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3화 〉 323. 브로디아 마피아(1)
* * *
실신하여 소파 위에 앉아, 은현에게 기대고 있는 릴리의 몸에는 담요를 덮어둔 상태.
결국, 본방은 이어지지 않았고, 점원의 소원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은현은 그렇게 실신해버린 릴리를 자신의 옆에 재워두고, 블랙마켓의 경매에 참여하는 중이다.
“백금화 3닢입니다!”
땅! 땅! 땅!
“…….”
VIP석에서 은현이 들어 올린 팻말로, 또 하나의 경매 상품을 낙찰했다.
두 눈 하나를 깜짝하지 않고 거금을 망설임 없이 사용하는 그의 모습에, 점원은 할 말을 잃었다.
“…그렇게 많은 물건을 사서, 도대체 어디에 쓰시려는 겁니까?”
“글쎄요. 비싸 보이니까 산 건데, 다시 팔 때면 비싼 값에 팔리지 않을까요?”
“…….”
지금까지 은현이 산 물품들은 하나같이 형편이 없는 싸구려 물품들에 지나지 않았다.
미스릴로 제련되었다는 장검.
몸 안의 활력을 불어 넣어준다는 전설의 재료가 들어있다는 비약.
다이아몬드로 수를 놓았다는 모조품 펜던트.
모두 ‘한 놈만 걸려라.’라는 식으로, 이 블랙마켓과 카지노를 운영하는 브로디아 마피아가 내놓은 싸구려 상품들이다.
‘뭐 이렇게 보는 눈이 없어?’
카지노에서 남다른 기술로 포커로 다른 플레이어와 조직원을 탈탈 털어먹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긴장하고 있었는데.
블랙마켓에서 은현이 하는 행동은 한심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 것들뿐이었다.
남들 앞에서 아내를 벌거벗기고 노출 조교를 하는 쓰레기 인성.
좋은 상품을 찾아내기는커녕, 쓰레기를 황금 덩어리로 착각하는 저질스러운 안목.
‘이거 완전 등신 아니야?’
점원에 대한 은현의 평가는 시간이 지날수록 하락을 기록하고, 바닥을 뚫어 심해로 이어질 판이다.
그에 대해 간단한 평가를 하자면.
돈을 벌어들이는 능력은 탁월하다.
하지만 자신의 자존심이나 우월감에 젖어 벌어들인 돈을 흥청망청 쓰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뜯어먹히기 쉬운 ‘호구’나 다름이 없다.
“상품의 경매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은 ‘노예 경매’로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경매를 진행하는 진행자의 목청이 울리면서, 경매장의 내부를 소란스럽게 만들었다.
‘노예 경매’라는 말을 듣고, 은현이 눈을 가늘게 떴다.
“…노예 경매?”
“그러고 보니, 손님께서는 이 블랙마켓이 처음이셨죠.”
“그렇죠.”
생소하다는 은현의 표정을 읽고, 점원이 말을 걸었다.
“이 경매에 출품되는 노예들의 사연은 매우 다양합니다.”
타국이나, 타영지에서 유입된 노예 상인이나 귀족들에 의해서 경매에 출품된 노예들이 있는가 하면.
마수들이나 범죄에 휘말려 부모를 잃고 살길이 막막해진 고아들이 노예가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하지만 이곳, 사비야의 블랙마켓의 노예 경매장에 출품되는 노예 중 이러한 사연을 가진 노예들은 열에 하나밖에 되지 않는다.
“이 블랙마켓의 노예 경매에 출품되는 노예는 열에 아홉은 모두 카지노에서 빚을 진 채무자이거나, 그들의 가족들이 대부분입니다.”
도박을 처음 접하고, 중독되어 헤어나올 수 없게 된 자들.
그런 그들의 신세가 지금 은현의 눈앞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
은현은 흘끗 시선을 옆으로 옮겼다.
자신의 어깨 위에 머리를 기대고, 곤히 잠들어 있는 릴리의 얼굴을 한차례 살펴보았다.
지금 이 경매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5년 전 릴리와 릴리의 어머니가 겪은 일과 비슷하다.
순간 그녀가 정신을 잃고 잠들어 있는 상태라는 것에 작은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5년 전, 아버지의 배신으로 노예 시장에 팔려가고, 어머니와 헤어지게 된 그녀에게 눈앞의 광경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렇군요.”
점원의 설명을 듣고, 은현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흘끗 은현의 눈치를 보던 점원이 그에게 물었다.
“노예는 구매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딱히요.”
이런저런 이유를 덧붙이며 이 이상의 최악의 인상을 심어주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지만, 은현은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군요.”
이전부터 거액의 금화들을 들여, 볼품없는 쓰레기 상품들을 구매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고 점원은 멋대로 이해를 했다.
은현은 계속해서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며 경매장의 분위기들을 살폈다.
제대로 영양을 섭취하지 못해 앙상한 모습의 중년 남성이 단상에 오르자, 많은 경매 참가자들의 야유가 쏟아져 나왔다.
반면 여성의 노예에 대한 경매가 시작되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낙찰을 받기 위해 팻말을 들어 올렸다.
낙찰을 받아서 어디에 쓸지는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당연한 결말이 은현의 머릿속에 그려졌다.
“주인님….”
“깼어?”
“네….”
릴리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흘끗 뒤를 돌아보며, 거리를 두고 있는 점원의 위치를 확인했다.
그에게는 들리지 않을 작은 목소리로 은현을 불렀다.
“주인님.”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아.”
“아….”
릴리의 부탁이 무엇인지를 짐작한 은현이, 작은 목소리로 수긍하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저 노예들을 구해줬으면 하는 거지?”
“…네.”
릴리는 지금, 경매장 위에서 상품이 되어, 자신의 몸을 타인에 팔아야 하는 자신의 신세에 눈물을 흘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투영시키고 있었다.
자신이, 자신의 어머니가 겪었던 똑같은 피해자들이 경매장의 중심에 즐비하고 있는 광경은 릴리의 기분을 안 좋게 만들고 있었다.
“못할 건 없지.”
애초에 금전적인 문제는 이미 은현에게 아무런 제약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그런데도 은현은 그다지 선뜻 승낙의 의사를 밝히는 표정이 아니었다.
“하지만 저 노예들, 전부를 구할 생각도 없어. 이유는 알지?”
“네. 알아요.”
지금 경매에 출품된 이들 모두가 피해자인 것은 아니다.
저들 중에는 스스로 도박을 접하고 중독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빚을 지고 노예로 전락한 인물들이 대거 섞여 있었다.
자신은 물론, 주변의 가족과 지인들까지 파멸로 몰아넣는, 릴리가 가장 혐오하는 자신의 아버지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
릴리는 은현의 말을 듣고 동의했다.
그녀가 구하고 싶은 것은, 자신이나 자신의 어머니처럼 부당하게 휘말려 노예가 되어버린 진짜 피해자들이었다.
“네 말대로 나는 저들을 도와줄 수는 있어. 하지만 저들의 인생까지 책임질 생각은 없어.”
손을 내밀어주고, 길을 터주는 것까지는 얼마든지 해줄 용의가 있다.
하지만 그 터준 길을 걸어야 하는 것은 그들 자신의 몫이다.
“제가….”
릴리는 올곧은 눈으로 은현을 바라보며 자신의 의사를 밝혔다.
“제가 책임질게요.”
“…….”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제가 이끌어볼게요.”
기적처럼 하늘에서 내려온 구원으로 마음을 다시 잡고, 두 번째 인생을 사는 것만 같은 행복을 누리고 있는 릴리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다른 사람들에게도 기회가 올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었다.
그 기회를 이번엔 자신이 내려주고 싶다고 강렬히 바랬다.
비록 자신의 주인인 은현의 힘과 위세를 빌리는 것에 불과할지라도.
저들도 자신처럼 구원의 기회가 찾아오길 바라는 마음만큼은 진짜다.
보육원의 아이들을 책임지고, 더 나아가 이제는 저들을 책임지려는 릴리의 포용력이 너무나도 눈이 부시다.
[기특하구나.]
그 올곧은 의지를 확인한 베르단디도 기쁜 미소를 보였다.
그녀를 구하도록 은현에게 권유한 것은 다름 아닌 베르단디 자신이다.
올곧은 눈을 보고 있자면 그때의 선택과 권유가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을 재차 확인하고 뿌듯함을 느꼈다.
그것은 은현 또한 마찬가지.
미소지은 은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팻말을 들어 올렸다.
“엉?”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며 방관했던 은현이 느닷없이 경매의 참가 의사를 밝혀오자, 멀찍이 떨어져 있던 점원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노예에는 흥미가 없으시다고…?”
“사정이 바뀌어서 말이죠.”
피식 웃어 보인 은현은 경매장 단상 위에 올라와 있는 노예들을 응시했다.
◆ ◆ ◆
약 한 시간 동안 남녀노소, 나이를 불문하고 도박의 피해자로 보이는 이들을 평균의 2~3배가 넘는 비싼 금액으로 모조리 낙찰을 받아버렸다.
2부의 노예 경매는 1부의 상품 경매가 진행됐던 절반도 되지 않는 시간으로 끝을 보았다.
“낙찰받은 상품들은 언제 받을 수 있습니까?”
“겨, 경매가 모두 종료되고, 선별작업을 거친 후에, 묵고 계신 호텔로 보내질 예정입니다.”
은현의 질문에 점원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급하게 대답했다.
1부의 상품 경매 때보다, 몇 배나 되는 거금을 노예의 구입에 모조리 쏟아붓는 것을 보고, 기가 질린 기색이었다.
도대체 그가 가지고 있는 재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되지 않는다.
“흐음…물건들의 경우에는 크게 문제가 안 되지만, 문제는 노예들이군요.”
애초에 싸구려 물건들이야 곧바로 버릴 생각이었지만, 이번 경매를 통해서 구입한 노예들의 숫자는 총 17명이다.
성인 남성 둘, 성인 여성 셋, 소년 일곱, 소녀 다섯.
이들을 모두 자신이 묵고 있는 방 안에 수용할 수는 없었다.
“지금 당장 호텔로 올라가, 추가로 객실을 잡아야겠군요.”
“그렇게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흠?”
“객실을 추가로 잡도록, 제가 직접 손님의 의사를 위에 전달하겠습니다. 손님께서는 부디 이 블랙마켓을 계속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애초에 이 지하의 위, 카지노와 병합된 호텔도 브로디아 마피아에서 운영하는 합법적인 사업이다.
그 마피아 안에 소속된 조직원이자, 점원인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은현의 의사를 전달하여 객실을 잡게 하는 것도 크게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다.
애초에 이 번거로운 작업 속에서 은현이 기꺼이 제공하는 두둑한 팁도 탐이 났기에 자진해서 방을 잡아주겠다고 의사를 표현한 것이다.
점원의 눈에 은현은 돈만 많고, 호색한에 안목도 형편없으면서, 돈을 흥청망청 쓰는 멍청한 인간이었다.
이 이상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는 뜻이다.
“경매는 끝난 게 아닌가요?”
“네. 저희 블랙마켓에 밤 8시마다 시작되는 메인행사가 있습니다.”
“…흐음.”
의미심장한 투로 턱을 쓰다듬고, 생각을 마친 은현은 수긍하며 승낙의 의사를 밝혔다.
“대금은 바로 드리죠. 호텔의 일반 객실을 두 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팁이 두둑이 포함된 금화 다발을 받아든 점원이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고개를 숙이고는 VIP방을 나갔다.
“후우….”
드디어 방 안에 단둘만이 남게 되자, 은현이 짧게 한숨을 쉬며 소파에 몸을 기대어 전신의 긴장을 이완시켰다.
“고생하셨어요.”
“…릴리.”
“네?”
“좋았어?”
무엇을 묻는 것인지, 릴리는 재차 묻지 않았다.
“네. 무척이나…좋았어요.”
그저 황홀하면서 충실한 미소를 짓고, 고개를 끄덕이는 릴리의 얼굴에는 상쾌함만이 가득했다.
그만큼 헌신적인 봉사를 통해서 릴리는 잠시간 정신을 잃었을 정도로 강렬한 극상의 쾌감을 느꼈다.
“그래. 그럼 됐어.”
은현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성벽을 긍정해주었다.
“그래도 이건 공작령 안에서는 못하겠네.”
“네. 그래서 저도 너무 아쉬워요.”
보육원을 포함해서 공작령 내부의 많은 사람과 얼굴을 트고 지낸 릴리는 생각보다 평민들 사이에서 안면을 튼 사람들이 많았다.
이러한 노출 조교는 전혀 연관성이 없는 이런 곳에서나 가능한 특수한 플레이였음을 릴리도 인정하고 있었다.
“그래도…너무 좋았어요.”
“나도 좋기는 했어.”
소파에 앉아 있는 자신의 품으로 들어와 상체를 끌어안는 릴리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그렇게 둘만의 여운에 잠시간 잠겨있을 때.
“자, 그럼! 저희 블랙마켓의 마지막 이벤트! ‘마수 투기장’을 시작하겠습니다!”
“와아아아!”
“우오오오!”
행사를 진행하고 있는 진행자의 선언과 동시에,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많은 사람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진행자가 이야기한 특정 단어를 듣고, 은현도 얼굴을 굳혔다.
“…‘마수 투기장’?”
정중앙의 단상이 치워지고, 촘촘한 쇠창살들로 둘러싸여 있던 감옥 같던 내부는 어느새 커다란 크기의 콜로세움으로 변모했다.
그저 상품으로 출품된 노예들의 도주를 막으려는 방편으로 설치된, 감옥 같은 경매장인 줄 알았던 은현은 본래의 목적이 따로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쿵! 쿵! 쿵!
뒤늦게 한쪽의 거대한 입구에서 바닥을 울리며 걸어오는 거대한 마수의 모습.
마찬가지로 반대쪽 입구에서 목에 채워진 구속구에 달린 줄에 이끌려, 강제로 감옥 콜로세움 내부로 진입한 왜소한 체구의 남성을 보고, 은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설마?”
많은 사람을 속여서 이곳으로 오도록 유혹하고 선동한 이유.
“마수의 먹이를 조달하고 있었다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