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부활한 불멸자-329화 (329/730)

〈 329화 〉 329. 드러난 사육장(3)

* * *

노란색 골렘, 범블비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자신의 모습을 건달들에게 과시했다.

평균 남성의 약 2배에 달하는 덩치로, 골렘으로서는 일반적인 골렘들과 비슷한 크기이지만.

지상에서 에밀리아가 신나게 작동을 시켰던 옵티머스의 크기를 보았던 탓인지, 에린과 릴리의 표정은 그렇게 놀라운 표정은 아니었다.

단지 이런 골렘들을 한 개체도 아니고 여러 개체를 제작하여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니, 기가 질린 표정이었다.

“가끔 드는 생각인데, 나는 현이의 감성이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있어. 저런 걸 왜 만드는 거지?”

“그건…나도 그렇긴 해.”

무언가 변호를 해주려 했던 릴리도, 딱히 머릿속으로 적절한 말이 떠오르지 않자, 쓴웃음을 지으며 에린의 말에 동의했다.

“뭐, 그래도….”

에린은 아까 전, 지상에서 카지노 호텔의 건물을 깨부수던 옵티머스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 골렘에 비하면, 좀 귀엽네.”

은현의 취향이 가득 들어있던 옵티머스라는 이름의 파란색 골렘과는 달리, 범블비라는 골렘은 훨씬 작고 아담한 사이즈였다.

그래도 자신보다 2배는 큰 덩치를 가졌지만, 왠지 모르게 귀엽다는 생각을 들게 할 정도로 에린의 감성을 자극했다.

‘저것도 마차로 변하겠지? 현이한테 움직이는 방법 좀 배울까?’

에밀리아의 원격 조작 하에, 범블비가 팔에 장비된 무기를 건달들을 향해 겨눴다.

무기로 응집되기 시작한 마력이 회전하기 시작하면서, 범블비의 팔이 미세하게 진동했다.

그 떨림을 멎게 하기 위한 각종 장치의 보조를 통해서, 정확히 건달들을 조준하고 있다.

[오토매틱 골렘 무장]

[초 고압축 에어건]

마침내 무기 속에서 회전하며 압축하고 또 압축된 공기의 탄환이, 거대한 분사구에서 발사되어 정확히 건달들에게 날아가 명중했다.

콰아앙!

“크악!?”

마치 거대한 벽과 맞부딪친 것처럼, 강렬한 돌풍의 탄환이 사정 범위 내에 존재하는 건달들을 모조리 휩쓸어버렸다.

“…귀엽다고 한 거 취소할래.”

많은 건달을 날려버리고 가로막혔던 앞길을 깨끗이 정리해버리는 골렘의 성능에 에린이 벙 찐 표정을 지었다.

“생각보다 무기도…그렇게 비상식적인 건 아니네…?”

건물을 깨부수는 옵티머스의 인상이 너무 강했던 탓일까.

자신이 내린 명령이기도 했지만, 혹시나 블랙마켓에 영향을 줄 정도로 큰 위력을 가진 무기를 사용하면 어쩌나, 생각했던 에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것은 마스터가 설정해둔 비살상용 무기입니다. 서브 마스터의 허가만 떨어진다면, 곧바로 화염계열의 살상용 마법이 탑재된 무기로 전환을….”

“괘, 괜찮아! 하지 마! 절대로 하지 마!”

자랑스럽게 호언장담을 내놓는 에밀리아의 태도로 보아, 아예 이 블랙마켓 전체를 불구덩이로 만들어버릴 수준이 아닐까, 했던 불안감이 머릿속을 스쳤다.

황급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거부의 의사를 나타내자, 에밀리아는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명령을 수락합니다.”

표정 자체는 매우 담담했지만, 에밀리아의 어투나 행동에는 아쉬움이 가득 담겨 있는 것만 같았다.

마치 꼭 가지고 놀아보고 싶던 장난감을 엄마가 사용하지 말라고 엄포를 내놓자, 못내 장난감을 손에서 놓은 어린아이 같았다.

에린은 기가 질린 시선으로 범블비를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그런 살벌한 무기도 만들어 뒀구나.”

“에린, 어서 움직이자.”

“아, 그렇죠.”

에린은 릴리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발걸음을 옮겨 블랙마켓의 중심부에 있는, 감옥 콜로세움에 도착한 에린은 특수 제작된 우리 속에 갇혀 있는 다수의 마수를 확인했다.

“정말로 마수들을 가둬놓고 사육을 시키고 있었어….”

멀리서부터 마수들의 포효 소리를 듣고 있었기 때문에 알고는 있었지만.

새삼 마수들의 모습을 확인하고 나니, 긴장감이 서린다.

“에밀리아. 지금부터 우리 방해하지 못하게 입구, 저 골렘으로 막아.”

“명령을 수락합니다.”

에밀리아는 선뜻 고개를 끄덕이며 에린과 릴리에게서 등을 돌려 입구 쪽을 향했다.

“젠장! 도대체 이 타이밍에 누구야!”

“당장 끌어내!”

범블비의 공격을 맞고, 돌풍에 휩쓸렸던 건달들과 그 동료들이 에린과 릴리, 에밀리아를 끌어내기 위해 뒤늦게 쫓아왔다.

“시, 시X! 이 노란색 고철 덩어리 뭐냐고! 도대체!”

“…본 개체의 무장을 폄하는 발언을 그냥 흘려들을 수 없습니다. 진압을 개시합니다.”

기분이 상한 듯 에밀리아가 과잉진압을 시작했다.

그런 에밀리아를 뒤로하고, 에린은 작게 심호흡을 통해 전신의 마력을 활성화했다.

아홉 꼬리가 달린 구미호의 모습으로 변신하고, 꼬리의 끝에 응집된 아홉 개의 여우불을 만들어낸다.

[호족요술(????)]

[백귀야행(???行)]

푸른색의 불꽃들이 점차 크기를 키워나가고, 불꽃이 일렁이는 갑옷을 착용한 아홉 백귀들이 일제히 미숙한 주인의 앞에 대열을 갖추며 소녀를 맞이했다.

“이것이…백귀….”

그동안 말로만 들었지 제대로 보아본 적이 없었던, 신수에게 종속된 귀신들을 멍하니 쳐다본 릴리는 백귀들이 뿜어내는 위용에 압도되어 자신도 모르게 긴장을 했다.

적이 아니라, 아군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있음에도, 전신의 피부를 오싹 소름 돋게 만드는 기운의 기사들.

“아, 하하. 오랜만에 봬요. 백귀님들!”

머리를 긁적이며 문안 인사를 건네는 에린의 행동에 릴리는 할 말을 잃었다.

에린의 인사를 받아들인 백귀들의 반응은 담담했다.

애초에 영혼의 일부만이 신수의 영험한 능력에 힘입어 하계에 현현할 수 있게 된 백귀들은 설령 주인이라 할지라도, 말을 주고받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것이 상호 간의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아니다.

아홉 백귀 중, 대장 격에 해당하는 검사 백귀가 손짓을 하며 다른 백귀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철컥!

일제히 한쪽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해오는 백귀들의 모습은, 자신이 모시는 주군에게 최대한의 예를 보이는 충직한 기사의 표본 그 자체다.

“아, 아이 참! 백귀님들! 저 진짜로 그런 거 하실 필요 없다고 했는데….”

에린은 여전히 변하지 않는 백귀들의 그 태도가 너무나도 부담스러웠다.

허둥대면서 손을 내저으며, 에린이 필사적으로 사양했지만, 백귀들은 주군의 사양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것은 사망하면서 영혼의 일부를 거두어 들여준 자신의 주인, 구미호에 대한 충직한 마음을 보일 수 있는 수단 자체다.

그 신수의 힘을 이어받아 새로운 어린 주인이 된 에린에게 백귀들이 충성심을 보이는 것은 당연했다.

“…….”

그렇게 서로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에린과 백귀들의 행동은, 옆에서 보는 릴리에게는 미묘한 부분이었다.

마치 여왕의 딸인 공주님을 대하는듯한 충직한 신하들의 모습.

“주인님이 말씀하셨던 광경이 이런 거였을까?”

과거에도 이와 비슷한 광경이 있었는지, 은현이 ‘대기업 회장의 따님을 보필하는 임원들 같았지.’라는 말을 늘어놓으며 헛웃음을 지었던 것을, 릴리가 떠올렸다.

“이, 일단 백귀님들! 할 일이 있으니까, 어서 일어나세요!”

에린은 뒤늦게 시간이 없는 현재 상황을 자각하고 다급히 백귀들을 일으켜 세웠다.

“지금부터 저 마수들이 갇혀 있는 감옥을 파괴해주세요. 아! 하지만 마수들을 처리하는 건 안 돼요. 그냥 사람들이 피해당하지 않도록 막아주시기만 하면 돼요.”

살짝 두서없는 에린의 설명에, 검사 백귀를 포함한 다른 백귀들이 일제히 움직이지 않고 빤히 에린을 바라보았다.

명령의 내용이 정확히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수들이 갇혀 있는 감옥을 모두 파괴하라.

하지만 마수들을 없애는 것은 안 된다.

사람들을 해치려는 것도 막아야 한다.

도대체 마수들을 자유롭게 풀어줘서 자신의 주인은 무엇을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그저 시키는 대로 명령을 수행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지만, 행동의 방침만을 전했을 뿐, 행동의 목적과 결과까지는 정확히 전달되지 않은 것이다.

백귀들은 마치 ‘그냥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라고 막연한 업무 지시만을 내리는 직장 상사를 만난 기분을 느꼈다.

“어, 어음…. 그, 그러니까….”

정확히 무엇을 하고 싶다는 것인지,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는 검사 백귀의 시선에 에린은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며 해야 할 말을 골랐다.

“에린.”

“응?”

“내가 추가로 백귀님들에게 설명해 드려도 될까?”

“어….”

릴리의 제안에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에린은 백귀들을 슬쩍 쳐다보며 눈치를 봤다.

릴리는 에린의 옆에 서며, 백귀들에게 정중한 양해를 구했다.

“반갑습니다. 백귀 여러분. 저는 에린의 스승인 은현님을 모시는 종, 릴리라고 합니다.”

한번 싸워본 적이 있었던 은현의 이름이 언급되자, 백귀들의 분위기가 남달라졌다.

약체화된 상태였다고는 하지만, 단신으로 아홉 백귀인 자신들과 싸움에서 전혀 밀리지 않았던 은현은 꼭 한 번쯤 다시 겨뤄보고 싶은 ‘무인(?人)’이었다.

“제가 에린을 대신해서, 현 상황에 대한 설명과 저희의 목적을 설명해 드려도 괜찮을까요?”

어찌 보면 자신들의 주인인 에린 이외 존재의 명령을 듣게 되는 것과 비슷한 이야기였지만.

백귀들의 대장인 검사 백귀는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의 의사를 내보였다.

애초에 그들의 주인인 에린이 곧장 설명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세한 설명을 해주겠다는 릴리의 배려는 고마운 조력이다.

“감사합니다. 저희의 목적은 이곳에 구금된 마수들을 모조리 풀어주고, 지상으로 빠져나갈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는 사람들의 피해를 최소화시켜야만 합니다. 그 이유는 저 마수들을 이 지하 시설에 가둔 장본인을 곤란하게 만들기 위함이기 때문이죠.”

지하 시설에 마수들을 가둬놓고, 사육을 시키는 것은 이 영지의 주인인 사비로스 공작도 당연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눈감아 주는 것을 조건으로, 사비로스 공작은 페데리카에게서 많은 뇌물을 받고 있었으며.

영지의 대표 산업이 되어버린 관광업과 도박업이 모두 페데리카의 주관하에 운영되고 있는 일이기 때문에, 사비로스 공작은 페데리카를 처벌하지 못한다.

처벌하기는커녕 공범의 관계에 가깝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하 시설에 있던 마수들이 모조리 지상으로 올라온다면, 얘기는 달라지지.

영지의 내부에 마수들을 반입하여 사육하고, 잠정적인 영민들의 위험 요소를 계속해서 보존하고 성장시켜왔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그것은 영지만의 문제가 아니다.

마수의 사업을 주도해왔던 페데리카를 옹호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결국 사비로스 공작은 페데리카를 버려야 한다.

카지노 호텔을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당당하게 분쇄하는 것을 시작으로.

경제적, 정치적으로 페데리카와 마피아 조직원들이 완전히 고립되어버리는 상황.

은현은 그 상황을 일부러 유도하고 있다.

“저희의 목적은 이 지하 시설의 주인과 그녀의 부하들입니다. 무분별한 인명의 피해는 최소화하고 싶어요.”

이곳 블랙마켓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선량한 사람들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모두 콜로세움에서 마수에게 농락당하는 인간을 가지고 베팅을 하며, 생명을 우습게 보는 무뢰한들.

페데리카만큼은 아니더라도, 악질적인 인간인 것은 틀림이 없지만, 현재 릴리의 목표는 오직 페데리카뿐이었다.

다른 이들은 별 관심도 없었고, 괜히 건드렸다가 더 큰 곤란한 상황을 우려했기에 인명 피해를 최소화한다는 은현의 계획에 동의했다.

“와…언니 말 진짜 잘한다.”

머릿속에 실타래가 엉킨 것 마냥, 제대로 말을 풀어놓지 못했던 에린은 순식간에 상황을 정리하여 술술 풀어나가는 릴리의 설명에 감탄했다.

“고마워.”

짝!

“자! 백귀님들! 언니의 이야기 모두 이해하셨죠!? 그러면 곧바로 움직여주세요!”

손바닥을 치며 명령을 내리는 주군의 말에, 백귀들이 일제히 움직여 마수들이 갇힌 감옥의 자물쇠를 파괴해나갔다.

쿠르르!

취이익!

아우우!

특수제작된 감옥의 자물쇠가 파괴되고, 입구가 열리자, 감옥 바깥으로 나온 마수들이 각자의 울음소리를 내며 울부짖었다.

“미, 미친…!”

“저년들이 무슨 짓을 하는 거야!”

범블비에 가로막혀 내부로 진입을 하지 못하고 있던 건달들이 일제히 풀려난 마수들의 존재를 확인하고 경악했다.

“도망, 도망쳐!”

“으아악!”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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