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2화 〉282. (H)서큐버스의 봉사(1)
“주인님은…저에게 구세주세요. 저를 구원해주셨고, 함께 있던 아이들이 살아갈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주셨어요.”
긴 이야기를 풀어내었던 말을 마친 릴리는 올곧은 눈으로 자신의 주인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그 눈빛이, 전신으로 표현해오는 태도가, 살짝씩 떨리는 목소리가, 하나하나 간절함과 애정으로 담긴 모습.
타인을 농락하고 절망에 물든 얼굴을 맛보며 착취하는 악마라고는 볼 수 없는, 여자의 얼굴이다.
혹시라도 자신의 마음을 거절을 당하지는 않을까 불안에 몸을 살짝 떨면서, 릴리는 은현의 목욕시중을 재개했다.
천천히 그의 팔과 어깨를 거품을 내어 칠하고 닦아내는 과정을 이어나가던 도중, 마침내 은현이 입을 열었다.
“릴리, 네가 나에게 품은 감정은 사랑 같은 게 아니야. 동경과도 같은 거야. 네가 말한 것처럼, 내가 너를 구했으니까. 그래서 나에게 큰 은혜를 느끼고 있는 거고, 그래서 그런 마음을 품고 있는 거야. 그건 사랑이 아니야. 다시 한번 생각해봐.”
“아뇨. 아니에요. 그런 게 아니에요.”
릴리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담담하게 은현의 말을 부정했다.
자신의 마음은 정말로 은혜와 동경에서 비롯된 감정뿐인가?
그 마음을사랑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은현이 아내들과 신혼여행을 갔다 오면서, 그가 없는 1년 동안, 계속 고민하고 생각했다.
이제는 스스로의 마음에 대해 확신을 할 수 있었고, 그렇기에 이렇게 행동에 나선 것이다.
“주인님은 주인님의 울타리에 들어와 계신 사람들을 끝까지 끌어안고 데려가시는 분이세요. 공작 가문의 분들과 맺어진 두터운 신뢰와 아이들이 성장할 수 있을 때까지, 아이들의 생활을 지탱해줄 수 있는 보육원을 설립해주시겠다는 약속까지 지켜주셨죠.”
자신의 가슴에 품은 사람들을 끝까지 책임지려고 노력하고, 끌어안고 가려는 은현의 사고방식은 끝까지 자신을 끌어안고 가려 했던 어머니를 떠올렸다.
동시에 빚의 탕감을 위해 자신과 어머니를 포기하고 노예시장으로 팔아넘긴 아버지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배신감에 치를 떨고, 증오해 마지않았던 아버지와는 정반대의 남자.
은현에게 끌렸던 이 마음은 동경이나 충성심 같은 감정보다, 더 커다랗고 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마침내 릴리는 자신의 마음을 담은 말을 입 밖으로 꺼냈다.
“주인님을 사랑하고 있어요.”
“…….”
“주인님에게 제 몸과 마음을 모두…바치고 싶어요.”
위태위태하던 목소리의 떨림이 불안감으로 증폭되어 강해져 갔다.
처음으로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고, 작별인사조차 하지 못했던 어머니와 가족을 버렸던 아버지를 떠올린 릴리의 정신 상태는 굉장히 나약해져 있었다.
점차 울먹이던 애원이 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간다.
“저는…지금까지 지쳐있었어요.”
한 번 배신을 당하고,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면서 노예가 되어, 인생의 나락을 경험한 릴리의 마음은 굉장히 지쳐있었다.
망가져 가던 끝에, 은현의 등장과 함께 자신에게 내려온 한 줄기의 빛은 정말로 말 그대로 구원 그 자체였다.
두 번째 인생을 부여받은 것처럼, 삶에는 활기가 넘쳐 흐르게 되었고, 내일을 즐거운 마음으로 꿈꿀 수 있게 되었다.
살아있는 시간 속에 포함된 행복의 밀도 자체가 틀리다.
그렇기에 자꾸만, 주제에 맞지 않는 욕심을 부리게 된다.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있는 남자의 곁에, 언제까지고 함께 있고 싶다는 분에 찬 욕심을.
일리아나와 엘레노아는 릴리가 그 마음을 품는 것을 허락했다.
그것은 은현이 마음속에 소중한 것을 잔뜩 품게 되고, 멘탈이 무너져 또다시 자살 같은 것을 생각하지 못하도록 이 세상에 은현의 마음을 붙잡아 두기 위함.
애초에 릴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이 저택의 관리를 맡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제 마음을 거절하셔도 상관없어요.”
이것은 거짓말이다.
사실은 받아 들여주었으면 좋겠다고 가슴 속으로 깊숙이 빌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일로, 은현이 자신에게 괜한 신경을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럴 거면 아예 마음을 전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라고 생각하면서도 결심 끝에, 이렇게 고백을 하여 은현을 생각에 잠기게 만드는 것은 순전히 행복을 추구하고 싶은 여자로서 이기심이다.
‘괜찮아. 잘 할 수 있어.’
설령 거절당한다고 하더라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연기 할 수 있는 자신이 있었다.
아니, 할 수 있을까?
스스로 반문하고 이후에 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그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굳게 다짐했다.
“릴리.”
“네.”
“정말 괜찮아?”
“네.”
“…알았어.”
굳은 표정으로, 전달받은 릴리의 마음에 고개를 끄덕인 은현은 그녀의 턱을 손가락으로 짚어 살며시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천천히 은현의 손가락에 이끌려가면서 그의 움직임에 저항하지 않았다.
두 사람의 얼굴이 점점거리가 가까워지고, 마침내 릴리의 입술과 은현의 입술이 포개어졌다.
“응….”
상냥하게 자신의 입속으로 들어와 혀를 탐하는 은현의 혀의 움직임을 느끼고, 릴리가 작게 신음을 내뱉었다.
포개어진 입술 사이로, 정을 나누는 키스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두 사람의 호흡은 점점 거칠어져 갔다.
은현의 움직임에 호응해 그의 혀에 자신의 혀를 얽히게만들고, 서로의목과 허리에 양팔을 두르며 적극적으로 밀착시키며 키스를 이어갔다.
이윽고 릴리는 머릿속으로 한 소녀의 모습을 떠올렸다.
‘…미안해. 에린.’
용기를 내어 마음을 전하였고 그것을 은현이 받아들이면서 오늘 하루가 굉장히 행복한 하루가 될 터였다.
하지만 그것과는 달리 그렇게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던 이유는 머릿속으로 떠오른 에린 때문이다.
소녀의 마음을 알고 있음에도, 이렇게 선수를 쳐버리는 것이 그렇게 마음에 좋지만은 않았다.
그렇게 마음속에 품고 있던 미안함에 대해 소녀에게 사죄를 하며, 릴리는 적극적으로 은현의 목을 끌어안으며 그의 입술을 탐했다.
이윽고 강하게 밀착된 자신의 복부 아래를 툭툭 건드리는 무언가를 느끼고, 키스를 중단하여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어머…?”
빳빳하게 굳어, 단단해져 있는 자지의 기둥을 멍하니 응시하던 릴리는 이내 얼굴을 붉히며 은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피곤한 상태라고…하지 않으셨나요?”
10시간이 넘는 긴 작업 이후 노곤해져 피로가 쌓인 육체와 정신이라고는 도저히 볼 수 없는 발기의 상태다.
“피곤한 건 맞아. 솔직히 오늘 섹스를 하기에는 내 체력이 그렇게 만전의 상태가 아니라서.”
시도 때도 없이 단단하게 세우는 자신의 하반신에 면목이 없다는 쓴웃음을 짓는다.
“…….”
잠시 고민하던 릴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결심을 굳히고는 입을 열었다.
“제가 해드릴게요.”
“음?”
“주인님은 움직이지 않으셔도 돼요. 일단….”
가끔 은현이 아내들에게 마사지를 해줄 때 이용했던 마사지 매트 쪽으로 시선을 옮긴 릴리는 은현의 손을 잡아당겨 일으켜 세웠다.
“저곳에 앉아 주세요.”
“아니, 굳이….”
“제가…해드리고 싶어요. 제 몸으로 주인님을 기분 좋게 만들어 드리고 싶어요.”
생전 처음 해보는 말에 쑥스러운 모습을 보이면서도 릴리는 자신의 의사를 확실히 전달해왔다.
“…알았어.”
은현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릴리의 유도대로 마사지 매트 위에 등을 보인 채로 누웠다.
그대로 그의 위에 올라탄 릴리는 양손으로 그의 등을 어루만졌다.
‘굉장히 단단해….’
근육으로 잘 단련된 등의 감촉을 느끼고, 릴리는 행동을 개시했다.
경험은 없었지만, 많은 노예상과 주인을 전전하면서 살았던 시기에는 사창가에서 성행위가 끝난 방의 정리를 하면서 노예 생활을 보냈던 적도 있었다.
그곳에서 몸을 팔았던 여자는 자신의 전신에 비누칠을 하여 거품을 내고, 여자의 몸으로 남성의 몸을 씻겨주는 등의 행위가 남자들 사이에서 굉장히 수요가 높았다는 이야기를 기억해냈다.
‘솔직히 이런 걸 해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될 줄은 몰랐지만….’
지금만큼은 자신의 몸을 헌신하여 은현을 기분 좋게 만들어 주고 싶다는 생각이 앞섰다.
한 통을 텅텅 비울 정도로 바디워시를 자신의 전신에 뿌리고 손바닥으로 문지르며 거품을 생성시킨다.
“흐…으….”
스스로 아랫배와 복부를 타고 올라와 유방을 문질러 전신 앞쪽을 거품으로 칠하면서 느껴지는 이상한 감각에 신음을 내뱉었다.
‘아…젖꼭지가….’
단단하게 발기한 자신의 유두를 응시하고 은현의 허리 위에서 다리를 꼼지락거리며 허리를 비틀면서, 느끼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자각했다.
“릴리? 도대체 내 위에서 뭘….”
“보, 보지 마세요!”
은현이 고개를 돌려 뒤를 보려던 것을, 릴리가 황급히 제지를 시켰다.
아무리 헌신적인 봉사를 하고 싶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이런 천박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아직 여자로서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시작할게요….”
천천히 상체를 숙여, 등을 보이고 있는 은현의 등에 자신의 가슴을 밀착시키고, 위아래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후으….”
“크…?”
요염한 한숨이 목덜미에서 귓가로 흘러들어와 은현이 살짝 놀라며 전신을 경직시켰다.
오랜 시간 알몸의 상태로 있었음에도, 전혀 추위를 느끼지 않은 것은 자신의 등 위에 굉장히 부드럽고, 따뜻한 것이 짓누르며 온기를 전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가벼우면서도, 물컹하고, 부드러운 것이 자신의 등에 체중을 실어 문지르고 있는 감각.
피부의 따뜻함 때문인지, 이렇게 접촉을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온기가 저항 없이 스며들어오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고 느껴졌다.
“힘을 빼주세요. 제가…주인님을 기분 좋게 만들어 드릴게요.”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는 릴리는, 등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가슴의 감촉에 동요하고 있는 은현의 반응을 보고, 처음 시도해보는 자신의 봉사가 제대로 통하고 있다는 것에 자신감이 생기고 있었다.
“응…흐….”
위아래로 움직이는 릴리의 신체가, 은현의 등을 유연하게 미끄러지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릴리의전신에 칠해진 바디워시가 잔뜩 밀착한 릴리와 은현의 피부 사이에서 거품이 일어나 은현의 등을 빠짐없이 칠해나간다.
거품이 일게 하는데, 샤워타월은 필요하지 않았다.
깨끗한 악마의 피부는 한없이 매끄러워, 바디워시의 거품을 만들어내고 있는 악마의 피부가 최고의 도구 그 자체였다.
“하…아….”
아래에서 위로, 릴리의 가슴의 등을 문지르면서 올라올 때마다, 그녀의 뜨거운 숨결이 은현의 귓가를 강타했다.
바디워시의 거품마저 릴리의 몸의 일부처럼 느껴질 정도.
그의 등 위에서 가슴을 문지르며 이어지고 있는 상냥한 봉사는 남자를 유혹하여 정기를 흡수해간다는 서큐버스의 유혹, 그 자체였다.
몸 깊숙한 곳까지 쌓여있는 피로를 모조리 녹여내듯이 서큐버스의 봉사는 헌신적이었다.
‘…이거 위험한데.’
기분이 너무 좋아서 위험하다는 것을 직감했다.
‘좋아하고 계시는구나.’
티를 내지 않으려 애를 쓰고 있었지만, 거품이 일은 자신의 가슴으로 등을 쓸어올리고 내리면서, 발기된 유두가 은현의 등을 약하게 긁을 때마다 그의 몸이 떨리는 것이 릴리에게는 고스란히 느껴졌다.
자신의 몸으로 은현이 느끼고 있다는 것이 릴리의 마음을 기쁨으로 조금씩 채워나갔다.
바디워시의 거품으로 매끄러움의 정도가 점점 늘어나고, 그와 동시에 가슴의 부드러움 또한 더 강하게 느껴진다.
정말로 극상의 쾌감을 느끼며 신체의 피로뿐만이 아니라, 마음까지 충족시켜주는 감각은 악마에 의해 희롱을 당하는 기분이 아니었다.
“기분…어떠세요?”
“솔직히 말해서…좋아.”
“감사해요.”
조심스럽게 물은 질문에, 은현이 곧장 솔직하게 답해주자, 릴리는 기쁜 미소를 지었다.
“오직 주인님에게만 해드리는, 제 봉사인 걸요.”
기쁘지 않을 리가 없다.
“더…더, 기분 좋게 해드리고 싶어요.”
은현의 등에 자신의 몸을 밀착시킨 상태로, 살짝 아래로 내려온 릴리는 은현의 복부 사이에 조심스레 양손을 집어넣었다.
아랫배를 휘감으며, 고간 사이로 곧장 내려오는 악마의 양손에 자연스레 힘을 빼고 누워있던 은현의 허리가 살짝 위로 들어 올려졌다.
“릴리…? 크!?”
순식간이 릴리의 양손이 붙잡힌 자신의 자지를 붙잡자, 은현이 깜짝 놀라며 몸을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