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9화 〉 319. 비밀 초대장
* * *
“마스터.”
“무슨 일이야?”
“보고 드릴 것이 있습니다.”
“보고?”
지금까지 묵묵히 말을 듣고 있던 에밀리아가 조용히 바닥에서 일어났다.
천천히 옷장 쪽으로 걸어가 문을 열더니 안에 있던 것을 꺼내어 방바닥에 집어 던졌다.
“크으….”
“…….”
그것이 물건도 아니고 사람이었다는 것에 세 사람이 멍한 표정을 짓는다.
“뭐야, 이거?”
“마스터께서 자리를 비우셨을 때, 방 안에 몰래 숨어든 자입니다.”
검은 옷들로 둘러싸고 몇몇 날카로운 무기들을 착용하고 있는 남자의 모습은 딱 보아도 좋은 의도로 숨어든 모습이 아니다.
“뭐, 뭐야. 이 사람…?”
뒤늦게 옷장 안에 침입자를 짱박아둔 에밀리아에게로 시선이 집중되었다.
“리아. 방안에 들어오자마자, 이거 왜 얘기 안 했어?”
“중요한 말씀을 나누고 계셔서 우선순위로 보류했습니다. 그리고 보고하라는 명령은 따로 내리지 않았습니다.”
“…….”
에린과 릴리에게 이 카지노가 사람들의 등을 처먹는 수법 등, 일련의 과정들을 설명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던 것은 사실이었다.
게다가 은현이 에밀리아에게 내렸던 명령은 침입자가 들어온다면 기절시키고 묶어두라는 것뿐.
안 물어봤으니까, 얘기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에, 잠깐 얼이 빠졌지만.
다른 누군가에게 보일 것을 염려하여 옷장 속에 짱박아둔 인형의 판단에 문제는 없었다.
“…….”
도리어 깔끔한 일 처리에 할 말을 잃게 만들 정도다.
“주, 주인님. 이 자는 어떻게 하죠? 당장 처리를….”
“아니. 잠깐 기다려. 이 상황은 처음부터 상정해뒀어.”
잠시 잊어버리긴 했지만, 구태여 에밀리아를 방안에 남겨둔 것도, 카지노 안에서 이목을 끌면 사람을 보내어 자신의 뒤를 캐보려는 움직임을 예견했기 때문이다.
“릴리.”
은현은 릴리를 불렀다.
“네?”
“네 능력으로, 대상의 기억과 감정 어디까지 왜곡시킬 수 있어?”
이내 그의 의도를 깨닫고 표정을 다잡으며 대답했다.
“…주인님께서 원하신다면, 말씀하신 부분을 최대한 반영시켜서 조작해볼게요.”
은현의 신력을 받아들이면서, 위계가 상승한 릴리의 악마 등급은 이미 중급의 반열이다.
다수라면 몰라도, 한 명의 기억을 조작하여 세뇌하는 것은 그녀에게 충분히 가능한 영역이었다.
심지어 사비로스 공작령에 도착하기 전, 만났던 건달들을 상대로 세뇌에 대한 실험과 연습도 마쳤다.
릴리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자신했다.
“좋아. 그럼 일단….”
은현은 기절해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침입자의 몸을 뒤졌다.
품속에서 두 개의 검은 편지지 봉투를 발견했다.
봉랍되어 있는 인장을 뜯어 내용물을 확인하자, 은현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게 뭔데?”
종이에 쓰여 있던 내용이 궁금해진 에린이 물었다.
“초대장.”
“초대장? 초대받은 거야?”
“그렇지. 그냥 뒷조사나 하러 온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나한테 관심이 많나 보네.”
생각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는 상대의 반응에 은현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어디로 초대하는 건가요?”
“블랙마켓.”
“거기가 어딘데?”
“나쁜 놈들과 나쁜 물건들이 잔뜩 모여 있는 곳. 일반적인 시장에서 대놓고 거래하기엔 법으로 금지된 물건들이 암암리에 나돌아다니고 거래가 이루어지는 곳이지. 예를 들어 마약이나.”
상품으로 다루는 물건들도 크게 법에 저촉되는 문제가 없는 것이 다수 있으나, 구하기 매우 희소한 물건이나, 대외적으로 알려져서는 안 되는 파장이 큰 물건들 등이 출몰하는 때도 적지 않았다.
“…위험한 곳 같네.”
설명을 들은 에린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흐음.”
침입자의 목적은 이내 이 방의 주인인 은현에 대한 단서를 조사하고, 이 초대장을 두고 가는 것이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어떻게 하시겠어요?”
“초대했는데, 가 줘야지. 아무래도 블랙마켓에 발을 들이밀게 하고, 블랙마켓 안에서 내가 어떤 놈인지를 떠보고 파악해보려는 것 같으니까.”
침입자가 가져온 초대장은 총 두 장.
입장할 수 있는 사람은 두 명으로 한정된다.
“에린과 에밀리아는 방에서 기다려. 이곳은 나와 릴리가 갈게.”
“알았어.”
“명령을 수락합니다.”
“릴리. 이 침입자의 기억을 지우고….”
잠시 말을 끊고 고민을 한 뒤, 다시 말을 이었다.
“새로운 기억을 심어.”
“네. 어떤 기억을 심을까요?”
단 한 치의 고민도 없이 고개를 끄덕인 릴리는 은현의 명령을 기다렸다.
“내가 여자를 밝히는 호색한이라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도록, 최대한 강렬한 기억을 심어.”
“…네?”
생각지도 못한 은현의 요구에 릴리가 두 눈을 크게 뜨고 되물었다.
마찬가지로 에린 또한 릴리와 같은 표정을 지었다.
“…현아?”
은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추가적인 요구를 덧붙였다.
“거기에 돈이 많은 내가 최고인 줄로 아는 자존심만 강한 나르시스트 같은 성향도 추가하자. 아무튼…돈만 많고 인성은 개차반인, 쓰레기인 남자로 보이도록 최대한 내 인상을 최악으로 만들 수 있는 기억을 심어.”
“…….”
스스로의 인상을 최악으로 깎아내리는 기억을 심으라는 은현의 명령은 두 사람으로서도 이해할 수 있는 명령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은현의 명령을 거부할 생각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릴리는 순순히 그의 명령에 따라 기절한 침입자의 머릿속에 기억을 심었다.
◆ ◆ ◆
“…음?”
문득 멍하니 밤길을 걷고 있던 침입자는 퍼뜩 정신을 차리며 발걸음을 멈췄다.
“…뭐지?”
아무런 생각도 없이 길을 걷고 있던 자신의 몸이 마치 몽유병에 걸려있던 사람 마냥 낯선 기분.
이 위화감의 정체를 알 수 없어 침입자는 복잡한 기분이었다.
“일단 보고를….”
위화감의 정체를 해소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가슴 깊숙이 밀어 넣으며 발걸음을 다시 옮겼다.
그렇게 도착한 카지노의 최상층에 도착한 침입자는 문을 지키고 있는 경호의 확인을 받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늦은 밤의 시간대에도 불구하고, 안경을 쓰고 서류 더미들을 확인하고 있던 페데리카가 흘끗 안으로 들어온 자신의 부하를 확인했다.
“늦었네.”
“죄송합니다.”
“뭐 됐어. 변명을 들을 생각도 딱히 없고. 그래서 그 남자에 대한 정보는 뭔가 얻은 게 있었어?”
“…그냥 돈만 많은 쓰레기였습니다.”
“뭐?”
느닷없이 입 밖으로 내뱉어지는 부하의 신랄한 평가에 페데리카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객실 안은 코를 찌르는 밤꽃 냄새가 가득했습니다. 동시에 침대 위에 널브러져 있는 여자도 둘이나 있었죠. 아무래도 그 두 여성과 관계를 맺은 다음에 곧장 아내 둘을 데리고 카지노로 간 듯 보였습니다.”
“…아내가 둘이나 있으면서 다른 여자 둘과 관계를 맺었다고?”
“네.”
“그저 여자만을 밝히는 전형적인 호색한이네.”
페데리카는 부하의 보고를 듣고 인상을 찡그림과 동시에 머릿속을 굴렸다.
그런 남자가 자기 부하인 여성 플레이어를 포커로 찍어누를 수 있는 실력을 갖췄다는 것이 굉장히 의외였지만, 생각보다 단순한 사고방식의 남자라는 것은 알기 쉬웠다.
적당히 데리고 놀 수 있는 여자들 다수를 붙여주기만 한다면 이쪽에 붙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신분은 알아냈고?”
“네. 이름은 알베르라고 하고, 타국 백작 가문의 막내아들이라고 하더군요. 데리고 있는 여자 중 하나는 메이드였고, 하나는 그럭저럭 실력을 갖춘 모험가라고 합니다. 두 여성 다 외모에 홀려서 성욕을 주체하지 못하고 하반신을 잘못 놀려서 혼인을 맺었다고 하더군요.”
아쉽게도 소속된 국가나, 가문의 이름까지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이것만으로도 많은 정보인 것은 틀림없다.
“…흐음.”
정치적인 도구로 사용할 수 있는 혼약을 다름 아닌 평민 둘과 결혼을 한 멍청한 백작 가문의 막내.
그저 하반신을 주체하지 못하고 가까운 앞일을 생각도 하지 못하는 쓰레기처럼만 보였다.
“꽤 자세하네? 그건 누구한테 들은 정보야?”
“침대 위에 널브러져 있던 알몸의 여성 둘에게서 입수한 정보입니다. 게다가 아내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들과 관계를 맺었다고 하더군요.”
“세상엔 별의별 희한한 새끼들이 다 있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로 하반신이 가벼운 남자의 이야기는 처음 들어보았다.
“실력만 확실하다면, 그냥 적당히 여자들 붙여주고 카지노의 손님들 단물을 빨아먹기엔 최적인데….”
페데리카는 섣불리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다.
“초대장은 전달했지?”
“네. 제대로 침대 위에 두고 왔습니다.”
흥미를 느낀다면, 틀림없이 블랙마켓에 등장할 것이다.
“내 돈은 쉽게 못 가져가지.”
안 그래도 여성 플레이어에게서 자신의 돈을 탈탈 털어간 것도 모자라, 룰렛에서 잭팟을 터뜨리며 거금을 뜯어간 것에 대해서, 페데리카는 그들에게 매우 언짢은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흐음.”
보고에 의하면, 카지노에 데리고 온 알베르라는 남자의 아내들 둘도 굉장히 뛰어난 미모를 자랑한다고 들었다.
틀림없이 노예로 만들어서 남자들 위에 적당히 던져두면, 웃돈을 주고서라도 그녀들을 탐하려 달려들 것이 틀림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라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내의 앞에서 다른 여자들과 관계를 맺을 정도로 애착이 있지는 않아 보였다.
“그러면서 여행에는 왜 데리고 다니는 거지?”
“그냥 과시하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겠습니까?”
결국에는 아름다운 여성들을 품고, 데리고 다닌다는 것에서 나오는 우월감과 과시욕 때문인가?
몇 가지 이해가 가지 않는 점도 있었지만, 그런데도 ‘알베르’라고 하는 호색한의 남자는 적당히 써먹을 수 있는 구석이 존재하는 남자였다.
자신의 부하인 여성 플레이어를 포커에서 압도하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가장 큰 요소다.
“그놈에 대한 감시를 계속해봐.”
“알겠습니다.”
“가봐. 수고했어.”
“네.”
보고를 마친 부하는 고개를 숙이며 페데리카에게 인사를 하고, 방을 나갔다.
◆ ◆ ◆
“주인님.”
“응?”
자신의 부름에 답하는 은현을 바라보며, 릴리는 미심쩍은 시선을 지우지 못했다.
“왜 그런 기억을 심어 넣으라고 명령을 하신 건가요?”
“내가 머릿속이 텅 비어있는 무능하고 멍청하면서 자존심만 앞세운 한심한 놈이라는 걸 강조해야, 그놈들이 날 등 처먹으려 접근해오려고 더 쉽게 마음을 먹을 테니까.”
“…….”
솔직히 릴리의 머릿속으로는 은현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스스로 자신을 무능하고 멍청함으로 포장해서 어떤 과정을 통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려는 것일까.
“블랙마켓 안에서 무엇을 하시려고요?”
“그곳에서 열리는 비밀 경매에 참여해서, 내가 딴 돈을 모조리 흥청망청 쓸 거야. 보는 눈도 최악이라는 인상을 심어주려고.”
“…….”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짓던 릴리는 이내 결심한 표정을 지으며 은현을 불렀다.
“주인님.”
“왜?”
“더 최악의 인상을 심어줄 방법이 존재하는데. 제 제안, 들어보실래요?”
“흠?”
“그게….”
은현이 말해보라는 표정으로 릴리를 응시했지만, 릴리는 곧바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런 릴리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뭔데, 그렇게 뜸을 들여?”
“저….”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피하고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릴리의 태도에 답답함을 느끼긴 했지만.
은현은 인내심 있게 릴리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저도 엘레노아님처럼 심하게 다뤄주시면 안 될까요?”
“…뭐?”
“그…일리아나님하고 엘레노아님과 주인님과 몸을 섞으실 때, 어떻게 즐기시는지 이야기를 나눴던 적이 있었는데….”
은현은 속으로 방 안에 에린과 에밀리아가 없다는 것을 천만다행으로 여기며,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그러면서도 릴리는 머뭇거리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저도…엘레노아님이 당했던 걸 한번 경험해보고 싶어요.”
“…뭐요?”
도대체 자신의 아내들은, 자기들끼리 있을 때, 무슨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일까.
은현은 심각하게 고민을 해봐야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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