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부활한 불멸자-332화 (332/730)

〈 332화 〉 332. 고립된 마피아(2)

* * *

“…저 여자인가요?”

스산함을 넘어, 차가운 냉기로 기온은 한 단계 내려버리는 듯한 메이드 여성의 물음에 페데리카는 얼굴을 굳혔다.

간접적으로 깨달은 것이다.

­너, 내가 팔아넘긴 노예 중, 네 가족이 있구나?

그 노예의 가족이, 바로 저 메이드라는 것을.

은현이 자신에게 무심함에 가까운 태도로 냉정함을 잃지 않았던 이유는 그가 직접적인 피해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피해자는 따로 있었으며, 그녀의 앞에 자신을 데려다 놓기 위해, 이 영지에 오면서부터 많은 작업을 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맞아. 저 여자야. 네 아버지를 도박중독에 빠지게 하고, 빚을 지게 만들어 너와 네 어머니의 인생을 망친 원인.”

“…….”

은현의 긍정에 릴리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가정을 붕괴시킨 원흉을 눈앞에 두고 릴리가 어떤 마음을 품고 있을지, 짐작한 은현도 입을 꾹 다물며 상황을 지켜보았다.

릴리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페데리카 쪽을 향해 걸어갔다.

“…석수야.”

“네.”

“그건 좀 곤란하겠는데.”

계단 쪽에 앉아 있던 은현의 모습이 잔상을 남기듯 스르르 사라지고, 앞을 걸어가고 있던 릴리를 지나쳐, 공석수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흡!?”

갑작스레 자신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은현의 행동에 공석수가 숨을 삼키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재빠르게 냉정함을 되찾고, 은현의 얼굴을 향해 내지른 공석수의 주먹을, 은현이 간단하게 붙잡아 냈다.

“크…으….”

명백한 체격의 차이가 존재하고 있음에도, 힘의 싸움에서 전혀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은현은 피식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여자들은 여자들끼리 할 이야기가 있는 모양이니까, 우리는 빠져줘야 하지 않을까? 만약 그래도 굳이 움직이겠다면….”

은현은 공석수의 주먹을 쥐고 있는 자신의 손에 힘을 실어, 굵은 그의 손목을 비틀었다.

“내가 상대를 해줘도 되는데.”

공석수는 황급히 뒤를 돌아보며 페데리카에게 소리쳤다.

“보스! 도망치셔야 합니다!”

“크…!”

공석수의 말을 듣고,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 자신의 저택을 빠져나가려 했지만.

[움직이지 마.]

“아…!”

몸을 돌리기도 전에, 자신의 몸을 강하게 구속하는 강력한 무언가에 페데리카의 안색이 창백하게 굳어졌다.

‘뭐…야!’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

자신을 붙잡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에도, 뒷걸음질을 치려던 그녀의 몸은 마치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이윽고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메이드 여성에게서 스산한 기운을 느끼고 몸을 떨었다.

무표정으로 최대한 담담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녀에게서 흘러나오는 분위기는 전혀 범상치가 않다.

“오, 오지 마.”

이 순간, 페데리카의 이성을 지배하는 것은 전신을 떨게 만드는 공포.

떨리는 목소리로 내뱉은 말에도, 릴리는 페데리카를 향해 걸어가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한 걸음씩, 릴리가 가까이 다가올수록, 페데리카의 심장의 고동은 점점 세차게 뛰었다.

“오지 마!”

두려움이 섞인 연약한 일갈은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다.

페데리카는 아까 전, 은현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맞아. 저 여자야. 네 아버지를 도박중독에 빠지게 하고, 빚을 지게 만들어 너와 네 어머니의 인생을 망친 원인.

그 두려움과 공포를 없애기 위해서, 이윽고 페데리카가 떠올린 방법은 설득과 포섭이다.

“내가…. 내가 찾아 줄게! 노예로 팔렸다는, 네 어머니!”

“왜 나한테 와서 가족을 찾는 거지?”

“…뭐?”

느닷없는, 전혀 맥락이 존재하지 않는 릴리의 말에 페데리카가 말문이 막히고, 되물어보았다.

“애초에 지금까지 팔아넘긴 노예들이 수백 명이야.”

“그건….”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아니, 페데리카 자신이 직접 했던 말 일부다.

“그것들이 어디로 팔려갔는지 일일이 기억할 리도 없잖아.”

“…….”

순간 할 말을 잃어, 말문이 막힌 페데리카가 황급히 다시 입을 열어 릴리를 설득했다.

“나는 많은 노예상인과 커넥션을 가지고 있어! 조금만 알아보면….”

“너 같은 쓰레기와는 협상할 가치도 없어.”

자신이 팔아넘겼던, 이름조차도 제대로 기억하지 않는 노예를 제 손으로 찾아 주겠다는, 페데리카의 역겨운 언동 자체가 릴리의 심기를 더욱 거스르고 있었다.

우우웅

그 분노와 증오의 감정을 대변이라도 해두듯, 릴리가 방출하는 마력의 밀도가 더욱 짙어졌다.

“커…흐윽!”

그 감정이 응집된 기운을 정면으로 맞아들이고, 숨이 막힌 릴리가 자신의 목을 부여잡으려 했지만.

릴리가 강제한 ‘언령의 속박’으로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마침내 릴리의 복장이 메이드 복에서 서큐버스의 모습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여성의 중요 부위만을 가리고 과도한 살색을 드러내는 매우 선정적인 복장.

머리 위에 생겨난 산양의 뿔.

“흡…!?”

사람이 아닌, 인외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릴리의 모습에 페데리카가 숨을 삼켰다.

릴리는 마침내, 악마가 된 이후 두 번째로 자신의 능력을 발동시켰다.

[나, 몽마가 이곳에 꿈의 세상의 일원으로써.]

거칠고 높은 밀도의 마력이 페데리카의 주위를 휩쓸기 시작하고.

“보스!”

[숲의 현현을 요청하니.]

페데리카의 상황이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자각한 공석수가 은현과의 전투 도중 벗어나 페데리카에게 향하려 했지만.

“여자들의 일은 여자들끼리 해결하게 두자고 했을 텐데?”

퍼억!

은현이 순식간에 공석수의 옆으로 따라붙으며 그의 복부를 걷어찼다.

마침내 릴리의 능력 발동 조건인 영창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다.

[나약한 미물들에게 달콤한 안식을 줄 기회를 주소서.]

[서큐버스 고유 결계]

[몽환의 숲]

마침내 릴리의 밀도 높은 마력에 휩쓸린 페데리카가 비명 한번을 질러보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크으…! 보…!”

은현에게 걷어차여 허공을 날았던 공석수가 벽에 부딪히면서 신음을 내뱉고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바닥에 축 늘어져 쓰러진 페데리카와 릴리를 확인하고, 매서운 눈으로 은현에게 시선을 돌렸다.

“보스를…어떻게 한 거냐!”

“응당의 대가를 받게 한 것뿐이야.”

“…크.”

“죽이진 않을 거야.”

공석수는 인상을 찡그리며 반문했다.

“그 말을…나보고 믿으라는 거냐?”

“그럼 지금 당장이라도 저 여자의 목을 잘라버릴까?”

“…….”

극단적인 예시였지만, 그 말을 하는 은현의 표정은 언제라도 그럴 의향이 있다는 것으로 들렸다.

그리고 그 행동을 제지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은 그보다 강하지 못하다.

“죽일 생간은 없어. 단지…내 아내의 마음이 풀릴 때까지, 저 여자의 정신을 무너뜨릴 거야.”

◆ ◆ ◆

“으….”

정신을 차린 페데리카가 인상을 쓰며 신음했다.

“여기는…?”

눈을 뜨자마자 두 눈에 보이는 것은 깜깜한 어둠이다.

“뭐…야?”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몸을 일으키려 해도, 금속으로 둘러싸인 좁은 어딘가에 갇혀있는 페데리카는 팔다리를 쭉 뻗는 것조차도 허용되지 않았다.

“뭐야…. 뭐냐고! 여기 도대체 어디야!”

“깨어났구나.”

“흡!?”

비좁은 공간에 갇혀,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갑갑함을 느껴야 했던 페데리카는 금속 너머에서 들려오는 여자의 목소리에 흠칫 놀라며 몸을 떨었다.

정신을 잃기 전까지, 자신에게 어마어마한 증오심과 분노를 표출했었던 여자의 목소리다.

“…꺼내.”

“…….”

“당장 꺼내라고! 이 미X년아!”

짜증이 섞인 페데리카의 히스테리에도, 릴리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어둡고, 비좁아서, 갑갑하기 짝이 없는 어딘가에 갇혀있는 페데리카의 목소리는 두려움으로 가득해 사정없이 떨렸다.

작게 숨을 내쉬고 끓어오르는 감정의 물결을 꾹 참은, 릴리의 무감정한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무섭나 보네.”

“…….”

페데리카는 부정하지 못했다.

정곡을 찔린 듯 몸을 살짝 떨며 목소리를 최대한 참은 그녀는 릴리의 지적에 아무런 반응도 보일 수 없었다.

“이곳에서는 네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이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니까.”

인간인 그녀가 가지고 있는 재력과 권력, 인맥의 힘 따위는.

서큐버스의 힘으로 구현된 ‘꿈의 세계’, 몽환의 숲에서는 모두 부질없는 것들이다.

그 현실을 자각하고 있는 페데리카는 지금 두려움에 몸을 떨고 있었다.

“하, 무슨…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네?”

마음속의 동요를 감추기 위해 억지로 얼버무리며 허세를 펼쳤다.

“모르겠어도 알게 될 거야.”

릴리가 한 말은 앞으로의 페데리카가 겪어야 할 일에 대해, 불안한 상상을 많이 불러일으키는 의미심장한 표현이었다.

“지금, 너는 놋쇠로 만들어진 황소의 동상 안에 있어.”

“동상…안이라고?”

“주인님께서 알려주셨던 고대의 처형기구라고 하던데.”

릴리는 그녀의 부하였던 건달들을 꿈의 세계에 가두고, 자신이 창조한 가상의 마수들에게 내장과 살점을 파먹히는 고통을 선사했던 전적이 있었다.

그 이후, 페데리카를 만나게 된다면 그녀에게 극한의 고통을 심어줄 방법에 대해 은현에게 조언을 구한 결과.

은현이 알려준 지구의 역사 속에 존재했던 처형기구의 존재를 그대로 재현해낸 것이다.

­‘팔라리스의 황소’, 또는 ‘놋쇠 황소’라고 불리곤 했지.

놋쇠로 만든 황소의 동상 안에 사람을 가두고, 배 아랫부분에 불을 질러 천천히 사람의 몸을 익혀서 죽이는 장치.

불을 지피는 것으로 처형을 집행하면, 안에 들어간 사람이 산 채로 구워지며 죽을 때까지 그 열기에 비명을 지르게 만드는 끔찍한 처형기구라고 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며, 내부에서 울려 퍼지는 비명이 소 입 부분과 정밀하게 연결된 금관을 울려, 마치 황소가 우는 소리처럼 들리게 만드는 장치까지.

쿠데타를 일으키고, 왕위를 탈취한 폭군이 그 누구도 반란을 품지 못하도록 백성들에게 공포를 심어주기 위해 발명된 무서운 처형 도구.

그것이 지금 릴리의 손에 의해 재현되었다.

릴리가 손가락을 튕기자, 놋쇠 황소의 배 부근 아래에 불꽃이 지펴져 황소를 달구기 시작한다.

“정말 많은 고민을 했어.”

그냥 죽이는 게 아니라, 자신의 어머니가 받아야만 했던 고통의 배를 그대로 되돌려 주기 위해서.

“너를 만나게 되면 어떻게 고통을 안겨줘야 할지.”

인간의 몸으로 악마의 마력을 받아들이면서 전신의 혈액이 불타오르는 것만 같았던 지옥같은 고통.

자신이 그 고통을 겪으며 악마로 변이하게 된 원초적인 이유는 페데리카가 자신을 노예로 만들어, 노예 시장에 팔아넘겼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자신이 느꼈던 그 고통을 페데리카에게 똑같이 되돌려 주고 싶었다.

지금 릴리가 하는 것은 그 과정을 만들어내기 위한 물밑작업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악마의 힘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이, 지금은 매우 감사한 순간이다.

‘아니, 주인님께 감사해야지.’

저주스러운 악마의 피와 모습을 긍정해주고, 자신이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해주며 자신을 이끌어주고 있다.

뿐만이 아니라, 이렇게 자신의 과거에 대해 결착을 지을 기회까지 마련을 해주고 있다.

그 은혜를 갚기 위해서, 평생을 따라가야 할 남자다.

“꺄아악!”

그렇게 은현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품고 있을 때, 점점 뜨겁게 달구어진 황소의 내부에서 페데리카의 비명이 금관을 타고 황소의 입으로 흘러나왔다.

“뜨거워! 뜨거워! 살려줘! 석수야아아아!”

점점 살이 익어가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에 몸부림을 치며 황소의 내부가 울렸다.

애타게 부하의 이름을 연호하며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녀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이 꿈의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꺄아아악!”

이 꿈의 세계에서는 처형기구에 의해 온몸을 화형을 당해도, 절대로 사망하지 않는다.

이곳에 있는 페데리카는 그녀의 정신체일 뿐이며, 본체는 세계의 바깥에 있기 때문이다.

즉 살이 익어가며, 혈액이 증발하고, 몸속의 모든 내장 기관까지 모두 익혀짐에도, 그녀는 ‘죽음’에 도달할 수가 없다.

말 그대로 죽을 것만 같은 고통을 계속 느끼면서도 절대로 죽을 수가 없는, 페데리카의 ‘지옥’이 시작됐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