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7화 〉287. 자식 싸움이 부모 싸움으로(2)
“강력히처벌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한 귀족의 강한 목소리에, 동조하여 목소리를 높이는 귀족들의 목소리로, 궁정 회의장의 내부는 소란스러워졌다.
그 가운데, 리오드가 귀족들의 의견을 정리하여 그 귀족들에게 물었다.
“즉, 지원 원정 중, 그의 제자가 크라시르의 기사들에게 손을 댔으니, 그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건가?”
“그렇소!”
“이것은 왕가의 위신과도 관련이 된 일입니다!”
더 확실한 처벌을 위해서, 크라시르가 수호하는 페르니아스 왕가까지 엮어서 말하는 치졸한 수까지.
구태여 왕가를 엮어오는 그 의도를 읽은 디아네가 인상을 찡그렸다.
“구질구질하군.”
“말을 가려서 하시오! 후작!”
귀족들의 태도가 너무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숨겨두었던 본심이 입 밖으로 나오자, 귀족들이 발끈하여 리오드를 노려보았다.
“그대들이야말로 언성을 자제하도록. 왕비님의 앞이다.”
“크….”
코웃음도 치지 않으며 무심한 태도로 일관하는 리오드의 말에 귀족들은 자신도 모르게 침음을 삼켰다.
지금의 리오드에게 언성을 높일 수 있는 자는 같은 후작위에 올라와 있는 버나드 장관을 제외하면, 국가의 중직에 앉아 있는 몇몇 고위 귀족뿐.
현재 가장 앞장서서 강하게 항의하고 있는 것도 리오드처럼 같은 후작위에 위치이며, 크라시르의 기사단장이기도 한 월터 후작이다.
그럼에도 이 순간만큼은 월터 후작조차도 스탬피드의 근원을 해결한 영웅 중인 한 사람으로써 최대 공로자에 대한 위엄에 아무도 트집을 잡지 못했다.
시끄러운 회의장의 내부를 리오드가 한마디 하며 정리를 하자, 조용해진 분위기를 뒤집고 마침내 은현이 입을 열었다.
“아~이것 참, 우리 애가 정말 큰 실례를 저질렀네요.”
그리 말하면서도, 난감하다기는커녕 전혀 잘못한 게 없다는 듯 웃으며 익살스러운 태도를 하고 있으니, 귀족들의 성질을 긁는 것도 당연하다.
“저 자식이….”
한 귀족이 머리를 긁적이며 태연한 태도로 알렉스의 뒤에서 웃고 있는 은현을 보고, 이를 갈았다.
아무리 은현이 일리아나와 엘레노아의 남편으로 왕국 내에서 이름값과 입지에 대한 가치가 올랐다고 하더라도, 귀족들의 눈에는 그가 은현이 주위의 인맥에 기생해서 이득을 취하고 있는 기둥서방으로 밖에 보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제는 대놓고 그를 무시하는 발언을 펼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말 그대로 일리아나라는 최고 전력을 곁에 두고, 공작 가문의 사위로 들어간 그를 무시하는 발언은 앞으로 왕국에 악영향으로 미칠 가능성이 다분하다.
이번 에린의 폭력 사건을 빌미로, 소녀의 스승인은현에게 책임을 묻는 것으로, 페르닌을 떠났던 그의 아내, 일리아나를 다시 페르닌으로 불러들일 생각을 가지고 있던 귀족들은 잔뜩 분개하며 외치고 있는 오르바 백작과 일부 귀족들의 사이에서 눈치를 보며 대화에 집중했다.
“그런데 딱히 우리 애가 잘못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데, 도대체 어떤 처벌을 요구하시는 겁니까?”
정말로 모르겠다는 태도로 어깨를 으쓱이며 묻는 은현의 말에, 한 귀족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내 아들이 그 소녀에게 참을 수 없는 모욕과 굴욕을 받았소! 어찌 감히, 일개의 모험가가…!”
“그냥 모험가가 아닙니다.”
은현은 분개한 목소리로 외치는 오르바 백작의 말을 끊었다.
“듣자 하니, 에린한테 먼저 시비를 걸었던 건 댁의 아드님과 뒤에 계신 자제분들인 기사님들이라고 하던데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백작 측에서는사건의 경위를 제대로 파악하고계시지 못한 것 같습니다만?”
미소지으며 자신 있는 태도로 응수를 하고, 은현은 테이블 위에 대량의 종이 뭉치들을올려두었다.
쿵!
어찌나 많은 양이었는지, 테이블 위에 올려지면서 묵직한 소리를 낼 정도였다.
그 종이 뭉치들을 응시한 오르바 백작이 은현에게 미심쩍은 시선을 보냈다.
“진술서입니다.”
“진술서?”
“네.당시 에린과 크라시르 단원들 사이에 어떤 충돌이 있었는지, 당시의 모험가들이 목격한 원인과 과정, 결과들이 적혀 있죠. 정황에 따르면….”
은현은 가장 위의 진술서의 내용을 읽고는, 다시오르바 백작과 월터 후작, 일과 관련이 있는 기타 귀족들을 응시했다.
“배급받은 에린의 식사를 기사단 쪽의 사람들이 마법을 이용해서 건드리며, 대놓고 도발을 했다고 적혀 있습니다만?”
“…….”
오르바 백작과 귀족들에게는 금시초문이었다.
자신들의 시작으로 자초 된 일이었다는 것을 빌라드 일행이 스스로 자신들의 부모들에게 이야기했을 리가 없다.
원정의 복귀 이후, 주위 사람들의 입을 막은 다음, 무조건 에린의 잘못으로 돌려 처벌의 책임을 소녀에게 몰아지도록 여론을 형성된 상황.
당시 변경 요새에서 알렉스와 유리아에게 에린이 엮인 해프닝의 전말을 듣고 곧장 그때의 사건을 목격했던 모험가들과 사병들에게 이와 같은 진술서를 써달라고 요청했다.
수고스러운 일에 약간의 보상을 담으면서, 단 하나의 내용도 빠짐없이 장문의 진술서들을 한데 모아, 준비해온 것이다.
혹시 모를 이 상황에 대한 대응책으로써.
“그 진술서라는 것들을 어떻게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일방적인 그쪽의 주장일 뿐이지 않습니까!”
그건 그쪽도 마찬가지일 텐데, 자신들 쪽의 기사들이 거짓말을 했을 리가 없다고 확신하는 태도가 굉장히 우습다.
“게다가 양도 양입니다! 그 정도로 많은 진술서들은 누군가에게 대필을 작성시켜 날조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않습니까!”
물론 은현 측의 주장을 이 자리에서 쉽게 받아들여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도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일방적인 기사단과 귀족들 측의 주장을 뒤흔드는 것 정도는 충분하다.
“아, 이 양 말입니까? 이건 말이죠. 에린에 관한 사건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건도 진술되어있는 진술서이기 때문이죠.”
“…다른 사건?”
미심쩍은 표정을 지으며 오르바 백작이 되묻자, 은현은 미소지으며 그의 의문을 해결시켜주었다.
“빌라드 오르바, 이외의 6명의 크라시르 기사단원들이, 변경 요새의 싸움 도중, 자신들의 무기를 버리고 도주를 선택, 이후전투가 한창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 요새의 철문을 열어달라고 아우성이었다고 하네요?”
“……!”
“확인되지 않은 사실입니다! 게다가 지금 그것이 그 폭력 사건과 무슨 관련이…!”
황급히 아무 말이라도 내뱉으며 은현의 주장을 허무맹랑한 소리로 치부해버리려 했지만, 점점 변하기 시작한 대화의 흐름은 점점 은현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싸움에서 도망친 기사들이 하는 일방적인 주장을 도대체 무슨 근거로 믿을 수가 있을까요.”
“크…!”
트집을 잡으려 일어섰던 빌라드와 일부 귀족들이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하고 이를 갈았다.
만약 정말로 기사가 된 자신의 자식들이, 전선에서 검을 버리고 도망을 치려 했다는 사실이 진짜라면.
한 소녀에게 다수의 기사들이 깨져 패배했다는 사건과는 차원이 다르다.
불리한 이야기를 쏙 빼놓고 사건의 경위를 이야기했던 아들의 만행에, 오르바 백작은 주먹을 꽉 쥐며 부들부들 떨었다.
“기사단장님. 이 사실에 대해서 알고 계셨습니까?”
귀족들이 입을 닫으며 이 상황에서 말을 아끼며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려던 도중, 알렉스가 월터 후작을 향해 물었다.
“…….”
“월터 후작, 대답하세요.”
굳은 얼굴로 침묵을 지키며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는 월터 후작에게 대답을 요구하는, 짜증이 서린 디아네 왕비의 목소리.
왕국에서 가장 명예로운 왕가를 지키는 기사단의 일원이, 전투에서 도망을 쳤다는 사실은 말 그대로 나라와 왕족을 욕보이는 치욕스러운 일이다.
만약 왕가를 지켜야 하는 싸움이 벌어졌을 때, 왕족을 지키지 않고 도망을 치는 무능한 겁쟁이를 기사단원으로 입단시켰다는 사실과 마찬가지.
디아네 왕비가 재차 묻자, 월터 후작은 어쩔 수 없이생각을 마치고 입을 열어야만 했다.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사실입니다. 제가 단원들을 심문하여 일의 경위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시간을….”
“그럴 필요 없어요.”
일단 이 상황을 무마시켜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던 월터 후작은 중간에 난입하는 여성의 목소리에 말을 잇지 못했다.
“…왕녀전하.”
“제가 봤으니까요.”
유리아는 월터 후작을 노려보고 있는 디아네 왕비를 올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후에조사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리고…이게 제가 왕궁을 나가 공작령에 몸을 의탁하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왕비마마.”
싸움에서 도망치기나 하는 겁쟁이들에게 자신의 신변의 보호를 맡겨야 한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왕녀는 지금 공식적으로 왕가를 지키는 근위기사단을 믿을 수 없다고 당당하게 말을 한 것이다.
오랜 시간을 통해서 쌓아 올린 크라시르 근위기사단의 명예와 입지는, 신입 단원들의 만행으로 인해 바닥으로 추락하는 것은 한 순간이었다.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힘은, 자기가 스스로 키워나가자고 결심한 계기가 바로 이번 사건이다.
인상을 찡그리고 생각을 마친 디아네 왕비는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올리비온 후작.”
“예. 왕비마마.”
“사건의 사실관계를 명확히 파악하도록하세요.”
“왕비마마!”
“명을 받들겠습니다.”
“도주를 하려 했다는 7명의 기사들과, 그들이 적을 두고 있는 가문들까지. 철저히 수사를 해서 처벌하도록 하세요. 그리고….”
이윽고 잠시 말을 끊고, 빙긋 웃고 있는 은현의 얼굴을 보며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 소녀에 관한 건은 불문에 부치도록 하겠습니다.”
“왕비마마! 부디 결정에 재고를…!”
“원인도 기사들 쪽에 있으며, 한 명을 상대로 다수가 덤벼들었음에도 패배하고, 자신의 본분을 다하지 않고 도망쳐 왕국의 명예를 더럽히고 욕보인 자들을 지금 나보고 옹호하라는 건가요?”
“모두…모두 저자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지 않습니까! 저도…저도 제 아들에게 명확한 사실관계의 확인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이미 사실을 고하지 않았던 백작의 아들의 증언이, 지금 유리아 왕녀의 증언보다 힘이 있다고 보나요?”
“그것은…크으….”
“만약 사실이라면, 그대들에게는 이 나라의 귀족을 자칭할 권리는 물론, 명예도, 재산도 몰수될 것을 각오하셔야 할 겁니다.”
왕비가 예고한 결말은 귀족으로써의 ‘몰락’을 의미한다.
나라의 중직으로써 일하면서 축적한 재산의 몰수와 더불어, 가지고 있는 작위까지 몰수가 된다면, 오랜 역사를 이어나갔던 오르바 가문은 자신의 대에서 평민으로 전락하게 되는 치욕스러운 결말.
철없는 아들의 실수가 자신의 집안 전체를 몰락의 길로 이끌고 있었다.
‘…아니. 몰락을 자초한 것은 나인가.’
오르바 백작은 알렉스의뒤에서 뒷짐을 지고, 작위적인 미소를 짓고 있는 은백색 머리카락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웃고는 있었지만, 그 얼굴은 끝까지 가식으로 꾸며진 만들어진 얼굴이다.
은현의 얼굴은 웃고있어도, 그의 눈은 한없이무심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거기에는 통쾌함이나 희열의 감정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마치 처리하기 귀찮았던 ‘오물’을 치워버리는 것에 전혀 의미를 두지 않는, 해야만 하는 당연한 일을 처리했다는 무심함.
오르바 백작은 과거에 은현이 자신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백작님, 이건 경고에요. 싸움을 거실 거면, 걸어오세요. 받아드릴 테니까. 그리고, 댁의 아드님이 에린한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려 했던 걸 사과하는 건 바라지도 않아요. 그런데 적어도 우리 애 앞길은 막지 마세요. 적어도 에린의 근처에 얼씬도 거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시겠습니까?
첫 번째 경고.
-오르바 백작. 그 치료제를 개발한 장본인이 누구인지 아시나요?”
-이번에 제매제가 되는 남자가 개발시켰습니다.”
-참고로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말도 전해달라고 하더군요.”
두 번째 경고까지.
세 번째 경고는 존재하지 않았다.
자신은 지금, 그 경고를 무시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만약 자신을 비롯해, 크라시르의 기사단장인 월터 후작이 에린에게 강경하게 보복 대응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다면, 은현은 지금처럼 반격을 하지 않고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선을 넘은 것은 자신들 쪽이었다.
진술서만으로는 주장의 근거가 부족하여 신빙성을 의심하면서 계속 밀어붙일 여지는 충분했지만, 이미 유리아 왕녀의 증언으로 은현 측의 진술서의 주장은 사실로 확정이 지어졌다.
기사단 전체는 물론, 왕가를 욕보이게 만든 자신의 아들, 빌라드와 일행의 죄가 성립되어버린 것이다.
‘이렇게 제대로 반격 한번을 해보지 못하고 지다니.’
오르바 백작은 자신의 목을 옥죄어 오는 뱀의 움직임에 저항 한번 해보지 못하고 패배를 직감했다.
작위도, 명예도, 재산도 모두 몰수를 당하게 된 결말을 맞이하면서 평민으로 전락하게 될 예정인 오르바 백작은 주먹을 꽉 쥐며 은현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끄…으!”
상황은 언제부터인가 완전히 역전되어 있었다.
알렉스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유리아 왕녀라면 그렇다고 하더라도.
결정권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편을 들어주어야 할 것이 분명했던, 디아네 왕비가 자신에게서 등을 돌린것은 전혀 상정하지 못했다.
-할 수 있겠어? 해 봐, 한 번. 댁이 가진 권력, 재력, 무력을 다 동원해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이, 아주 짧은순간에 무너져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