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6화 〉296. 변경령 지원
“화내면 지는 거야…. 이성을 잃으면 지는 거야…. 그런데….”
도저히 제정신을 유지할 수가 없다.
저 거대한 대형 트럭과트레일러를 보고 있자니, 정신이 어질어질해진다.
“에밀리아. 첫 시 운전의 상태는 어때?”
“본 개체의 판단으로는 약 98%의 가동률로. 오차범위 내입니다. 문제없다고 판단됩니다.”
“좋아. 곧바로 게이트를 설치해서 모그라프령 근처로 이동하자.”
“명령을 수락합니다.”
이미 모그라프령 인근에는 일리아나의 협력으로 게이트를 설치해둔 상태.
옵티머스가 완성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제대로 포장되지도 않았고 상대적으로 너무 큰트럭을 운행하기에 이곳의 도로는 폭이 너무 좁았다.
자신만만하게 유리아에게 드라이브를 경험해보라고 말은 했지만, 장거리 운행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결국에는 대규모의 크기로 설치한 게이트를 통해서 트럭 자체를 모그라프령 근처에 전이시키고 단거리로 운행하는 방법이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었다.
모그라프령 인근으로 전이한 옵티머스 트럭은 인근에 준비해둔 다수의 마차 옆에 깔끔하게 주차를 시켰다.
에밀리아의 통제에 따라 마력을 이용한 원거리 무선 조작이 가능한트럭이 주차를 끝내자, 트레일러의 뒷문이 열리면서 적재된 물자와 함께 타고 있던 다수의 인형이 일제히 움직임을 개시했다.
엘더브레인인 지휘 개체인 에밀리아의 명령으로,다수의 인형이 마차 내부에 차곡차곡 물자들을 옮겨 싣는 것을 보고, 유리아는 은현에게 물었다.
“굳이 인근에서 다시 다른 마차에 물자를 옮겨 싣는 이유가 뭐예요?”
“옵티머스는 아직 공개하고 싶지 않거든요.”
대량의 물자를 한꺼번에 옮겨실을 수단으로 사용할 겸, 이번에 옵티머스의 가동을 해보고 싶다고 강력하게 주장을 해온 것은 에밀리아의 의사였다.
‘인형이면서 점점 자기주장이 또렷해지고 있네.’
마치 자신을 창조해냈던 인형사이자 인형이었던 아르키스처럼, 점점 자신의 의사를 확립해 나가고 있었다.
수많은 행동 패턴들을 기억 장치 속에 저장하고, 학습해나가면서 성장하고 있는 에밀리아는 이미 자아가 없는 인형이라기엔 자신의 의사가 너무 또렷했다.
강력하게 자신의 스펙을 강화할 수 있는 신규 장비나, 옵티머스 같은 골렘의 제작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 또한 그러한 이유에서이다.
“솔직히 이거 지금 공개하면 왕국 측에서도 큰 문제가 아닙니까. 제조 방법이나 기술을 공개하라고 시끄럽게 난리일 텐데, 그렇다고 양산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설계도나 기술을 공개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옵티머스와 기타 자재들은 모두 여신의 권능으로 만들어낸 물건들뿐이다.
옵티머스를 공개한다는 것은 자연스레 자신이 신의 사도이며, 권능을 공개해야 하는 것과 상황이 필연적으로 따라온다.
순전히 에밀리아의 강력한 주장과 자신의 취미의 일환에서 제작된 골렘이었지만, 지금도 한 대만을 제작하여 사람들을 돕는데 베르단디의 허가를 받았을 뿐이지, 이것을 대량으로 양산하여 대륙의 문명의 밸런스를 무너뜨리는 것은 금지되어있었다.
애매모호 한 경계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와중이다.
“…그렇죠.”
유리아는 은현의 말에 깊이 공감했다.
이 트럭 하나가 공개되는 것만으로도 왕국은 큰 파란을 불러일으킬 것이 분명했다.
처음 은현과 알렉스를 통해서 옵티머스를 보게 되고, 그와 동시에 제안받은 협상내용을 디아네 왕비에게 전달하자, 디아네 왕비의 반응은 꺼림직함 그 자체였다.
각 영지에서 징수하는 세금의 30%는 도저히 적은 숫자라고 하기엔 어려웠다.
그것도 10년의 분량.
하지만 지금 당장 대량의 물자를 준비하여 모그라프 변경까지 운반을 하는 것에도 소요되는 식량과 인건비들을 감안하면, 얼추 계산해보았을 때 남는 장사인 것은 당연하다.
이런 제안을 해온 것이 다름 아닌 은현이었기에, 디아네 왕비는 경계하며 이 협상을 받아들일지 말지를 고민했지만.
결국 디아네 왕비는 유리아의 중개로 들어온 은현과 알렉스의 협상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 알렉스와 함께 준비된 마차를 타고 먼저 가서 물자의 도착을 알려주세요.”
인형들이 이미 다른 마차에 트레일러 안의 물자들을 모두 옮겨 싣는데 한 창인 지금.
유리아는 이곳에서 부여된 자신의 역할에 고개를 주억였다.
“알았어요.”
“에밀리아, 두 사람이 탈 마차의 마부로 인형 하나만 붙여줘.”
“명령을 수락합니다.”
유리아와 알렉스가 인형이 모는 마차에 탑승하여 먼저 출발했고, 뒤이어 대량의 지원 물자를 실은 마차들이 들어올 예정이라는 것을 경비를 서고 있던 위병들에게 알렸다.
소식을 들은 모그라프 백작이 손수 제 발로 나와, 두 사람을 맞이했다.
“이렇게 빨리 지원 물자를 보내주다니, 고맙습니다. 소공작.”
“아닙니다. 모그라프 백작님. 아르미타스와 모그라프는 선대 때부터 오랜 교류를 이어왔던 가문. 돕는 것은 당연하죠. 게다가 무조건 선의로 돕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대가로 큰 이득을 본 것은 사실상 공작령이다.
대량의 지원 물자를 보내는 것은 큰 지출이 들기 마련이지만.
‘게이트’를 통해서 인근으로 전이해 인형들의 도움으로 물자를 옮긴 덕분에, 물자의 비용 이외에도 큰 지출로 이어지는 운송비를 거의 제로의 수준으로 아낄 수 있었다.
사실상 장기적으로 봤을 때 왕가에서 징수하게 되는 세금의 30% 감면은 공작령에 어마어마한 이득을 가져다줄 예정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제 입장에선 당장 필요한 물자를 대량으로 빠르게 지급해준 것에 크게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싶습니다. 논공행상이 벌어지기 이전부터 지원 물자를 준비하여 운송하고 있었던 건가요?”
본래라면 다음 달쯤에나 도착할 수 있었던 지원 물자를, 궁정 회의가 끝난 지 약 열흘 만에 곧바로 준비할 수 있었던 것은, 시간상으로 일 처리가 너무 빨랐다.
은현의 ‘게이트’라는 아티팩트의 이동수단을 모르는 모그라프 백작의 입장에서는 궁정 회의에서 벌어진 논공행상의 이전부터 지원 물자를 준비하고 있었다고 밖에 생각이 되지 않았다.
“하하,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자세히 설명드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백작.”
“흐음?”
어째서 설명을 얼버무리는 것인지, 모그라프 백작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크게 의문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대량의 물자를 빠른 기간 안에 지원해주는 것만으로도, 알렉스의 호의는 충분히 전해졌다.
게이트라는 아티팩트의 존재를 자세히 설명할 수 없는 알렉스의 사정을 헤아리며, 이 이야기는 마무리를 지었다.
“그리고 왕녀 전하께도 감사의 말씀을 올리겠습니다. 친히 병력을 이끌고 변경 요새의 지원에 직접 참가해주신 점, 이 영지의 주인으로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감사의 인사는 고맙게 받을게요.”
유리아는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딱히 모그라프 백작에게 원하는 게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이런 감사는 적당히 받아두는 것이 이야기를 질질 끌지 않고, 정리하기에 편했다.
“곧바로 당분간 머무르실 저택을 안내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두 분의 호위나 시종은….”
“곧 도착할 예정이니, 그 부분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그러시군요. 알겠습니다.”
◆ ◆ ◆
“어때? 전투에도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아?”
“전투에 적합한 인간형의 구동은 아직 제대로 된 조정이 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지금 당장 변형을….”
“그만, 됐어. 그건 나중에 조정하자. 지금 여기서 변신하면 너무 눈에 띄잖아.”
“…명령을 수락합니다.”
마치 인간형으로의 변신을 고대라도 하고 있었던 듯,곧바로 명령을 내리려던 것을 은현이 황급하게 말렸다.
급한 은현의 만류에 에밀리아는 살짝 아쉬운 표정을 지으면서, 옵티머스의 변형 명령을 철회했다.
은현은 물끄러미 자신이 제작한 인형들이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을 응시했다.
인형사의 후계로서 아르키스의 지식과 유산을 계승한 뒤로, 스스로의 아이디어와 제작방식을 적용시켜 탄생한 인형들은 겉보기에는 아르키스의 인형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하지만 내부적인 성능까지 비교를 해본다면 확연히 차이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어때? 내가 만든 인형들의 성능은?”
“질문의 의도를 모르겠습니다.”
“내가 만든 인형과 너를 비롯한 아르키스의 인형들과 비교를 해보면, 전투력의 차이는 얼마나 벌어지지?”
“…….”
에밀리아는 굳게 입을 다물었지만.
인형의 머릿속에서는 어마어마한 양의 데이터들이 오가면서, 방대한 숫자의 계산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1.5배로 전 마스터의 전투력이 더 압도합니다.”
“그렇군.”
은현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작 기술에서도 일류에 해당하는 아르키스의 인형술을 따라잡기에는 아직 부족하다는 것을 아르키스의 인형에서 직접 선고받았음에도, 담담하게 그 사실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것은 현 마스터의 옵티머스 골렘 제작 기술이 반영되지 않은 결과로, 변수로서 이 사항을 추가한다면, 절대로 전 마스터에 뒤지지 않는….”
“아, 됐어. 위로하지 마. 쿨하게 받아들이고 있는데, 네가 그렇게 말하면 괜히 비참해지잖아. 내가 침울해할 거라고 생각 한 거야?”
에밀리아가 이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아르키스가 학습시킨 알고리즘의 결과다.
아르키스는 어쩌면 자신의 뒤를 이을 후계가 은현이 될지도 모른다고 예상했다.
그렇다면 언젠가 은현이 자신과 비교를 했을 때, 냉정한 선고에 자신이 침울해할 거라 생각을 했던 것일까.
‘아니, 아르키스라면 그냥 날 조롱하기 위해서 넣은 알고리즘일지도 모르지.’
성격이 나쁜 자신의 인형 친구는 아주 가끔가다 그런 식으로 자신을 놀리고는 했었다.
추억에 잠긴 표정으로 과거의 친구를 회상하는 은현의 얼굴을 에밀리아가 유심히 바라보았다.
“전 마스터의 생각을 하고 계십니까?”
“그런데?”
“어째서 그런 표정을 지으시는 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내가 무슨 표정을 지었는데?”
굉장히 당연한 사실을 받아들인 얼굴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에밀리아의 질문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무척 담담하고 당연하다는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그게 뭐 잘못됐어?”
“전 마스터는 현 마스터가 자신과의 격차를 실감하게 된다면 분명 침울해할 것이 틀림없으니, 위로의 말을 전해주어야 한다고, 학습시킨 정보가 존재합니다.”
“…그 망할 인형이.”
아니나 다를까, 이 대륙에 존재하지 않게 되었음에도 은현은 자신의 인형 친구가 남긴 잔재와도 같은 장난에 쓴웃음을 지었다.
“…한번 위로해봐. 그러면.”
재미있다는 듯 에밀리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하자, 에밀리아는 담담하게 대꾸했다.
“저장된 전 마스터의 목소리를 로드합니다.”
-날 따라잡으려 하다니, 100년은 일러, 이 멍청아.
몇 년 만에 들은 아르키스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시비와 조롱이 섞인 반가운 목소리였다.
“…이게 위로냐? 망할 인형이.”
어이없다는 투로 말을 하면서도, 은현은 실실 웃었다.
근 2년 만에 다시 한번 듣게 되는 인형 친구의 목소리는 굉장히 반갑고, 그리웠다.
“그나저나…. 슬슬 움직일 때인가.”
페르닌의 몰락한 귀족들이 취할, 앞으로의 행동을 예측하며 은현은 다음의 계획을 머릿속으로 구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