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부활한 불멸자-336화 (336/730)

〈 336화 〉 336. 어머니의 유품(2)

* * *

에린과 에밀리아가 블랙마켓에서 구매한 노예들을 데리고 게이트를 통해 아르미타스령으로 향하면서.

은현과 릴리는 둘만의 여행을 시작했다.

완전히 이탈하기 전, 에밀리아의 인벤토리 속에서 소환한 바이크를 타고 가는 여행은 굉장히 빨랐다.

빠른 속도로 울퉁불퉁한 거친 도로 위를 주행하는 바이크 여행은 명확한 목적이 존재했다.

경치를 구경하고, 관광이 목적인, 느긋하게 즐기기 위한 여행이 아니다.

릴리의 어머니에 대한 행방을 찾기 위한 여행.

중간중간 쉬는 시간을 섞어가며 5시간 동안 빠르게 주행을 이어나가자, 해가 졌다.

“주인님은…어머니의 행방을 알아내신 건가요?”

야영을 준비하고 모닥불 앞에서 조리된 스프를 마시던 릴리는 오랫동안 묻지 않았던 질문을 은현에게 물었다.

“아니. 나도 아직은 몰라. 하지만 단서는 찾았지. 그 여자의 기억 속을 모조리 들여다보았으니까.”

은현은 기절해 있던 페데리카와 접촉을 하면서 그녀가 가지고 있던 기억들을 분석했다.

“하지만 그 여자도 어머니의 행방은 모른다고….”

“네 어머니와 같은 사연으로 만들어진 노예들이 너무 많아서 일일이 기억하고 있지 않다고 했지. 그렇다고 아예 단서가 없는 건 아니었어.”

“…….”

“일단, 네 어머니는 지하의 블랙마켓 중심에 있던 감옥 콜로세움의 마수들에게 먹이로 넘겨지진 않았어.”

“저, 정말인가요!?”

확신에 찬 은현의 말에 릴리가 놀라며 되물었다.

은현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페데리카의 기억을 통해서 정리된 자신의 추측을 이었다.

“어. 페데리카가 마수들의 사육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콜로세움으로 불법 도박 사업을 시작한 건 2년 전부터야.”

5년 전에 릴리와 함께, 그녀의 어머니가 노예가 되었던 시기와는 맞물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틀림없이 거래하고 있던 노예상인들에게 네 어머니를 비롯한 다수의 노예를 팔았을 거야.”

“그럼…지금 저희가 가고 있는 곳은….”

“거래했던 노예상인들이 자주 드나드는 장소, 즉 노예시장이 있는 곳이지.”

“그렇…군요….”

릴리는 작게 숨을 내쉬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아직도 좋은 상황으로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어머니가 마수에게 팔다리를 뜯겨 먹이로 전락하는 최악의 결말을 맞이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접한 것만으로도 무거웠던 가슴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릴리의 표정이 완전히 풀어진 것은 아니다.

최악의 결말을 피했을 뿐, 어머니가 경험했을 일들 사이에는 ‘최선’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최악을 피했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차악 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찾아온 은현 같은 구원이, 어머니에게도 찾아왔을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처음부터 각오해두었던 부분이었지만, 그것을 생각해야만 하는 릴리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애써 그 사실을 얼버무리기 위해 릴리는 고개를 돌려 자신들이 이동해왔던 사비로스 공작령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사비로스 공작령은…어떻게 될까요?”

“자칫 잘못하면 망하겠지. 운이 좋으면 다시 기사회생할 수는 있겠지만, 쇠락은 확정이야.”

카지노 호텔의 건물을 당당하게 부숴버리고, 그 사업을 주도했던 마피아 조직을 괴멸시켜버렸다.

영지의 돈줄이나 다름없었던 주요 산업을 붕괴시킨 것이나 마찬가지.

“영지의 경영뿐만이 아니라, 렌디르 왕가 측이나, 다른 귀족들에게서도 문책을 받는 것도 확정이니까.”

카지노 호텔의 지하에, 불법으로 블랙마켓을 운영하고 있었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용인했고, 더 나아가 백성들의 위협이 되는 마수들을 비밀리에 사육하고 있었다는 사실까지 드러났다.

왕국 내부에서 가장 높은 위계를 가진 ‘공작’이라는 지위를 가진 사비로스에게 들어오는 문책들은 절대 가볍지 않을 것이다.

사실상 경제적인 부분까지 마비시키면서 영지 하나를 초토화가 될 지경까지 몰아넣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희의 정체가 드러날 일은 없을까요…?”

릴리의 걱정은 지당했다.

은현을 비롯한 자신들의 출신이 페르니아스 왕국에서 온 사람들이라는 것이 밝혀진다면.

그때부터는 페르니아스 왕국과 렌디르 왕국간의 외교 문제로 발전하며, 험악해지면 전쟁까지 벌어질 위험이 있었다.

그런 위험을 걱정하게 되는 이유는 왕국 내부에서 은현이 가지고 있는 지위나 영향력도 그렇게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은현의 신분은 페르니아스 왕국에서는 백성도 아니고, 평민의 신분도 아니었지만, 아르미타스 공작가문의 사위로 들어가게 되면서 명확한 소속이 생겼다.

사비로스 공작령에서 문제를 일으키도록 유도한 것이 은현이라는 것이 밝혀진다면, 렌디르 왕국 측에서는 이것을 문제 삼고 물고 늘어질 여지가 충분히 존재했다.

“그걸 위해서 이름도 바꾸고, 정체를 숨기면서 움직였으니까. 그리고 페르니아스 왕국은 용의 선상에 쉽게 포함되지는 못해.”

“…어째서요?”

“왕국과 공작령 사이의 거리가 굉장히 머니까. 우리는 몇 개월이 걸리는 거리도 몇 주로 단축할 수 있는 수단도 있으니까. 상식적으로 렌디르 왕국과 페르니아스 왕국 사이를 왕복하려면 최소한으로 잡아도 반년은 걸리는데, 우리는 그보다 빠르게 복귀해서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떼면 그만이야.”

알리바이의 조작도 굉장히 쉽다.

“게다가 아마도 렌디르 왕가 쪽에도 이 일을 공개적으로 크게 키워서 바득바득 범인을 추적할 여유도 없을 거야.”

사비로스 공작령에서 거두어들이는 막대한 세금을, 더는 징수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깨닫고 다른 대안을 내놓기 위해서 골머리를 싸매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다른 곳도 아닌 자국의 고위 귀족이 경영하는 공작령에서.

마수들의 사육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주위에 널리 드러나 봤자, 좋을 것이 하나 없는 수치나 다름없는 사실.

렌디르 왕가는 이 사실을 크게 키워서 범인을 찾기 위해 타국에까지 사람을 보내어 조사할 여유가 없다.

경제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제약이 너무 크다.

“…….”

릴리는 그렇게 간단하게 술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은현의 얼굴을 보며 벙찐 표정을 지었다.

“…주인님은 이럴 때 보면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대단?”

“그…용의주도하시다고 해야 할지….”

“뭔가 썩 칭찬으로 들리지는 않는 표현인데.”

범죄를 저지르고, 능숙하게 빠져나가며, 절대로 잡히지 않도록 계획을 세워두는 치밀함을 칭찬하는 표현이었지만.

은현은 썩 기분이 좋은 표정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뭐 어떠냐. 아이의 성격이 원래 음흉한 것을.”

“…….”

어느새인가 실체화를 하면서, 스프가 담긴 은현의 그릇과 수저를 빼앗는 베르단디의 행동에 은현이 할 말을 잃었다.

“음, 맛있구나. 한 그릇 더 주겠느냐?”

스프를 맛보고, 즐거운 미소를 띤 베르단디가 스프 그릇을 릴리에게 내밀었다.

“네. 잠시만요.”

릴리는 피식 미소를 지으며 모닥불 위에서 끓고 있는 뜨거운 스프를 국자로 떠서 베르단디가 내민 그릇에 담아주었다.

“베르단디님 제가 음흉하다니요. 억울해요.”

“사실인 것을 억울해하다니, 아이도 참 양심이 없구나.”

◆ ◆ ◆

“영주님! 손님이 왔는데요?”

“뭐? 손님?”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밭을 일구고 있던 농노들을 보며 농장의 상태를 확인하던 소영주는 자신을 부른 여성을 바라보았다.

“네.”

긍정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젊은 여자 농노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뒤쪽을 가리켰다.

그 시선을 따라, 시선을 옮긴 소영주는 두 남녀의 모습을 확인했다.

“이런 대낮부터 손님?”

무슨 일로 이런 변방의 소영지를 찾아온 것인지, 고개를 갸웃한 소영주는 이곳을 찾아온 두 남녀의 모습을 자세히 관찰했다.

젊은 귀티가 나는 청년과 그의 옆에 서 있는 메이드 여성.

먼 거리라서 얼굴까지는 자세히 보이지 않았지만, 남자의 머리 색은 굉장히 독특했다.

햇빛을 받아 밝게 빛나는 백은빛의 머리카락은 그렇게 쉽게 볼 수 있는 흔한 머리 색이 아니었다.

게다가 시종으로 메이드 한 명을 대동하고 오는 청년이라니, 어딘가의 귀족 가문의 자제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든다.

일단은 자신을 찾아온 것이 확실해 보였기에, 소영주는 발걸음을 옮겨 백은색 머리카락의 남자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은현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쪽은….”

“릴리라고 합니다.”

“티, 티즈 벨라스 남작이오.”

느닷없이 고개를 숙이며 격식을 차린 정중한 인사를 건네오는 두 남녀의 행동에, 티즈가 적잖게 당황하면서 자신의 소개를 마쳤다.

그가 당황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굳이 그의 메이드를 자신에게 소개한 행동 때문이었다.

귀족은 자신을 소개할 때, 굳이 자신의 시중을 드는 이까지 소개를 하지는 않기 때문.

“무슨 일로 이 변방의 소영지를 찾아온 것이오?”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티즈의 말에 은현도 미소지으며 입을 열었다.

“혹시, 약 5년 전쯤에, 노예를 구매하신 적이 있습니까?”

“그렇소만? 아….”

이윽고 두 남녀가 무슨 용무로 자신을 찾아왔는지를 깨닫고, 티즈는 작게 탄식했다.

‘설마…?’

은현에서 시선을 옮겨 그의 메이드인 릴리의 표정을 살폈다.

살짝 떨리는 듯 주먹을 꽉 쥐고 긴장을 애써 숨기려고 하는 릴리의 태도를 확인하고, 티즈는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닮았군.’

과거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한 여성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그녀의 외모에, 티즈는 올 것이 왔다는 생각에 잠겼다.

두 남녀가 어떤 용무로 자신을 찾아왔는지 깨달은 것이다.

“…따라오시오.”

티즈는 그 말 한마디를 끝으로 은현과 릴리를 자신의 저택으로 안내했다.

릴리가 귀족치고는 작은 저택의 내부를 두리번거렸다.

“귀족이라고는 하나, 누추한 곳에 손님을 맞이하게 되어 부끄럽소.”

“아, 아뇨…. 그런 생각은….”

자신의 행동을 보고 한 오해인 것 같아, 릴리는 당황했다.

“검소한 생활을 하고 계신다고 생각했어요.”

릴리가 생각하는 귀족의 모습은 아름답고 고급스러운 원단의 옷과 보석들로 치장한 사치스러운 외관으로 자신의 가치를 뽐내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저 가만히 있어도 귀족의 분위기를 연출하는 엘레노아는 예외로, 카지노 호텔에서 보았던 허영심이 가득했던 복장들을 떠올렸다.

“흐흐, 그렇게 포장을 해준다면 매우 고맙소. 하지만 변방의 남작 귀족 소유 영지들은 대부분 이러하오.”

특색도 없고, 정말로 영민들과 함께 하루를 벌어 하루를 먹고 사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평소에도 이렇게 밖에서 농노들과 함께 밭을 일구십니까?”

“그렇소. 영지의 경영이라고 해봐야, 특색이 없는 이런 변방의 소영지에서는 농장을 운영하고, 영민들의 집을 보수하는 것밖에 없으니,”

그렇다고 하더라도 직접 농사를 도우며 밭을 일구는 영주라니.

굉장히 보기 드문 영주였다.

“릴리라고 했소?”

“아, 네.”

“그대의 어미는 정말로 훌륭한 여성이었소.”

“…읏!?”

느닷없이 이야기를 꺼내는 티즈의 말에 릴리는 숨을 삼켰다.

조용히 과거를 되새기는 그의 표정에서는 노예를 떠올렸다기보다, 하나의 존경할 수 있는 인격자를 떠올린 표정이다.

“어…떻게…?”

티즈는 어떻게 릴리의 정체를 알 수가 있었을까?

릴리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소영주는 담담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그대의 어미를 구매한 것은 한 4년 전쯤이었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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