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6화 〉 316. 카지노 사비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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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로스 공작령에 제일 많은 수익을 가져다주고 있는 건물을 꼽자면, 모든 사람이 단연 ‘사비아랜드’를 입에 담을 것이다.
이 건물 안에서 1개월 동안 움직이고 있는 돈의 규모만 해도, 공작령의 영지 경영 1개월 예산의 10배는커녕 30배를 가볍게 웃돈다.
대륙에서 두 눈에 담기도 힘들 정도로 어마어마한 규모의 부를 축적한 대부호들이 한데 모여 있는 장소이기도 하므로, 그것은 당연한 사실이기도 했다.
“빨강! 빨강!”
“으아아아! 이런 젠장!”
“땃다아아아아!”
간절한 염원이 담긴 목소리.
큰돈을 날려 욕을 내뱉는 절규.
잭팟을 터뜨린 것으로 일부 칩들을 하늘에 흩뿌리는 환호.
“와아….”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울부짖는 극명한 차이가 갈리는 반응들이 한 공간 안에서 모두 벌어지고 있다.
중앙의 큰 홀에서 연주하는 클래식한 음악 소리와 사람들의 다양한 목소리들은 굉장히 소란스러우면서도, 고급스러운 복장의 사람들과 어우러져 매치가 잘되었기에 미묘했다.
하나같이 고급스러운 정장과 드레스를 입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에린은 재차 자신의 차림새를 확인했다.
“…안 이상하려나?”
“안 이상하다니까.”
머리카락과 어울리는 남청색의 미니드레스와 구두를 착용하고, 다이아가 박힌 펜던트를 착용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은,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호화로운 차림새였다.
“알렉스님의 소공작 축하 파티 때보다…더 화려해.”
“별로야?”
“그, 그런 게 아니라….”
이번 의상을 코디해준 것은 전적으로 릴리의 공이 있었지만, 의상과 장신구를 계산한 것은 은현이다.
솔직히 드레스도 드레스지만, 목에 걸고 있는 펜던트의 가격을 듣고 나니까 소녀의 얇은 다리가 후들거렸다.
“내 눈엔 예쁜데.”
“…진짜?”
“응.”
“진짜? 진짜로? 나 예뻐?”
제자리에서 한 바퀴를 턴하며 자신의 드레스를 보여주자, 은현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예쁘다니깐.”
“헤헤. 그렇구나. 예쁘구나.”
아까까지만 해도 가격에 다리를 떨던 에린은 순수한 은현의 칭찬에 금방 표정을 풀고 헤실거렸다.
이윽고 그의 뒤를 살짝 따라왔던 릴리의 복장을 확인하자 감탄을 터뜨렸다.
“와아! 언니! 진짜로 예뻐!”
“고마워.”
릴리는 미소지으며 에린의 칭찬에 대답했다.
“그럼 현아. 우리 여기서 이제 뭐 해?”
“이 칩으로 재밌어 보이는 거로 적당히 놀면 돼.”
은현이 대량의 칩이 들어 있는 칩박스를 에린의 손에 쥐여주자, 에린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다야?”
“그게 다야.”
가능하면 돈을 흥청망청 쓰면서 철없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제일 좋지만, 돈을 아끼면서 허투루 쓰는 성격이 아니기에 불가능한 부분이다.
심지어 연기도 그다지 재능이 있는 편이 아니기에 억지로 이 부분을 강조하라고 이야기를 한다면 연기인 것이 티가 날 가능성이 있다.
“다 잃어도 상관없어. 잃는 것도 계획 중 일부니까. 대신 칩이 다 떨어지면 나한테 와야 해.”
“응. 알았어.”
에린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칩박스를 받아들였다.
“으음….”
카지노의 내부를 천천히 둘러보며, 자신이 할 수 있는 게임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던 에린은 은현과 릴리와 떨어져 개별 행동을 개시했다.
“릴리는 어떻게 할래? 해보고 싶은 게임 있어?”
“아뇨. 저는…괜찮아요.”
아버지의 일을 떠올리게 되기 때문일까, 릴리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주인님도…도박을 하시려는 건가요?”
“그렇긴 하지만, 내 목적은 돈이 아니야. 물론 계속 이겨서 돈을 따야 하는 게 목적의 일부이긴 하지만.”
“저도 알아요. 주인님이 아버지와는 다르시다는 거. 하지만….”
걱정되는 불안한 마음은 그녀의 마음대로 멈출 수 없었다.
혹시라도 일이 잘못되어 은현마저 어떻게 되어버린다면,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마음이 앞서고 있었다.
그만큼 자신의 가슴 속에 새롭게 자리 잡은 은현에 대한 마음은 릴리에게 소중했다.
“괜찮아. 나, 지는 싸움은 안 해. 치트키도 하나 있으니까.”
“치트키…? 그게 뭔가요?”
“보면 알아.”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는 은현의 얼굴에는 전혀 걱정이 없었다.
저것은 자신감도 아니라, 당연히 자기 생각대로 흘러가리라는 확신이다.
“그럼 이동하자. ‘리리’.”
“네…. 여…보.”
고개를 끄덕인 은현이 릴리를 대동하고 카지노의 내부로 발걸음을 옮겼다.
자신들의 정체가 밝혀질 가능성은 극히 적었지만, 만약을 대비해 은현은 사전에 서로의 호칭을 바꿔두기로 정했다.
릴리와 에린을 두 아내라는 설정으로 ‘리리’와 ‘에리’로 부르기도 입을 맞춘 것이다.
순간 릴리는 시선을 피하며 은현을 부르는 호칭을 망설일 뻔했다.
몸을 섞고 비공식적으로 아내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항상 주인으로 깍듯이 모시던 남성을 남편으로 부르는 것이 쑥스러웠다.
그 낯간지러워하는 릴리의 얼굴을 본 은현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빈자리인가요?”
“오우, 어서 들어와 앉으시죠.”
4인 테이블의 빈자리에 착석하자마자, 테이블 위의 플레이어들이 은현을 반겼다.
이윽고 그들이 보기 드문 은백색의 머리카락과 적안의 눈동자를 가진 남성에게 관심을 가지며 물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네요. 카지노는 처음이신가요?”
“네. 처음입니다. 오늘 도착했어요.”
“이런, 도착하시자마자 이곳에 오시다니, 도박을 꽤 좋아하시나 보군요. 그리고….”
가장 좌측에 앉아 있던 플레이어가 흘끗 은현의 뒤, 아름다운 이브닝드레스를 입은 여성을 눈여겨보았다.
여성 플레이어의 시선을 눈치챈 은현이 입을 열었다.
“아내입니다. 함께 관광을 와서 놀다 갈 예정이죠.”
“그렇군요.”
눈웃음을 짓던 여성 플레이어의 눈빛에 이채가 띠었다.
릴리가 입고 있는 드레스나, 장신구의 값어치를 단번에 파악하고, 눈앞 부부의 재력을 가늠해본 것이다.
은현과 릴리의 차림새를 보고, 필시 엄청난 재력을 보유하고 있는 대부호라는 것을 확신했다.
‘호구 하나 들어왔네.’
속으로 씨익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필사적으로 참고, 여성 플레이어는 손을 들었다.
“제가 먼저 패를 섞을까요?”
“음.”
“그러시죠.”
“좋습니다.”
동석한 젊은 남자와 중년 남자의 동의도 얻었으며 최종적으로 은현도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했다.
‘오늘은 시작이 좋네.’
여성 플레이어는 손기술로 이 도박판에서 먹고 사는 전문 타짜였다.
동석한 중년 남자나 젊은 남자 둘.
남자 셋의 재력 수준이 보통 이상으로 매우 뛰어난 편이라는 것을 두 눈으로 스캔하고는 기분이 매우 업되어 있었다.
그들의 모든 재산을 털어먹을 생각으로 가득 차 있던 여성 플레이어는 선정적인 드레스를 입고선 팍 트인 자신의 가슴골을 과시하는 도발적인 태도를 보이며 카드를 셔플했다.
‘이 남자들도 똑같아.’
카드를 자신의 입맛대로 셔플하여 조작하고 있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세 남자의 시선이 카드를 셔플하고 있는 손이 아닌, 자신의 가슴골에 꽂혀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능숙하게 카드를 자신의 입맛에 맞게 셔플했다.
그렇게 코웃음을 치고 있는 여성 플레이어의 태도를 보고, 은현은 피식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필사적으로 참았다.
‘고전적이면서도 확실한 수법이지.’
미인계를 이용한 수법은 남성 플레이어들에게 매우 효과적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상대를 잘못 골랐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은현은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이미 반드시 자신이 이길 수밖에 없는 수단은 준비해왔기 때문이다.
여성 플레이어가 셔플한 덱의 카드들을 은현을 비롯한 각각의 플레이어들에게 돌렸다.
‘베르단디님. 부탁드릴게요.’
[…알았다.]
이런 일에 자신이 나선다는 것에 대해 복잡한 신경을 품고 있었음에도, 베르단디는 은현의 부탁을 순순히 들어주었다.
사전에 이야기했던 대로,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자신의 영체를 움직여 플레이어들의 뒤로 향한다.
이윽고 다른 플레이어들의 카드패를 훔쳐보고, 패의 내용을 줄줄이 읊었다.
[다이아 3, 클로버 5, 다이아 2….]
“…….”
은현이 말한 ‘지는 싸움은 안 한다.’라는 말의 의미를 그제야 깨닫고 릴리가 어처구니가 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로부터 1시간 뒤.
“이건…이건 말도 안 돼….”
세 사람 쪽의 텅 비어있는 칩박스와 대조되듯, 산처럼 쌓여있는 은현 쪽의 칩들을 응시한 여성 플레이어가 중얼거렸다.
파르르 떨리며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그녀는 냉정함을 잃은 상태.
그녀는 물론, 다른 두 남성 플레이어들의 칩들까지 모조리 쓸어 담은 은현의 테이블 위에는 압도적인 그의 승리를 증명이라도 해주듯 어마어마한 양의 칩들이 쌓여있다.
“자, 그럼 저는 이만 일어나보겠습니다. 리리. 이 칩들 모두 가방에 담아.”
“…네.”
은현의 명령에 고개를 끄덕인 릴리가 손에 쥐고 있던 케이스를 열고 그 안에 테이블 위에 쌓인 칩들을 색깔별로 차곡차곡 정리하여 담았다.
“…….”
“…저기요.”
“예?”
자리에서 일어나 테이블을 떠난 은현을, 손을 떨고 있던 여성 플레이어가 다급하게 그를 불러세웠다.
“어떻게 한 거죠?”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네요.”
“시치미 떼지 말아요. 그쪽 지금…쯧.”
은현이 속임수를 썼다는 증거는 아무것도 없었다.
여성 플레이어가 지금 이렇게 그에게 따져 묻고 있는 것은 자신의 감뿐이었다.
그녀가 이 도박판에서 아직도 현역으로 활동할 수 있는 이유는, 그동안 연마한 자신의 손기술뿐만이 전부가 아니라, 뛰어난 감과 연기력 때문이었다.
‘이 사람한테는 내 블러프나 심리전이 전혀 통하지 않았어.’
다른 사람이 딜러를 맡으면서, 손기술을 발휘할 수 없을 때는.
자신의 패와 상대방 패의 조합을 생각하고 승률을 추측하면서, 블러프를 기반으로 한 심리전을 최대한 활용하여 게임에 임해야만 한다.
하지만 은현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블러프를 간파해왔다.
밀고 들어올 때는 강력하게 밀고 들어오는 은현의 호기로움에서 강렬한 의구심을 느꼈다.
마치 자신뿐만이 아니라, 세 명의 플레이어의 모든 패를 모조리 파악하고 있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어째서 졌는지, 이해를 할 수 없다는 표정이시네요. 그만큼 승리를 확신할 수 있는 이유가 있었던 걸까요?”
“…크.”
정곡을 찔린 듯 여성 플레이어의 어깨가 살짝 들썩였다.
노골적으로 자신이 속임수를 쓰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투로 말하는 은백색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의 시선이 여성 플레이어의 가슴을 꿰뚫는다.
“그런데 이해가 안 가네요.”
“뭐…가 말이죠?”
“보통 도박꾼들이 자신의 필승 방법을 공개하나요? 그쪽도 누군가가 그 쪽에게 지금처럼 따져 물었을 때, 그쪽은 친절하게 이야기해주셨나요?”
“…….”
‘과연 당신이 나에게 그 속임수의 방법을 따져 물을 수 있는 거냐?’라는 질문에 여성 플레이어는 대답하지 못하고 이를 갈았다.
“뭐, 그래도 굳이 알려드리지 못할 것도 없죠.”
“……?”
느닷없이 자신의 수법을 말해주겠다는 은현의 변덕에 여성 플레이어가 미심쩍은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 수법에 강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행운의 여신이 제게 미소를 지어주셨기 때문이죠.”
“…….”
“푸흡….”
옆에서 은현의 말을 듣던 릴리가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결국, 자신을 놀리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여성 플레이어는 인상을 팍 쓰며 입을 열었다.
“지금 나를 놀리는 건가요?”
“진심입니다만. 카드에 자기 운이 쓰여있다는 말. 들어본 적 없으신가 보네요.”
실실 웃던 은현이 다시 등을 돌렸다.
“가자. 리리.”
“네.”
‘파랑이 좋겠군.’이라는 알 수 없는 혼잣말을 흘리며 다시 발걸음을 옮기자.
[에휴….]
베르단디는 철없이 행동하는 아이를 바라보는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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