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79화 〉279. 반신의 무구 제작(3) (279/730)



〈 279화 〉279. 반신의 무구 제작(3)

자신이 걸어가고 있는 길 위에, 자신에게 도움을 주고 호의를품은 등장인물들을 배치하고,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성장시킬 수 있는 역경과 고난을 준비하고 있다.
끝없이 앞으로 뻗어 나가고 있는 자신의 운명의 실에 누군가가 무수히 많은 실을 엮어나가며 하나의 커다란 줄기로 만들어나가고 있는 것 같았다.

[아이야. 그건 너무….]

과도한 망상이라고 치부할  있는 앞서나가는 생각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이건 하나의 실험이자, 자신에게 내리는 도전이며, 자신이 세운 가설을 확인하기 위한 과정이다.
어쩌면 불카누스의 망치와 아이기스, 코르누코피아까지 수여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신들의 호의를 받고, 자신에게 호의를 가진 베르단디와 관계를 맺게 하여 반신(半神)으로 만든 것조차 유도한 것이라면.

‘만약 이것도 당신이 깔아둔 레일 위라면, 난 이걸 성공시키겠지.’

까앙!

미친 사람 취급받기  좋은 생각이었지만, 은현은 어딘가에서 자신의 생각을 듣고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계속해서 망치질을 멈추지 않으며, 생각을 이었다.

‘당신은 지금 나를 ’주인공‘으로 만들려는  같은데,  의도에는 넘어 가줄게.’

성화가 활활 타오르는 화로의 열기에 살이 익을 것 같고, 땀이 비오듯 쏟아지는 와중에서도, 은현은 강렬한 염원을 담아 망치를 두들겼다.

‘대신 나를 강하게 만들어.’

끝없이 반복되고 있는 수십 번의 행동에, 자신의 모든 힘과 단 하나의 염원을 쏟아부을 기세로 자신의 영혼의 일부를 단련시키고 어마어마한 양의 신성을 주입 시키며 오직 자신만이 쓸 수 있는 ‘무구’를 제작해나갔다.

‘당신이 준비해준 나의 인연들도 이제는 소중한 나의 일부가 되었어.’

은현이 강렬하게 염원하고 있는 것은 악마들에게서 지킬 수 있는 힘이다.

‘나한테 내 소중한 사람들을 지킬 수 있는 힘을 부여해.’

공짜로 자신에게 그 힘을 달라는 게 아니다.
그에 맞는, 피나는 노력을 할 수 있는 의지와 몸은 준비가 되어 있다.
은현이 원하는 것은, 자신이 노력한 끝에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쟁취할  있기를 바란다.
더 이상자신의 소중한 사람을 희생시킨 끝에 얻는 평화와 안정 따위는 진절머리가 난다.
지킬 수만 있다면 모두 지키고 싶다.

[아이야….]

은현의 의지를 확실히 들은 베르단디는 안쓰러움과 감동이 섞인 눈빛으로 은현을 바라보았다.

◆ ◆ ◆

까아앙!


경쾌한 금속을 두들기는 소리가 대장간의 내부를 가득 채웠다.

“…….”

모든 신경을 집중하여 쉬지도 않고 초장시간의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남자의 뒤를, 소녀는 아무런 말도 없이 응시했다.
대장간 안은 새하얀 불꽃이 타는 소리와 망치 소리, 그리고 한창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은현이 토해내는 거친 숨소리만이 맴돌았다.
내부를 후끈하게 만드는 화로의 열기가 은현의 몸을 덮치고 그의 몸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수분을 앗아가고 있었다.
상의를 벗어 던지고 맨몸으로 쉬지 않고 망치질을 두들기는 은현의 몸은 이미 땀투성이로 흥건하다.

“에린, 이제 그만 들어가.”

작업을 시작한  몇 시간 뒤, 수건과 생수, 간단한 점심을 가져온 엘레노아는 어느 순간부터 에린과 함께 은현의 작업을 지켜보고 있었다.
중간중간 성화가 불타고 있는 화로 속에 망치를 두들겨 단련시키고 있는 ‘무언가’를 던져 놓고 휴식을 취할 때마다, 은현에게 다가가 빼앗긴 수분과 체력을 보충시키는 보조에 집중하고 있는 엘레노아의 솜씨는 한두 번 해본 것이 아닌 숙련된 움직임이다.
그렇게 작업을 지속하고 휴식하고를 반복하면서 지나간 시간이 총 13시간.
아침을 먹자마자 시작한 작업은 어느샌가 저녁까지도 이어져가고 있었다.
에린은 그만 휴식을 취하라는 엘레노아의 권유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계속 보게 해주세요. 그러고 싶어요.”

“그러니?”

엘레노아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은현을 응시했다.

“현이는….”

“응?”

“현이는 이 검도 저렇게 10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쉬지 않고 망치를 두들겨서 만들어 준 건가요?”

“음….”

“10시간까지는 아니었지만, 6시간 정도는 걸렸던 것 같아. 그렇다고 저 사람이 에린의 검을 대충 만들었다는 뜻은 아닌 거 알지?”

대장간의 일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던 엘레노아가 그나마 비교할 수 있었던 부분은 제작에 걸렸던 시간 정도뿐이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적은 시간이 걸렸다고 은현이 레반테인에 심혈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었다.
에린도 엘레노아의 말의 의미를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죠.”

저렇게 열성적으로 도구를 제작하는 사람이, 무언가를 만들면서 ‘대충’이라는 단어를 용납했을 리가 없다.
함께 가지고 왔던 레이피어, 레반테인을 자신의 품에 꽉 끌어안은 에린이 중얼거렸다.

“저는…바보였어요.”

“에린?”

“현이한테 뽑지도 못하는 검을  줬냐고 투정을 부렸어요.”

에린은 뒤늦게 이전에 구미호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흥, 그 검이 무엇으로, 누구의 손으로, 어떤 제련의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너에게는 너무나도 과분한 검이다.

정말 말 그대로다.
자신의 검이 어떤 재료로, 누구의 손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제작이 되었는지 하나도 알지 못했다.
그저 은현이 직접 만들어 자신에게 선물해주었다는 것에 가슴이 뛸 듯이 세차게 뛰고 온몸으로 자신의 기쁨을 표현하기에 바빴다.

-잘 들어라. 먼저  검의 재료는 평범한 철이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금속 중 하나로 신철(神鐵)이라고 불리는 오리하르콘이라는 광석으로 제련된 철이지. 그리고  철을 몇십, 몇백 번을 두들겨서 양질의 신성으로 가득 채워 제작된 무기가 바로 그 검이다. 아무런 가치도 모르는  녀석 같은 핏덩이가 함부로 다룰 수 있는 무기가 아니라는 뜻이다. 먼저….

저렇게 뜨거운 화로 앞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열성적으로 망치를 두들겨 만들어준 은현의 노고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정말로 저한테는 너무 과분한 검이었는데….”

-그러니 말했지 않느냐. 그 검의 가치도 제대로 모르면서 뽑지 못하는 검이라고 투덜거리다니, 돼지 목에 걸려있는 다이아 목걸이라는 비유도 아까울 정도군. 돼지 이하, 가축도 아닌 미물 수준의 지능이야. 정말로 한심하기 짝이 없군.

“으으….”

이전에 말했던 구미호의 비아냥이 뒤늦게 비수로 날아와 에린의 가슴에 꽂혔다.
항상 말을 심하게 한다고 했던 구미호의 말이 사실상 틀린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분하고,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감정보다 앞선 감정은 그가 전해준 선물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에 대한 미안함이다.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하지는 마.”

심각한 자기 혐오에 빠져 있는 에린의 모습을 보고, 쓴웃음을 지은 엘레노아가 에린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자연스레 엘레노아의 어깨에 기대게 된 에린은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은 기분이었다.

“앞으로 노력하면 돼. 저 사람은 그런 걸 신경 쓰지 않으니까.”

“그래도….”

“정 미안하면 앞으로 더 성장해서 네 모습을 보여주면 되지. 에린에게 검을 선물한 게 잘한 일이라는 걸 직접 보여주는 거야. 그러면 저 사람도 굉장히 뿌듯해하지 않을까?”

“저 진짜로 노력할게요. 지금보다 더….”

엘레노아의 상냥한 격려에 살짝 감동을 받은 에린은 엘레노아의 허리를 꽉 끌어안고는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응. 장하네.”

어리광을 부리는 여동생을 보는 기분으로 미소지은 엘레노아는 에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소녀의 응석을 받아주었다.
이내 한 가지 잊었던 것을 떠올리고 에린에게 말을 걸었다.

“아, 그리고 에린.”

“네?”

“어젯밤에 네가 본 것들 말인데.”

“아, 아…아! 저, 그, 그게…. 진짜로 일부러 보려던 게 아니었…!”

“쉬잇.”

허리를 꽉 끌어안았던 팔을 풀고, 엘레노아에게서 손을 떼며 허둥지둥 뭐라 변명을 하려 했던 에린의 입가를 엘레노아가 검지로 막으며 말을 제지 시켰다.
흘끗 한창 작업중인 은현을 한번 흘끗 보고는 미소지으며 에린에게 작게 속삭였다.

“저 사람은 아직 모르니까. 혹시라도 들으면 어쩌려고 그러니?”

“그, 그렇죠. 죄송해요….”

“에린도 저 사람한테 들키고 싶은  아니지?”

“당연하죠….”

어젯밤 일을 자신이 보았다는 것을 알려졌다가는 민망해져서 도저히 얼굴을 들 수가 없을 것이다.
가뜩이나 지금도 애써 잊어버리려고 노력을 하고 있었는데, 구태여  사실을 먼저 언급해오는 엘레노아의 의도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어젯밤에 있었던 일은 나와 일리아나님, 그리고 에린, 우리 셋만의 비밀로 하자. 저 사람은….”

“현이는요…?”

“응? 말해줄까?”

“저, 절대로 안 돼요!”

에린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농담이야. 에린이 어젯밤에 우리를 보고 있었다는 걸 알면, 저 사람은 아마 에린과 거리를 두려고  거야. 그렇게 되는  우리로서도 원하는 바가 아니기도 하니까.”

“엘레노아님은…저한테 그런 모습을 보여도 괜찮으세요? 그, 그렇게…심하게 괴롭힘을 당하셨는데….”

에린이 숨을 헐떡이며 홍조를 띄우고, 기분 좋은 목소리를 냈었던 엘레노아의 모습을 떠올렸다.
차마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얼굴을 붉힌다.

“응. 좋아. 애초에 저 사람도 내가 원해서 그런 플레이에 어울려 주고 있는 거니까. 게다가…에린에게는 숨길 이유도 없으니까.”

“네?”

“에린도  사람과 이어지고 싶은 거 아니었니?”

“그, 그그그그렇지만…!”

자신의 마음을 발가벗겨진 기분을 맛본 에린이 얼굴을 한층  붉히며 허둥지둥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고 있다.
도대체 이 상황이 무슨 상황인지, 에린의 머릿속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수치스럽고 굴욕적인 모습을 보인 것은 엘레노아 쪽인데, 한없이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고, 도리어 그 민망한 상황을 관음했던 자신이 냉정을 잃고 있다.

“나는 에린이 조금 더 욕심을 부려봐도 괜찮다고 생각해.”

“…정말요?”

“그럼.  사람과 먼저 알게 된 건, 일리아나님 다음으로 에린이었잖아. 오히려 내가 중간에 끼어든 게 아닐까, 조금 마음에 걸렸었어.”

“그, 그런 생각을 가지고 계실 줄은 몰랐어요….”

엘레노아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저 사람은 이미 베르단디님이나 일리아나님에 이어서 나까지 있으니까, 아마 더 이상 아내를 늘리려고 하지 않을 거야. 생각보다 고지식한 사람이니까. 아마도 에린과 릴리는 많은노력을 해야 할 거야.”

“일리아나님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어요. 그리고 역시 릴리 언니도….”

릴리의 마음도 어렴풋이 짐작을 하고 있었던 부분에 가깝다.
비슷한 처지로 같은 사람에게 품고 있는 은혜와 동경을 공유하고 있는 사이였기에 알아챌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에린을 응원해. 이 문제에 관해서는 나와 일리아나님은 저 사람보다 에린과 릴리를 편들어줄 생각이야. 그러니까 힘내야 한다?”

“네! 감사해요! 엘레노아님!”

까아앙!

그렇게  여성이 속닥거리며 서로의 의사를 확인했을 때, 은현의 제작이 마침내 끝났다.

“후우우….”

긴 호흡의 숨을 내쉬는 은현을 에린과 엘레노아가 동시에 바라보고 그의 손에 쥐어져 있던 망치가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마침내 작업이 끝났음을 깨달았다.
에린은 작업이 끝나고 모루 위에 올려져 있는 물건을 응시했다.

“…열쇠?”

그저 신성이 담겨 있는 새하얀 구체를 13~14시간을 가까이 망치로 내려쳤을 뿐인데, 모루 위에 나타나는 결과물은 백은으로 빛나는 열쇠였다.
일반적인 통상의 무기와는 다른, 신의 무구, 또는 신물(神物)의 제작과정을 처음 본 에린으로써는 어리둥절한 상황이었다.
은현은 열쇠를 손에쥐고는 자신의 가슴 위에 얹었다.
마치 물이 녹듯이 자연스레 스며들어 은현의 몸속으로 흡수된 것을 보고 에린이 물었다.

“그게…무기야?”

“응. 오직 나만이 사용할 수 있는 무기.”

무기가 주먹을 쥔 손바닥 안에 다 들어가는 작은 열쇠라는 것은 에린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나름의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은현을 보고 있자니, 구태여 그것을 캐묻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는 않았다.

“후으…. 엘레노아.”

“네.”

“고마웠어. 중간중간에 수분과 영양을 보충해줄 수 있게 준비해줘서.”

엘레노아는 미소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연한 일인 걸요.”

“난 곧장 씻고 잠을 좀 자도록 할게. 공방의 정리는 에밀리아에게 말해둬.”

“네. 그럴게요.”

고개를 끄덕인 은현은 두 사람과 함께 위층 거실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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