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부활한 불멸자-346화 (346/730)

〈 346화 〉 346. 철호단(3)

* * *

길드의 건물 내부의 중심, 자신들을 에워싼 길드원들을 응시하며 엘빈은 경계의 태세를 취했다.

우우웅

순식간에 자신의 마력을 전개하여 조영술을 발동시킨다.

한손에 스태프를 쥐고 있던 엘빈의 모습이 순식간에 칠흑의 갑옷으로 뒤덮이면서, 많은 모험가에게 익히 알려진 유명한 모습을 드러냈다.

“저, 저 모습은…!?”

전신을 비롯해 검은색의 투구로 얼굴을 뒤덮으면서, 검은색의 그림자들이 몸 전체에서 피어오르며 불꽃처럼 일렁이는 암흑 기사.

암흑 기사의 상태로 돌변하자마자, 칠흑의 투구 속에서 자신들을 째려보는 핏빛의 붉은 눈동자는 그를 에워싼 철호단의 길드원들을 움찔 떨게 하기 충분했다.

“흑기사가 이곳에 왜 있어!”

흑기사.

모험가 길드나 모험가들 사이에서 붙여진 엘빈의 이명.

철호단의 길드원들이 흑기사의 정체가 싸구려 스태프를 가져와 사기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별 볼 일 없는 남자일 것이라 짐작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어떤 상황에서도 투구를 벗지 않고,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았던 남자가 이렇게 허무하게 자신의 얼굴을 드러낼 것이라고,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으리라.

게다가 엘빈의 본래 눈동자 색깔은 에린처럼 금색빛이 살짝 도는 회색.

정령의 힘을 사용하자마자 은현과 같은 핏빛의 적안으로 바뀌는 그의 눈동자는 그의 정체를 숨기는데 유용했다.

하지만 그것 또한 오늘 이 순간까지.

엘빈은 스스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 것이다.

“젠장! 도대체 뭐야!”

엘빈을 비웃었던 철호단원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외쳤다.

뉴비가 되자마자 눈부신 활약으로 1년도 안 되는 시간 사이에 은위계로 승급한 강자가 도대체 무슨 이유로 자신들을 찾아와 사기를 당했다고 주장한단 말인가.

당하지도 않은 사기를 당했다고 찾아와 주장하는 것은 물론, 함께 동행한 에린과의 관계도 신경이 쓰였다.

‘설마 이 흑기사도?’

에린을 비롯해 흑기사 또한 은현 쪽의 사람이었단 말인가.

‘…괜찮아. 그래도 숫자는 우리가 더 많아.’

느닷없이 엘빈이 정체를 공개한 것에 적잖게 당황하기는 했지만, 상대는 겨우 둘.

이쪽은 수십 명이 넘는다.

게다가 영지의 내부에서는 아무리 모험가라고 할지라도, 무기나 공격 마법의 사용이 금지되어 있다.

소문으로 들리는 에린의 여우불이나 백귀 소환, 엘빈의 그림자 같은 경우에는 일반 모험가들이 보기엔 발동 원리나 구조조차 모르는 신비한 능력이지만.

그 능력들이 마법의 한 종류라고 멋대로 착각한 이들은 에린과 엘빈의 전력을 자신들의 잣대로 가늠하고 있었다.

수적 우위를 점거하면서, 맨주먹으로 시작하는 난투전에서 절대로 자신들이 질 리가 없다는 확신.

꿀꺽

하지만 그 확신에도 불구하고 흑기사로 모습을 드러낸 엘빈이 뿜어내는 위압감은 그 확신을 송두리째 흔들어버릴 것만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그 불안함을 없애버리기 위해, 철호단원 중 하나가 있는 힘껏 소리쳤다.

“쳐!”

“으아아아!”

엘빈과 에린을 둘러싼 철호단원들이 기합을 내지름과 동시에 일제히 둘에게 달려들었다.

그 상황이 에린은 심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본래에는 엘빈의 항의를 통해서 길드의 내부에 혼란을 주면서 시선을 끌 생각이었는데, 구태여 싸우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만들어낸 오빠가 괜히 원망스러웠다.

“오빠 때문에 이게 다 뭐야. 진짜!”

에린은 일제히 자신들에게 달려드는 철호단원들을 보고 엘빈에게 짜증을 냈다.

이윽고 완전히 전투가 시작되었음을 받아들이고 허리춤의 파우치 주머니에서 포션병을 꺼내 들었다.

액체가 담겨 있는 것이 아닌 회색의 연기가 담겨 있는 병은 사람을 치료하기 위한 포션이 아니다.

“에잇!”

망설임 없이 곧바로 바닥에 포션병을 내려치자마자, 병 속에 있던 회색의 연기가 구름처럼 증식하더니 바닥부로 위로 올라와 에린과 엘빈의 주위를 가득 채우기 시작한다.

“뭐, 뭐야!”

“연기?”

위로 스멀스멀 올라와 잠식하는 연기를 신경 쓰며 멈칫하던 철호단원이 절반.

하지만 가장 선두에서 에린과 엘빈에게 달려들어 거리를 좁히던 다른 철호단원들은 그 연기들을 의식할 새도 없었다.

에린은 연기를 의식할 새도 없이 자신을 향해 있는 힘껏 라이트훅을 날리는 남자의 주먹을 쳐내고, 곧바로 그의 얼굴에 카운터 펀치를 꽂아 넣었다.

퍼억!

“컥!”

정통으로 들어간 에린의 스트레이트가 둔탁한 소리를 내며 쓰러지자, 충격으로 남자의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코피를 주르륵 흘리며 두 눈에 흰자를 드러내고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진다.

다리에 힘이 풀려 휘청이는 남자의 복부를 있는 힘껏 걷어 차버리자, 뒤따라 달려드는 철호단원과 부딪치며 그들의 돌진을 방해했다.

뒤따라 달려드는 철호단원들까지 쓸어버리기엔 부족한 위력이었지만, 행동을 멈칫거리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그렇게 잠시간의 공백을 만들어낸 에린은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펼치고, 재빠르게 자신의 코와 입을 덮었다.

남들보다 오감이 예민한 자신이 바닥에서 가슴까지 스멀스멀 올라온 연기를 들이마시지 않기 위함이다.

“이 연기는…콜록!”

“콜록! 콜록!”

에린의 발차기를 얻어맞으면서 뒤로 밀려나 다른 단원들까지 우르르 밀리며 주춤한 사이.

가슴 위를 타고 완전히 머리 위까지 잠식해버리면서 연기를 들이마신 철호단원들이 일제히 기침하기 시작했다.

코와 입을 통해서 스며든 연기가 그들의 기도를 따갑게 만들었기 때문.

그 연기의 정체를 깨달은 한 철호단원이 연기 속에서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연막탄이다!”

연막탄을 터뜨리자마자, 에린은 이전에 제라드의 조언을 떠올렸다.

모그라프 변경의 마수 대범람 사태가 끝나고 은현이 일리아나와 엘레노아와 함께 복귀했지만.

이후에도 바쁜 일로 자리를 비우는 때가 자주 있어 에린의 훈련을 봐주지 못했을 때였다.

­흐음. 일 대 다수의 사람을 상대로 마법이나 무기도 없이 맨손으로 싸우는 방법입니까?

­네….

주변에 마땅히 조언을 구할 곳이 없었던 에린이 의지한 사람은 다름 아닌 제라드였다.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에게 조언을 구해온 에린의 물음에 제라드도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이것 참….

머리를 긁적이며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에린 양은 그게 왜 저에게 이런 조언을 하시는 건가요?

­그게….

에린은 잠시간 머뭇거리다가 이내 결심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현이한테 도움이 되고 싶어요….

­도움이 되고 싶다는 건가요? 의미를 잘 모르겠는데요.

­현이는 뭔가…적이 많으니까요.

­…흐음.

그 의미심장한 표현을 듣고, 제라드는 에린에게 계속 이야기해보라는 추임새를 넣었다.

­예전에 현이가 저한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사람들의 적은 마수들뿐만이 아니라고, 사람들의 적은, 때로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고요.

­뭐 그렇긴 하죠.

세상에서 사람을 위협하는 존재가 마수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마수 같은 재앙의 경우에는 많은 인류가 힘을 하나로 모아 위험에 대처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하지만 세상에서 마수의 재해로 인해 사망하는 사람들의 숫자보다, 더 많은 사망자를 만드는 것은 사람들과 사람들 간에 벌어지는 전쟁이다.

­저는 마치 마수들보다 더 경계해야 하는 것이 사람이라는 현이의 말을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지금의 에린은 그 말의 의미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자신의 모습을 못마땅해하고, 자신에게 시비를 걸어오는 이들이 있는 것처럼.

에린은 자신이 겪은 경험을 통해서, 은현도 비슷한 경험을 해왔고 앞으로도 그런 일들을 많이 겪게 되리라는 것을 짐작했다.

자신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수준으로.

그런 은현에게 자신이 무엇을 도울 수 있을까 고민하고 도달한 결론이다.

자신은 강해져야 한다.

그냥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마수들을 상대하는 것이 아닌, 사람들을 상대하는 법을 익히면서 다양한 악조건의 상황들을 가정하여 그 상황에 대처해나갈 수 있도록, 경험을 쌓아야 한다는 결론.

­그래서 생각한 가정이 마법이나 무기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혼자서 다수의 사람을 상대로 이기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하는 것인가? 라는 질문이군요.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악조건들을 모조리 때려 박아 만든 에린의 ‘만약의 상황’을 생각한 제라드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은현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 성장하고 싶다는 마음이 제법 기특하다.

­에린 양. 제 조언이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싸움에서 자신 쪽에 불리한 상황이 놓였을 때는 그 불리한 상황을 최소한 대등하거나, 또는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으로 역전시키는 수단을 강구하는 것이 싸움의 정석입니다.

­…어떻게요?

­예를 들어, 현이 형님 같은 경우에는 일부러 불리한 상황을 연출하고, 상대방이 절대적으로 자신들이 유리하다는 상황이라는 걸 굳게 믿게 만들죠. 그 다음 뒤통수를 치면서 상황을 반전시키는 수단을 자주 사용하십니다.

­…제가 현이처럼 하는 건 불가능할 것 같은데….

­굳이 현이 형님의 방식을 모티브로 삼아서 수단을 생각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현이 형님의 경우에는…형님의 성격이나 피지컬이 가능하기 때문에 사용할 수 있는 부분이 존재하니까요.

개인의 사고방식이나 주변의 인맥, 배경들을 활용하여 상황을 조성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나며, 에린에게는 그렇게 세심하게 상황을 조장하는 세밀함이 없었다.

­그냥 불리한 상황이라면 최소한 대등한 상황까지는 판을 만들 수 있는 수단을 몇 가지 강구 해두라는 뜻이었죠. 아까 전, 에린 양이 맨손으로 다수의 적을 제압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을 경우, 일 대 다수의 수 차이를 뒤집을 수 있을 만한 수단 같은 것 말입니다.

­…예를 들면요?

­흐음, 연막탄이라던가?

­…연막탄?

­연막으로 상대방의 시야를 빼앗고, 연막을 이용해 기도를 괴롭혀 혼란을 일으키는 겁니다. 그리고 그 혼란을 틈타 적들을 일망타진한다면 일 대 다수의 불리한 싸움도 훌륭한 역전의 수가 되지 않을까요?

­하지만…그 연막탄을 터뜨리면, 피해를 입는 건 저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가스를 들이마시는 건 마스크를 착용해서 대비한다고 해도, 시야가 제한된 연막 속에서 어떻게 상대방을….

­에린 양.

­네?

­일리아나 누님이 그러시던데요. 에린 양은 현이 형님이 반경 50m 내에 있으면, 굳이 얼굴을 보지 않아도 형님의 냄새와 숨소리만으로 형님의 위치를 감지해낼 수 있다고요.

­……!

느닷없는 제라드의 질문에 에린은 어깨를 움찔 떨었다.

딱히 자각해본 적이 없었던 사실이지만, 남들보다 예민한 감각을 가진 자신이 먼 거리에서도 은현의 냄새나 숨소리 등을 알아챈 적이 있었던 경험은 사실이었다.

­에린 양은 살짝 저랑 비슷한 과이신 것 같네요. 저도 제 마음속에 점 찍어둔 여성의 소리나 향기는 잘 잊지 않는 편이거든요.

마치 동족을 만났다는 사실을 자각한 것처럼, 제라드의 표정이 기쁨으로 물들었다.

­저, 저는 스토커 같은 게 아니에요! 그, 그냥 남들보다 조금 감각이 예민할 뿐인데…!

­어허! 스토커라뇨! 제 사랑은 조금 칙칙하고 검을 뿐입니다!

­그걸 스토커라고 하는 거예요!

당당하게 자신의 성향을 밝히는 제라드의 선언에 에린은 질린 표정을 지으며 반박했다.

­마, 말도 안 돼…. 내가…?

제라드의 말을 듣고, 에린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혼란을 겪기 시작했다.

­흠흠, 다시 이야기를 돌려서, 에린양의 장점은 본인이 설명하신 대로 다른 사람들보다 감각이 예민하다는 겁니다.

­…….

­게다가 에린 양도 형님에게서 그 ‘감지’라는 기술을 터득하고 사용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주변에 마력을 흘려 범위 내의 모든 사물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머릿속으로 정보를 수집하는 기술은 은현의 전매특허와도 같은 사기적인 기술 중 하나다.

스토커라는 자신의 성향을 자각하면서 생긴 혼란을 억지로 가슴 깊숙이 밀어 넣어두고, 에린도 정신을 차리며 제라드의 이야기를 받았다.

­그렇긴 하지만…. 저는 현이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걸요.

에린이 사용할 수 있는 감지는 은현의 범위의 절반도 되지 못하고, 그것도 전 방위로 펼치지 못한다.

­하지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은 그것만으로도 에린 양의 큰 무기입니다. 저는 그 감지를 사용하지 못하니까요.

어찌 보면 은현처럼 여신의 권능의 일부를 빌려 머릿속의 사고처리 속도를 가속시키는 등의 능력도 없이.

감지 기술의 일부를 순수하게 자신의 사고처리 능력만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점은 에린의 진짜 재능이기도 하다.

­에린양의 그 오감과 감지 기술을 적절히 조합한다면, 연막으로 시야가 가려진 상태에서도 혼란한 상황의 다수의 적을 제압하는 건 굉장히 손쉬운 일이지 않을까요?

­…하지만 연막이라니, 그건 너무 비겁하지 않나요?

­싸움에 비겁이 어디 있습니까. 이기면 장땡이죠. 이미 에린 양이 가정한 일 대 다수의 상황이 벌어진 순간부터, 그런 비겁을 논하기엔 한참 지나지 않았나요?

“연막탄이다!”

“이런 X발!”

“이 X이 비겁하게!?”

철호단원들은 인상을 일그러뜨리며 붉어진 얼굴로 연막탄을 터뜨려 건물 내부를 혼란스럽게 만든 장본인인 에린을 비난했다.

에린은 일방적으로 자신을 비난하는 철호단원들의 태도에 발끈했다.

이윽고 손수건으로 만든 마스크 너머로 짜증을 냈다.

“뭐라는 거야! 비겁한 건 당신들 쪽이지! 거울이나 보고 얘기해!”

단 두 명을 상대로 수십 명이 우르르 몰려와 주먹을 휘두르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 비겁하다니,

얼굴에 철판을 깐 수준이 아니라, 아예 미스릴로 되어 있을 정도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양심이 없다.

에린은 결국 제라드의 말이 옳았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다.

“싸움에 비겁이 어딨어! 이기면 장땡이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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