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94화 〉294. 살충 청소 작업(2) (294/730)



〈 294화 〉294. 살충 청소 작업(2)

“…….”

“…….”

착 가라앉은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사람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어두운 심문실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마법등에 비친 월터 후작은 침중한 얼굴로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리오드는 팔짱을 낀 채로 침묵을 지키고 있는 월터 후작을 응시했다.
 침묵의 시간이 너무나도 어둡고 답답하고, 짜증을 불러일으켜, 마침내 월터 후작이 고개를 올려다보며 리오드를 노려본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빨리해라.”

“…….”

“한심한가? 그렇겠지.”

월터 후작은 침묵을 지키고 있는 리오드를 보며 비릿하게 조소했다.

“어떻지? 통쾌한가? 나의 몰락이? 네가 그토록 들어가고 싶었던 근위기사단이, 바닥으로 추락을 하고 있으니까.”

스스로의 처지를 비웃고 격해지는 감정은 이내 눈앞의 과거의 동기에게 분노로 표출되어 갔다.

쿠웅!

“뭐라고 말해보라고!”

테이블을 내리치며, 팔짱을 끼고 묵묵히 침묵을 고수하고 있는 리오드에게 언성을 높였다.

“딱히,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

담담하고 무심한 시선으로 대꾸하는 리오드의 말은, 잔뜩 격해진 월터의 이성을 더욱 불태우는 불쏘시개가 되었다.

“…네놈은 항상 그랬어.겨우 별 볼 일 없었던 자작가 집안의 아들이었으면서, 항상 나보다 뛰어났어.”

리오드와 월터 후작은 이른바 20년 전, 젊었을 적 함께 아르티아를 졸업했던 동기다.
졸업과 동시에 왕국 내에서 유일하다시피 했던 크라시르 근위기사단에 입단시험을 봤고, 월터 후작은 합격했으며, 리오드는 떨어졌다.
검술의 실력과 수준의 격차가 떨어졌기 때문에 결과가 달랐던 것이 아니다.
가지고 있던 집안의 위상이 달랐기 때문에 떨어졌다.
리오드의 집안은 귀족의 위계 사이에서 남작의 바로 위, 자작 가문의 집안이었다.
심지어 궁정 내부에 이렇다 할 인맥도, 재력이나 권력도 가지지 못한 중규모의 지방 영지를 운영하는 영주의 가계.
반면에 월터 후작은 다르다.
크라시르 근위기사단장의 아들로 태어난 월터는 그가 태어날 때부터 이미 자신의 앞날이 정해져 있었다.
검에 대한 재능이나 개인이 가지고 있는 목표와 생각과는 별개로, 월터 후작은 아버지의 자리와 가문을 물려받아야  입장이었다.
그렇기에 월터 후작의 근위기사단 입단은 시험을 보기 이전부터 합격으로 내정되어 있었던 문제다.

‘나는 저것과는 다르다.’

월터는 생각했다.
검술의 실력만이 조금 뒤쳐져 있을 뿐, 가지고 있는 권력도, 인맥도, 재력도, 모든 것이 리오드보다 앞서고 있다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은 리오드보다 우수하다.’

하지만 그렇게 스스로를 변호하고 있던 우월감에도 불구하고, 언제부터인가 점점 리오드가 거슬리기 시작했다.
제국과의 전쟁이 시작되면서, 왕가를 지켜야 하는 근위기사단과는 달리, 리오드는 곧장 전선에 뛰어들었다.
기사의 신분으로써 왕국의 소속으로 전선에 참가했던 리오드는 언제부터인가 신비한 인연들을 만나 그들과 팀을 결성하고 별개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리오드가 이끌고 있던 팀의 활약 소식이 왕국에 전해져 왔던 것이 월터의 기분을 거슬리게 만들었던 시초다.

-제국의 병사를 습격받은 소영지와 마을들을 지켜내고 많은 사람들을 구해냈다.

-많은 생명들을 제물로 악마를 소환하려 했던 위험한 마법사를 처치하여 전쟁의 판도를 바꾸는데 큰 기여를 했다.

-제국의 황제를 쓰러뜨리고 제국과 연합군 사이의 전쟁을 끝냈다.

페르니아스 왕국뿐만이 아니라, 타국의 많은 사람들까지 리오드의 이름을 알고, 그를 영웅으로 칭송하기 시작한다.
그의 활약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그보다 우월하다고 굳게 믿고 있었던 월터의 자존심이 긁히고 찢어지고, 뜯겨 나가고, 깨져나갔다.
전쟁이 끝나고 왕국으로 복귀한 이후에도 리오드에 대한 입소문은 끊이지 않았다.
이후 그의 공로로 인정받아 리오드의 올리비온 가문은 승작이 결정되어 후작으로 승작되고, 리오드는 선대 왕에게 ‘자신의 기사단’인 아르티아의 창단을 요청했다.
자신의 대에서 승작을 시킬 정도로 혁혁한 공을 세운 것은 그 자신에게 매우 명예로운 일이었다.
그것도 1위계도 아닌 2위계의 승진.
거기에 왕국 내에서 유일하다시피 했던 크라시르 이후, 아르티아라는 두 번째 기사단이 생겨났던 것도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항상…. 항상 나보다 우수하면서 나를 앞질러 나가지.”

도저히 자신이 따라잡을  없는 격차를 벌리면서.
그것을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그의 마음속에 있었던 열등감이 자극을 당했다.
왕국 내부의 이름있는 고위 귀족들모두가 리오드를 탐냈다.
리오드를 탐내려고 포섭하고, 자신의 딸과의 정략결혼 등을 내세우거나,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등, 달콤한 말로 그를 유혹하는 제안들이 끊이지 않았다.
‘훌륭한 기사의 표본’과도 같았던 리오드에게 마음을 빼앗겼던 귀족 가문의 여식들도 한둘이 아니었다.
그중에서 단연 화제가 되었던 것은 지위와 재력, 권력등의 많은 것을 약속하며 자신과 결혼을 요구했던 베슬 후작 가문의 여식, ‘디아네 베슬’의 구혼을 거절했던 것이었다.
당시 사교계에서 가장 높은 위상을 차지하고 있었던 디아네의 구혼 제안을 거절한 것은, 귀족 사회나 사교계에서나 보기 드물었던  화제와도 같았다.

“니가 뭐가 그렇게 잘났지?”

많은 파벌 귀족들의 권유도 거절하고, 사교계의 꽃이나 다름없었던 디아네의 구혼도 거절하면서 리오드는 돌연 테레지아와 결혼했다.
그것도 ‘혼전임신’이라는 불건전한 형태로.
그때부터, 테레지아는 사교계에서 적극적으로 활동을 개시하여 남편인 리오드의 위상을 끌어올렸고, 그의 앞길을 위해서 헌신적인 내조를 시작했다.
새롭게 치고 올라오는 영웅이자, 귀족의 출현.
많은고위 귀족들이 자신의 파벌에 흡수되지 않고, 통제를 따르지 않고 혼자만의 힘으로 성장하는 리오드를 경계했으며, 그가 더는 치고 올라오지 못하도록 견제하고 짓밟았다.
그럼에도 20년 동안 한쪽 파벌에 휩쓸리지 않고 중립의 태도를 유지하며, 크라시르 근위기사단을 제치고 왕국 최고의 기사단으로 명성을 드높인 리오드와 테레지아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이야기 속의성공신화 그 자체다.

“도대체 네놈과 나의 차이가 무엇이기에!”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지기 직전이면서, 입장의 차이가 뒤바뀌어버린 월터 후작은 질투와 열등감이 섞인 시선으로 리오드를 노려보며 물었다.

“검술의 재능 때문인 건가?! 그깟 검술의 차이 때문에 너와  사이에 이런 차이가 벌어졌냐는 말이다!”

어느 새부터인가, 정신을차려보면 리오드는 자신의 뒤가 아닌, 앞에 서 있었다.
검술 이외에는 모든 것이 자신보다 우월한 것이 없었을 텐데도.
리오드는 자신과 같은 후작의 작위를 가지고 기사단의 수장이라는 자리를 차지하며 찬란하게 빛이 나고 있다.

“차이라….”

월터의 모든 분노를 묵묵히 받아들였던 리오드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월터가 계속해서 입에 담았던 자신과 월터의 ‘차이’를 곱씹으며 중얼거린다.

“나도 그런 생각을 품었던 적이 있었지.”

“…뭐라고?”

회상에 잠긴 듯 지그시 눈을 감는 리오드를 보며 월터가 물었다.

“그 녀석은 어째서 그렇게 강한 것일까. 나와 그 녀석의 차이는 도대체 무엇일까.”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리오드의 중얼거림을 듣고, 이해할 수 없었던 월터는 더욱 짜증을 낼 뿐이었다.
심문실에서 조사를 받아야 하는 신분임에도, 그의 분개가 섞인 외침을 리오드는 제지하지 않았다.

“차이가 무엇이냐고? 그런 건 당연하지. 짊어지고 있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짊어지고 있는 것?”

“그 녀석의 경우에는 이 대륙 전체를 짊어지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지.”

어째서 은현은 그렇게 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그것은 그가 팀을 이루면서 여행을 하던 와중에도 자기 단련을 게을리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해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그렇게 노력을 해야만 했던 것일까.
그에게 신들이 부여한 사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은현의 비밀의 일부를 알게  것은, 그가 죽고 부활한 이후부터였다.

“너와 나 사이의 차이 따위는 모른다. 생각해본 적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짊어져야 하는 것이 크면 클수록 사람은 강해져야만 한다.”

그래야 짊어지고 지탱할 수 있으니까.
은현은 계속해서 누군가, 또는 이곳,  대륙을 지키기 위해, 계속해서 자기 단련을 멈추지 않고 노력해왔다.
자신도 그의 의지를 이어나가기 위해 멈추지 않고 앞길을 걸어나갔다.
자신을 지탱하며 내조해주는 테레지아의 헌신에 마음을 다잡으며 기사단을 만들어 왕국의 백성들을 지키기 위한 힘을 길러왔다.
지금의 아르티아 기사단은 리오드가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낸 자신의 자랑이다.
은현이 6명의 팀원들을 자랑으로 여기며 웃었듯이.

“이 나라의 중심인 왕가를 지키는 것보다, 막중하게 짊어져야 하는 것이 있을 리가없다!”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 듯 외치는 월터의 말에 리오드는 피식 웃었다.

“뭔가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군. 나는 한 번도 나의 기사단과 기사들을, 왕가를 위해서 움직인 적이 없다.”

“뭐…라고?”

리오드의 그 발언은 왕국의 예산으로 운영되는 집단의 수장으로써, 도저히 뱉어서는 안  발언이었다.

“내가 지키려고 했던 것은 이 나라의 백성들이지, 왕가가 아니야.”

더 넓은 의미로, 리오드가 짊어지려고 했던 것은, 자신의 친구인 은현이 목숨을 희생하면서까지 지키려 했던 이 대륙 자체다.
그 중에서 자신의 포용 한계가 바로 페르니아스 왕국의 백성들.
거기에 자신들의 입맛대로 권력을 휘두르는 귀족들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사사로운 귀족들의 파벌싸움에도, 왕가의 명령에도 필요 이상의 움직임을 보였던 적이 없었다.
디아네 왕비를 비롯해, 많은 궁정 귀족들이 리오드의 아르티아를 눈엣가시로 여겼던 점이 바로 이점이다.
굉장히 뛰어난 무력과 체계를 갖추었음에도 그것이 이치와 도리에 맞지 않는다면 아르티아는 움직이지 않는다.
비리에도 손대지 않고, 정치에도 참여하지 않으며, 정당하고 올바른 것을 바로 잡기 위해서만 움직이는 청렴결백한 기사들의 표본 그 자체.
아르티아는 리오드가 은현의 유지를 이어, 많은 사람들을 구하고, 도움이 되고자 만든 기사단이다.
리오드는  눈을 지그시 감으며 생각에 잠겼다.

‘나도 이렇게 될 수도 있었을까.’

리오드는 한때, 월터처럼 은현에게 질투와 열등감을 품었던 자신의 젊은 시절을 떠올렸다.
리오드가 은현에게 품었던 한때, 과거의 감정.
월터가 리오드에게 품고 있는 현재의 감정.
그것은 매우 비슷하면서도 다른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거무칙칙한 감정으로 일그러진 자의 말로가 어떠한지, 지금 이 순간 월터를 보면서 확신할 수 있었다.

‘나의 선택은 옳았구나.’

은현이 죽고, 한차례 실의에 빠져있던 몸을 일으키며, 은현처럼 되고자, 은현처럼 행동해왔다.
기사단을 만들고, 재능있으며 많은 이들을 자기 발전을 멈추지 않는 선한 기사들을직접 선발하여 모아 그들을 키웠다.
자신과 다른 동료들이 은현을 의지했듯이, 아르티아 단원들이 자신을 의지해주길 바랐다.
리오드는 자신의 꿈의 일부가 조금씩 실현되고 있다는 것을 자각했다.
자신이 걷고있는 길은 틀리지 않았다.

“그 ‘격차’를 자각하고 그것을 따라잡기 위해서,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것과,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것의 차이.”

리오드는 은현에게 열등감을 품으면서도 그처럼 되고 싶다고 노력해오며 지금까지 행동해왔다.
열등감에 휩싸여 리오드와 아르티아를 깎아내리려 했던 월터와는 다르다.

“그게 너와 나의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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