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5화 〉 315. 카지노 사비야(1)
* * *
“여기가…사비로스령?”
관문을 통과하고 내부로 들어서자마자, 에린은 멍한 표정을 지으며 영지 내부를 훑어보았다.
같은 공작령이라고는 하더라도, 매우 다른 분위기.
검소하고 잘 정비되어 ‘착실하다.’라는 분위기를 자아내는 아르미타스령과는 달리, 사비로스령은 매우 화려했다.
흘끗 보이는 건물에도 화려한 보석과 금으로 치장되어, 고급스럽고 비싸 보이는 외관을 자랑한다.
처음 방문해본 타국의 공작령에 대한 에린의 감상은 매우 짧았다.
“굉장하네….”
다양한 노점들이 들어선 화려한 거리를 걷던 에린은 노점에서 판매하는 음식들의 가격들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비싸.”
비슷한 식재료로 조리된 음식이라고 하더라도, 공작령이나 페르닌에서 판매했던 노점 음식들에 비하면 거의 두 배에서 세 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현아, 왜 이렇게 비싼 거야?”
“이 가격에 팔아도 사 먹는 사람이 있으니까.”
관광업과 도박업이 주요 사업으로 구성된 사비로스령의 주요 고객층은 대부분 자국을 포함한 타국의 고위 귀족들과 대부호 상인들.
이런 노점의 음식 가격은 그들에게 아무런 부담도 되지 않기 때문에 이 값을 주고 음식을 구매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뭐 입맛이 까다로운 상류층의 사람들이 이런 노점에서 음식을 사 먹는 것도 자주 있는 일은 아니긴 하지만.”
그런데도 가끔 서민들의 입맛이라며 이 노점을 찾는 상류층 계급의 고객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런 값비싼 노점들도 대규모로 번성하고 있다.
“페르니아스 왕국에서는 이거의 반의반도 안 하는 가격들이 널렸는데….”
“당연하지. 이곳은 상대하는 고객의 층 자체가 다르니까. 먹고 싶어?”
“아, 아니…. 꼭 그런 건 아니고….”
에린이 길거리에 늘어선 노점들에 인상을 찌푸린 이유는, 배는 고픈데 사 먹으려고 했던 노점들의 음식들이 너무 비쌌던 것이 원인이다.
먹어보고 싶은 호기심은 불러일으키지만, 굳이 비싼 값을 주고 먹고 싶은 생각까지는 들지 않았다.
“조금만 참자. 기왕 먹으려면 노점의 군것질보다는 제대로 된 밥을 먹어야지.”
“응.”
에린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숙소부터 잡자. 뭐든 일단 짐부터 풀고 움직여야지.”
발걸음을 옮기던 도중, 에린은 어두운 골목 구석에서 자신들을 응시하는 시선을 느끼고 시선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으….”
축 처져 굽어진 등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무기력한 시선들.
며칠을 제대로 된 식사도 하지 못했는지 야윈 얼굴들과 앙상한 몸은 이전에 거지의 꼴로 영지민들에게 구걸을 하고 있던 릴리의 아버지를 연상케 했다.
심지어 그 숫자조차도 만만치 않다.
“저들 중 대부분이 도박에 빠져서 패가망신을 한 사람들 대부분이지.”
“…….”
안쓰러운 눈으로 구걸을 하는 거지들을 바라보는 에린의 표정을 본 은현의 말이었다.
“도박 때문에…저 지경이 될 수가 있는 거야?”
에린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세계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에린 만이 아니었다.
“그렇지…. 어쩌다 저런 꼴이 되셨을까….”
자조하는 릴리의 두 눈에도 슬픈 빛이 어려 있다.
그녀는 골목의 거지들을 바라보며,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린 것이다.
부족하게 살기는 했지만, 아버지의 변화로 인해서 1년도 안 되는 시간 사이에 릴리의 가정은 붕괴가 된 지금, 릴리의 마음속에 있는 아버지에 대한 생각은 실망뿐이다.
“언니….”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떠올릴 때마다 기분이 울적해지는 릴리를 안쓰러운 눈으로 쳐다보며, 에린이 그녀의 손을 꽉 잡아주었다.
“그 일에 관련해서 할 이야기도 있어. 일단은 방부터 잡고 안에서 이야기해줄게.”
“네.”
“알았어.”
이윽고 거대한 건물의 입구 앞에 도착한 에린과 릴리는 중앙에 전시된 번쩍이는 황금의 동상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와아….”
“엄청 크네요….”
주위의 마법등에 의해서, 밤중에도 금색의 빛을 번쩍거리고 있는 동상의 제작에 들어간 금의 양을 짐작하자니 에린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흐른다.
“완전 사치야….”
효용성이 있는지도 불분명한 금덩어리의 동상이, 뒤에 존재하면서 거대한 크기를 과시하는 건물의 웅장함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이게 여관이야?”
“호텔이라고 하지.”
“우, 우리 여기서 자…?”
이런 호화로운 곳의 가격은 도대체 얼마나 할까.
짐작조차도 되지 않았다.
모험가 일을 하면서 가까운 인접 마을의 여관을 이용해본 적은 있지만, 마을의 여관과는 비교도 안 되는 숙박시설의 모습에 에린의 머릿속 상식이 무너져가고 있었다.
“그럴 예정인데?”
“세상에….”
넋을 놓으며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에린과 릴리의 모습은 도시의 구경은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영락없는 시골 처녀의 모습이다.
자신들도 왕국의 중심이자 수도인 페르닌에서 살았던 기억이 있음에도, 사치의 끝판왕을 달리는 이곳의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에, 에린. 넋 놓지 말고 빨리 주인님을 쫓아가자.”
“아, 응. 그렇지.”
퍼뜩 놀라며 정신을 차린 릴리가 에린의 어깨를 흔들며 정신을 일깨웠다.
황급히 당당하게 앞장을 서서 걸어가는 은현과 에밀리아를 가리키자, 에린도 뒤늦게 고개를 끄덕이며 발걸음을 옮겼다.
“어서 오세요. 손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방 하나요. 제일 좋은 곳으로.”
“스페셜룸은 금화 20닢입니다. 일반룸은 6닢인데, 정말로 스페셜룸으로 하시겠습니까?”
제법 귀티가 나는 남자였지만, 장신구나 옷차림 자체가 고위 귀족이나 대부호처럼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직원이 재차 물어보았다.
“그곳으로 할게요.”
은현은 직원의 그 시선을 받아들이며 피식 웃었다.
주머니에서 당당하게 금화 20닢을 꺼내어 제시하자, 직원은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방의 열쇠를 건넸다.
“무례를 사죄드립니다.”
“괜찮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멋대로 고객을 평가했다는 것을 선뜻 사과해오는 직원의 태도에 은현은 미소지으며 그 사과를 받아들였다.
직원이 내민 키를 받아들이고, 다른 직원의 안내를 받아 객실로 향하던 도중에도, 에린과 릴리의 표정은 복잡했다.
“금화 20닢….”
“세상에….”
마을이나 영지에서 그럭저럭 괜찮은 방을 예약하는데 들어가는 가격이 평균적으로 ‘은화 20닢’이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지금의 은현이 얼마나 사치를 부리고 있는지도 피부로 체감이 되고 있었다.
“이 방입니다. 그럼 저는 이만….”
“감사합니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객실에 도착한 은현이 문을 열어 망설임 없이 방 안으로 들어갔다.
은현의 지시로 에밀리아가 등에 메고 있던 배낭에서 짐을 푸는 동안, 둘을 따라 들어온 에린과 릴리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현아. 우리 정말 이 방에서 자? 아까 들어보니까 금화 6닢짜리 방도 있었는데, 굳이….”
너무 사치가 아닐까 싶어 부담스러운 기분도 들었던 에린이 은현에게 이야기했지만, 은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것도 계획 일부니까. 우리의 모습을 대외적으로 보여줘야 하거든.”
“보여줘? 누구한테?”
“…계획인가요?”
“짐 다 풀고 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해줄게.”
두 사람은 은현의 말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커피 드릴게요.”
“응.”
짐 정리가 모두 끝나고, 릴리는 소파에 앉아 있던 은현과 에린에게 커피를 타주었다.
“우리의 이번 여행의 목적이 뭔지는 알고 있지?”
“응. 그게…릴리 언니 어머니의 행방을 찾는 거잖아.”
뜨거운 액체를 살짝 홀짝이던 에린은 은현의 질문에 릴리의 눈치를 슬쩍 보며 대답했다.
“맞아. 그래서 릴리의 아버지가 엮여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사비로스령으로 온 거지.”
잠시간 커피의 향을 맡고는 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말을 이었다.
“도로 위에서 만났던 그 건달들의 우두머리, 그 녀석의 기억을 읽은 결과는 정답이었어.”
“……!”
담담한 은현의 말에 릴리의 숨이 멎었다.
“릴리, 네 어머니의 행방을 알고 있는 사람은 이곳에 있어. 지금 이 도시의 어둠 깊숙한 곳에 자리해 있지.”
그것을 그때 곧바로 이야기하지 않았던 것은 릴리의 마음을 추스를 시간을 주기 위해서였다.
몸을 섞은 뒤, 어느 정도 마음의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던 그녀에게 은현은 곧바로 이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그것을 지금 밝히는 은현의 말과 행동에서 릴리는 주인의 의도를 깨달았다.
“…주인님이 대외적으로 저희의 모습을 보여주려던 대상은 ‘그 사람’에게 보여주려는 것이군요.”
“맞아. 정확히는 ‘그 여자’의 눈에 띌 필요가 있기 때문이야.”
은현이 정체를 알고 있는 것 마냥 ‘그 여자’라고 지칭할 수 있었던 이유는, 릴리가 폐인으로 만들어버린 건달의 기억 속에 존재했던 인물이 여자였기 때문이다.
“네 아버지가 도박에 빠져들도록 만들고, 빚을 지우게 만들어, 너와 네 어머니를 노예로 팔아버린 장본인이지. 우리는 그 여자를 만나야 해. 그리고 마지막엔…릴리.”
“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좋아.”
“…감사드려요.”
릴리는 재차 고개를 꾸벅 숙이며 감사를 전했다.
그녀의 대답은 처음부터 끝까지 정해져 있으며 변하지 않았다.
죄가 없는, 연관이 없는 많은 사람에게 피해만 끼치지 않는다면 자신의 복수를 지지해주고 있다.
“으음…그럼 현이, 네 말은 릴리 언니의 가정을 붕괴시킨 원흉의 눈에 띌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이 호텔에서 가장 좋은 방에 돈을 썼다는 이야기야?”
“그렇지.”
“그렇구나….”
솔직히 은현의 계획에 대해 일부도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아무런 생각도 없이 무지성으로 금화 20닢을 사용한 것은 아니라는 걸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앞으로, 나 뭐 하면 돼?”
다름 아닌 릴리와 관계된 일이었기 때문에, 에린은 매우 의욕적이었다.
새로운 가족이나 다름없어진 릴리의 안타까운 사연에, 가정 문제로 많은 아픔을 겪었던 에린도 깊이 공감을 하고 있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지.”
“응?”
은현은 고개를 갸웃하는 에린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다리부터 머리까지 전신을 훑는 시선을 받았지만, 에린은 그다지 기분 나쁜 표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더 봐주었으면 하는 욕구가 있었지만, 그의 눈은 정욕에 물든 음탕한 시선이 아니라, 분석하는 시선이었다.
“…왜 쳐다봐?”
“일단 옷부터 맞추러 가자.”
“…응?”
“릴리도 바로 준비해. 리아는 이곳에서 누군가가 염탐을 하거나 조사를 하러 사람을 보낼 가능성이 있어. 방에서 대기하면서 감시해. 만약 방으로 들어와 짐을 뒤지려고 하면, 기절시켜서 묶어둬.”
“명령을 수락합니다.”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는 에밀리아를 뒤로 하고, 은현은 에린과 릴리를 데리고 객실을 나왔다.
“우리, 어디로 가는데?”
“도박하러.”
“…그렇군요.”
릴리는 은현의 생각을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아버지를 미치게 만든 그 광기의 장소를, 자신의 발로 들어간다는 것에 매우 복잡한 심경.
몸과 마음을 모두 바친 자신의 주인은, 자신을 위해서 이렇게 움직여주고 있다.
욕심과 광기에 눈이 멀어 가정을 붕괴시킨 아버지와 다르다.
그가 지금 행동하고 있는 목적은, 자신을 위해서다.
“릴리? 왜 그래?”
멍하니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릴리의 시선을 느낀 은현이 물었다.
“아뇨…. 아무것도요. 그냥…주인님이 너무 좋아서요.”
자신이 얼마나 바보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자각한 릴리가 헛웃음을 지었다.
이 남자에게 끌렸던 이유는 자신을 구원해주고, 가정을 포기한 아버지와 달리 자신의 사람들을 책임지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모습 때문이었다.
그것을 비교하다니, 자신이 너무나도 어리석다.
“언제까지고…함께 있고 싶어요.”
“그래. 고마워.”
미소지은 은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화답했다.
“나도 함께 있을 거야!”
에린이 두 사람 사이에 둘의 양팔을 잔뜩 끌어안으며 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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