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부활한 불멸자-343화 (343/730)

〈 343화 〉 343. 뉴비 모험가(3)

* * *

‘많은 귀족 가문이 몰락하면서, 얘들도 함께 망했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은현이 뒤에서 움직여 상황을 만들고, 아이테르가 수사를 진행하면서 페르니아스 왕국의 내부에서 부정부패를 저질렀던 귀족들을 모조리 척결하는 대대적인 사건의 결과는 에린도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집안의 비리가 밝혀져 몰락한 귀족 가문에 속해 있는 자제들 또한 같이 몰락하게 되면서.

지위도, 재산도, 인맥도 모조리 잃어버리고 평민의 신분으로 전락한 그들은 다양한 방면으로 흩어졌다.

그럭저럭 상업이나 경영에 재능을 가졌던 누군가는 장사를 시작했거나, 타국으로 망명을 시도했거나, 아무런 재능도 발휘하지 못하고 길거리에 나앉는 한심한 사태까지.

‘설마, 얘들이 모험가가 되었을 줄이야.’

그중 젊은 층의 귀족들이나 자제들이 선택한 길이 바로 ‘모험가’다.

페르니아스 왕국의 특성상 선천적으로 대량의 마력을 보유하고 있는 귀족들의 특성은 이제 막 신참 모험가가 된 뉴비들의 입장에서는 아주 훌륭한 매리트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확천금의 기회를 노려서, 단번에 신분의 상승이나 편하게 놀고먹을 수 있는 가장 쉬운 수단으로 모험가라는 직업을 얕보았을지도 모른다.

‘도대체 철호단하고 어떻게 엮인 거야?’

이야기를 듣자 하니, 하자가 있는 싸구려 무기를 비싼 값에 바가지를 씌워서 판매하는 수법에 보기 좋게 걸린 듯했다.

경험과 안목, 상황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판단 능력 등 모든 면에서 미숙한 뉴비라면 작정하고 걸어오는 수작질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은 것도 사실.

‘귀찮네.’

사실 에린은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공작령 내부에서 버젓이 날강도 같은 짓을 하는 무리를 내버려 둘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만, 구태여 이들을 위해서 사건을 해결하고 싶은 마음은 생기지 않았다.

아니, 더는 이들, 자신이 있었던 아이테르 시절의 과거 악연들과 엮이고 싶지 않다는 것이 본심이다.

에린은 아이테르를 그만두고, 오빠와 재회를 하면서 나름대로 행복하고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과는 정반대로, 인생의 나락을 경험하고 있는 과거의 동급생들을 담담히 응시했다.

통쾌함이나 기쁨 같은 감정은 전혀 생기지 않았다.

그저 한심하고 더는 엮이고 싶지 않다는 귀찮음 뿐.

아무런 말도 없이 에린과 그들 사이에 서로를 응시하는 시선만이 오갔다.

자신들의 처우에 대해서 에린이 아무런 말도 없이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자, 그들은 얼굴을 굳히며 긴장감에 침을 꿀꺽 삼킬 뿐 쉽사리 말을 내뱉지 못했다.

“아는 사람이냐?”

뒤늦게 에리스의 손을 맞잡고 있던 엘빈이 멀찍이서 에린에게 물었다.

“…….”

에린은 엘빈의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자신이 아이테르에서 업신여겨지고 조롱을 받으며 따돌림을 받았던 학교생활이 만들어지도록 주도한 인물들이라고 설명한다면.

엘빈의 반응은 뻔했다.

항상 자신에게 시비를 걸고 무심한 듯하면서, 엘빈이 자신을 얼마나 아끼고 있는지는 에린도 알고 있다.

애초에 아끼지 않았다면, 오빠가 2년 전 아버지를 스스로 살해하고 공작 가문과 뒷거래를 한다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머릿속으로 생각을 마친 에린은 담담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모르는 사람들이야.”

“……!”

대놓고 자신들을 모르는 사람들 취급을 하는 것에 모험가 뉴비들은 몸을 움찔 떨었지만.

그 이상으로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에린은 이들이 엘빈의 정체를 알아보지는 않았을까, 하는 우려를 했지만.

다행히도 그들은 엘빈의 정체를 알아보지 못한 듯 보였다.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가족관계를 암시하는 말도 내뱉었던 것 같은데, 그들에게는 그것을 들을 경황이 없는 듯 보였다.

“끄…으윽….”

이내 에린은 바닥에 쓰러져서 신음하고 있는 철호단원에게로 시선을 향했다.

“…가자.”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전 귀족 자제, 현 모험가 뉴비들을 내버려 두고 발걸음을 옮겼다.

“이, 이봐!”

등을 돌려 엘빈과 에리스가 있는 골목의 입구 쪽으로 걸어가려던 에린을 남성 뉴비가 불러세웠다.

설마 자신에게 말을 걸 줄은 몰랐는지, 에린도 인상을 살짝 찡그리며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이내 뒤를 돌아보며 다급하게 바닥에서 몸을 일으킨 남성 뉴비를 응시했다.

“왜?”

“…도와줬으면 좋겠어.”

“뭐?”

“이 자들은 우리에게 하자가 있는 싸구려 무기를 비싼 값에 바가지를 씌워서 팔았어. 그리고 폭력이라는 강압적인 수단으로 우리의 입을 막으려고 했지. 나는 이 사람들이 한 행동을 모험가 길드와 공작 가문에 정식으로 항의를….”

“내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해서 되물은 게 아니야.”

에린은 시큰둥한 표정을 풀지 않고 남성 뉴비의 말을 끊었다.

“내가 왜 너희의 부탁을 들어줘야 하는데?”

당당하게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그들의 태도에 에린은 어처구니가 없음을 느꼈다.

설마 도움을 요청하면 정말로 자신이 그 요청을 받아들일 것이라, 생각했던 것일까?

어째서 그런 생각을 가지는 걸까.

“그건….”

냉담한 에린의 반응에 남성 뉴비는 할 말을 잃었다.

업신여겨지고 무시당하며 손찌검까지 당했던 과거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현재의 에린은 부조리한 사람이라면 누구든 도와주는 선인이 아니다.

지극히 자신의 개인적인 감정을 우선시할 수 있는 사람이다.

싸늘한 눈빛으로 자신을 쏘아보고 있는 에린의 시선은 남성 뉴비의 말문을 막히게 만들어버릴 정도로 날카롭다.

에린은 남성 뉴비의 변명을 들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고 다시 등을 돌려 골목길을 나왔다.

“누구냐.”

“…….”

에리스의 손을 맞잡고, 뒤따라온 엘빈의 질문에 에린은 대답하지 않았다.

굳은 얼굴로 서로를 응시하면서 흘러갔던 미묘한 기류를 엘빈은 놓치지 않았다.

대강의 사정을 짐작하면서도, 굳이 에린에게 질문을 던진 것은, 어째서 모르는 척을 하고 쓰러뜨린 철호단원들까지 방치를 하며 자리를 떠난 이유를 묻는 것이었다.

“오빠가 어떻게 나올지 아니까.”

보나 마나 자신에게 몹쓸 짓을 했었던 그들을 엘빈이 가만히 둘리가 없다.

에린이 대답하지 않자, 엘빈은 발걸음을 멈췄다.

“…….”

“엘빈 오…빠?”

손을 잡고 있는 엘빈이 느닷없이 걸음을 멈추자, 의아해하며 엘빈의 얼굴을 올려다보던 에리스의 얼굴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들이 누구인지를 대강 눈치채고는 엘빈의 얼굴이 굳어버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에리스의 손을 놓고 등을 돌려 뉴비 모험가들이 있는 골목길로 다시 걸어가려던 순간이었다.

“하지 마.”

엘빈의 걸음을 멈춰 세운 것은 다름 아닌 에린의 목소리다.

인상을 찡그린 엘빈이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에린의 얼굴을 보고 따졌다.

“저것들을 그냥 두라고?”

“응.”

“난 그렇게는 못해.”

행색은 뉴비 모험가들답게 초라한 장비들이었지만, 그들이 보인 태도나 말투는 틀림없는 귀족들의 그 말투다.

에린과 마찬가지로 아이테르에 다니고 졸업하면서, 몇 년을 가까이 지겹도록 들었던 그 말투와 태도들을 엘빈이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집안의 지위와 재산, 인맥들을 잃고 평민으로 전락해 뉴비 모험가로 생활을 연명해나가고 있다고는 하나, 그것은 그들이 지금껏 저질러온 비리와 잘못들에 대한 대가를 치른 것이다.

자신의 동생인 에린에게 심한 짓을 했던 것에 대한 응보는 아직 치르지 않았다는 것이 엘빈의 생각이었다.

“오빠, 난 괜찮아.”

“뭐가 괜찮다는 거야.”

“우리 지금 엄청 행복하잖아.”

에린은 미소지었다.

한 번은 자신의 곁을 떠났던 오빠가 되살아났고, 절대로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구원이 자신을 찾아왔다.

지금은 자신의 주위에는 좋은 사람들이 가득하다는 것을 만끽하고 하루하루가 충실하고 행복한 생활을 보내고 있다.

“저기서 우리가 뭔가를 더 할 필요는 없어.”

이미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져 밑바닥을 경험하고 있는 그들에게 더는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생기지 않았다.

아니, 더는 엮이고 싶지 않다는 것이 본심이다.

엘빈은 여동생의 그 말을 듣고 쌓여갔던 분노를 흩어버리고 찡그렸던 인상을 풀었다.

“…알았다.”

“응.”

“오빠. 이제 괜찮아요?”

“그래. 걱정해줘서 고마워.”

다시 조심스레 가까이 다가와 자신의 손을 잡아주는 에리스를 내려다보고, 엘빈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는 에리스 데려다줘.”

“너는?”

“…저 사람들을 내버려 둘 수는 없으니까.”

그것은 지금은 몰락한, 전 귀족 자제들이었던 모험가 뉴비들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었다.

아르미타스령에서 뉴비인 모험가들을 상대로 못된 짓을 벌이고 있는 철호단이라는 모험가 길드를 두고 하는 말이다.

어쩌다 보니, 엮이기도 싫은 과거의 악연들을 돕는 정말로 마음에 들지 않는 형태가 되어버렸지만.

지금도 많은 뉴비를 대상으로 사기를 치고 있을 것이라는 상황은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그 다수의 뉴비에 에린과 악연인 인물들이 섞여 있을 뿐이지, 현재 사기를 당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뉴비들 전원이 에린과 악연을 맺고 있는 것이 아니다.

“착해빠져 가지곤.”

“흥. 남이사. 도와주지도 않을 거면서.”

에린은 툴툴대며 자신의 오빠에게 핀잔을 주었다.

“에리스를 다시 데르킨님께 데려다주고 올게.”

“응?”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엘빈의 대답에 에린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문했다.

“…도와줄 생각 없는 거 아니었어?”

아까까지 에리스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고, 마력이 아깝다며 적극적인 활동을 보이지 않았던 엘빈이, 도대체 무슨 심경의 변화가 나타난 것일까.

“가끔은 이 오빠를 믿어라.”

“믿음을 줘야지, 믿지….”

에린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엘빈을 흘겨보았다.

그런 에린의 따가운 눈초리에도, 엘빈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이 영지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자들의 처리라면, 이야기는 달라지지. 마력의 공급도 엘레노아님을 통해서 공급을 받을 수 있으니까.”

엘레노아와 공작 가문을 통해서 질 좋은 마석을 받는다면 조영술의 사용으로 소모된 마력의 보충도 가능하다.

직접 종속 계약을 맺은 은현에게서 공급을 받는 것과 직접 제련한 마석을 통해 마력을 보충하는 것 사이에는 효율과 금전적인 문제의 차이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엘빈을 위해서 이 정도의 배려도 해주지 못할 공작 가문이 아니다.

“오빠. 나쁜 사람들을 혼내주러 가는 거예요?”

“그래. 에리스. 나는 에린하고 위험한 곳으로 가야 하니, 먼저 집으로 돌아가자.”

“네에.”

에리스는 미소를 지으며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엘빈의 그림자 일부가 떨어지더니, 에린의 발아래의 그림자 속으로 흡수되었다.

“네 그림자 안에 내 그림자를 심어두었어. 이걸로 일정 거리 안에 있으면, 네 위치를 파악할 수 있어.”

그 추적의 범위는 이 영지 전체를 커버할 수 있는 수준으로 광활하다.

엘빈의 조영술에 대한 능력을 설명받은 에린은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표정이냐. 그게?”

굉장히 띠껍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있자, 엘빈이 물었다.

“그냥…멀리서도 내 위치를 특정할 수 있다는 게…기분 나빠. 오빠 지금 스토커 같았어.”

“…….”

“나 방금, 살짝 제라드님이 생각났다?”

“네 머릿속의 그분은 도대체 어떤 인상이냐?”

“대단한 영웅인데, 이상한 사람.”

격식과 매너로 무장한 신사의 모습으로, 굉장히 좋은 첫인상이었음에도.

초면인 자신에게 다짜고짜 청혼을 해왔던 무례한 인상으로 추락한 제라드는 에린의 머릿속에서 굉장히 애매한 평가였다.

‘게다가….’

­아가씨는 혹시…처녀이십니까?

“…….”

에린은 과거에 제라드가 했던 말을 떠올리고, 무심코 얼굴을 붉혔다.

일리아나에게서 그 의미의 설명을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성에게 있어 최악으로 실례되는 질문을 들었음에도.

에린은 제라드를 그렇게 나쁘게 볼 수 없는 자신의 마음이 신기했다.

굉장히 무례하고 경박한 사람이긴 하지만, 어쩐지 미워할 수가 없었다.

엘빈은 작게 한숨을 내쉬고, 재차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려고?”

핀잔을 깔끔히 무시하고 물어오는 질문에 에린은 순순히 대답했다.

“엘레노아님한테 다 이를 거야.”

그들은 자신들이 소속되어 있는 철호단이라는 길드의 위세를 등에 업고 있는 것처럼.

에린 또한 자신의 뒤에 존재하는 배경을 적극적으로 활용시킬 생각이었다.

에린은 자신의 귀걸이에 각인되어 있는 전음 마법을 발동시켰다.

귀걸이에 장식된 다이아 보석이 작게 진동을 하며 수신인과 통신이 연결되었음을 알렸다.

[에린? 무슨 일이야?]

“엘레노아님. 급하게 상담을 드리고 싶은 일이 있는데요.”

[상담?]

“네. 철호단이라는 길드인데요. 이 길드의 말단이 뉴비들에게 하자가 있는 무기를 바가지를 씌워서 비싼 값에 팔고 사기를 치고 있는 걸 제가 잡았거든요?”

[…….]

에린의 설명을 들은 엘레노아는 침묵을 지키며 말을 아꼈다.

그녀의 설명에서 무언가 짐작이 가는 부분이 있는 듯이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 듯 보였기에, 에린은 조용히 엘레노아의 반응을 기다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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