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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9화 〉289. 주인공(2) (289/730)



〈 289화 〉289. 주인공(2)

“알고 있는 녀석인가?”

“아니, 이름만 알고 있었어.”

“그 녀석이 어떻다는 거지?”

“…리오드. 혹시 운명 같은 거 믿어? 아니면, 미래의 일이 정해져 있다거나.”

“세상에 신이라는, 설명이 불가능한 존재도 있다는 걸 알게 됐는데. 다른 거라고 믿을 수 없는 게 있을 리가 없지 않나?”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긴 한데….”

유리아가 제공했던 ‘차한성’이라는 고대인의 정보는 은현으로써도 쉽게 꺼낼 수 없는 정보였다.
이것을 공개하게 되면 자연스레 유리아의 비밀까지 공개를 해야한다.
차한성의 정보만을 이야기하고, 리오드에게 설명을 하는 것도 방법중에 하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너무 많은 정보를 비공개로 해야 하기 때문에 이해를 시키기도 쉽지 않았다.

“조만간 설명할게. 지금은…. 그냥  지켜 봐줘.”

“안 그래도 지금 그 녀석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감시하고 있다.”

“뭐? 왜?”

입단부터 차한성이라는 고대인이 무언가 특별한 일을 저지른 것일까?
묘하게 인상을 찡그리고 있는 리오드의 심기가 매우 불편해 보였다.

“…입단의 계기가 딸의 소개로 들어왔다.”

“에이라가? 무슨 접점으로?”

유리아가 이야기했던 정보 속에서 에이라와 차한성의 접점 같은  존재하지 않았다.
설마 ‘까먹은 걸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그 정도로 그녀가 바보는 아니라고 은현은 생각했다.
그녀의 미래시가 틀어져도, 아주 단단히 틀어졌다는 뜻이다.

“모그라프 변경에 모험가의 신분으로 지원을 왔다고 하더군. 거기에서 에이라와 마주쳤고, 그 녀석이 작년에 아르티아에 입단 시험을 보았다는 이력을 에이라에게 말했던 모양이다.”

“모험가로 활동하고 있었다라…. 아니, 그것보다.”

은현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미심쩍은 시선으로 리오드를 응시했다.

“…한번 시험에 떨어진 사람을 딸의 소개라고, 입단을 시켰을 것 같지는 않은데?”

리오드는 크라시르처럼 인맥이나 권력 같은 것에 기대어 신입 단원을 선발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렇기에 은현이 품은 은현은 차한성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어떠한 무언가를 느끼고, 기사로서 그를 인정했다는 뜻이나 마찬가지.
심지어 그는 은현과 마찬가지로 이 나라의 국민이 아니다.
국민이었다면, 지금까지 은현이 찾아내지 못했을 리가 없다.
귀족도 아니며 평민이나 다름없는 그에게서 어떤 가능성을 느끼고 기사로서 그를 받아들인 것일까.
은현은 그것이 궁금했다.

“반대다. 하나부터 열까지, 빠짐없이 모두 확인했지. 딸의 소개라고 판단을 경솔하게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나 방금 너한테 엄청난 사심이 섞인 감정을 느꼈는데?”

그의 기분이 매우 언짢았던 것이 에이라가 엮여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눈치채고, 매우 사적인 감정으로 그의 입단 시험을 보았다는 것에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짓는다.

“착각이겠지.”

“무슨 의미인지를 알아들은 시점에서 인정한 거나 마찬가지야. 뭐 너도 아버지니까 이해는 하지만.”

무뚝뚝하여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지는 않지만, 오래 봐온 만큼 그의 표정 속에서 감정을 읽어내는 것은 은현에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이내 은현은 리오드가 말한 부분에서  가지 사실에 주목했다.

“그런데 작년에는 불합격시켰는데, 이번엔 단원으로 받아들였다라…. 뭐 때문에?”

“그 신입에게 유독 관심을 가지고 있군? 정말로 뭔가 있는 건가?”

“있어.”

은현은 망설임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내용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여러 가지 사정이 겹쳐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리오드는 눈치챘다.
애초에 차현성이라는 신입 단원의 존재를 물어보면서, ‘운명’이라는 애매모호 한 단어를 사용한 부분이 심상치 않은 일이라는 것을 짐작하게한다.
리오드는 언젠가, 은현이 제대로 설명해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며 깊게 캐묻지 않았다.

“그때는 단원에 입단할정도로 자격을 갖추지 않았기 때문이지.”

“그럼 그 1년 사이에 입단할 자격을 갖췄다고?”

“그냥 강해진 게 아니라, 아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것처럼 변했지.”

작년 차한성의 수준을 모르는 은현은 굳게 입을 다물며 리오드의 대답을 기다렸다.

“너도 알겠지만, 내 기사단의 입단 시험에서 입단 희망자의 인맥이나 신분은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요소가 되지 못한다. 신분의 차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매년 정기적으로 이뤄지는 입단 시험에는 평민인 모험가들도 다수 지원을 해오고는 하지.”

“그건 나도 알아.”

나름 자신의 실력에 자신이 있는 모험가들 중에서도, ‘기사’라는 직업을 동경하면서 꿈을 품으며 지원해오는 지원자들이 매년 많다는 것은 페르닌 안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특히나 신분의 격차를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많은 모험가들이나 평민들이 몰려 들어오고 입단 경쟁이 심화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 많은 지원자들 중에서 그 녀석을 알아본 것도 대단하네.”

“워낙 인상이 깊었으니까.”

“강하지 않았다며?”

“다르다. 너무나도 한심했기 때문에 인상이 깊었다는 뜻이다.”

“…엉?”

은현은 무슨소리냐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이도 갓 성인이  나이에, 실력도 수준 이하, 게다가 지원하게 된 동기도 ‘그냥 해보고 싶어서’라는  어처구니가 없었지.”

“…….”

“구체적인 목표도 설정이 되어 있지 않고, 동기도 정확히 없으면서, 단지 호기심만으로 입단해온 녀석에게 이 나라의 치안을 맡길 수는 없었다.”

그것은 자신을 비롯하여 지금까지 큰 명성과 영예를 쌓아온 아르티아 자체를 욕보이는 짓이나 다름이 없다.

“그런데 지금은 틀리다고?”

그런 한심한 남자를 1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뽑은 이유가 무엇일까.

“아까 말했었지. 아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것처럼 변했다고. 피곤해 보이는 두 눈에는 독기가 가득했고, 가볍고 경박한 태도였던 과거와는 달리 진중하고 예의를 차릴 줄 알게 되었더군. 마치  ‘소년’이 성장해서 ‘청년’이 되는 과정을 본  같았어. 아마 1년 사이에 모험가 일을 하면서 무언가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거겠지.”

“흐음….”

은현은 작은 추임새를 넣으며 계속해서 리오드의 말을 경청했다.

“그 녀석은 작년 입단 시험에서 있었던 자신의 무례한 태도를 정중하게 사과하고 아르티아에 입단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그 동기는 두 가지, 첫 번째는 강해지기 위해서, 두 번째는 복수를 위해서라고 하더군.”

“복수라….”

“범죄 수사의 임무를 맡으면서 반드시 붙잡고 싶은 상대가 있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와 동시에 상대에게 대적할 수 있을 만한 실력을 쌓을 수 있는 곳으로, 왕국 기사단인 아르티아의 입단을 희망했다는 게 지금까지의 경위다.”

“실력은?”

“솔직히…아직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달라진 태도와 성장 속도 자체는 굉장히 눈여겨볼 정도였지.”

특히나몰라볼 정도로 자신의 눈에 독기가 서려 있고, 향상심으로 가득 찬 모습에서는 과거의 한심한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눈에 차지는 않았지만, 가능성을 보고 일단은 신입 단원으로 받아줬다는 건가?”

“그렇다.”

“대강의 경위는 알았는데, 뭐야.  떨떠름한 표정은? 설마, 에이라와 차한성이 그렇고 그런 관계야?”

에이라와 차한성의 현재 관계에 관해서 묻자, 리오드의 얼굴이 급격하게 찌그러졌다.
상상하기도 싫다는 얼굴로 은현을 노려보며 입을 연다.

“…그런 녀석에게 내가 내 딸을 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지금 너 그런 상황을 우려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나는 인정할 수 없다.”

“지켜보자고, 둘 사이가 아직 아무런 감정도 없을 수도 있잖아.”

도대체 무슨 기류가 흐르고 있기에 리오드가이렇게 설레발을 치고 있는 것인지, 정확한 사정을 모르는 은현에게는 이해할  없었다.

“너는 딸을 키워보지 않아서 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에이라는 지금 굉장히 성숙한 나이로 다른 남자들의 시선을….”

“아아, 그래. 알았어.”

본의 아닌 친구의 하소연을 들어주면서, 은현은 친구와 함께 아르티아 본부를 향했다.

◆ ◆ ◆

타악!

“윽!?”

서로의 목검이 교차하며 공격이 충돌한 도중, 에린은 자신의 대전 상대인 흑발흑안의 남성에게서 기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움직임이 변했어?’

투박하고  힘을 가득 실어 휘두르던 차한성의 목검이 에린의 목검과 충돌할 때마다 조금씩 예리하고 정교한 검술로 변하기 시작한 것.
마치 자신의 세검술을 모방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

서로의 목검을 튕겨내고, 에린과 거리를 벌린 차한성은 자신이 쥐고 있는 목검을 유심히 쥐며 골똘히 생각에 잠긴 표정이다.
검의 움직임은 그저 자신의 검술을 모방하여 따라하고 있을 뿐, 제대로  힘의 배분이나 자세는 한없이 미숙했다.
하지만….

타악! 타악!

전력을 다하지는 않았다고 하지만, 틀림없이 에린의 동작을 유심히 관찰하고 소녀의 움직임을 모방하고 있었다.
목검을 부딪칠 때마다 자세가 교정되고, 힘의 배분을 하기 시작하면서 유연한 움직임을 재현해내는 것은 경이로울 정도.
하지만 착실히 따라오고 있다고 해서, 지금껏 에린이 쌓아온 기술을 있는 그대로 베껴질 정도로, 에린의 수준도 그렇게 무르지 않았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이제는 신입 기사가 다수로 덤벼도 꿀리지 않을 수준으로 그들을 압도했던 것이 에린이다.
돌진을 통해서 공격에 나선 에린이 차한성과의 거리를 순식간에 좁혔다.

“크으…!”

곧장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에린의 어깨를 내려치기 위해 검을 휘두르려던 찰나.
에린이 공격이 시작도 되기 전에 그의 목검을 크게 쳐낸 뒤, 재빨리 자신의 목검을 회수했다.
차한성의 검을 쳐냈던 에린의 목검이 유려하게 선을 그리며 차한성의 목에 겨누어 지면서, 두 사람의 대련의 결과는 에린의 승으로 끝이 났다.

“…졌습니다.”

항복의 의사로 양손을 들어 올리고, 목검을 떨어뜨린 차한성의 말이 끝나자 훈련장의 기사들이 또다시 소란을떨었다.

“후우….”

“오오! 또 아가씨가 이겼는데!?”

“이걸로 몇 연승 째냐!?”

“기죽지 말라고, 신입! 신입치고는  잘했어!”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전의 기사처럼 비아냥의 목소리보다는, 선방했다는 위로의 말이 들려왔다는 것이었다.
그 떠들썩함 속에서, 차한성은 에린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당신은 기사가 아니신가요?”

“네? 아, 맞아요. 저는 지금…으음, 모험가를 하고 있어요.”

자신을 뭐라 소개해야 할지, 약간 망설였던 에린은 결국 최근까지 활동했던 직업을 입에 담았다.

“검을 쓰는 여성 모험가분 중에서 이렇게 강하신 분은 처음 봤습니다. 게다가…검에 담겨있는 수련의 양은….”

“양이요?”

“아, 저는…실력이 그렇게 대단하지는 못하지만 한번  검술의 움직임을 분석하고, 따라하는 게 특기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게 특기이다 보니…자연스레 얼마나 많은 노력과 연습 끝에 지금의 검술을 만드셨는지가, 목검을 부딪칠 때마다 느껴져 왔습니다.”

“그, 그런가요? 칭찬 감사합니다.”

그동안 자신이 해왔던 노력의 성과를 칭찬받은 기분이 들어, 에린은 쑥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그나저나, 한번 본 검술의 움직임을 따라온다고? 도대체  하는 사람이야. 이 사람?’

자신에게는 불가능한 기예를 선보이고 있는 흑발흑안의 남자의 정체에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이내 은현이 본부에 도착하자마자, 야외 훈련장에서 그의 존재를 감지해낸 에린이 그를 맞이하기 위해 달려갔다.

“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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