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8화 〉278. 반신의 무구 제작(2)
“그런데 현아. 이곳에서 뭘 하려는 거야?”
“무기를 만들려고.”
“무기? 누구 건데?”
“내 거.”
“어…? 정말로?”
에린은 지금까지 제대로 된 은현의 무기를 본 적이 없었다.
이전 아르키스 미궁 원정을 통해서 동행했을 때, 그의 무력의 일부를 경험해보긴 했지만, 그것조차도 손쉽게 던전의 내부를 제압했던 은현은 자신의 전력을 보였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런그가 지금 자신의 전용 무기를 만들려고 하고 있다는 말은 에린의 마음속에 큰 호기심을 자극시켰다.
“나 구경해도 되?”
“응?”
뜻밖의 말을 들은 은현이 의아한 표정으로 에린을 쳐다보았다.
호기심으로 가득해 빛을 발하는 두 눈동자와 마주해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재미없을 텐데.”
“그래도 볼래. 보고 싶어. 어떻게 무기를 만드는지.”
“알았어.”
에린과 함께 대장간 쪽에 도착한 은현은 곧장 화로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화로의 내부를 점화시켜 불꽃을 생성해낸 뒤 허공으로 손을 내뻗자.
우우웅
자신의 영혼에 각인되어 있는 ‘불카노스의 망치’가 모습을 드러내어 은현의 손에 쥐어졌다.
곧장 화로의 내부에 신력을 주입시키자 활활 타오르는 불꽃은 신력을 머금은 신성한 성화(聖火)로 변화해가며 대장간의 내부를 뜨겁게 달구기 시작했다.
“읏…!?”
급격하게 상승하는 대장간 내부의 온도에 깜짝 놀라 에린이 어깨를 떨었다.
이윽고 활활 타오르는 새하얀 불꽃을 응시하며 멍하니 중얼거린다.
“불꽃의 색깔이….”
새하얗다.
어마어마한 열기를 발산하고 있는 불꽃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그 불꽃을 알아본 것은 구미호였다.
[성화(聖火)….]
‘…성화가 뭐야?’
[말 그대로 성스러운 불꽃이지.]
‘그냥 불하고는 틀린 거야?’
[틀리지. 나의 요술로 만들어낸 여우불과 다른 일반적인마법으로 만들어낸 불이 똑같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 다르잖아.’
구미호의 요술을 통해서 만들어진 여우불은 푸른색의 빛을 띄운다.
짜여진술식을 통해서 세상에 발현된 불속성의 마법과는 달리, 여우불은 더욱 정갈하고 밀도 높은 마력이 응집되어 형성된 힘, 그 자체다.
‘그럼 저 새하얀 불꽃은….’
[나의 여우불과 마찬가지로, 거대한 규모로 응집되어있는 힘, 그 자체지. 여우불과 저 성화의 차이는 저 불꽃을 형성하고 있는 힘의 근원이 ‘신수의 마력’이냐, ‘신력’이냐의 차이다.]
‘으음…미호의 힘보다 더 대단한 거야?’
[…….]
구미호는 순간 두 힘을 비교하여 어느 쪽이 더 우위에 서 있는지를 물어본 에린의 질문에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하계에서 고룡(古龍)과 동급으로 정점에 달해있는 존재인 자신의 힘과 비교를 하다니, 정말이지 건방지기 짝이 없다.
하지만 그저 악의가 존재하지 않는 순수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어린 소녀의 질문이었기에, 이 미묘한 기분에 화를 내기도 애매하다.
이 소녀는 소녀, 자신이 사용하고 있는 힘의 가치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
구미호는 최대한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면서 에린을 납득시키기 위한 설명을 입에 담았다.
[저 신력과 이 세상의 힘을 비교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애초에 이 세상에서 존재할 수 있는 힘이 아니니까.]
아무리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이라고 하더라도, 이 세상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규격 외의 힘과 비교를 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하지만 현이는 쓰고 있잖아.’
[그러니까 대단하다는 것이다.]
본래라면 상위차원의 힘을 하계의 존재가 사용한다는 것은 절대까지는 아니지만, 그 가능성은 그 ‘절대’라는 값에 가까울 정도로 희박하다.
적어도 구미호는 지구가 멸망하고, 이 세상이 통합되어 새롭게 재창조되면서, 오랜 시간 동안 그런 존재를 만나본 적이 없었다.
[처음 봤을 때는 저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구미호는 처음 에린의 몸을 강탈하면서, 은현과 마주쳤던 첫 만남 때를 떠올렸다.
그때는 그저 부여받은 여신의 권능만을 사용할 수 있었던 인간이,스스로의 몸속에 신력을 품고 인간의 탈을 벗어 던지며 반신(半神)으로써 자신의 격을 끌어올렸다.
[분명 저 여신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겠지.]
어떠한 경위와 과정을 거쳤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은현의 성장 속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것이 그의 영혼을 품고 헌신적으로 아껴주고 있는 여신의 편파적인 애정이라는 것은 확실했다.
‘미호야.’
[또 뭘 물어보려는 거냐.]
‘만약 현이랑 미호가 싸우게 되면 누가 이겨?’
[…….]
구미호는 또다시 침묵을 지켰다.
인간과 자신을 비교 선상에 올려놓는 건방진 짓거리가, 마치 ‘엄마와 아빠가 싸우면 누가 이겨?’같은 악의하나 섞이지 않은 호기심에서 비롯된, 하찮은 질문에 불과했지만.
[모른다.]
구미호 자신조차도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어? 왜?’
[신력을 품고 있어도 그 육체는 인간. 완전한 힘을 되찾은 나와 비교를 한다면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힘의 질은 당연히 상위계의 힘인 은현이 우위.
하지만 신체의 스펙은 신수인 자신이 우위를 점한다.
게다가 구미호가 쉽게 승패를 결정할 수 없는 이유는 또 한가지 존재했다.
[저 녀석이라면, 필요하다면 나를 쓰러뜨릴 수 있는 한 수 정도는 반드시 준비를 해두겠지.]
전투에서 승패를 좌우할 수 있는 요소는 가지고 있는 힘이나 육체의 스펙의 차이 말고도, 많은 요소들이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전략이나 전술, 기교 등 직면한 문제에 있어서 얼마나 효율적인 해결 방안을 내놓을 수 있는지.
등과 같은 것들.
구미호는 오랜 시간의 수행 끝에 많은 경험을 통해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것들을 쌓아왔다고 자부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상대를 얕보지도 않았다.
쌓아온 시간과 노력의 차이는 자신보다 적을지 몰라도, 결코 얕볼 수 없는 상대다.
솔직함과 무거운 진심이 담긴 구미호의 설명을 들은 에린은 감탄했다.
‘미호는 정말 대단하구나? 현이랑 대등하게 싸울 수 있다는 이야기잖아?’
[…네 녀석의 머릿속의 기준은 도대체 어떻게 돼 먹은 것이냐? 보통이라면 나와 대등하게 겨룰 수 있다고 설명한, 저 녀석에게대단함을 느껴야 하는 것이 정상이 아니냐? 도대체 어째서 정반대의 결론을 내릴 수가 있는 거지?]
신수와 소녀가 머릿속으로 다시 투닥거리며 입씨름을 벌이고 있을 때, 은현이 모든 준비를 마치고 작게 숨을 내쉬었다.
“…후우.”
이윽고 자신의 가슴에 비어있는 한쪽 손을 대었다.
자신의 몸안에서 무언가를 끄집어내듯 제스처를 취하더니, 그의 가슴에서 신력이 뽑혀 나와 작은 구체를 형성하기 시작한다.
이윽고 신력이 응집된 새하얀 구체를 모루 위에 올려두었다.
무언가를 둘러 단단하게 고정을 해둔 것도 아닌데, 새하얀 구체는 모루 위에서 단단히 붙어 고정이라도 되어 있는 것처럼,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마침내 망치를 쥐고 있는 손에 힘을 꽉 쥐며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까아앙!
하얀 구체를 향해 ‘불카노스의 망치’를 있는 힘껏 내려치자, 경쾌한 소리와 함께 강렬한 기운이 휘몰아치는 것을 느끼고 에린이 몸을 움찔 떨었다.
‘무기를 만든다고 하지 않았어…? 저거는….’
무기를 만드는데 사용되는 철이나 금속의 종류가 아니다.
굳이 설명하자면, 은현의 몸속에서 뽑아내어 응집시킨 신성(神聖)의 구체.
[저 녀석이 만들려는 무기는 그저 평범한 무기가 아니다. 저건 지금….]
은현이 망치를 두들기며 단련시키고 있는 것은 신성이 내포된 그의 영혼 그 자체다.
그가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어떤 위업을 달성하려는 것인지를 깨닫고, 구미호는 작게중얼거렸다.
[…미X놈.]
◆ ◆ ◆
까앙!
망치를 휘둘러, 모루 위의 재료를 두들겨 단련시키는 소리가 귓가를 때린다.
응시하고 있는 것은 오로지 모루 위에 자신의 영혼의 일부.
망치를 한 번 내리칠 때마다 몸속에 존재하는 모든 신력이 빨려 나가는 것만 같은 강렬한 탈력감을 느낀다.
하지만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계속 ‘불카노스의 망치’를 휘두를 수 있는 것은, 프로세르피나가 선물로 주었던 ‘코르누코피아’의 효과 덕분이다.
이것이 없었다면, 은현은 자신의 영혼을 이용해 무기를 만들겠다는 미친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아이는이제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항상 무모한 길을 걷는 걸 자초하는구나….]
자칫 잘못하면 영혼의 일부가 망가져 실패해버린다면, 어떠한 부작용이 자신을 찾아올지 확신조차 서지 않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미친 짓이다.
그렇기에 일리아나와 엘레노아에게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
말함과 동시에 실패했을 경우의 리스크를 설명한다면, 자신을 뜯어말릴지도 모른다는 예감은, 불 보듯 뻔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은현이 이런 미친 짓을 감행하려 한 이유는, 언젠가 하계로 넘어올 가능성이 존재하는 상급 악마들을 대항하기 위함이다.
그들은 하계에서 태어나는 하급, 아주 가끔 태어나는 중급 악마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절대로 넘을 수 없는 계급 간의 격차가 존재했다.
지구에서 악마들과 전쟁을 벌였던 당시, 악마들의 수준을 알고 있는 은현은 만약 하계로 악마들이 넘어오게 된다면, 지금의 수준으론 절대로 대항할 수 없다고 확신했다.
이것은 혹시 모를 그때를 위한 대비책이었다.
그리고 은현에게는 이 과정을 통해서 한 가지 확인을 해봐야 하는 사실이 있었다.
‘저는 절대로 실패하지 않아요.’
베르단디의 걱정에 은현은 대답했다.
은현은 자신의 끝이 여기가 아닐 것이라는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본인으로써도 확실히 설명할 수 없는, 근거 없는 직감에 불과했지만.
아니, 근거라면 존재하기는 했다.
그 근거조차도, 최근에 품게 되었던 생각이었지만.
까앙!
불카노스의 망치에 신력을 부여하여, 자신의 ‘영혼의 일부’인 하얀 구체를 하나의 ‘개념’, ‘물건’으로 구현해나가는 작업.
어마어마한 집중력과 체력, 신력을 소모시키는 과정을 멈추지 않으면서도, 은현은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그때 달의 마을에서 스승님의 사령(死靈)을 만나 뵐 수 있었던 건 정말 우연이었을까?’
달의 마을을 찾았던 이유는 일리아나와 엘레노아와의 결혼 이후, 실비아에 대한 마음의 짐을 덜어내기로 결심을 했기 때문이다.
거기에서 하필 자신이 방문했던 때, 세계수의 힘이 쇠락하고 있었고, 300년 가까이 잠잠했던 다크엘프와의 항쟁이 시작되고 있었다.
게다가 메디아의 수작으로 전혀 원하지 않았던 시에테와의 재회.
‘타이밍이 좋아도 너무 좋았어.’
정말로 끔찍한 일들이었지만, 그 신혼여행 속에서 이루어졌던 싸움은 최종적으로 은현을 한 단계 성장시켰다.
그것이 은현의 기분을 굉장히 찝찝하게 만들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일부러 고난을 부여하고 자신의 성장을 돕고 있는 것만 같아서.
자신이 에린을 위해서 그녀가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주는 것과도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방식은 비슷할지라도 원인과 목적, 방향, 근본 자체가 틀리다.
은현의 경우에는 누군가가 깔아둔 레일 위를 달리는 경주마가 된 기분이다.
달리는 경주마는 그것이 오직 자신을 위해 깔린 레일이라는 것을 인지조차 하지 못했다.
누가 레일을 깐 것인지, 그 정체조차 보이 지가 않는다.
처음으로 가슴 속에 품었던 의문과 의심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더 위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애초에 나는 어째서 살아날 수 있었을까.’
베르단디가 다른 신들을 설득하여 은현을 부활시켰기 때문이다.
‘어째서 지구는 멸망했는데, 자신은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자신이 많은 사람들의 희생 끝에 악마들을 모두 공허의 저편에 존재하는 마계에 밀어 넣고 봉인시키는 것을 성공했기 때문이다.
‘어째서 현성이 형이나 시에테 스승님, 브류나크 같은 많은이들이 재능이 없는 나에게 호의를 품고, 나를 열성적으로 가르쳤던 걸까.’
재능이 없음에도 노력을 했고, 기대를 했으며,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어째서 세 여신님들에게 선택을 받을 수 있었던걸까.’
베르단디는 자신이 정해진 운명을 비틀 수 있는, 신들조차 보지 못하는 미래를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가졌기 때문에 자신을 골랐다고 말했다.
그 가능성을 보았던 계기는 은현이 가족들을 먹어치우고 자신까지 죽이려 했던 최하위악마를 죽여버리고 죽을 예정이었던 자신의 운명을 바꿔버린 것이라고 했었다.
‘어째서 나의 운명이 바뀌었던 것일까.’
그것은 베르단디조차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신조차도 제대로 파악이 불가능한, 오직 은현에게만 일어나고 있는 편의주의식 전개.
스쿨드가 내려준 ‘운명 개척’의 권능과는 또 다른 무언가가 존재하고 있음을 직감했다.
은현이 내린 결론은 간단하다.
‘누군가가 나를 도우면서, 어떤 방향으로 유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