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부활한 불멸자-312화 (312/730)

〈 312화 〉 312. 몽마의 마성(??)(3)

* * *

릴리가 만들어 낸 꿈의 세계 속은 현재 세 가지 부류가 존재했다.

“크아악!”

“제발! 제발 그만!”

첫 번째는 자신들을 물어뜯기 위해서 달려드는 흉포한 무리에게서 도망치는 건달들.

두 번째는 그런 건달들의 살점을 뜯어먹기 위해서, 릴리가 내린 명령을 충실히 이행하는 마수들.

세 번째는 그렇게 쫓고 쫓기는 두 무리를 하늘에서 관찰하는 서큐버스의 모습.

건달들을 위협하는 마수들의 모습은 터무니없이 흉악하다.

사자의 형상을 닮았으며, 양쪽 등에 박쥐의 날개가, 전갈의 꼬리처럼 생긴 꼬리의 끝에는 뭉툭한 가시들이 가득한 철퇴가 달려 있다.

마수의 모습은 이런 마수도 존재했었다는, 은현이 들려준 이야기 속에서 ‘만티코어’의 이미지를 구현화 시킨 것에 불과했다.

‘만티코어’라는 마수의 모습을 본 적도 없었던 릴리에게는 실제로 존재하는 그 마수의 능력도, 위용도 재현시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도 이처럼 겉모습만으로도 흉악한 모습의 마수를 재현시켜 많은 사람을 사냥하는 두려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살려줘어어!”

“끄아아아! 다리! 내 다리가!”

마수의 앞발에 찢어 발겨져, 건달의 다리 한쪽이 뜯겨 나가는가 하면, 누군가는 복부에 이빨이 박히면서 허리의 내장과 살점까지 모조리 뜯어지는 그로테스크한 광경이 연출되었다.

마수에게 맞서는 것은 불가능.

이 꿈의 세계에서 나가는 것조차도 불가능.

자신들을 이곳에 데려온 악마를 죽이는 것조차도 불가능.

건달들에게 이 세상은 지옥 그 자체였다.

이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건달들은 허공에 떠 있는 릴리에게 애원했다.

“죽여줘…. 제발 죽여줘!”

건달들을 가장 미치게 만드는 것은 이 꿈속에서는 모두 현실의 육체가 존재하지 않는 정신체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현실의 육체는 이미 잠들어 있는 상태로, 오직 정신체만이 릴리가 만들어 낸 꿈의 세계 속에 갇혔기 때문에, 이 공간에서는 아무리 살점이 뜯기고 뼈가 부러지고, 내장이 파열돼도 죽지 않는다.

건달들로서는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고, 넝마가 되어버린 몸 상태로 영원한 고통을 맛보아야 한다는 사실에 점점 미쳐갈 뿐이었다.

“그만…그만해!”

심장에 마수의 이빨이 박혀, 피가 솟구치고, 가랑이 사이의 남자로서 중요 부위가 뜯어졌음에도, 죽을 수가 없는 우두머리 건달은 릴리에게 이 지옥에서 해방해달라고 애원했다.

하지만 허공에 떠 있는 릴리는 경멸과 혐오가 담긴 시선으로 냉담하게 대답했다.

“어머니도 너에게 그렇게 말했겠지. 제발 그만해달라고. 딸인 나를 만나게 해달라고. 그렇게 빌었겠지. 그때 너는 어떻게 했을까.”

하지만 눈앞의 건달과 다른 무리는 어떻게 했을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 속의 증오심이 부풀어 올랐다.

“어, 어쩔 수 없었어! 난 그때 그중에서 제일 막내였다고! 내가 하지 않았다고 다른 사람이….”

“입 닥쳐.”

“크아아악!”

릴리의 손짓 때문에 명령을 받은 마수가 우두머리 건달의 목을 깨물었다.

성대마저 물어뜯겨 나간 그는 이제는 비명을 지르는 것조차 불가능해졌다.

“나는 네 거기를 뜯어버리는 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아.”

“커…허어억…!”

맛을 잇지 못하는 우두머리 건달의 두 눈에는 절망이 가득해져만 갔다.

살점이 뜯기고, 뼈가 부러지고, 성대마저도 마수의 이빨에 찢기면서도, 죽을 수가 없다.

고스란히 느껴지는 전신의 통각에서 저항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이 고통은 건달들의 머릿속을 점점 미쳐가게 하고 있었다.

◆ ◆ ◆

악마의 특성을 살려, 주위 사람들의 정신을 지배하여, 꿈의 세계로 건달들의 정신체들을 모조리 끌고 간 릴리의 모습을 보았던 에린은 새삼 서큐버스라는 악마의 능력이 굉장히 무서운 능력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에린은 은현의 품에 안겨서 곤히 잠들어 있는 릴리의 모습을 유심히 살폈다.

“나랑 싸웠었던 악마는…저런 정신 지배 같은 거 사용하지 않았었는데…?”

리라라는 서큐버스는 릴리가 직접적으로 악마로 변이하게 된 오염된 마나의 일부를 제공한 원흉이었으며, 일전에 에린과의 교전에서 패배했다.

그것도 일리아나의 고위자릿수 마법을 몇 번이나 받아내면서 힘을 빼놓았기 때문에 간신히 이길 수 있었다는 것을 에린은 다시 한 번 떠올렸다.

서큐버스라는 악마와 교전을 했던 경험이 있었던 에린에게는 릴리가 보여준 광역 정신 지배는 매우 충격적이었다.

만약 그때 리라라는 악마가 당시에 조우했던 자신과 알렉스에게 정신 지배 같은 것을 사용했다면, 자신과 알렉스는 꼼짝없이 당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새삼 소름이 돋는다.

“그 악마는 하위계의 악마였으니까. 하급 서큐버스는 그저 타인의 정신에 간섭해 원하는 꿈을 보여주는 게 한계거든.”

조심스레 자신의 품에 안겨 있는 악마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가지런히 정리해주던 은현이 에린의 의문을 풀어주었다.

“그럼…릴리 언니는 그때 그 악마보다 등급이 높은 악마야?”

“일단은 그렇지. 릴리는 중위계니까, 정신방벽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는 상대라면 정신을 지배해서 명령을 내릴 수 있어.”

하지만 그것도 최근까지 인간이었던 릴리에게는 한계가 존재한다.

생전에 사용해본 적도 없는 마법이나 악마의 특성에 관한 공부는 일리아나의 주도하에 아주 최근에 시작된 것이다.

악마의 마성(??)을 한 번 사용하게 되면 극심한 마력의 소모는 물론, 쉽게 지치게 된다는 단점이 있다.

현재 릴리의 상황에서는 그렇게 자주 사용할 수 있는 힘이 아니다.

“그럼…언니가 그때 그 악마보다 강해?”

“글쎄, 능력과 위계가 악마의 전부는 아니니까. 만약 릴리의 정신 지배가 에린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가정이 붙으면, 그 악마와 릴리중에서 누가 더 강할 것 같아?”

“으음…언니에겐 미안하지만, 그 악마가 더 강할 것 같아.”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야 그 악마는 능력도 굉장히 성가셨지만 직접 싸워보면서 검술도 엄청 대단했던 것 같았거든. 지금이야 당연히 내가 이기겠지만, 솔직히 그때는 일리아나님이 중간에 나서주지 않으셨으면 못 이겼어.”

에린은 솔직하게 자신의 심경에 대해 고백했다.

정말로 타이밍 좋게 일리아나가 꿈의 세계로 난입해오지 않았다면, 알렉스와 에린 둘이서 그 악마를 처리할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 들었다.

“맞아.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릴리는 자신의 악마로서의 특성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을 뿐이지. 그 이외에는 아무런 특기도 없어. 그 악마의 경우에는 부족한 자신의 능력을 검술을 비롯한 육체 능력으로 커버했다고 하니까.”

“응. 그랬지.”

“반면에 릴리는 아무리 위계가 높더라도 릴리의 특기인 정신 지배가 통하지 않는 상대를 만나면 하위계 악마보다도 못한 전력이지.”

은현의 평가는 꽤 냉정했다.

일리아나가 은현이 특별히 제작한 아티팩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비프론스라는 인큐버스에게서 정신 지배가 통하지 않게 되어 압살할 수 있었던 것처럼.

지금의 릴리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존재했다.

“그런데, 현아.”

“응?”

“릴리 언니는 그 악마의 힘의 일부를 받아들이면서 악마가 되었다고 했잖아.”

“그랬지.”

“그런데 어떻게 그 악마보다 위계가 높아질 수 있는 거야?”

“…….”

핵심을 찔러오는 에린의 질문에 은현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릴리가 직접적으로 위계가 상승하게 된 이유는 자신과 몸을 섞으면서 자신의 신력을 흡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을 에린에게 직접 이야기해주는 것은 왠지 모를 저항감이 들었다.

“나와 영혼의 종속 계약을 맺으면서, 릴리의 몸의 내부에 있는 오염된 마나를 모조리 정화 시켰어. 그리고 내 힘의 일부를 채워 넣었지. 아마도 그게 원인이 아닐까 싶어.”

“아하, 그렇구나.”

거짓말은 하지 않았지만, 적당히 얼버무린 은현의 설명에 에린은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속으로 작게 한숨을 내쉬자, 베르단디가 한심한 눈으로 은현을 쳐다보았다.

[얼버무리느라 아이도 참 고생이 많구나.]

‘…베르단디님.’

[하지만 언제까지고 이대로 있을 수만은 없다는 거, 아이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네.’

에린이 자신의 방안에서 하고 있던 자기 위로를 듣고, 소녀의 마음을 알아차린 순간부터, 은현의 마음은 굉장히 복잡했다.

하지만 이 상태가 지속되는 것이 안 좋은 방향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건, 은현도 잘 알고 있었다.

일리아나에게서도 허락과 비슷한 확답은 이미 받았다.

아마도 엘레노아나 릴리도 같은 마음일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다름 아닌 자신의 마음의 문제였다.

[뭐가 그렇게 문제인 것이냐? 그냥 다른 아이들처럼 마음을 받아들이고 품으면 되는 것이 아니냐?]

‘그렇긴 한데…. 에린만큼은 도무지…건드리면 제 자신이 너무 쓰레기가 되는 것 같은 기분이….’

[하계의 아이들의 기준에서는, 이미 아이는 그쪽에 해당되어 있는 것이 아니더냐?]

‘…….’

이미 인간 사회의 기준에서는 아내나 연인을 여럿이나 두고 있는 자신은 쓰레기나 다름이 없다고 베르단디는 거침없이 말하고 있었다.

심지어 베르단디 자신도 그러한 여성진의 구성원이다.

너무나도 정론인 돌직구에 은현은 할 말을 잃었다.

여신이 날리는 팩트가 너무나도 아프다.

가끔가다가 자신의 여신은 어떤 면에서는 자신의 바람이나 응석을 모조리 받아 들여주면서, 어떤 면에서는 가차가 없다.

이내 품에 안고 있던 릴리를 잠시 자신의 다리 위에 올려두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후우….”

“왜 그래? 무슨 고민 있어?”

“지금…좀 많이 가슴 아픈 공격을 받아서….”

“고, 공격!? 어디에서?”

화들짝 놀란 에린이 자신의 선에서 펼칠 수 있는 최대한의 감지를 펼치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경계했다.

“아니…. 그런 공격이 아니야….”

“괜찮아? 뭐 때문인데?”

“…….”

은현은 차마 ‘너 때문인데.’라고 말을 꺼내지 못했다.

언젠가는 소녀의 마음에 대한 답을 꼭 내놓아야 한다고 다시 한 번 굳게 다짐했다.

이윽고 살짝 시선을 피하며 에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도 참…사람 보는 눈 없다.”

“응?”

은현의 행동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던 에린은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그의 손길을 가만히 즐겼다.

“으응….”

마침 타이밍 좋게, 은현의 다리를 베고 누워있던 릴리가 인상을 살짝 찡그리며, 조금씩 몸을 뒤척였다.

‘꿈의 세계’ 속에 들어갔던 정신체가 다시 육체에 정착하고 있던 전조였다.

슬며시 눈을 뜬 릴리는 자신의 얼굴을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는 은현과 에린과 시선을 마주하고 살짝 미소를 지었다.

“돌아왔어요.”

“어서 와. 언니.”

“기분은 어때?”

“…잘 모르겠어요.”

에린의 환영 인사에 미소를 짓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은현의 질문에 살짝 시선을 내리깔며 답했다.

“복수는 했지만…제 마음은 이상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자신이 이렇게까지 인간에게 잔인해질 수 있는 성품을 지녔던 걸까.

아니면 후천적으로 악마로 변이된 자신의 이성이 점점 비인간적으로 변해가고 있는 걸까.

릴리는 스스로 확신할 수 없었다.

“아아…으으으….”

건달들이 하나둘씩 정신을 차리면서, 침을 질질 흘리며 풀린 동공으로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릴리가 만들어 낸 꿈의 세계에서 마수들에게 시달리는 끔찍한 경험 끝에 모두 정신이 붕괴한 것이다.

에밀리아가 은현의 명령으로 밧줄을 이용하여, 그들을 나무에 결박했다.

“이걸로….”

릴리는 은현의 가슴에 얼굴을 기대고는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는 조금 편안해지셨을까요?”

그 질문은 영원히 답을 알 수 없는,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 문제와도 같다.

이미 그 질문에 답해줄 수 있는 릴리의 어머니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릴리는 자신을 끌어안아 위로해주는 은현의 품 안에서 작게 흐느끼기 시작했다.

“언니….”

에린은 자신의 눈가에서 흐르려는 눈물을 훔치며 울먹임을 꾹 참았다.

“어머니…어머니가…보고 싶어요….”

은현과 에린은 그렇게 자신의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릴리를 위로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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