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4화 〉 344. 철호단(1)
* * *
[저택으로 와줄 수 있겠어?]
침묵 끝에 엘레노아가 한 말은 그 한마디뿐이었다.
에린은 그녀의 부탁에 곧바로 승낙의 의사를 밝히며 발걸음을 옮겼다.
사전에 엘레노아의 통지가 있었던 탓인지, 이미 공작 가문 내에서도 에린의 얼굴을 모르는 사병들도 없었기에, 에린의 저택 입장은 아주 매끄럽게 이어졌다.
오히려 부담스러울 정도로 정중한 태도로 저택의 내부로 자신을 안내하는 고용인의 행동에 에린이 난색을 표현했을 정도.
‘현이의 영향력 때문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지만….’
뿌듯하고 기쁘면서도, 그 영향의 여파가 자신에게까지 미치는 것은 에린의 심경을 부담스럽게 만들었다.
에린에게 부담스럽게 저택 내부의 관심을 받고 있던 이유는 그녀의 스승이자, 엘레노아의 남편인 은현의 영향뿐만이 아니다,
성장하면서 눈부시게 발전한 에린의 외모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시선을 강탈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다리의 맵시가 드러나게 강조시키는 타이즈로 감싸인 다리는 가늘면서도 건강한 육체미를 강조하고, 반면 잘록하게 안으로 들어가는 허리의 라인과 커다란 가슴은 같은 여성의 눈길조차 빼앗을 정도로 관능적이다.
그러면서도 그 관능적인 몸매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 이제 막 20살이 되어가는 어린 숙녀라는 것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모순 그 자체.
이상한 눈으로 보는 것은 아니었지만, 타인의 주목을 받는 건 익숙해지려고 해도 익숙해질 수가 없다.
똑똑
앞장을 서서 에린을 안내하고 있던 고용인이, 도착한 방문 앞에서 노크했다.
“엘레노아님. 에린님을 모셔왔습니다.”
“…….”
‘님’자가 너무 낯간지러웠지만,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을 뿐 에린은 별다른 말을 하지 못했다.
몇 번이고 사양했음에도 고쳐지지 않는 이 호칭은, 그냥 자신 쪽에서 받아들이고 익숙해지는 수밖에 없다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들어와.”
엘레노아의 허락이 떨어지자, 고용인은 문을 열고 몸을 옆으로 비켜주어 에린에게 방 안으로 들어가라는 정중한 손짓을 보였다.
“가, 감사합니다….”
에린은 고개를 숙여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엘레노아의 방안으로 입실했다.
“오, 오! 아가씨!”
“……? 아.”
방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자신의 모습을 보고 호들갑을 떨며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흔들어 반가운 표정을 짓는 남자.
순간 그가 누구인지 긴가민가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그의 기억을 떠올리고 에린은 작게 탄식했다.
“그 사기꾼 아저씨?”
과거 은현에게 사기를 치려 했던 것을 계기로, 그에게 죄송했다고 사죄를 구하고 은현에 의해 갱생의 길을 걷고 있는 모험가, 지스다,
지금은 은현의 중재하에 자신이 사기를 쳐왔던 금액의 배가되는 액수를 모험가 길드나 다양한 곳에 기부하면서 과거의 업보를 청산해가고 있는 지스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사기꾼이라니….”
직설적인 에린이 부른 호칭에 전직 사기꾼 모험가, 지스는 애석한 표정을 지으며 약간의 서운한 감정을 얼굴로 표현했다.
“뭐어…맞는 말이긴 하지만.”
그래도 더는 사기를 치지 않고, 나름대로 착하게 살고 있는데 자신의 인식이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것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엘레노아님. 저 왔어요.”
“응. 어서 와.”
집무실의 책상에 앉아, 업무를 보고 있던 엘레노아는 에린의 인사를 받아들이며 미소지었다.
“많이 힘드세요?”
“괜찮아. 요즘 들어서 바빠진 거니까. 신전의 완공만 끝나고 정상적으로 운영이 된다면. 나도 그럭저럭 쉴 수 있으니까.”
엘레노아의 미소가 어딘가 기운이 없어 보였기 때문인지, 에린에게 보이는 엘레노아의 모습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신전 개축 공사의 지휘나 이번에 은현이 외국의 사비로스령에서 보내온 노예들의 일선 배치 등, 동시에 진행하고 있는 안건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이번엔 에린이 일을 도와준 덕택에 나나 오라버니 쪽도 한결 수월해졌어.”
“제가요?”
에린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되물었다.
“응.”
엘레노아는 작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나 중앙의 소파에 앉았다.
“일단 앉아. 차는…핫초코였지?”
“네.”
평소 따뜻하고 달달한 것을 즐겨 마시는 에린의 기호를 파악해두고 있던 엘레노아는 곧바로 고용인을 불러 세잔의 음료를 준비해오도록 명령을 내렸다.
이윽고 세 사람의 음료가 나오는 동안, 지스를 흘끗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지스. 당신이 설명하세요.”
“예. 알겠습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곧바로 대답한 지스는 에린을 보며 이야기의 서두를 시작했다.
“일단 아가씨는 자세한 정황은 모를 테니. 내가 마님을 찾아온 이유부터 설명해야겠네.”
지스는 에린에게 현재 아르미타스령 내부에서 철호단이라는 길드가 무엇을 계획하고 있는지, 설명을 개시했다.
이야기는 매우 간단했다.
아르미타스령으로 대거 유입되고 있는 뉴비들에게 접근해서, 그들을 속이고 싸구려 장비들을 비싼 값에 팔아치우면서 큰 폭의 마진을 남기는 것이 목적.
에린이 철호단원들과 전 귀족 자제였던 뉴비들의 실랑이 속에서 파악한 정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사기들이 뉴비들에게 그렇게 잘 먹히나요?”
아무리 안목이 없고 경험이 없다고는 하더라도 그렇게 쉽게 속아 넘어갈 수 있는 것인지, 에린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당연히 주어진 상황과 정보들만 보면 쉽게 속아 넘어가지는 않지.”
지스도 당연한 반응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하지만 말이야. 아가씨. 대부분 사기를 당하는 사람들이, 자신이 그렇게 쉽게 사기를 당하겠냐고 안일하게 있다가 뒤통수를 맞기 마련이야.”
“…….”
“누가 봐도 질 나쁜 싸구려 장비를 고급 장비라고 주장하고, 비싼 값에 사라고 말을 해도, 누가 미쳤다고 그걸 사겠어? 그런 수법에는 호구들도 안 걸려.”
지스의 주장은 당연했다.
“아가씨. 아가씨는 물건을 살 때, 무조건 물건만을 보고 사나?”
“네? 글쎄요.”
에린은 고개를 갸웃하며 애매한 답변을 늘어놓았다.
“모험가들이 장비를 구매할 때, 그 장비의 내력이나 성능을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이 부족하다면, 다른 부분에 기대어 평가하고는 하지.”
이 ‘다른 부분’이 바로 판매를 하는 판매자다.
“에린, 만약에 그 사람이 에린에게 물건을 팔려고 한다고 치자. 여기서 팔려는 물건은 정말로 아무런 효과도 없어 보이는 평범한 돌이야.”
“네.”
에린은 엘레노아의 예시를 들으며, 머릿속으로 은현이 자신에게 평범한 돌을 파는 상황을 상상했다.
“그 사람은 에린에게 그 평범해 보이는 돌을 금화 한 닢에 팔려고 해. 에린은 그 돌을 살 거야?”
“…아니요?”
에린은 너무 자신을 무시하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의 비유에 살짝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그 얼굴을 보고 귀엽다는 듯 미소지은 엘레노아가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그 사람이, 그 돌이 사실은 엄청난 힘을 보유하고 체내의 마력 보유량을 세 배 가까이 늘려주는 마법의 돌이라는 것을 설명해주면서 값을 매길 수 없는 가치를 보유하고 있다고 말을 해. 그리고 그 마법의 돌을 금화 한 닢이라는 헐값에 판다고 에린에게 속삭이는 거지.”
“…….”
에린은 생각에 잠겼다.
은현은 머릿속에 가지고 있는 지식도 매우 많으며 자신에게 그런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다.
그 설명이 사실이라면, 정말로 금화 한 닢이라는 값은 황금을 빵 하나의 값에 파는 것만큼이나 어마어마한 이득이 아닐까.
“지금 고민했지?”
생각을 간파당한 듯 어깨를 움찔 떠는 에린의 반응을 보고, 엘레노아는 지스에게 눈짓했다.
“뭐…아가씨가 그 양반을 얼마나 믿고 잘 따르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잘 파악했고, 여기서 아가씨의 입장에서 생각한 ‘그 양반’이 바로 이번 사건의 피해자였던 뉴비들의 입장에서는 철호단인거지.”
“아….”
에린은 뒤늦게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장비를 구매하는 데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장비의 가치를 알아보는 안목과 그것을 기르기 위한 경험들.
그것이 철저하게 부족했던 뉴비들은 철호단이라는 길드의 위상과 판매자의 화술에 넘어간 것이다.
에린이 은현과 자신 사이에 구축된 신뢰 관계를 무조건으로 신용하고 의심을 하지 않듯이.
뉴비들은 철호단이라는 길드의 소속임을 통해서 신용을 보여주고.
장비의 내력을 설명함과 동시에 그럴싸한 말로 포장된 미사어구를 늘어놓으며 마치 지금 구매하면 엄청난 이득을 보는 것처럼 욕심을 자극한다.
“나는 철호단이라는 길드에 가입하면서 많은 뉴비에게 하자가 있는 싸구려 장비들을 비싼 값에 팔아치우자는 제안을 받았지.”
“…그런데 왜 여기에 계세요?”
“그야 거절했으니까.”
지스는 당당하게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저쪽에 붙어도 이득을 보기는커녕 손해밖에 없는데, 그런 멍청한 짓을 왜 해?”
“…….”
“게다가 아가씨. 나는 아가씨의 스승인 그 양반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인 기회를 받았어. 여기서 그 양반을 배신하게 되면, 그 이후에 내가 치러야 할 대가는 내 목숨이야. 그런데 이 상황에서 내가 그 인간의 제안을 받아들일 리가 없잖아.”
만약에 은현을 배신하게 된다면.
그 이후의 상상은 하기도 싫다는 듯 지스는 인상을 팍 찡그렸다.
지스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신의 인생에 내려온 기회의 동아줄을 걷어 찰 생각이 없었다.
비록 지금까지 사기를 쳐왔던 금액의 배가 되는 액수를 모험가 길드나, 보육원 등 다양한 시설에 강제적으로 기부를 하고는 있다지만.
그만큼 은현이 제공한 상품들을 판매하면서 벌어들이는 액수도 쏠쏠하기다.
혹시라도 보복을 당하지는 않을까, 범죄자로서 마음을 졸이며 사기를 치면서 하루하루를 연명해나갔던 과거에 비하면.
제법 안정된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어 마음도 편하다.
인상을 팍 쓰며 은현을 배신하였을 경우, 자신에게 돌아올 보복을 상상하던 지스를 보고, 에린은 고개를 갸웃했다.
“자, 아가씨. 현재 상황과 대강의 경위는 파악이 됐어?”
“그럼 저 때문에 엘레노아님이나 알렉스님의 일이 수월해졌다는 건….”
“맞아. 오라버니는 지스에게서 제보를 받고, 일을 꾸미고 있는 철호단 길드에 대한 수사를 비밀리에 진행 중이었어. 거기에서 에린이 피해자들과 가해자들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던 상황을 포착한 거지.”
정말로 절묘한 타이밍일 수밖에 없었다.
“뉴비 모험가의 대거 유입과 동시에, 영민들의 유입도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영지의 인구가 급격하게 불어나고 있었거든. 부끄럽지만…오라버니와 아르미타스 기사단 쪽도 지금 인력이 너무 부족한 상태라….”
인구의 증가로 인해 많아진 영민들을 통제하고, 치안이 나빠지지 않도록 새로운 사병들을 모집하고 훈련시키고, 모험가 길드에서 시행되는 뉴비들의 복지정책에도 예산을 편성하는 등.
알렉스도 매우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만큼 유입되는 모험가나 영민들의 숫자가 증가하는 만큼, 그들 모두가 좋은 의도를 가지고 아르미타스령으로 오고 있지 않다는 것 또한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지스에게 동업을 제안한 모험가나, 철호단의 길드원들은 이 점을 절묘하게 노리고 영지 내부로 들어온 것.
“당장 체포를 할 수는 없었던 건가요?”
“확실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면, 철호단 쪽에서는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뗄 수도 있었으니까. 애석하지만 실제로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공작 가문 쪽에서 길드 쪽에 제재를 가할 수 있는 명분은 생기지 않아.”
“그 자식이 나한테 동업을 제안해온 시기가 지난주야. 시기상 아가씨가 발견한 피해자들이 첫 피해자겠지. 이것도 굉장히 빠른 움직임을 보인 거야. 아마 영지가 안정되고 치안이 다시 확립되기 전에, 빠르게 뉴비 모험가들을 등 처먹으면서 크게 한탕을 벌어들이고 도주할 계획을 세워둔 모양인데.”
굉장히 바쁘면서도, 빠른 일 처리로 영지의 안정화가 되리라는 것을 우려하고 급하게 움직인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지스에게 동업을 제안한 사기꾼은 지스와의 이야기가 틀어지자, 곧바로 철호단을 찾아가 이 사기를 제안했다고, 지스는 추측했다.
고급 장비를 허위매물로 내놓아 뉴비 모험가들의 이목을 단숨에 집중시키면서 철호단의 신용과 위상을 빌려 싸구려 장비를 고급 장비라고 포장하여 비싼 값에 팔아넘긴 것이다.
그 결과로 발생하는 이윤을 철호단과 사기꾼이 나눠 먹은 형태로 거래는 성사되었을 터.
“하지만 이제부터는 좀 다르지.”
엘레노아는 두 눈을 빛내며 에린을 바라보았다.
그 말의 뜻을 알아들은 에린도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피해자가 발생했으니, 공작 가문 측에서 움직일 명분도 생기게 된 것.
게다가 마침 흑랑단에 정보 수집을 명령하여 철호단을 통해서 추가적으로 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의 신원을 확보하도록 명령을 해두었다.
하지만 이외에도 에린은 또 다른 결론에 도달하여 머릿속으로 또 하나의 방법을 떠올렸다.
“엘레노아님.”
“응?”
“그래도 공작 가문 측에서 당장 움직이는 것은 조금 시간이 걸리겠죠?”
“음…역시 좀 그렇겠지?”
섣불리 움직였다가는 저쪽에서 증거를 은폐하면서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거나, 도주의 우려도 있다.
“제가 시간을 끌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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