엘레노아님!”
자신의 활약으로 은현에게 칭찬도 받고, 거기에 이어 상도 받을 수 있게 옆에서 도와주겠다는 엘레노아의 배려는 에린의 얼굴에 미소를 활짝 피게 만들었다.
“후후, 이건 나와 오라버니가 주는 선물이야.”
“이건….”
에린을 품에서 떨어뜨려 놓고, 엘레노아는 책상 위에 올려두었던 주머니를 에린에게 내밀었다.
의아한 표정으로 주머니를 받아들고, 묵직한 무게감과 함께 내용물을 확인한 에린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에, 엘레노아님! 이건!”
“마음에 안 드니?”
“아, 아뇨…! 너무 많아서…!”
주머니 속을 꽉 채운 금화들을 보고 입이 다물어지지 않아 당황한다.
“그만큼 위험한 일이었고, 에린과 엘빈의 기여도가 크다는 뜻이야. 엘빈에 대한 몫도 포함되어 있으니까. 그냥 받으렴.”
“…네.”
처음엔 에린도 살짝 부담스러웠지만, 엘빈에 대한 몫도 들어가 있다는 것을 설명해주자 납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집으로 갈 거니?”
“음…아뇨. 오빠랑 보육원에 들렀다가 가려고요.”
“그럼 올 때 일리아나님에게 드릴 와인도 하나 사 오지 않을래?”
“네! 그럴게요! 보수 감사해요. 엘레노아님!”
“굳이 너나 우리가 나설 필요가 있었던 건가?”
매끄럽게 절차가 진행되는 와중에, 엘빈은 의문을 느꼈다.
굳이 자신들이 나서지 않더라도, 기사들을 철호단 길드로 출동시켜 체포 영장을 보여주면서 정당성을 주장하고, 체포하면 깔끔하게 해결될 일이 아니었을까.
그에 대한 에린의 대답은 간결했다.
“응? 그냥 엘레노아님이 곤란해 보이셨으니까, 도와드린 거지.”
“…….”
본래 자신의 여동생은 이렇게 다른 사람을 돕거나 나서기를 좋아하는 호인이었을까.
“게다가 제대로 된 증거도 없는데 기사들을 움직일 명분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존재하셨고. 그래서 내가 개인으로 길드 안에 들어가서 항의를 하면서 시간을 끌겠다고 한 거야.”
이번 일의 핵심은 양동으로 일을 진행해야 했다는 점이다.
기사단은 증거의 수집을 통해서 움직일 수 있는 명분을 만들고, 그동안 철호단이 기사단의 움직임을 알아채지 못하도록 시선을 돌릴 필요가 존재했다.
이 부분에서 에린은 스스로 자신에게 시선이 쏠리도록 철호단 길드를 직접 찾아간 것이다.
“게다가 이 영지에서 못된 짓을 하는 사람들을 용서하지 못하는 건 나도 마찬가지니까. 엘레노아님의 일이기도 하고 당연히 도와드려야지.”
“네가 그걸로 됐다면 알았어.”
“그리고 이렇게 보수도 두둑이 받았잖아?”
에린이 싱긋 웃으며 자신의 손에 쥐어져 있는 돈주머니를 흔들어 보이자, 엘빈도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했다면서 알렉스와 엘레노아 남매가 에린에게 지급한 보수의 양은 확실히 두둑했다.
“이걸로 보육원 애들 맛있는 거나 사 먹이자.”
“그래.”
기껏 받은 보수도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을 위해서 사용한다는 점은 정말로 착해 빠졌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 ◆ ◆
공석수는 페데리카를 업고 어두운 산길을 걸었다.
“으, 으으….”
페데리카의 양팔에 힘이 들어가면서 팔을 두르고 있는 공석수의 목을 강하게 끌어당겼다.
“…….”
강하게 신음을 호소하고 있는 페데리카의 반응에, 공석수는 발걸음을 멈추고 페데리카를 등에서 내려놓았다.
근처의 나무에 기대도록 눕히고 그녀의 안색을 살폈다.
인상을 찡그리며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페데리카가 몸을 떨면서 신음을 흘리고 있다.
“…여기서 멈춰야겠군.”
그녀가 또다시 끔찍한 악몽을 꾸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이상, 더는 그녀를 데리고 무리한 야간 행군을 강행할 수는 없었다.
지반이 고른 장소를 찾아 자리를 잡은 다음, 야영 도구들을 꺼내어 노숙을 준비했다.
“아가씨. 누우세요.”
모포를 깔아두었다고는 하지만 싸늘한 밤바람이 부는 산속은 아직도 차가웠다.
공석수는 기온을 높이기 위해 모닥불을 피우며 페데리카의 체온을 따뜻하게 높이기 위한 환경을 만들고 그녀의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살아. 그게 내가 저 여자에게 내리는 형벌이야.
고통에 떨고 있는 페레디카를 보고, 공석수는 일주일 전, 릴리라는 여자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형벌이라….”
마피아 조직이 단 하룻밤 만에 해체가 되어버리면서, 페데리카와 공석수를 포함한 마피아 조직원들 전체에 대한 수배령이 떨어진 상황.
암묵적으로 용인되던 지하 블랙마켓의 존재가 드러나고, 설상가상으로 지하에서 마수들의 사육을 진행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브로디아 마피아는 모든 것을 잃었다.
결국, 공석수는 페데리카를 데리고 도주를 선택해야만 했다.
뇌물을 받고 비밀리에 브로디아 마피아의 사업을 용인해주고 있던 사비로스 공작이 영지 내에서 일어났던 모든 사건 사고의 원인을 마피아의 탓으로 발표했다.
은현의 주도하에 일으켰던 카지노 호텔, 사비아의 붕괴사건 또한 마찬가지.
정체불명의 골렘을 소환하여 자신 소유의 호텔 건물을 무너뜨렸다는 사실은 동기도 근거도 없는 말도 안 되는 소리에 불과했지만.
수배령은 승인되었고 두 사람은 도망자 신세가 되었다.
“거의 다 오긴 했지만….”
현재는 공작령에서 빠져나와 곧바로 남쪽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일주일 동안 노숙을 하며, 보존식으로 끼니를 때워나갔다.
하루 약 10시간이 넘는 장거리의 행군을, 페데리카를 업어가면서 이어나가는 공석수는 날이 갈수록 수척해지고 야위어 가고 있다.
“일단 가면, 곧바로 밀항을 준비하고….”
공석수는 그렇게 남은 시간과 거리를 가늠하며 앞으로의 계획을 세웠다.
그가 페데리카를 데리고 남쪽으로 향하는 끝에 있는 장소는 렌디르 왕국 내에서 두 번째로 활발한 영지이자 어업이 발달한 항구도시, ‘포르테나’령이다.
공석수의 계획은 정신이 무너져 반쯤 폐인이 되어버린 페데리카를 데리고, 서쪽에 위치한 타국의 항구도시로 밀항을 하는 것.
주위에 의지할 곳이 없어진 렌디르 왕국에서 도망자 신세가 되어버린 둘이 있을 수 있는 장소는 존재하지 않았다.
“후우….”
오랜 시간을 걸었던 탓일까.
다리가 무겁고, 발바닥에는 감각이 존재하지 않았다.
모포를 덮고 바닥에서 곤히 잠을 자는 페데리카의 모습을 슬쩍 살피고는 모닥불의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부츠를 벗어내어 행군으로 피곤해진 발바닥을 주무를수록 살아나는 발가락의 감각은 시원하다기보다 미약한 통증에 가까웠다.
“이런….”
자리에 앉고 다리의 피로를 풀어주기 위해 스스로 주무르자마자, 긴장이 풀린 공석수의 전신에 그동안 누적되어 있던 피로가 한꺼번에 밀려오기 시작했다.
일주일을 가까운 시간 동안 간단한 보존식만을 먹어가며 장기간의 행군을 감행한 피로는 쉽게 저항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거의 다 왔는데, 하다못해 포르테나령에 도착해서 여관에서 쉴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그의 몸은 누적된 피로에 한계를 맞이했다.
“이러면….”
야외에서 노숙할 경우, 제일 경계를 해야하는 것은 야생의 마수들의 접근이다.
“젠장….”
조금씩 나무에 등을 기대어, 점점 무거워진 눈꺼풀 사이의 두 눈동자가 마지막으로 페데리카의 모습을 찾았다.
제발 아무 일도 없기를 기도하며, 공석수는 결국 기절하듯 잠에 빠져들었다.
◆ ◆ ◆
“…흡!?”
깊은 잠에 빠져들었던 공석수의 의식에 위화감을 인식시키고 황급히 각성을 시킨 요인은 기절한 자신이 누워있는 공간이 차디찬 땅바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몸이 아닌, 공간 전체가 흔들리는 감각과 어딘가의 의자에 앉아, 밧줄로 자신의 양손을 구속된 자신의 상태를 자각했다.
싸늘한 본능이 머릿속에 경종을 울리고 의식을 각성시킨 공석수가 펄쩍 뛰듯 경기를 일으키고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올렸다.
“여기는….”
이윽고 빠르게 주위의 상황을 탐색했다.
나무의자 위에 앉혀져 밧줄로 양손을 구속된 자신의 상태나, 구석구석 곰팡이가 스며들어 퀴퀴한 냄새가 가득한 방안.
일정한 주기로 좌우로 미세하게 흔들리는 천장의 마법등.
자신의 몸이 아닌, 공간 전체가 흔들리는 듯한 이 감각을 느끼며 공석수는 자신의 상황을 짐작했다.
“…방?”
정신을 차려보니 배안이라는 것을 깨달은 공석수는 황급히 고개를 돌려 주위를 돌아보았다.
“아가씨가….”
함께 있었어야 할 페데리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좁은 방 안에 놓여있는 것은 그저 자신과 자신을 구속하고 있는 의자뿐이다.
“어떻게 된 거지?”
공석수의 머릿속으로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자신은 도대체 왜 이곳에 있는 것인가.
이곳이 배 안이며 바다 위라면, 자신은 어떻게 이 배 안으로 옮겨진 것일까.
육지 위에서 정신을 잃고, 목적지였던 항구도시까지는 아직 하루 남짓의 거리가 남아있었다.
물리적인 거리와 시간도 말이 되지 않는다.
“나는 며칠이나 잠이 들었던 거지…?”
그 정도로 자신의 몸과 정신에 많은 피로가 누적되어 있었던 것일까?
누가 업어가도 모르고 하루 이상을 꼬박 잠에서 깨지 않을 정도로?
하지만 그 의문들을 모조리 제쳐두고 공석수의 머릿속에 가득했던 생각은 따로 존재했다.
“아가씨는….”
자신의 눈앞에 페데리카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에 크게 불안감을 느꼈다.
이윽고 페데리카를 찾기 위해, 억지로 양손을 구속시킨 밧줄을 풀려고 노력을 하고 있을 때.
끼이익
경첩이 달린 나무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은 공석수가 밧줄을 풀려던 행동을 멈추고 재빠르게 경계의 기색을 띄우며 문이 열리는 전방을 주시했다.
이윽고 모습을 드러낸 남자의 얼굴을 확인하고, 공석수는 크게 동요했다.
“너…는…!”
“오랜만이군.”
경계하며 상황을 파악하려던 공석수의 이성을 크게 뒤흔들고, 동요하게 만든 남자의 이름은.
“너는….”
20년 전,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던 제국과 대륙 연합의 전쟁 속에서 제국의 황제를 죽이고 전쟁을 끝낸 인물로 알려진 여섯 명의 대영웅 중 한 명.
‘레이넌 바르펠트’는 그렇게 공석수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