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부활한 불멸자-338화 (338/730)

〈 338화 〉 338. 인생은 라인(1)

* * *

“그래서, 그 사람과 릴리는 다시 여행을 시작했다는 거지?”

“네.”

“흐응….”

에린에게서 여행의 경과를 들은 일리아나와 엘레노아가 지은 각각의 표정은 달랐다.

일리아나는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뚱한 표정이었고.

엘레노아의 얼굴은 걱정이 담겨있는 듯 어두운 표정이다.

각자의 표정은 달랐지만, 두 여성의 얼굴에는 릴리에 대한 걱정과 염려가 공통으로 담겨있었다.

엘레노아는 자신의 옆에서 뚱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일리아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릴리는…괜찮을까요?”

“안 괜찮겠지.”

일리아나는 담담하게 자기 생각을 말했다.

릴리가 겪은, 겪어야 하는 일련의 상황들을 상상해보면 괜찮지 않을 리가 없다.

절대로 좋아질 수가 없는 이야기와 결말.

하지만 그렇다고 릴 리가 그 고통을 혼자서 감내해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현이가 붙어 있을 테니까, 심해져도 최악까지는 가지 않겠지.”

그 여정을 은현이 함께하고 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적어도 은현이라면 릴리의 멘탈이 무너지고 최악으로 치닫는 결말까지 가지 않도록, 정성을 다해 케어할 것이 분명하다.

“그나저나 렌디르 왕국의 공작령을 초토화를 시키다니. 현이치고는 많이 과격한 행동을 취했네.”

“과격이요?”

“걔는 원래 이렇게 일을 크게 벌이는 성격이 아니야. 뒤에 조용히 숨어서 사람들을 옭아매고 목을 졸라 물어뜯는 게 본래 현이의 방식이지.”

영지의 중심에 있는 가장 큰 건물을 보란 듯이 대놓고 파괴하는 과격한 행위는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사고방식과는 다르다.

“…어쩐지 뱀 같아요. 정말로.”

“푸흡. 확실히. 난 그 별명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만큼 어울리는 별명이라 더 짜증 나더라.”

페르니아스 왕국 내부에서 불리고 있는 은현에 대한 소문.

독을 품고 있는 은색의 뱀.

처음 그 이명을 들었을 때는 에린도 절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그 이명을 재미있다는 듯 받아들이고, 정말로 뱀 같은 행동으로 왕국이 귀족들을 휘어잡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은현이 그 무례한 이명을 즐기고 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후후, 확실히 그 사람은 그런 면이 있죠.”

엘레노아도 자신의 입가를 손으로 가리고, 공감이 간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저도 처음에는 무슨, 이런 변태 같은 사람이 다 있나 싶었으니까요.”

자신을 깔보고 무시할수록, 뒤에서 움직이기 편하다는 뒤틀린 사고방식은 좀처럼 만나볼 수 있는 사고방식이 아니다.

“그렇지? 걔는 다 좋은데 그런 점이 문제야. 진짜로.”

“…….”

대화의 도중, 갑자기 아내들끼리 이상한 공감대를 형성하기 시작하자, 에린은 할 말을 잃었다.

“뭐, 아무튼 그렇게 화려하게 저질렀는데도, 꼬리를 잡힐 여지를 주지 않았다는 부분도 참…걔답네.”

방식은 바뀌었다 할지라도, 일을 처리하는 부분에서 용의주도함은 변함이 없다.

일리아나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엘레노아는 이윽고 다음 화제로 넘어갔다.

“에린, 그 사람이 전달한 내용은 구매한 노예들의 사용처에 관한 이야기 뿐이었어?”

“아, 네. 엘레노아님께 이 문제에 대해서 상담하라고 하셨어요.”

“응. 알겠어.”

이야기를 마무리하자마자,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는 엘레노아를 보고 에린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곧바로 오라버니에게로 향할게. 구매한 노예들을 모두 인솔해서 공작 저택으로 데려올 수 있겠어?”

“네. 그럴게요.”

◆ ◆ ◆

“으음….”

“아니, 이 친구야! 도대체 왜 안 하겠다는 거냐!?”

지스는 뜸을 들이며 사기꾼 모험가의 제안을 거절한 이유를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아오! 답답하네! 안 할 거라면 그 이유라도 알자고!”

인상을 찡그리는 모험가가 아무리 대답을 재촉해도 지스는 쉽사리 입을 열지 않는다.

사기꾼 모험가가 해온 제안은 확실히 매혹적이었다.

하지만 지스는 그 제안을 거절했다.

이 제안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그의 머릿속 이성이 강하게 경고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 염병. X벌. 진짜 환장하겄네. 이제 좀 착하게 살아보려고 했는데. 왜 또 나한테 이런 시련을….’

그동안 많은 신참 모험가들에게 가짜 포션을 팔아 치워, 사기로 등쳐먹으면서 키워왔던 지스의 눈치와 두뇌가 그 어떤 때보다 빠르게 작동하고 있다.

“이 방법이면 그럭저럭 짭짤 돈 좀 만질 수 있다니깐?! 그렇게 돈 좋아하던 놈이 왜 안 하겠다는 거야? 도대체!?”

사기꾼 모험가가 지스에게 한 제안은 이러하다.

먼저 굉장히 비싸고 강력한 무기를 준비한다.

그렇다고 무작정 비싼 무기가 아니라, 신참 모험가들이 혹할 수 있을 만한 수준의 적당한 무기들.

그리고 그 무기를 굉장히 값싼 가격에 판다는 소문을 내어 소비자들의 이목을 끈다.

이미 수준 이상의 경험과 실력을 쌓은 모험가들은 이미 흥미를 두지 않고, 사기꾼 모험가가 타겟으로 잡는 것은 물건을 볼 줄 아는 안목을 아직 기르지 못한 신참 모험가들.

신참 모험가가 그 소문에 이끌려 싼값에 좋은 무기를 구하기 위해 물건을 내놓은 사기꾼 모험가를 찾아온다.

자신을 찾아온 신참 모험가들에게, 싼값에 판다고 소문을 흘렸던 강력한 무기는 이미 팔려버렸다고 말을 하고.

그 대신에 그와 동등한, 아니면 약간 하위의 무기를 싼값에 판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소비자인 신참 모험가들에게 무기를 판매하는 것이다.

여기서 실제로 판매되는 무기들은 모조리 하자가 있거나, 싸구려의 상품들을 전혀 문제없다는 듯이 화술로 포장하고, 비싼 값에 팔아넘겨 모험가들의 등쳐먹는 방식.

전형적인 허위매물 사기로, 소비자들을 속여서 싸구려 물건을 비싼 값에 팔아넘기려는 수작을 계획한 것이다.

이 구조 속에서 매우 큰 이윤을 남겨 쏠쏠한 돈을 챙길 수 있다고, 사기꾼 모험가는 지스를 설득하고 있었다.

“내가 물건들 다 대겠다니깐!?”

자신이 많은 신참 모험가를 낚을 수 있는 외관이 화려한 비싼 무기와 실제로 판매할 하자가 있는 싸구려 무기들을 제공한다.

“자네는 그냥 늘 그랬던 것처럼 신참 모험가들을 속여서 이 물건들을 비싼 값에 팔기만 하면 돼!”

그리고 지스가 이전에 포션 사기를 쳤던 것처럼 화술을 이용하여 신참 모험가들의 뒤통수를 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윤들을 반으로 나눠 가지자는 제안.

“크흐음….”

확실히 사기꾼 모험가의 말대로, 큰돈을 만질 수 있게 해주는 솔깃한 하며, 무심코 받아들일 뻔했을 정도로 달달한 돈 냄새가 가득한 제안이다.

“지금, 이 아르미타스 공작령의 모험가 길드는 완전히 노다지라고! 간단히 등쳐먹고 속일 수 있는 호구들이 득실대는데, 도대체 왜 안 하겠다는 거냐고!”

지난 때, 모그라프 변경을 포함해서 왕국 주위, 전국에서 발생했던 마수 대범람 사태 이후로, 페르닌에서 아르미타스 공작령으로 정착한 모험가들이 대거 많아졌다.

특히나 신참 모험가의 육성에 공작 가문 쪽에서 많은 예산을 할애하여 지원하는 만큼.

아르미타스 공작령에서는 일확천금과 모험의 꿈을 꿈꾸는 신참 모험가들이 다수 몰려들고 있었다.

기초적인 교육과 기초 장비, 의뢰 대금의 수수료 면제 등 다양한 혜택들을 받을 수 있는 아르미타스령은 신참 모험가에 대한 대우가 굉장히 좋았기 때문이다.

사기꾼 모험가가 아르미타스 공작령을 ‘노다지’라고 표현한 이유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그만큼 허술해서 등쳐먹기 좋은 어린 신참 모험가들이 나돌아다니고 있는데, 눈독을 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다.

‘X발…. 한 3개월 전만 일찍 오지. 아니, 아예 작년이었으면 몰라.’

몇 달 전까지였어도, 이러한 제안을 지스가 거절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아오! 안 해! 안 한다고! 내일 길드에 가야 하니까, 그만 나가!”

“이런 젠장! 한 1년 못 본 사이에 완전히 새가슴이 되어버렸구만! 됐다! 됐어! 다른 사람을 구하고 말지! 아니! 나 혼자서라도 하겠어!”

씩씩거리면서 현관으로 다가가 벌컥 문을 열어젖히고 지스의 집을 나가려던 순간.

“…이봐.”

씨익

사기꾼 모험가는 완전히 그의 집을 나가기 직전, 자신을 부르는 지스의 목소리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럼 그렇지.’

이런 좋은 사업을 자신처럼 사기로 등쳐먹고 다니던 돈귀신 지스가 마다할 리가 없었다.

위험성과 이익의 저울질 끝에, 결국에는 자신과 함께 사기를 치기로 마음을 먹고 자신을 불렀다고, 사기꾼 모험가는 생각했다.

“그래! 잘 생각했어!”

둘도 없는 사기꾼 동업자 친구가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자연스레 기쁨의 언성이 높아졌다.

몸을 홱 돌리고, 다시 지스가 앉아 있는 식탁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려 할 때, 지스는 말했다.

“내가 같이 사기를 쳤던 동업자로서, 과거의 인연을 생각해서 한 가지 충고를 해주겠는데 말이야.”

하지만 지스의 입에서 나온 말은 자신과의 동업을 승낙한다는 말이 아니었다.

“…뭐?”

전혀 예상하지 못한, 뜬금없는 소리를 해오자 기쁨으로 방긋했던 사기꾼 모험가의 인상이 단번에 찡그려졌다.

떨떠름한 기색을 그대로 드러내며, 지스는 말을 이었다.

“웬만해서는 공작령에서는 사기 치고 다니지 마라.”

“뭔 개소리를 하는 거야?”

“할 거면 다른 데 가서 사기 치고 다니라는 소리야. 여기서 활개 치고 다니지 마. 그래 봤자, 자네한테 좋을 거 하나도 없어.”

지스의 경고를 들은 사기꾼 모험가는 순간 자신이 무슨 소리를 들었나, 싶은 멍한 표정을 지었고, 이내 그의 표정은 짜증으로 뒤바뀌었다.

“자네 돌았나? 이만큼 노른자가 가득한 장소가 어디 흔한 줄 아는가? 동업도 안 할 거면서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게!”

당연히 지스는 자신의 경고 어린 충고가 통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쾅!

문짝이 떨어질 듯이 거칠게 문을 닫아버리자, 나무문의 경첩이 거세게 뒤흔들렸다.

“후우….”

자신의 방안에 혼자가 되어버린 지스가 양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싸며 깊은 한숨을 흘렸다.

“등신 같은 놈…기어코….”

방을 나간 사기꾼 모험가는 현재 공작령의 상황을 정확히 모른다.

그저 공작령에 대거 몰려 있는 신참 모험가들에게 사기를 쳐서 이익을 볼 생각에 눈이 멀어서 정확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실패할 경우의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못하고 있는 어리석음에 사로잡혀, 광기가 가득했던 전 동업자의 눈을 떠올렸다.

“돈귀신,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별명이네.”

자신에게 사기는 그저 먹고 살 수단에 불과했으며 돈귀신이라고 불릴 정도로 악착같이 돈을 모았던 이유는 약 10년 뒤, 모험가 생활을 은퇴하고 안정적인 노후를 보내기 위함이었다.

몸과 장비가 재산이나 마찬가지인 모험가의 수명은 아주 짧다.

늙어갈수록 굳어가는 몸은 모험에 있어서 방해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기를 쳐서 벌었던 돈들을 모조리 배상금으로 뱉어내고, 막대한 양의 빚을 지기는 했지만.

지스는 지금의 생활을 나쁘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모험가 일을 하면서 상인으로서 작은 상회를 경영하고 있는 현재, 차근차근 은현에게 진 빚들을 갚아나가고 있으면서 그럭저럭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다.

나이를 먹고 은퇴를 할 때는 적당히 기반을 다진 상회를 운영하여 노후도 그럭저럭 먹고 살 수 있도록 자신의 미래를 착실히 준비해나가고 있었다.

“난 분명 경고했다.”

이제 막 기부도 하며 착하게 살면서 과거를 청산해나가고 있었는데, 과거의 인연으로 또 불편한 사건에 엮이는 것은 절대로 사양이다.

많은 사람에게 사기를 친 결과, 지스가 얻은 것이라곤 막대한 빚뿐이었지만, 그 경험을 통해서 성장시킨 눈치와 감은 지금 그의 이성을 강하게 경고하고 있었다.

“미안하네. 친구.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나는 이제 착한 사람이 되었는데.”

기왕 이렇게 된 거, 지스는 이번 기회에 자신의 상사이자 고용주나 다름없는 은현에게 알랑방귀를 뀌고 점수나 더 딸 계획을 모색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전 동업자의 미래를 상상하니, 괜히 한숨이 나왔다.

“그러게, 내 말 좀 들으라니까…. 인생은 라인을 잘 타야 하는 건데…. 어쩔 수 없지. 손절은 타이밍이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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