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97화 〉297. 좀도둑 (297/730)



〈 297화 〉297. 좀도둑

“젠장…. 젠장….”

이를 갈며, 이제는 백작 가문의 주인도 아닌 콘라드 오르바는, 곧장 복귀한 자신의 저택을 성큼성큼 걸었다.

“내가…나의 집안이 나의 대에서 이렇게 몰락을…크으!”

아르티아에서의 심문을 마치고, 콘라드 오르바가 최종적으로 선고받은 여왕의 판결은 충격적이었다.
초기에 예고했던 대로, 왕가와 기사단의 명예를 실추시켰던 것에 크게 관여했던 자신과 일부 귀족들은 귀족 작위의 몰수가 확정되어, 평민으로 전락하게 되는 몰락의 수모가 확정됐다.
거기에 더해서, 자신이 과거에 저질렀던 비리들이 익명의 제보를 통해서 낱낱이 밝혀지자, 오르바 가문은 추가적으로 저택을 포함한 집안의 모든 재산을 강제로 환수되었다.

“또…그자의 짓이겠지.”

콘라드 오르바는 이를 갈며 궁정 회의장에서 무심한 시선으로 자신을 응시했던 은백색 머리카락의 붉은 눈 남자의 얼굴을 떠올렸다.
유연하면서도 가느다랗고, 기다란 몸으로 자신의 몸을 조금씩 옥죄어오면서 최종적으로는 자신의 목을 조르며 숨통을 끊으려 하고 있다.
처음에는 크라시르의 입단에 대한 인사청탁 문제로 아르티아에 구속되면서 자신이 대처할 수 없도록 자유를 빼앗는다.
구속된 귀족들이 아르티아 내부에서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을 틈타 추가적인 비리를 터뜨리고 계속해서 압박을 해오는 일련의흐름이 잘 짜 맞춰진 순서로 흘러가는 것이 너무나도 인위적이었다.
틀림없이 은현이 조장한 상황이 분명하다.

“나는…도대체 무엇과 싸우고 있었던 것일까.”

처음에는 그저 마녀의 집에서 기생하여, 그녀의 명성과 부를 누리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별 볼 일 없는 남자라는 인상뿐이었다.
자신을 위협하고, 걸어오는 싸움을 망설임 없이 받아들이겠다는 남자의  자신감이, 그저 마녀의 연인이라면서,그녀의 위세를 등에 업고 있는 젊은 남자의 객기를 부린다고, 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 봤자 상대는 평민이며 왕국의 국민도 아닌 외국인.
자신은 오랜 시간 동안 대를 이어오면서 쌓아온 재산과 인맥들, 그리고 왕가가 있었다.
개인의 남자 하나 따위는 기어오른다면 간단하게 찍어누를  있다고 생각했다.

“도대체 어째서….”

뒤늦게 깨달아 보니, 자신의 힘이나 다름없던 재력과 권력, 인맥들은 모조리 소용이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무슨 수작을 부린 것인지, 최종적으로는 왕가마저도 자신에게서 등을 돌렸다.

“젠장….”

콘라드 오르바는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겨 자신의 집무실에 도착하자마자, 벌컥 문을 열어젖히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 아버지!”

집무실 안의 소파에 앉아, 콘라드를 기다리고 있었던 빌라드가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건의 원흉이나 마찬가지였던 빌라드의 얼굴을 보자마자, 지금까지 끓어오르고 있던 분노가 단번에 터져나갔다.

“이…빌어먹을 놈!”

퍼억!

“크윽!?”

정확하게 뺨을 강타하는 콘라드의 주먹은 묵직하고 둔탁했다.
일반적인 주먹이었지만, 아버지에게 맞은 빌라드의 고개가 옆으로 휙 돌아가면서 입천장이 찢어지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네놈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고 있느냐?”

“그건….”

“어째서 지원 원정에서 네놈이 벌였던 짓을  아버지에게 다 말하지 않았지?”

“그, 그것이….”

지금과 같이 자신의 실수로 아버지에게 폭력을 당할 것이 뻔한 데, 말할  있었을 리가 없었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만행과 실수를 덮고 평소처럼 생활할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빌라드도, 순식간에 몰락하게 된 집안의 상황에 절망적인 기분이었다.

“도대체가!”

퍼억!

날이 갈수록 격해지는 기분을 분풀이를 위해, 콘라드가 빌라드의 복부를 걷어찼다.

“크헉!”

쿠웅!

정통으로 복부를 가격당하면서, 벽에 부딪친 빌라드가 숨을 토해냈다.
자신의 복부를 양손으로 부여잡으며 신음을 내뱉고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일어나지 못하는 아들의 몸을 계속해서 발길질을 해댔다.

“네놈!”

퍼억!

“하나 때문에!”

퍼억!

“이게 무슨!”

퍼억!

“꼴이냔 말이다!”

퍼억!

“콜록, 콜록!”

일방적인 아버지의 폭력에 저항하지 못한 빌라드는 격통으로 전신을 부들부들 떨며, 몇 번이고 걷어차인 복부를 감싸면서, 일어나지 못했다.

“그깟 여자 하나에게 보복을 하겠답시고 이 난리를 피워서 결국에는  사단을 만들다니.”

에린에게 품고 있었던 증오와 분노의 거무칙칙한 감정은 그만큼 사리판별을 불가능하게 만들 정도로 치우쳐져 있었다.
멋대로 만행을 저지른 결과는 참담했다.

“네 녀석에게 이제는 볼  없다! 썩 꺼져!”

아래로 추락해가는 집안의 명예와 권력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데, 공헌하지 못할망정, 도리오 개판으로 만들고 있는 빌라드를 바라보는 콘라드의 눈초리는 더 이상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표정이 아니었다.

“크….”

아직도 전신의 격통이 가시지 않는 빌라드는 아버지의 호통에 제대로 대꾸하는 것조차 불가능.
오히려 그의 말을  한마디도 듣고 싶지 않다는 듯 등을 돌려 집무실을 나가는 동안, 콘라드는 아들을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다.

“저 무능한 것을 도대체 어떻게 해야 했던 건지….”

빌라드에 대한 콘라드의평가가 바닥을 치기 시작했던 것은, 아이테르에서 에린과 엮이는 사건이 하나둘씩 발생하면서부터였다.
자신보다 하급생이며 평민이나 다름없는 소녀의 외모에 혹해, 어줍잖은 생각과 수단으로 품어보려는 자신의 저급함이 스스로를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있었다.
후계를 장남인 빌라드가 아닌, 차남쪽으로 진즉에 갈아 치워버려야 했던 걸까.
이러한 고민도 이제와서는 쓸모없는 가정이다.

“쯧…어서 서둘러야겠어.”

페르니아스 왕국에서는  이상의 미래가 없다.
한시라도 빨리 몰수당하지 않고 은닉시켜두었던 비밀 재산을 처분하여  나라를 떠나야 했다.
추가적인 조사가 들어오면서 은닉재산의 존재를 눈치채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렇게 판단을 바친 빌라드 오르바는 저택과 가문의 사람들 중,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저택 내부의 지하 금고를 향했다.

“그 망할 자식만 아니었어도….”

순간  1년 전, 마나스트림의 치료제를 대량에 구매하여, 다수의 귀족들에게 비싼 값에 판매하면서 이익을 챙기려 했던 기억을 떠올리고, 이를 갈았다.
자신에게 비싼 값에 대량의 치료제를 팔아넘김과 동시에, 그보다 더한 대량의 물량을 페르닌에 헐값으로 풀면서 막대한 손해를 보았던 것을 생각하면, 잠을 자다가도 이불을 발로 찼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때도 자신에게  엿을 먹였던 것은 다름 아닌 은현이다.
그 일만 아니었어도, 지금껏 모아두었던 자신의 재산의 절반이 날아갈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일단은…하루라도 빨리 처분하고 페르닌을 빠져나가는 게 먼저다.”

분노로 꽉 쥔 주먹을 떨면서도, 콘라드 오르바는 일의 우선순위를 굳게 지켜나갔다.
집안이 몰락하면서 저택에서고용하던 고용인들은 모조리 해고를 시켰다.
긴 역사를 이어왔던 광활한 백작 저택에 있던 것은 이제, 아내와  아들, 그리고 자신뿐이다.
하루아침에 들이닥친 집안의 변고에 전 백작 부인은 침실에서 둘째 아들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대량의 책들을 보관하고 있는 서재에 도착하여, 방문을 걸어 잠그고 주위에 누군가가 있는지 확인했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곧장 표시해둔 바닥의 무거운 타일 하나를 낑낑거리며 들어 올렸다.

“후우….”

곧이어 모습을 드러낸 금속제의 자신의 비밀금고의 모습을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조심스레 손을 뻗어 잠금장치를 해제하려던 순간.

“…음?”

금고에 걸려있어야  잠금장치가 작동하지 않았다.
오직 본인 마력의 주입에만 반응하여 해제되도록 설계된 특수 잠금장치는 콘라드 오르바의 손에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설마….”

머릿속으로 싸늘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심장의 고동은 점점 빨라지고 호흡은 불규칙적으로 가파르게 기울어져 간다.
다급함에  이겨, 무거운 금속의 손잡이를 벌벌 떨리며 붙잡고는 금고의 문을 열었다.

“아….”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금고의 내부에 콘라드 오르바는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
금괴, 금화, 귀한 보석들.
자신이 한평생을 바쳐 모아 담아두었던, 가족에게조차도 알리지 않았던 자신의 비밀 재산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있어야 할 것들은 없고, 금고 안에 있었던 것은 달랑 작은 종이 한 장.
허망한 표정으로 벌벌 떨리는 손을 내뻗어, 그 종이를 붙잡았다.
종이의 내용을 읽어나간 콘라드 오르바의 두 눈이 파르르 떨렸다.
적혀 있었던 내용은 매우 짧았다.

[잘 먹겠습니다. ^.^]

분노를 유발시키는, 웃기지도 않는 웃음 표시의 글자.
언제, 어떻게, 어째서 등의 의문 따위는 자리를 잡을 틈도 없이, 콘라드 오르바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끝까지 자신을 농락하는 뱀의 혀에 대한 모멸감.
마침내 콘라드 오르바의 이성이 끊어졌다.

“으아아아아아아!”

 ◆ ◆

“좋아. 이제 끝.”

“현아…. 우리 정말 이래도 돼?”

자신에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거대한 자루의 무게를 실감하면 실감할수록, 에린은 쿵쾅거리는 심장의 고동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느닷없이 자신에게 용돈이나 벌러 가자는 은현에 제안에 아무런 생각도 없이 따라와, 총 14명의 귀족 저택 내부에, 은닉된 재산이 있는 비밀금고를 털고서 밤하늘의 건물 위를 뛰어다니고 있는 것이 현재 상황이다.
많은 비리를 통해 막대한 이익을 축적한 귀족들이 비자금으로 따로 빼돌리면서 은닉한 비밀 재산이 존재할 것이라는 은현의 예상은 정확했다.

“걱정돼?”

“나, 나는 지금 심장이 터질 것만 같은데….”

지금 에린의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자루 속에 들어있는 귀금속들의 무게를 가치로 환산한다면, 백금화 수백 닢은 간단하게 나온다.
모험가 일을 1년 동안 하면서도 백금화 같은 화폐는 만져본 적이 없었던 에린의 입장에서는, 밤하늘을 달리고 있는 와중에도 팔과 다리가 후들거려서 자루를 놓칠 뻔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게다가 도둑질은 나쁜 짓이잖아. 물론 나쁜 사람들이 빼돌린 돈이라는 건 알겠지만, 자칫 잘못해서 우리가 신고라도 되면….”

그런 상황을 상상하자니, 자연스레 에린의  속이 아파 왔다.

“이거는 저쪽에서도 신고못해.”

“어? 어째서? 우리 지금 나쁜 짓 하고 있는  아니야?”

“애초에 우리가 지금 털고 있는  돈들은 기록된 재산 속에 등재되지 않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재산이야.”

“…잘 모르겠어.”

그다지 머리가 좋지 않은 에린의 입장에서는 아직 은현의 말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건물 옥상 위를 뛰어다니며 대화를 하던 중, 은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흐음, 예를 들어서 오늘 저녁 식사에서 소시지가 나왔다고 하자.”

“응? 응.”

“식사를 다 마쳤는데, 에린은 오늘 먹었던 소시지가 너무 맛있어서 이걸 아껴 먹으려고 따로 몇 개를 빼두고, 누구도 모르는 장소에 숨겨두었다고 가정하는 거야.”

“나,  그렇게 먹보 아닌데….”

“…아무튼.”

“응.”

묘하게 은현 속의 자신의 이미지가 신경이 쓰였던 에린이, 소심하게 항의를 했지만.
은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런데 에린이 소시지를 아무도 모를 거라고 생각했던 장소에 숨기는 거를, 엘빈이 보게  거지.”

“…그래서?”

“에린이 떠나자마자, 숨겨둔 소시지를 모조리 엘빈이 먹었다고 치면은 기분이 어떨 것 같아?”

“그야 엄청 화나겠지! 현이나 일리아나님, 엘레노아님한테 일러서 오빠를 혼내달라고  거야!”

“그런데 소시지는 이미 없잖아. 모두 엘빈이 먹어치우면서 뱃속으로 사라졌는데. 그곳에 소시지를 숨겼다고 말로 하더라고 하더라도, 정작 중요한 소시지가 없는데. 그걸 어떻게 증명해?”

“혀, 현이는 내 말을 믿어주지 않을 거야…?”

예를 들어 설명하는  뿐인데, 서운한 표정을 짓는 에린의 얼굴을 보고 은현이 쓴웃음을 지었다.

“나야 당연히 에린을 믿어줄 수 있지. 하지만 이런 소시지의 이야기를 귀족들과 지금 우리들이 털어버린 비자금과 비교해보면, 왕가가 지금의 귀족들을 믿어줄  같아?”

“아….”

에린은 납득한 표정을 지었다.
현재 비리 귀족들은 은현이 풀어둔 귀족들의 비리가 연달아 터지면서, 많은 것을 잃었다.
귀족들의 비자금으로 형성해둔 은닉재산을 소시지에 비유를 하기는 했지만, 은현의 설명은 제법 에린의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표현인 듯했다.

“게다가  돈들은 모두 부당한 방법을 통한 비리들도 축적시킨 더러운 돈들이야. 이 돈들을 잃어버렸다고 왕가에 신고를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그렇네…. 응. 이해했어.”

결국 뒤가 켕기는 나쁜 짓을 많이 했기 때문에, 자신들이 당한 피해를 누군가에게 하소연하는 것도 불가능하단 이야기나마찬가지다.

“그나저나, 에린.”

“응? 기척을 숨기는 기술도 익혀뒀구나. 게다가 많이 능숙해.”

기척을 숨기고 은밀하게 이동하는 기술을 가르쳐줄 생각이었는데, 소녀는 아무런 무리도 없이 은현을 곧잘 따라왔다.
은현이야 과거에 왕궁에도 혼자서 잘만 드나들어 왕비의 침실에 숨어들었던 전적이 있을 정도로 훌륭했지만.
아무리 봐주고 있다 하더라도 그런 은현을 무리 없이 따라오고 있는 에린의 수준은 확실히 칭찬해줄 만한 수준이었다.

“헤헤, 진짜로? 기척을 숨기는 방법. 제라드님한테 배웠거든.”

“…제라드한테?”

“응. 근데 아직도 제라드님처럼은 못 따라 하겠어. 제라드님은 이 방법으로 결혼하고 싶은 여성분을 쫓아다니면서도 3일 동안 걸리지 않으셨다는데. 난 그게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 건지 이해가 가지 않거든.”

“…그딴 건 배울 필요 없어.”

가끔가다 보게 되는 제라드의 한심한 모습 중 하나가 이거다.
거의 ‘스토커의 호흡’ 수준으로, 이상한 부분에서 자신의 재능을 남김없이 발휘하는 것.
또 그게 뭐가 자랑이라고, 한창 성장하고 있는 어린 소녀에게이상한 버릇을 가르치고 있다는 말인가.
1년 동안 에린을 너무 자유롭게 방치해둔 자신의 실수라는 것을 은현이 자각했다.

“…앞으로 내가 훈련 봐줄 테니까, 어디서 이상한 거 배워오지 마.”

“응?”

굳은 표정으로 엄중히 내리는 스승의 명령에 제자는 고개를 갸웃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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