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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5화 〉275. 여신의 반려(1) (275/730)



〈 275화 〉275. 여신의 반려(1)

탁! 탁! 탁!

살벌한 소리를 발생시키며 거칠게 충돌하는 두 자루의 목검이 계속해서 맞부딪쳤다.
중앙에서 춤을 추며 격돌하는 목검의 소리는 굉장히 경쾌하다.
그 경쾌한 소리의 주기는 대련을 하는  사람의 움직임이 격렬해지면 격렬해질수록, 점점 빨라져만 간다.
서로의 움직임을 읽고, 빈틈을 찾아내고, 유도하며 치열한 수 싸움의 연속이 이어졌다.
에린의 빈틈은 은현의 공격으로 이루어지고, 그 공격을 막아내며 의도적으로 보여준 은현의 빈틈을, 에린이 정확히 포착하여 공격으로 이어졌다.
공격과 방어, 반격과 회피가 지속적으로 성립하면서 이어지는 두 사람의 검무는 마치 서로 사전에 짜두었던 경쾌한 탭댄스를 추는 것만 같았다.

타악!

그렇게 이어지던 랠리를 깨부수고 행동에 먼저 나선 것은 은현이다.
목덜미를 노리고 들어오는 에린의 목검을 위로 튕겨내고, 상체를 숙여 에린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앗…!”

에린의 목검이 위로 튀어 오르며 상체가 무방비해진 틈을 타, 에린의 어깨와 목을 휘감고, 소녀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다.

“꺄악!?”

순식간에 균형이 무너지며 바닥에 쓰러진 에린이 비명을 질렀다.
목검으로 은현의 검을 모두 방어해내지 못하고 위로 튕겨 나간 순간부터, 에린의 패배는 확정이 되어 있었다.

“우으으…아파아!”

딱딱한 바닥에 등을 부딪치자마자, 격통을 느낀 에린이 울상을 지으며 비명을 질렀다.
은현이 바닥에 쓰러진 에린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지금 대련 중에 딴 생각했지?”

“그, 그건….”

정곡을 찔린 듯 에린이 민망한 표정을 지으며 할 말이 없다는 듯 은현의 시선을 피했다.
바닥에 쓰러진 자세에서 은현의 몸을 올려다보니, 무심코 은현의 고간 사이가 눈에 들어왔다.
괜히 어젯밤에 몰래 훔쳐보았던 ‘커다란 기둥’을 의식하고 얼굴을 붉혔다.

‘뭐야…? 평소랑 똑같잖아? 어제는 그렇게 커다란 게 달려있었는데…. 진짜로 탈부착이 가능한 건가? 아니면 잘라버렸나?’

커다란 것이 달려있기는커녕 평소와 똑같이 아무것도 안 달려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상식적으로 그럴 리가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오죽했으면 어젯밤에 훔쳐보았던 그때와 지금의 격차가 너무 컸기에 ‘탈부착’이나 ‘잘라버렸다’라는 생각이 들었을까.
그런 충격적인 것을 보았던 경험 때문인지, 더욱 그의 다리 사이에 시선이 갈 수밖에 없었다.

“왜 그래?”

“아, 아무것도 아니야!”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시선을 피했던 에린이 너무 부자연스러웠기 때문에, 은현이 에린에게 물었지만, 에린은 황급히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흐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에린의 개인적인 고민까지는 캐물을 생각도 없었던 은현은 고개를 주억이며 말했다.

“아침 훈련은 여기까지만 하고, 밥 먹으러 가자.”

은현은 그리 말하며 에린이 일어서는 것을 도와주기 위해 소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괘, 괜찮아!”

무심코 은현의 손을 붙잡고 몸을 일으키려 했던 에린이 몸을 움찔 떨며 스스로 일어났다.

“음?”

느닷없는 소녀의 변화된 행동.
에린은 자신의 행동에 은현이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제대로 의식조차 하지 못했다.

“먼저 올라가 볼게! 천천히 와!”

따로 올라가고 싶으니까 ‘꼭 천천히 올라와 줘!’라고 돌려서 말하는 것만 같은 에린이 쏜살같은 움직임으로 지하 훈련장을 빠져나가 위층으로 올라갔다.

“…….”

훈련장에 덩그러니 혼자만 남은 은현이 순간 할 말을 잃고 멍한 표정을 지으며 가만히 서 있었다.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드는 은현의 머릿속의 일부를 읽은 베르단디가 미소지으며 은현에게 말을 걸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복잡하게 하는 것이냐?]

“아뇨. 그게…에린의 반응이 조금….”

[신수 아이의 반응이 어떻다고?]

“그냥 좀 평소와는 다르게 이상해서….”

평소의 에린이었다면 은현의 손을 붙잡고 일어서서 그의 허리를 끌어안아 엉겨 붙고 얼굴을 묻어 냄새를 맡기 일쑤였다.
하지만 방금의 에린의 반응은 마치, 이제 막 이성을 의식하기 시작한 사춘기 소녀가 아버지나 오빠를 피하는 소녀의 반응이었다.

“사춘기가 오려면 너무 늦지 않았나?”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을 수 있는 경우이기 때문에 절대로 없다고 단언할 수도 없었지만, 지금의 에린의 반응은 그러했다.

[…나는 가끔 아이가 정말로 한심하다고 생각될 때가 종종 있구나.]

여신은 한숨을 내쉬며,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사도를 내려다보았다.
은현은 에린의 마음속에서 자신이 얼마만큼이나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에 대해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미 결혼을 한 유부남이며, 그것도 공식적으로 아내가 둘씩이나 있는 상황.
게다가 에린과의 관계를 스승과 제자, 더 깊게는 오빠와 동생, 더더욱 나가서는 아빠와  정도의 관계로 생각하고 있다.
애초에 400살이 넘은 불멸자에 가까운 남자의 입장에서는 에린 같은 여자는 정말  그대로 핏덩이의 어린애로 밖에 보지 않았다.
2년 전, 빈약하기 짝이 없는 어린 소녀의 모습이 아직 남아있는 은현에게는 에린은 아직도 어린애다.
긴 시간 동안 에린이 얼마나 그 마음을 깊고 커다랗게 품고 있는지를 은현은 모르고 있다.

[마녀 아이는, 그 신수 아이를 준비시키고 있는  같긴 하지만….]

그것을은현이 받아들일지 말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베르단디님. 슬슬 생각해 보셔야 하지 않을까요?”

[음? 무엇을 말이냐?]

“이 집에서 살아보시는 거요.”

[으음….]

하계에 자신의 육체를 현신시킬 수 있게 된 베르단디는 은현의 권유에 고민하며 쉽게 대답을 내리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하계에 육신을 현신시킬 수 있다고 해서, 무언가 아이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는 마녀 아이나 성녀 아이처럼 싸울  있는 것도 아니니….]

하계에 현신한 여신의 몸은 순전히 평범한 인간 여성의 육체를 본떠 만든 것으로, 실체화시킨 것에 불과하다.
여신으로써의 힘인 권능은 물론, 신력을 발휘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그것은 하계에 현현한 베르단디가 가지고 있는 패널티였다.
애초에 신은 하계에 간섭할 수 없다는 법칙의 틈을 비집고, 하계에 현현한 것조차 특이한 케이스로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아뇨. 베르단디님. 저는 베르단디님께 그걸 위해서 권유를 하는 게 아니에요.”

은현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베르단디님은 지금도 저에게 큰 도움이 되어주고 계시잖아요. 제가 싸울 수 있도록 권능을 내려주시고, 저를 부활시키도록 많은 분 들을 설득해주셨잖아요.”

[그건…고생만 했던 아이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으니까.]

“베르단디님. 저는 베르단디님한테 그런 걸 바라고 있는 게 아니에요.”

은현은 허공에 떠 있는 베르단디에게 손을 내뻗었다.
여신의 손을 붙잡고 자신에게로 끌어당겨, 반투명한 여신의 몸을 살며시 끌어안고, 말을 잇는다.

“그냥 때때로 같이 밥을 먹고, 서로의 살을 맞대며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싶은 거예요.”

그것은 여신과 사도의 관계가 아니라, 일리아나와 엘레노아처럼 연인 또는 부부로서의 관계를 맺으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일종의 고백과도 같았다.

[…아이의 그 말은 굉장히 비겁하구나.]

살짝 부끄러운 듯 시선을 피하고는 마지못해 신체를 실체화시켜, 여신은 하계에 현신했다.

“그렇게 기쁜 말을 해준다면, 당연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느냐.”

힘을 보태달라거나, 도움이 되어달라는, 그런 사치스러운 부탁을 하려던 것이 아니다.
그저 신과 인간이라는 카테고리를 떠나서, 같은 공간에서 같은 몸을 가지고 같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

“아이는 정말 욕심이 많구나. 이미  아이를 반려로 맞이했으면서, 나까지 그 안에 넣으려는 것이냐?”

“전에 베르단디님이 말씀하셨잖아요. 이제는 ‘주인공’으로써 행동하라고.”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은 대개 욕심이 많은 법이지. 어디 한번 날뛰고 싶은 대로 날뛰어 보거라. 그것이 아이에게도 행복한 결말이고, 새로운 ‘하계의 멸망’의 운명을 비트는 결말이 된다면, 나는 아이의 행동을 지지하겠다. 언제까지고.

은현이 베르단디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떠올리고,  말을 떠올리고 있는 은현의 생각을 베르단디가 읽어 들였다.

“그랬지…. 하지만 여신을 반려로 맞이하겠다니, 도대체 어느 인간이 그런 생각을 품겠느냐.”

확실히 그럴지도 모른다고 은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처음 저한테 마음을 전한은 베르단디님이었는데요.”

“…아이는 항상 쓸데없는 말이 한마디 많구나. 요 입이 문제인 것이냐?”

베르단디는 살짝 입술을 삐죽이며 은현의 입술을 붙잡고 위아래로 늘어뜨렸다.

“일단…위로 올라가서 같이 아침 먹어요. 그리고…에린이나 릴리에게도 대강의 사정을 설명해둬야겠네요.”

“그래야겠구나.”

  ◆

“후우….”

거실로 올라온 에린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두근거리는 가슴에 손을 얹어 진정시키도록 노력했다.

“에린? 대련은 끝났어?”

“아…네.”

메이드복을 입고 주방에서 아침을 준비하고 있는 릴리가 에린을 발견하고 물었다.

“주인님은?”

“고,  올라올 거예요….”

“응?”

당황하며 시선을 피하고 대답하는 에린의 반응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릴리는 일단 요리를 테이블 위에 세팅하는 것을 우선적으로 생각했다.

“바로 준비되니까 안방에서 마님들 모셔오렴.”

“네.”

에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대로 안방을 향했다.

“엘레노아님! 일리아나님! 식사하세요!”

두 번의 노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간 에린은 침대 위에서 곤히 자고 있는 두 사람이 전혀 반응도 하지 않자, 침대를 향해 걸어갔다.

“두 분, 어서…. 엇?”

이불을 젖히고 일리아나와 엘레노아를 깨우려던 에린은 두 사람의 차림새를 보고 적잖게 당황했다.
어젯밤에 지하의 비밀의 방 앞에서 마주쳤던 것처럼, 여성의 중요 부위가 적나라하게 노출되는 네글리제를 입고 있는 일리아나와, 전라로 새하얀 스타킹만을 신은 채인 엘레노아.
두 여성이 서로의 몸에 팔을 휘감으며 부둥켜안고 있는 광경은 굉장히 색정적이다.

‘혀, 현이는…항상   안에서 잠을 자는 거야…?’

매력적인 몸을 가지고 있는 두 여성의 사이에서 잠을 자는 은현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자니, 슬며시 자신의 가슴과 일리아나와 엘레노아의 가슴을 번갈아 보며 비교했다.
저렇게 매력적인 두 여성과 함께 잠자리를 하고 있는데, 은현이 자신에게 관심을 가질 리가 없다는 것이 당연하다고 느끼고 자존감이 바닥을 기기 시작했다.

“하아….”

작게 한숨을  에린은 다시 머릿속으로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부, 분명…이 침대 위에서도…두 분과 함께, 어제와 똑같은  하겠지?’

그렇게 세 사람이 서로의 몸을 섞는 광경을 상상하니, 자연스레 얼굴이 확 달아오르고,  안의 무언가가 뜨거워져 가는 것을 자각한다.

‘어, 어떡해…. 어제 그걸 보면서 일리아나님에게 만져진 이후로 온몸이 뜨거워….’

가슴 속에 피어오른 무언가를 해소할 길이 없어진 에린은 답답한 감정을 애써 깊은 곳에 숨기며 침대 위에서 서로를 껴안고 잠들어있는 두 여성을 흔들어 깨웠다.

“두 분! 어서 일어나세요. 식사하셔야 해요!”

“으응…5분, 5분만….”

“아이 참!”

이불이 젖혀지면서 눈부신 마법등의 빛에 인상을 찡그리고는 더욱 강하게 엘레노아를 끌어안으며 잠을 청하는 일리아나의 몸을 흔들어, 억지로 잠을 깨웠다.
에린의 노력 끝에 두 여성은 몸을 일으키며 기지개를 켜고 조금씩 의식을 각성시켜나갔다.
두 눈을 뜨며 먼저 잠에서 깬 엘레노아가 자신을 깨우러 들어온 에린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어머, 에린, 좋은 아침이야.”

“아…. 네, 네에…. 좋은 아침이에요….”

“응?”

일어나자마자 눈부신 미소를 지으며 아침 인사를 건낸 엘레노아는 어젯밤에 처음 본, 강렬했던 그때의 모습과는 큰 괴리감이 있었다.
포근하고 따뜻한 정을 베풀어주는 듯한 미소가 너무 눈부시지만, 저 얼굴이 어젯밤 교성을 흘리며 침대 위에서 농락당했던 얼굴과 동일인물이라는 것이 도저히 믿겨지지가 않았다.
민망한  시선을 피하는 에린의 반응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하.”

뒤늦게 잠에서 깨어나고는 엘레노아와 에린의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기류를 캐치해낸 일리아나가 재미있다는 듯 씨익 미소를 짓는다.

“엘레노아, 사실은….”

일리아나가 엘레노아의 팔을 잡아당겨 그녀의 귓가에 손을 가리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며 어젯밤 에린이 은현과 엘레노아의 관계를 맺는 장면을 몰래 훔쳐보았다는 사정을 설명했다.

“어머나….”

어째서 에린이 민망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시선을 피하며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지, 사정을 깨닫고 엘레노아가 자신의 입을 손으로 가리며 크게 놀랐다.

“후후,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버렸네.”

말은 그렇게 하더라도, 손으로 입을 가린 채로, 작게 쿡쿡거리며 웃은 엘레노아는 자신의 천박한 모습을 들켰던 것이 전혀 수치스럽지 않은 모양이다.

“아, 아니요….”

어떻게 아침과 밤의 모습이 전혀 다른 두 가지의 얼굴을 가지고 있는 듯한 엘레노아의 변모는 에린에게 큰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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