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5화 〉 345. 철호단(2)
* * *
“네가? 어떻게?”
“그러면 공작 가문 측의 사람이 아니라, 모험가의 신분으로 사기를 당한 개인이 철호단을 찾아가 항의를 하는 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걸 혼자서 하려고?”
에린의 실력이나 백귀들을 다루는 능력을 알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제 막 성인이 된 숙녀한테 그런 위험한 일을 시켜도 되는 것일까.
엘레노아는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에린을 바라보았다.
“아뇨. 마침 좋은 마석만 제공해주신다면, 기꺼이 맨 앞에서 맞아주겠다는 얄미운 동행이 하나 있거든요.”
“아.”
누구를 의미하는 것인지, 깨달은 엘레노아가 작게 탄식하고,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리 그래도, 그런 대우는 좀 심한 거 아니니?”
당당하게 자신의 오빠를 고기 방패로 사용하겠다는 발언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흥. 제가 받는 대우가 더 심해요. 엘레노아님도 나중에 한마디만 해주세요.”
에린은 에리스와 자신을 두고 당당하게 차별대우를 하는 엘빈의 행동에 대해 엘레노아에게 푸념을 늘어놓았다.
“후우, 이제야 조금 마음이 놓이는구만.”
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고, 지스는 어느 정도 홀가분해진 마음을 솔직하게 토로했다.
“마님, 일이 잘 마무리되면 그분에게 점수를 좀 딸 수 있을까요?”
“글쎄요.”
“아, 말씀 좀 잘 전해주십쇼. 저 요즘 진짜 착하게 살고 있어요.”
“잘 전달해드릴게요.”
작게 미소짓고 있는 엘레노아의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지스의 표정이 한결 가벼워졌다.
“아저씨는 그렇게 현이가 무서워요?”
“…아가씨. 그 양반은 우리과야.”
“네?”
“사기꾼의 자질이 나보다 뛰어난 양반이라고.”
“현이는 사기꾼 같은 거 아닌데….”
에린은 험담과 비슷한 말을 늘어놓고 있는 지스의 말에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엘레노아의 눈치를 봤다.
아무리 그래도, 아내의 앞에서 그의 남편의 험담을 하는 발언이라니.
하지만 엘레노아도 무언가 공감이 가는 부분이 있는 듯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음흉하게 뒤에서 활동하면서 사람들의 뒤통수를 치는 솜씨가 아주 일품이야. 최근에는 친분이 있는 아르티아의 기사단장에게 입김을 넣어서, 페르닌의 궁정 귀족들을 벌레만도 못한 취급으로 살충제를 뿌리듯이 청소했던 사건도 그 양반의 작품이라던데.”
“…….”
에린은 지스의 말에 어깨를 움찔 떨었다.
상인에게 나라의 정세를 파악하는 정보 수집만큼 중요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모험가 일을 하면서 상인의 활동을 하는 지스에게도 현재 몸을 담고 있는 페르니아스 왕국의 정세에 대한 파악은 빠짐없이 체크하고 있었다.
“에이, 그 양반이 아무리 대단해도, 어떻게 고위 귀족들을 일제히 끌어내리고 나라를 뒤흔들 정도로 큰 판을 만들 수 있겠어. 말도 안 되지.”
“풉.”
홍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엘레노아가 피식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필사적으로 참았다.
“그, 그럴까요? 하, 하하….”
에린도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아무튼, 그런 무서운 소문이 돌 정도로, 아가씨의 스승인 수은, 그 양반하고는 절대로 척을 지고 싶지 않다는 거지.”
가능하면 충실하기까지 한 지금의 생활 환경을 만들어 준 은현의 동아줄을 계속 붙잡고 가늘고 긴 인생을 살고 싶다는 지스의 마음은 진심이었다.
◆ ◆ ◆
침중한 분위기로 가득한 방 안에서, 남자는 무릎을 꿇으며 사죄를 구하고 있는 이를 응시했다.
“…….”
남자의 시선을 받으며, 방안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철호단의 길드원은 서로 눈치를 보며 말을 아꼈다.
이윽고 그를 무릎 꿇리고 노려보고 있는 길드의 부마스터, 가름이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그것들을 그냥 두고 왔다고?”
“네, 네….”
퍼억!
“커헉!”
길드원이 가는 목소리로 궁색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하자 그의 몸이 허공을 날아 벽에 부딪혔다.
대답하자마자, 무릎을 꿇고 있던 길드원의 복부를 사정없이 있는 힘껏 걷어 차버린 것이다.
살벌한 소리를 내면서 벽에 부딪치자마자 숨을 토해내며 바닥에 쓰러졌지만.
“일어나.”
“크…네…!”
분노로 목소리의 톤이 한없이 낮아진 가름의 말에 길드원은 황급히 몸을 일으키려 했다.
복부의 충격이 아직도 가시지 않아 휘청거리며 몸을 가누지 못하였기 때문에, 바닥을 기어서 본래의 위치였던 가름의 앞으로 복귀했다.
“정말 그 여자가 확실한가?”
“화, 확실합니다! 수은의 제자라는 그 여자가 확실해요!”
가름의 일방적인 구타를 맞으면서 다급한 표정으로 설명을 하는 길드원은 아르미타스령으로 대거 유입된 뉴비 모험가들을 상대로 사기를 쳤던 모험가 중 한 명이다.
동시에 골목길에서 에린과 만나면서, 그녀의 정체를 알아보고 동료들을 내버려 두고 도망을 쳤던 모험가이기도 했다.
그는 골목길에서 도망친 이후, 곧바로 철호단의 길드 건물로 돌아와 보고하고 있는 것이 현재 상황.
“…쯧.”
설명을 들은 가름은 인상을 쓰며 혀를 찼다.
언젠가 밝혀질 것은 상정했지만, 들키는 것이 빨라도 너무 빠르다.
어떤 사기꾼의 동업 제안을 받아서 많은 뉴비 모험가의 뒤통수를 치고 큰 이윤을 남길 목적으로 짜둔 판은 만들어 진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당연히 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이 숫자들도 얼마 되지 않으며 이제 막 시작단계에 들어서기 시작한 상황인데.
시작부터 제일 껄끄러운 상대를 만나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짜증이 치밀어올랐다.
‘이건 우연인가?’
마치 자신들이 사기를 치면서 활동을 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처럼, 타이밍이 절묘하다.
가름은 현재 상황이 꼬이기 시작한 타이밍이 너무나도 절묘해서, 우연으로 인해 에린이 그 상황을 발견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가 머릿속으로 떠올린 가능성은 딱 한 가지.
‘길드 내부에 배신자가 있는 건가?’
누군가가 에린이나 공작 가문에 자신들의 장사 수법을 흘렸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누구지?’
이 계획을 알고 있는 것은 철호단 길드 내부에서도 부마스터인 자신과 가장 아래 계급의 부하들 일부밖에 모르는 사실이다.
가름은 안타깝게도 정보가 새나간 이유가 다름 아닌 자신에게 동업을 제안한 사기꾼 때문이라는 가능성을 전혀 염두해두지 않았다.
“…일단은 발을 빼야겠군.”
아직 제대로 된 시작도 못 해보고 발을 빼야 한다는 것이 굉장히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공작 가문 측의 사람에게 덜미를 잡힌다면 곤란해지는 것은 자신이다.
일단 길드의 위상은 물론이고, 길드의 부마스터라는 자신의 자리마저도 위태로워질 것은 불 보듯 뻔하다.
“X발.”
결국, 가름은 욕을 내뱉었다.
이득을 보자고 계획한 사업이 시작부터 물거품이 되어버렸는데,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됐어. 가 봐.”
“예, 예!”
가름의 명령이 떨어지자 동료를 내버려 두고 도망을 쳐왔던 길드원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을 향해 걸어갔다.
“…크.”
아직도 얻어맞았던 복부가 욱신거리는 것이 신음이 새어 나왔다.
자신의 복부를 한쪽 팔로 감싸 쥐고 방문 손잡이를 열어 밖으로 나가려던 길드원은 다다닥 소리를 내며 달려와, 거칠게 문을 열어젖힌 누군가의 행동에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부, 부마스터님!”
“무슨 일이지?”
“어떤 남녀 둘이 느닷없이 길드를 찾아와, 항의하고 있습니다!”
“…항의?”
동요를 보이면서 다급히 소식을 전달하는 말단 길드원의 말에 가름의 두 눈이 가늘어졌다.
하필 지금 이 순간, 그의 머릿속에 피어오르는 불길한 기분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다.
◆ ◆ ◆
“저, 저 여자가 어째서 여기에?”
“…….”
경악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던 에린은 뚱한 표정을 지으며 팔짱을 끼고는 애써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했다.
실력은 물론이고, 모험가들 사이에서는 에린은 이미 유명인사였다.
뒷소문으로 유명한 은현의 제자인 것은 물론, 뛰어난 외모와 몸매를 보유하고 있으면서 오랜 기간을 솔로로 활동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게다가 그녀에 대한 주목도가 급격하게 올랐던 계기는 모그라프 변경의 마수지원전선에서 보여주었던 구미호의 모습과 그녀의 명령을 따르던 백귀들의 활약이다.
“…….”
길드의 건물 내, 1층에 있던 철호단의 길드원들은 하나 같이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정황상, 철호단의 모든 구성원이 뉴비 모험가들을 등 처먹기 위한 사기에 가담을 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도대체 어째서 에린이 철호단을 찾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에린은 긴장과 동경, 신기함 등 다양한 시선을 애써 무시하고, 자신과 동행한 남자, 엘빈에게 눈짓했다.
에린의 시선을 이해한 엘빈이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나섰다.
“무, 무슨 일로 찾아오셨나요…?”
말단 길드원 하나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엘빈에게 다가와 조심스레 철호단 길드를 찾아온 용무를 물었다.
칠흑의 갑옷을 착용하지 않은 엘빈의 외모는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
모험가 일을 활동할 때는 항상 그림자로 구현화 시킨 갑옷을 착용한 채로 활동했기 때문.
멀쩡하게 걸어 다니고 있는 그가 인간이 아니라, 자아를 가진 마법, 인공 정령, 호문쿨루스라는 것을 알아보는 이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에린이 동행한 인물로서 긴장한 기색도 없이 당당한 태도를 보이는 모습.
틀림없이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이곳의 길드원이 파는 장비를 샀어.”
“그, 그런데요…?”
대뜸 초면부터 나오는 반말은 엘빈에게 용무를 물어본 말단 모험가를 당황하게 했다.
그것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알맞은 모습이라, 그는 기분이 나빠질 겨를도 존재하지 않았다.
엘빈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손에 쥐고 있던 스태프를 보여주며 말을 이었다.
“마력을 머금은 신비한 나무로 만든 지팡이라고 하면서, 금화 두 닢을 주고 샀지. 그런데 사실은 하자가 존재하는 싸구려 스태프였더라고.”
“…….”
엘빈이 내민 낡아빠진 스태프는 누가 봐도 금화 두 닢의 값어치를 가지고 있을 만한 장비가 아니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철호단원의 모험가들 다수가 얼이 빠진 표정으로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엘빈을 바라보았다.
말하는 투나, 행동과 표정에서는 범상치 않은 위용을 발산하는 베테랑 모험가처럼 보였지만, 그의 실상은 전혀 달랐다.
“혹시…저희 길드를 찾아오신 용무가 그러면…?”
말단 길드원의 미심쩍은 표정과 추측을 듣고, 엘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항의하러 왔지. 당장 환불을 해줬으면 좋겠는데.”
“…….”
실상은 물건을 제대로 볼 줄도 모르는 한심한 뉴비 모험가 그 자체.
“풉….”
한 길드원이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이 터졌다.
이내 웃음을 터뜨린 길드원이 엘빈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뉴비인가?”
“…….”
엘빈은 담담한 표정을 지을 뿐, 그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아, 물어봤으면 대답을 해야지.”
“…그렇다면?”
“그렇다면? 이 X끼 봐라. 신참 주제에 말이 X라 짧네?”
어줍잖게 시비를 걸어오는 모험가의 질문에 엘빈은 귀찮은 표정을 지으며 대충 대꾸했다.
사실상 모험가로서 신참의 딱지를 뗀 지는 한참이 되었지만, 그런 것을 일일이 설명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엘빈을 보며 비웃음을 흘렸던 그는 이내 에린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이봐. 아가씨. 이 신참하고 무슨 특별한 관계인데, 이런 같잖은 일로 동행을 해주셨나? 뭐 남자친구라도 되나 보지?”
“뭐? 저 인간이? 남자친구?”
노골적으로 도발을 걸어오는 길드원의 시비에 에린은 인상을 찡그렸다.
도발 자체는 웬만하면 무시하려 했지만, 엘빈과 자신의 관계를 연인 사이로 보고 있다는 것이 짜증이 났다.
“아, 아무 관계도 아니면, 이런 호구 같은 뉴비 모험가의 뒤를 닦아주는 일을 왜 굳이 나서서 하냐고. 그리고 말이지. 나를 비롯해 몇몇 길드원들이 뉴비들에게 상등품의 장비를 싼값에 판매한 건 사실인데. 거기에 싸구려 하등품의 장비는 섞여 있지 않았어. 게다가….”
길드원은 엘빈이 쥐고 있는 스태프를 흘끗거리며 비웃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우리가 판매했던 장비들은 모두 검이지. 스태프 같은 마법 물품은 취급하지 않았다고.”
“…….”
에린은 비릿한 미소를 짓는 길드원의 말에 표정을 굳히고 엘빈을 쳐다보았다.
일련의 사건을 에린에게서 모두 듣고, 자신에게 좋은 방법이 있으니 맡겨보라는 자신감에 찬 엘빈이었기 때문에 믿고 맡긴 것이었으나.
결과는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엘빈을 노려보며 눈으로 물어보았지만, 엘빈은 고개를 돌려 에린의 시선을 피했다.
“지금 감히 우리한테 사기를 치려고 수작을 부린 건가? 그것도 철호단의 길드 안에서?”
“…….”
에린은 자신을 에워싸고 험악한,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자신들의 무기를 꺼내고 있는 철호단 길드원들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재빠르게 자신의 곁으로 다가온 엘빈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뭐하자는 거야?”
“실수했어. 설마 장비 중에 스태프가 섞여 있지 않았을 줄이야….”
“아, 좀 물어보고 계획을 짜던가! 이게 다 뭐야!”
본래의 계획은 피해자인 척을 연기하면서 내부 정황을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함이었지만.
펼쳐진 상황은 결국 싸움판이다.
다 자신에게 맡기라고 호언장담을 하더니, 완전히 개판을 만들어놓은 상황.
“하지만 만약을 대비해 이 상황도 상정해두었지. 플랜B로 가지.”
“뭐? 오빠, 진짜로 그런 거 생각해두고 있었어?”
생각보다 무지성으로 나선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엘빈에게 잔뜩 실망하고 있던 에린의 얼굴에 조금이나마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결국엔 이놈들을 모조리 잡아들이면 되는 문제 아닌가? 이 상황의 연출도 계획대로야.”
방금 자신의 입으로 ‘실수했어.’라는 발언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일까?
머릿속에 품고 있던 기대감은 또다시 실망의 나락으로 추락했다.
“결국, 그냥 다 때려눕히자는 얘기잖아! 왜 이렇게 뻔뻔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