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부활한 불멸자-331화 (331/730)

〈 331화 〉 331. 고립된 마피아(1)

* * *

강력한 돌풍을 일으킨 하늘의 ‘천벌’은 마수들의 지상 등장으로 인한 공작령의 영지를 또 한 번 뒤흔들었다.

대지를 울리는 지진과 함께 만들어진 강력한 폭음은 한동안 귀를 먹먹하게 만들 정도였다.

[설마….]

하늘에서 쏘아진 신력의 존재를 느끼고, 구미호는 확신했다.

인간이었던 은현이 공방에서 자신의 영혼을 두들기며 단련시켰던 그의 권능.

마침내 그 반신(半?)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결국, 진짜로 성공했던 거군. 진짜로 미X놈인가.]

자신의 영혼을 두들기며 자신만의 권능을 창조해내다니.

자칫 잘못하면 인간의 영혼이 소멸할 수도 있었던 위험한 시도였지만, 은현은 그것을 성공시켰다.

반드시 성공해야만 한다는 압박감과 집념의 결과인지.

절대로 실패하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이 만들어낸 결과인지.

구미호로서는 판단을 내릴 수 없었지만, 그 리스크를 안고서 권능의 제작을 감행한 강단과 배짱은 제정신으로 할 수 없는 결정이다.

아무튼, 구미호는 인간이 신위(??)의 반열에 오르는 것을 직접 목격하고 있다.

[정말로 가능했던 것이군….]

신화나 전설 속에서, 인간의 몸으로 신력을 거머쥐고 반신(半?)이 되는 경우의 이야기는 구미호도 알고 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을 요력을 축적하며 생을 보내오면서, 그 경우를 직접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틀림없이 그를 성장시키기 위한 여신의 지원과 배려를 포함한 다양한 천운들이 겹치고 겹쳐 달성해낸 것이겠지만.

그것을 거머쥐기 위해 노력을 해왔던 것은 은현이다.

­미호. 나는 나라를 세울 생각이야.

­많은 사람이 행복하게 웃으면서 살 수 있는 그런 나라.

­악마나 마수들의 위험에서 안전한, 나의 백성들이 올바른 생을 맞이하고 막을 내리는 그런 나라를 만들 거야.

­아마도 굉장히 힘들 길이 되겠지. 그래도….

­너와 함께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아.

­앞으로도…평생 나와 함께 해줄 수는 없을까?

[…젠장.]

떠올리기도 싫은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구미호는 욕을 내뱉었다.

왠지 모르게 은현의 모습에서 과거의 악연을 떠올렸다.

“와아….”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감탄의 탄성을 흘리며 밤하늘에 떠 있는 은현을 응시하는 에린의 마음속 감정을 느꼈다.

“멋있다….”

감탄과 동경, 애정이 뒤섞인 무한한 애틋한 소녀의 감정이 구미호의 마음속으로 고스란히 느껴졌다.

구미호는 자연스레 은현을 보는 에린의 모습을 자신의 과거를 투영하여 보고 있었다.

[미숙한 것. 잘 들어라.]

“응?”

[남자는 잘 만나야 하는 거다.]

“…뭐?”

하늘에서 바닥으로 하강하고 있는 은현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에린은 느닷없이 자신에게 영문을 모를 충고를 해주는 구미호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자기 할 말 만을 툭 던지고, 심층의 깊은 곳으로 쏙 들어가 버린 구미호의 태도는 어딘가 이상했다.

“기분 안 좋나…?”

굉장히 언짢은 기색으로 자신의 심층 의식 속으로 사라진 구미호의 이상행동에 에린은 의문을 가졌다.

무엇이 그녀의 기분을 상하게 만든 걸까?

“에린, 주인님을 맞이하러 가자.”

“응. 가자. 에밀리아.”

“명령을 수락합니다.”

에린은 머릿속으로 떠오른 구미호에 대한 걱정을 보류로 해두고, 일단은 움직여 은현과 합류하는 것을 우선으로 잡았다.

◆ ◆ ◆

“후우….”

허공에서 바닥에 안정적으로 착지한 은현은 얼얼한 자신의 손목을 어루만지며 상태를 점검했다.

“그 수갑을 너무 오랫동안 차고 있었나. 좀 얼얼하네.”

[많이 아프면 상처를 되돌리면 되지 않는 것이냐?]

“굳이 이런 자잘한 거에 정신력을 소모하는 것도 좀 그렇잖아요….”

‘시간 역행’ 같은 사기적인 효과를 발휘해주는 권능은 전투 중에 입은 치명상이나 절단된 결손 부위를 복구하는 것이 아니면.

그다지 사용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한 번 사용할 때마다, 머릿속과 정신에 쌓이는 피로감 때문이다.

“그냥 좀 주물러주면 괜찮아져요.”

[그렇게 큰일이 아니라면 다행이구나.]

베르단디와 대화를 나누며 밤길을 걷고 있을 때.

“현아아아!”

멀리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뛰어오는 소녀의 목소리에, 은현은 발걸음을 멈췄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와 무작정 자신의 품으로 뛰어들어오자, 속도가 붙은 소녀의 몸과 충돌했다.

피하지도 않고 정면으로 받아들여 주기는 했지만, 욱신거리는 가슴의 통증에 은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소녀의 막무가내식 돌진도 한두 번 있었던 일이 아니었기에, 그냥 받아들이는 것을 선택했다.

“방금 하늘에서 그 공격! 현이가 한 거야?”

“맞아.”

“진짜 멋있었어!”

“고마워.”

마치 자기 일인 양, 가쁜 숨을 내쉬고 있는 소녀는 잔뜩 흥분한 기색이었다.

“그럼 우리 이제 저 마수들 처리하면 돼?”

은현은 상대적으로 발걸음이 느린 릴리를 안아 들고 뛰어오고 있는 에밀리아를 발견하고 입을 열었다.

“곧바로 이동하자.”

눈치가 좀 빠르거나, 수준이 낮지 않은 모험가나 기사라면.

허공에서 투창을 날린 은현의 존재를 알아보고, 은현이 착지한 이 장소로 찾아올 가능성도 있다.

“어? 저 마수들은 처리하지 않는 거야? 나는 현이가 방금 마수를 공격했길래.”

“선제공격으로 분위기를 바꿔줄 필요가 있었으니까.”

미노타우로스의 등장과 함께 ‘하울링’으로 위축된 병사들의 굳은 몸을 풀어주고, 두려움을 완화해주기 위한 은현의 공격은 어느 의미 성공적이었다.

“저들은 공작령의 기사들과 이곳 지부의 모험가들이 처리하도록 내버려 둘 생각이야. 그래야 그 과정과 결과를 구실로, 브로디아 마피아에 책임을 물을 수 있으니까.”

“괜찮을까? 혹시나 크게 다치는 사람이라도 나오면….”

“블랙마켓에서 사육하고 있던 마수들의 수준은 그렇게 강한 편이 아니야. 주의해야 할 것은 미노타우로스 정도겠지. 애초에 자기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마수들이 아니라면, 어떻게 사육할 생각을 했겠어.”

그 미노타우로스조차도, 제대로 팀업과 연계를 통해서 잡아낼 수 없을 정도로 공작령의 병력과 체류하고 있는 모험가들의 수준이 낮다고 생각하기엔 어려웠다.

직접 싸워본 페데리카의 브로디아 마피아에 소속된 조직원들조차도, 결코 낮은 수준의 실력자들이 아니었다.

“그럼 우리는 어디로 이동하는데?”

은현은 에린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뒤늦게 도착한 릴리를 응시했다.

“릴리의 악연에 종지부를 찍어야지.”

◆ ◆ ◆

“젠장…!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빠른 발걸음으로 숲속을 걷고 있던 페데리카는 냉정함을 잃은 상태.

공석수의 호위를 받으며 계속 이동을 하면서, 자신의 엄지손톱을 물어뜯으며 현재 일어난 상황을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부하는 절반을 가까이 잃었고, 자신의 돈줄도 잃었고, 이제는 인맥까지….”

은현의 처리를 맡긴 부하들이 보고하러 오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불안함을 느꼈다.

굳은 표정으로 ‘어쩌면 모두 전멸했을지도 모릅니다.’라고 옆에서 추측하는 공석수에 말을 짜증으로 얼버무렸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가능성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되어갔다.

더군다나, 카지노 호텔은 붕괴하면서 자신의 돈줄이나 다름없던 사업은 망했고.

지하 블랙마켓에서 사육하던 마수들의 지상 출현으로 인해, 사비로스 공작에게 이 상황에 대한 책임을 묻고 손해 배상을 청구하는 길도 막혔다.

정말로 사면초가인 셈.

“그 백은발 남자 새끼 때문에 되는 일이 하나도 없잖아!”

은현을 납치하면서 폐건물로 끌고 갔던 순간부터 모든 상황이 급격하게 꼬여버리기 시작했다.

자신이 오랜 시간을 걸쳐 쌓아온 지위와 권력, 인맥들이 단 한 순간에 무너져 버렸다는 것을 자각하면 할수록, 페데리카의 분노는 끝을 모르고 쌓여만 갔고, 히스테리는 점점 심해져만 갔다.

“후우….”

페데리카는 머릿속에 끓어오르는 짜증을 억누르고, 다음의 행동을 취하기 위해 공석수를 바라봤다.

“석수야.”

“네.”

“아까 전, 그 하얀색 뱀같이 생긴 개X끼에 관한 얘기. 뭐야? 모두 전멸했을지도 모른다는 거.”

어느 정도 바닥으로 내려앉은 현재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자마자, 신경이 쓰였던 점은, 아까 전, 공석수가 이야기했던 ‘어쩌면 모두 전멸했을지도 모릅니다.’라는 이야기였다.

“그냥 제 생각에 불과합니다만…. 그 남자는 평범하지 않습니다.”

“…그건 나도 알아. 마력을 봉인시켜두고도 전혀 제압하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사람의 숨통도 제대로 끊어놓지 못하는 어수룩한 새끼인데, 그거 하나를 처리도 못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

자신의 마피아에 속했던 부하들도 모두 어딘가에서는 날고 기던 녀석들이다.

모험가 일을 하다가, 갑작스레 은퇴하고 조직으로 들어온 놈이 있는가 하면.

타국의 영지에서 병사나 기사의 일에 신물이 나서 조직으로 유입되는 등.

어떤 놈이든 싸움으로 밥을 벌어먹고 살아왔던 이들이다.

어수룩하게 생명을 끊지 않고 어중간하게 살려두는 것에 만족하며 싸움을 이어나가고 있던 은현을 제압하는 데는 피해와 손해가 있을 수는 있어도, 실패하지는 않을 것이라 확신했다.

하지만 안 그래도 우락부락한 덩치에 무뚝뚝하며 험악한 인상을 가진 공석수가 인상을 찡그리는 일은 좀처럼 있는 일이 아니다.

그 표정의 원인이 은현 때문이라는 것이, 페데리카에게는 몹시 신경이 쓰였다.

“어수룩한 성격으로 숨통을 끊어놓지 않았던 게 아닙니다. 굳이 죽일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죽이지 않은 것뿐이죠.”

사람을 죽이고 싶지 않다는 등의 어수룩한 마음가짐이 아니라, 죽이지 않고도 모두를 제압할 수 있다는 절대적인 자신감이 깃들어있었다.

“…그건 그냥 등신 같은 허세 아니야?”

“그것이 허세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 정도로, 그 남자에게는 그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마력을 통한 신체 강화로 일반인보다 뛰어난 힘과 민첩성에 의존하는 싸움방식이 아니었다.

마력에 의존하여 싸우는 것이 아닌, 오랜 시간 공을 들여 노력 끝에 쌓아 올린 기술과 경험의 집합체.

압도적인 신체 능력의 차이를, 기술과 경험으로 훌륭하게 뒤집는 은현의 모습은 틀림없는 ‘무인(?人)’이었다.

“…너보다 강해?”

무인의 움직임과 경지를 일반인인 페데리카가 파악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틀림없이 저보다 강합니다.”

공석수는 그렇게 자신과 은현의 격차를 순순히 인정했다.

“…그 새끼의 목적은 나를 죽이는 걸까?”

“잘 모르겠습니다.”

까득

페데리카는 엄지손톱을 물어뜯으며 생각에 잠겼다.

자신을 죽이는 것이 목적이라면, 그때 폐건물에서 자신을 처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지 않았다는 건, 무언가 목적이 있다는 뜻.

그 목적이 무엇이든, 자신에게 유리한 것은 절대 아닐 터.

이길 수 있을 때는 확실히 이기고, 질 때는 확실하게 뒤를 빼며 나중을 기약하는, 페데리카의 현실주의적인 사고방식이 쉴새 없이 돌아갔다.

“이 나라를 뜨자.”

오랜 고민 끝에 페데리카가 내린 결론은 도주였다.

이곳에서의 건물도, 돈줄도, 지위와 인맥도 모조리 날아가 버린 상황에서 공작령에 가지고 있는 미련도 없었다.

사비로스 공작과의 인맥은 페데리카가 쥐고 있는 약점을 통해서 계속 협박하여 유지할 수는 있겠지만, 돈줄도, 마피아 보스라는 지위조차도 약해진 자신과의 인연을 그가 계속 유지해줄 것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오히려 마수의 지상 진출을 구실로, 자신의 검은 비밀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페데리카를 처리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을 터.

지금은 후퇴하고, 나중을 기약해야 할 때였다.

“개X끼…두고 봐. 꼭 죽여버리겠어….”

페데리카는 자신의 몰락을 주도한 은발 머리카락에 대한 증오심으로 이를 갈았다.

그렇게 은현에 대한 복수심을 불태우며 똑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페데리카와 공석수는 그녀의 대저택에 도착했다.

그간, 그녀가 집안에 모아둔 재산들을 모조리 가지고 이 영지를 나갈 예정이었기 때문.

끼이익!

문을 열고 저택 내부로 들어서자, 페데리카는 공석수에게 명령을 내렸다.

“석수야! 너는 위층에 가서….”

“늦었네?”

“…흡!?”

중앙 홀의 위로 올라가는 계단 위에 앉아서, 반가운 친구를 만난 듯 손을 흔들며 눈웃음을 짓고 있는 백은발의 머리카락 남자를 발견한다.

그리고 옆에서 사나운 눈으로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메이드복의 여성까지.

은현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너무 놀라, 숨이 멎은 것만 같은 페데리카의 전신에 소름이 쫙 돋으며 경직됐다.

“어, 어떻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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