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부활한 불멸자-318화 (318/730)

〈 318화 〉 318. 카지노 사비야(4)

* * *

“아마 당하신 거겠지.”

저녁 식사를 마치고, 호텔의 객실로 복귀하자마자, 은현이 갑작스레 입을 열었다.

은현과 에린에게 대접할 커피를 타던 릴리의 손이 멈칫했다.

“당하신 거라뇨…?”

“어떠한 경위로 이 카지노에 발을 들이밀게 되었는지.”

“…….”

그것은 다름 아닌 아버지의 이야기임을 릴리는 직감했다.

“어째서…지금 말씀해주시려는 건가요?”

“네가 어느 정도 진정을 찾은 듯 보였으니까.”

카지노의 내부에 들어서면서, 계속 좋지 못했던 릴리의 표정은 어느새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은현이나 에린이 아버지가 보여주었던 도박에 집착하는 광적인 모습과는 다른, 침착하고 절제가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므로, 심리적인 안정을 찾아가는 중이었다.

“되도록 냉정하게 사리 분별을 판단하고 있을 때, 이야기해주고 싶었어. 이건 네 아버지의 일이고, 네가 겪은 일의 시작점이나 마찬가지니까.”

사건의 과정을 모두 듣고, 되도록 합리적이고 올바른 판단을 내려주기 바랐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릴리는 슬픔과 화 속에 잠겨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렇기에 지금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어느 쪽이든, 나는 릴리의 선택을 지지하고 도울 거야. 하지만 그 끝에 후회가 남아 있어선 안 돼. 지금부터 내가 해주는 네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너 스스로가 어떻게 하고 싶은지, 곰곰이 생각해봤으면 좋겠어.”

“…알겠어요. 주인님.”

릴리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릴리에게서 받은 커피를 마신 은현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건 릴리, 네가 폐인으로 만들어 놓은 그 건달의 머릿속에 존재했던 기억을 바탕으로 구현된 그 건달의 기억이야.”

딱!

[은현고유능력]

[과거세계의 구현]

경쾌한 소리와 함께 주위의 환경이 물속에 물감을 풀어놓은 것처럼 일그러진다.

“이건….”

세계가 일변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자신들이 있던 공간이 호텔 객실에서 아까까지 있던 카지노의 내부로 뒤바뀌었다.

하지만 아까까지 있던 카지노와는 뭔가 분위기가 달랐다.

“뭔가가 다른데?”

“지금 우리 눈앞에 있는 이 광경은 5년 전, 릴리의 아버지가 출입하던 시절의 카지노야. 분위기나 시설의 일부 배치가 다른 건 당연하지.”

“신기하다….”

처음 보는 광경을 체험하고 있는 에린과 릴리가 신기한 표정을 지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

은현이 게임을 했었던 것과 비슷한 포커 테이블에서 게임을 하는, 5년 전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하고 릴리가 탄식을 내질렀다.

­젠장…. 젠장!

가지고 있던 칩을 모조리 잃고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려치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자니, 진정되었던 가슴 속의 울화가 다시 치밀어 오르려 했다.

마치 비디오의 재생이 멈춘 것처럼, 연달아 움직이던 세계가 은현이 손가락을 튕기자 정지했다.

다시 일변하는 세계는 어렸을 적 릴리의 부모님이 운영했던 식당이 있는 영지다.

“네 아버지가 이 카지노에 발을 들이밀게 된 경위는 이러해.”

릴리가 폐인으로 만들었던 건달 우두머리의 기억 속에는 당시 그녀의 아버지와 같은 피해자들이 다수 존재했다.

이 공작령뿐 만이 아니라, 주위의 마을이나 소규모 영지들에 소문을 흘린다.

­정말로? 일도 안 하고 단지 게임을 해서 이기기만 하면 그런 큰돈을 벌 수 있다고?

각자가 판돈을 걸고, 정해진 규칙의 게임을 통해서 승자가 패자들의 판돈을 모조리 독식하는 방식의 존재를.

힘들게 종일 뼈가 빠지도록 노동을 하지 않아도, 쉽게 거금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것을 머릿속에 각인시키는 과정이 초반의 단계.

그리고 정기적으로 카지노로 데려다주는 마차의 운행을 통해서, 공작령의 영민들뿐만이 아니라 주변의 인접 영지나 마을의 사람들에게도 도박을 쉽게 접하게 만들어 주는 환경을 조성시킨다.

“결과적으로 일하지 않아도 큰돈을 만질 수 있다는 사실에 혹해서, 많은 사람이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이 조직에서 운행하는 마차를 타고 카지노로 쉽게 올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거지.”

“그렇…군요.”

릴리는 아버지가 도박에 손을 대게 된 계기와 과정 일부를 직접 보고 듣고 나서, 굳은 표정을 지었다.

“결과는 도박중독의 폐해로 대량의 빚을 지고 가족들을 노예로 팔아버리는 최악으로 치닫지만….”

“현아, 한 가지 이해가 안 가는 점이 있는데….”

살짝 릴리의 눈치를 보면서, 에린은 이 질문을 해야 하는 걸지, 말지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괜찮아. 에린. 내 눈치를 볼 필요는 없어.”

릴리는 그런 소녀를 허락하며 은현을 응시했다.

그녀도 에린이 어떤 질문을 할지 대강 짐작하고 있었다.

기왕이면 에린보다 자신이 직접 물어보는 것이 에린에게도 마음이 편할 생각하고, 입을 열었다.

“아버지는…어째서 도박에 중독된 걸까요?”

“좀 복잡한 문제지. 사람이라는 건 말이야. 욕심이 끝도 없는 생물이거든.”

은현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에린, 오늘 룰렛으로 얼마 땄어?”

“으음, 세보지는 않았지만, 금화 900닢 정도?”

정확히는 백금화 9닢.

새삼 에린의 행운이 얼마나 좋았는지를 자각한 은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처음에는 릴리의 아버지도 많이 땄겠지.”

도박판에 갓 입문한 초심자에게 일부러 져주면서 자본의 규모를 불려놓은 수법은 그 초심자를 중독의 늪에 빠뜨리기 위한 기초 중의 기초다.

­흐, 흐흐…이 금화들이 모조리 내 돈이라니!

광기에 차 있는 표정은 이미 탐욕으로 물들어 머릿속의 이성을 마비시킨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딴 돈을 모조리 잃게 만드는 거야.”

­내 돈! 내 도오오온!

절규하고 있는 아버지의 환상이 사라지고, 은현은 에린과 릴리에게 물었다.

“만약 두 사람이라면 이 시점에서 그냥 포기하면 되었을 것을, 어째서 이 사람은 포기할 수 없었던 걸까. 그것이 의문인 거지?”

“…네.”

“맞아.”

“이 시점이 사람들이 도박에 중독이 되느냐, 되지 않느냐의 중요한 갈림길이야. 에린.”

“응?”

어떻게 에린이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을 해줄 수 있을지 고민하던 차에, 은현은 한 가지 예시를 떠올리고 에린에게 물었다.

“전에 내가 이야기해줬던 ‘소시지’의 이야기 기억해?”

“아, 응. 기억하지.”

“…소시지?”

에린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릴리는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였기에 고개를 갸웃했다.

“만약 에린 너에게 오늘 저녁 식사로 소시지가 10개가 나왔다고 치자.”

“어쩐지 전부터 예시가 이상한데….”

은현의 예시가 굉장히 미심쩍었던 에린이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은현을 쳐다보았지만, 그것이 길게 이어지지는 않았다.

“아무튼, 그래서?”

“그런데 네 반찬으로 나온 소시지 중 5개를 엘빈이 가져갔어. 그러면 네 기분은 어떨 것 같아?”

“굉장히 화나지. 오빠를 때려서라도 내 소시지를 다시 찾을 거야.”

“…….”

당연하다는 듯 즉답을 내놓는 에린의 말에 릴리는 할 말을 잃은 표정이었다.

예상대로의 대답을 하는 에린을 보며 은현이 헛웃음을 지었다.

“어째서? 저녁 식사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네가 가지고 있던 소시지는 0개나 마찬가지였잖아.”

“그야. 내가 받은 시점부터 내 거니까. 당연한 거 아니야?”

“…아.”

에린의 대답을 듣고, 릴리가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작게 탄식했다.

“시점의 차이인가요?”

“정답이야.”

“…시점?”

릴리가 말한 시점이 에린에게는 아직 제대로 이해가 되지 않은 듯했다.

“에린, 다시 도박을 예로 들자. 만약 네가 금화 10닢으로, 금화 100닢을 벌어들였다고 치자, 그런데 계속 게임을 하다가 연패를 해서 금화 50닢을 잃고, 40닢밖에 남지 않았어. 네가 잃은 손해는 얼마일까?”

“금화 50닢이잖아.”

“…아니야. 에린.”

릴리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에린의 말을 부정했다.

“에린은 잃은 게 아니야. 애초에 금화 10닢으로 시작해서 40닢으로 이득을 봤다고 생각할 수 있잖아.”

“…아! 그렇네?”

뒤늦게 말을 이해한 에린이 두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끄덕였다.

“결과적으로 시작과 비교하면 금화 30닢이라는 이득을 봤지만, 100닢을 가지고 있던 시점이 존재하기 때문에 사람의 머릿속은 그걸 ‘손실’이라고 인식하는 거지.”

그리고 그 손실을 메꾸기 위해서 더 눈이 뒤집히고, 손해를 복구하기 위해 악착같이 도박에 빠져들게 된다.

“시작은 큰돈을 만지고 싶고, 그것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도박을 시작하게 돼. 하지만 도박을 그만둘 수 없는 이유는 이곳에서 잃은 막대한 돈들이 자신의 머릿속에 깊이 박혀있기 때문이야.”

­당신! 그건 안 돼요! 납품 업자에게 지불해야 할 대금이에요!

­시끄러워! 따면…따면 다 만회하고 돌려줄 수 있다고!

집안의 재산을 모조리 갈취해가면서, 양심의 가책 하나 느끼지 않고 어머니의 손을 뿌리쳤던 아버지의 말이 릴리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때의 아버지는 정말로 무서웠다.

이성을 잃고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하는, 날이 갈수록 심해져 갔던 무서운 모습.

“많은 도박 중독자들이 이곳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이곳에서 잃었던 자신의 돈들을 되찾기 위해서야. 흔히들 ‘본전심리’라고 말하지.”

“본전심리….”

큰돈을 편하게 벌 수 있다는 욕심은 이 시점에서 사라진 상태다.

그저 잃어버린 자신의 돈을 되찾기 위해서, 스스로 파멸로 몰아넣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누군가에 의해서 만들어진 거짓된 희망으로 부추겨지기 때문에, 이번엔 만회할 수 있다고, 이번에야말로 성공할 수 있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바깥세상으로 헤어나오지 못한다.

“카지노 쪽에서 사람들의 이 심리를 잘 이용한 거지.”

“그 말씀은….”

“잘 생각해봐. 저런 호화롭고 커다란 시설을 운영하는 자금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카지노에서 도박한 사람들이 잃은 돈들로 운영되는 걸까?”

“그렇지. 게임비의 명목으로 수수료를 취하고 있기는 해도, 그것도 게임마다 다르니까. 특히나 플레이어와 플레이어 간의 게임은 상관없겠지만, 에린이 했던 룰렛처럼 플레이어와 딜러가 하는 게임의 경우에는 플레이어가 이겼을 때, 그 승리 대금을 카지노 측에서 준비해야 해.”

“아…그럼 내가 오늘 룰렛에서 딴 돈도 카지노 측에서는 손해나 마찬가지구나.”

에린은 자신이 게임에서 이길 때마다, 점점 울상이 되어갔던 여성 딜러의 표정을 떠올렸다.

어쩐지 미안해지는 마음이 가슴 속을 콕콕 찌른다.

“내 말은 카지노 측에서는 어떤 게임에서든 반드시 자신들 쪽에 손해가 발생하지 않는 구조로 게임의 판도를 반드시 자신 쪽으로 유리하게 이끌어 갈 수 있는 수단이 존재해.”

이것에 해당하는 부분이 은현이 카지노에서 포커를 했을 때, 여성 플레이어가 보여주었던 카드 셔플과 손기술이 해당된다.

자신이 원하는 카드 패를, 원하는 상대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조작하는 타짜의 기술은 그렇게 쉽게 익힐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

“아마도 릴리의 아버지뿐만이 아니라, 다른 영지나 마을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이 반드시 이 카지노에서 돈을 잃을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고, 더 나아가 도박의 늪에서 헤어나올 수 없도록 심리를 자극당하고 있던 거지.”

최종적으로 피해자들의 재산을 갈취하고, 도박중독으로 거액을 빚을 지게 만드는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그들의 가족까지 모조리 노예로 만들어 시장에 팔아먹으면서 그 이익들을 고스란히 챙기고 있던 것이다.

그야말로 사람의 몸 자체를 금화로 바꿔먹으려는 ‘인간 시장’ 그 자체다.

“릴리.”

“…네.”

“이 카지노가 네 아버지를 비롯한 다수의 사람을 홀려서 이곳으로 끌어들이고 했던 짓은 이게 다야.”

그리고 지금 이 카지노는 주변 영지와 마을 사람들을 비슷한 수단으로 홀려서 또 무언가 일을 꾸미고 있다.

“너는 어떻게 하고 싶어?”

모든 설명을 마친 은현이 릴리에게 물었다.

에린도 조용히 숨을 죽이며 릴리의 선택을 기다렸다.

릴리는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기 위해, 두 주먹을 꽉 쥐며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이 장소가, 이 사람들이, 자신의 가정을 붕괴시키고 어머니의 행방을 알고 있는 유일한 단서나 마찬가지.

결심을 마친 두 눈이 뜨이며 정면의 은현을 응시했다.

“모조리 부숴버리고 싶어요. 이런 장소는 있어선 안 돼요.”

자신 같은 피해자가 또 생겨서는 안 된다고, 그녀의 눈이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올곧은 눈으로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사역마의 시선을 받은 주인이 미소지었다.

“알았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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