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6화 〉266. 마녀와 악마(2)
허공에 구현된 술식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홍염의 구체.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주위를 불태워버리고, 모든 것을 녹여버릴 것만 같은 초 고열의 불꽃을 튀기는 작은 태양이 술자인 일리아나의 조작에 의해 비프론스를 향해 떨어졌다.
“하아아!”
자신을 향해 천천히 하강하고 있는 홍염의 구체를 향해 포효한 비프로스는 오염된 마력을 최대한 전개하여 장벽을 쳤다.
장벽째로 밀고 들어오면서 짓뭉개는 압도적인 폭력을 보여주고 있는 작은 태양의 모습에 비프론스는 이를 갈았다.
“끄으으!”
작은 태양의 위력에 금기 가기 시작하는 장벽의 외부를 실시간으로 회복시키면서 비프론스는 경악했다.
‘어…떻게 인간이 이런 힘을…!’
도저히 인간 개인이 가지고 있는 무력의 힘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다.
필사적으로 장벽의 전개와 수복을 반복한 끝에, 일리아나가 만들어낸 작은 태양 속에서 자신의 몸을 지켜내는 것에 성공한다.
“젠…자앙!”
“흐응, 막아내는구나. 최근에 만났던 악마와는 수준이 틀리네.”
일리아나는 과거 페르닌에서 에린과 알렉스가 조우했던 서큐버스 악마를 떠올렸다.
그 악마의 경우엔 일리아나의 마법을 막아낼 수 있는 역량 따위는 턱없이 부족했다.
리라라는 서큐버스 악마가 일리아나의 마법을 정통으로 맞고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엘빈이완성시킨 ‘조영술’이 가진 놀라운 방어력 때문이다.
하지만 눈앞의 던전 마스터인 비프론스라는 악마는 자신의 역량만으로 일리아나의 마법을 막아냈다.
물론 안일하게 악마를 단 하나의 마법 주문으로 이길 수 있을 거라고는 처음부터 상정도 하지 않았다.
[여섯 자릿수 상위마법]
[볼텍스 허리케인]
작은 태양의 발현으로 단숨에 올라간 고온으로 상승한 최심부의 내부, 첫 번째 마법이 끝나자마자 곧장 다음의 상위마법을 발동시켰다.
“크…!”
프로미넌스를 막아내자마자, 바닥을 중심으로 휘몰아치는 바람은 맹렬하게 회전하기 시작하여 선풍은 점점 돌풍으로 변해가며 끝에는 폭풍이 되어 비프론스의 몸을 집어삼켰다.
으리으리한 궁전을 연상케 했던 던전의 최심부는 일리아나에 의해 소환된 작은 허리케인의 폭풍이 공기를 찢어발기는 사나운 소리만이 가득 차 있었다.
마침내 약 10초의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위력이 죽어가는 폭풍이 걷히고, 그 내부에서 힘겹게 서 있는 악마의 모습을 발견했다.
폭풍의 바람에 전신이 찢겨나가 귀공자를 연상케 하는 고급스러운 옷은 갈가리 찢겨 있고, 피범벅을 흘리며 눈동자의 초점이 흐릿한 모습은 다르게 볼 것도 없이 완벽한 빈사 상태.
하지만 일리아나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네 자릿수 하위마법]
[스톤 스트라이크]
허공에서 생성된 거대한 암석이 점차 형태를 갖추며 주먹의 형태를 취한다.
연속으로 선보였던 여섯 자릿수의 마법보다는 위력이 떨어질지는 몰라도, 마법을 통해 구현된 거대한 암석 주먹의 개수는 하나가 아닌, 넷.
구현을 마친 네 개의 암석 주먹 중 하나가 일리아나의 손짓에 공격을 개시했다.
악마의몸 전체를 뒤덮고도 남을 거대한 암석 주먹이 반즈음 정신이 나가 빈사 상태에 가까운 비프론스의 몸을 강타했다.
간신히 서 있던 악마의 몸이 거대한 암석 주먹과 충돌하면서 뒤로 밀려나기 시작하고, 끝도 없이 밀려난 끝에 비프론스가 앉아 있던 왕좌와 함께 벽에 처박힌다.
콰앙!
첫 번째 공격을 마친, 마력의 응집으로 고정되어 있던 암석 주먹의 형태가 으스러지며 잔해들이 바닥으로 떨어진 가운데, 두 번째 암석주먹이 돌진했다.
벽에 처박혀 쓰러져있는 악마의 얼굴과 상체에 정면으로 충돌하면서, 비프론스의 양다리가 들썩였다.
암석 잔해들이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자욱해진 먼지 사이로 시야가 확보되지 않은 일리아나는 잠시간 공격을 멈췄다.
이윽고 자욱한 먼지 속에서 튀어나온 악마가 증오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마력을 담은 목소리로 외쳤다.
[지금 당장 모든 장비와 옷을 벗고 개처럼 기어! 나에게 복종해!]
악마의 특성, 마성(魔性)이 담겨있는 그 목소리는 단숨에 대상의 귀를 타고 침투하여 머릿속을 조종하여 자신의 지배하에 두는 세뇌의 일종.
인간은 현혹하는 특성을 지닌 서큐버스와 인큐버스만의 특수 능력이다.
“…….”
하지만 비프론스가 대상으로 삼은 일리아나는 여전히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미동도 않고 있었다.
이윽고 일리아나가 다시 손짓하자, 그녀의 위에 떠 있던 세 번째 암석 주먹이 비프론스의 전신을 강타했다.
“크허…!”
콰아앙!
비명마저도 묻어버리는 거대한 질량의 충격에 또한 번 밀리면서 바닥에 처박힌 비프론스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도대체…어떻게…?”
눈앞의 마녀가 선보이고 있는 압도적인 마법의 위력보다도, 악마로서의 특권이나 다름없는 자신의 특성이 일리아나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더욱 경악스럽다.
“나도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
느닷없이 마법의 공격을 멈추고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일리아나는 비프론스의 동의 따위는 구하지도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너, 악마들 중에서 강한 편이야?”
“나는 중급의 악마로 내가 모시는 주군의 소환을 위해…!”
“아, 그래. 됐어.”
콰아앙!
일리아나는 ‘중급’이라는 단어를 들은 순간 더는 들어볼 것도 없다는 듯 암석 주먹을 조작해, 네 번째 공격을 개시했다.
결국에는 지난번페르닌을 습격했던 리라라는 서큐버스와 마찬가지로, 상위의 악마를 소환하기 위해 수작질을 벌이고 있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스스로를 중급 악마라고 칭하고 있기는 하지만, 일리아나의 입장에서는 은현의 권속 계약을 통해 새로 부여받은 힘을 제대로 사용해볼 만한 가치도 느끼지 못하는악마라는 것이 실망스러웠다.
“그런데, 저거 왜 이렇게 안 죽어?”
이미 빈사 상태에 가까운 상태에서 몇 번이나 몰아붙였음에도, 비프론스의 숨통은 끊어지지 않았다.
“젠장…젠장…어째서 내 능력이…!”
아직도 어째서 일리아나가 자신의 세뇌를 저항할 수가 있는지에 대한 생각밖에 없었던 비프론스는 계속해서똑같은 말만을 반복해서 중얼거렸다.
“그걸 알려 줄 리가 없잖아.”
일리아나는 그리 중얼거리면서 새삼 은현의 우려가 정확히 맞아떨어졌음을 깨달았다.
-가장 조심해야 하는 건, 상대의 정신을 조작하는 특성을 지닌 악마야.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자신과 엘레노아에게 신력이 깃들어, 정신방벽을 강화하는 목걸이형 아티팩트를 제작하여 항상 착용하게 만들었다.
만약 은현의 충고를 제대로 듣지 않고 이 정신방벽 아티팩트를 착용하지 않았다면, 자신은 정말로 비프론스에게 세뇌를 당해 노예가 되어 죽을 때까지 몸과 마음을 농락당하는 처지가 되었을 것이다.
지금처럼 압도적인 무력의 차이를 가졌음에도, 정신 세뇌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지배당한다면, 그 앞날은 너무나도 끔찍할 것 같아서 상상도 하기 싫었다.
“생각해보니, 더 화나네. 악마 주제에 감히 날 노예로 만들려고 들어?”
사실상 지금의 이것도, 자신의 몸과 마음에 장난을 치려 했던 것에 대한 분노의 감정을 쏟아내는, 단순한 화풀이에 지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너는 쉽게 죽이면 안 될 것 같아.”
본래는 전혀 그럴 가치도 느끼지 못 해서 사용하지 않으려 했지만, 일리아나는 자신의 기분을 풀기 위해 마법을 발현시키기로 마음을 먹었다.
[네 자릿수 하위마법]
[블록 월]
[여섯 자릿수 상위마법]
[리버스 그래비티]
[두 자릿수 마법]
[리듀시오]
이 자리에서 다른 마법사가 일리아나가 시행하고 있는 위업을 보았다면 틀림없이 경악한 표정을 지었으리라.
동시에 복수의 마법을 발동시키는 ‘더블 캐스팅’ 또는 ‘이중창’의 경우에는 고위자릿수를 넘보는 마법사나, 고위자릿수의 마법사들에게는 불가능한 영역이 아니다.
하지만 그 경지를 뛰어넘어서 ‘트리플 캐스팅’ 또는 ‘삼중창’의 위업을 달성한 마법사는 지금까지의 역사상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각각의 종류가 다른 세 가지의 마법을 동시에 발동시킨다는 뜻은, 오른손으로는 그림을 그리고, 왼손으로는 글을 쓰며, 입으로는 말을 하는, 각기 다른 주제를 각기의 방식으로 동시에 표현하는 작업과도 같다.
그만큼 머릿속으로 처리해야 하는 연산과 정보처리 능력이 필요한 상황에서, 자치 잘못했다가는 과도한 마력 운용으로 머리가 터져나가거나 정신이 무너지는 후유증을 겪을 수도 있는 위험이 존재한다.
‘그것도 이제는 예전의 나지.’
지금의 일리아나는 다르다.
은현과 평생을 함께하는 권속 계약을 이루어내고, 그에게서 신력의 일부를 흡수해낸 지금의 일리아나는 머릿속의 정보의 수용한계 수준이 일반적인 마법사의 범주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그 수용 능력은 천 명의 방대한 엘프들의 마력을 한데 모아 조작을 할 수 있을 정도.
당시의 세계수 복원작업을 통해 또 한 단계의 성취를 이루어낸 마녀는 지금, 자신의 남편의 뒤를 따라잡기 위해 새로운 경지를 개척해나가려고 하고 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만들어낸 마법.’
일리아나의 몸을 중심으로 형성된 세 개의 마법진이 맹렬한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하여 마법을 발현시켰다.
[검은 마녀 고유 마법]
[블랙 큐브]
일리아나의 손바닥 위에 만들어진 검은색 정육면체의 작은 모형.
그것과 똑같은 형태의 정육면체로 이루어진 마법의 장벽이, 이미 저항할 기력조차 잃었던 비프론스의 주위를 감쌌다.
자신을 감싸고 있는 여섯 면체에서 반전된 중력으로 비프론스의 몸을 밀어낸다.
이윽고 손바닥 위의 정육면체의 크기를 축소 시키자, 비프론스를 감싸고 있던 정육면체가 축소되기 시작했다.
“끄…으으!”
결계의 크기가 축소되면 될수록, 내부의 압력은 점점 거세지고, 비프론스의 몸을 짓누르는 중력의 크기는 점점 커져만 갔다.
마침내 일리아나의 손바닥 위에 있는 모형이 작아 질대로 작아져, 주먹을 쥔 일리아나의 손 안에 담길 정도로 축소가 되자, 거기에 호응하여 비프론스를 가둔 결계 또한 작아져 갔다.
결계 내부에 존재하는 악마의 신체는 마치 틀 안에서 응고된 젤라틴 마냥, 내부를 가득 채웠고,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일리아나는 손에 쥔 정육면체의 모형을 힘을 주어 으스러뜨렸다.
퍼엉!
결계 속에 갇혀있는 악마가 비명 한번을 지르지 못하고, 마침내 내부에서 중력으로 짓눌리는 압력에 이기지 못해 전신이 터졌다.
터져버린 악마의 시체에서 튄 피는 결계에 갇혀 외부로 튀지 못하고 오염된 마력과 함께 내부에서 거세게 요동쳤다.
악마의 사망을 두 눈으로 확인한 일리아나는 그제야 결계를 풀었다.
“…나쁘지 않네.”
새롭게 탄생시킨 자신만의 마법의 성능을 확인한 일리아나의 짧은 감상이었다.
그 누구도 실현하지 못한 ‘삼중창’을 통해서 새로운 마법을 완성시킨 일리아나는 커다란 고양감에 사로잡혀 작게 숨을 내쉬었다.
“후우…. 이 정도면 널 따라잡았다고 할 수 있을까?”
◆ ◆ ◆
[시에테 검성술]
[환상검무(幻像劍舞)]
은현이 펼치는 검무의 동작 하나하나가 마치 수십 장의 그림들을 겹쳐놓은 한 폭의 그림처럼 유려한 움직임으로 마수들을 베어갔다.
이미 시간 가속을 통해 통상의 시간의 흐름보다 빠른 시간의 흐름 속에 살고 있던 은현은 점차 시간 감각이 사라져갔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이며, 그것을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았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을 새도 없이, 움직이고 또 움직였다.
‘신기해. 아직 더 할수 있어.’
과거의 자신이었다면 어땠을까.
점차 소모되어가는 체력과 함께 흐트러지는 집중력으로 마수들의 공격을 허용해버리고, 상처를 없던 것으로 되돌리기 위해 시간 역행을 사용하면서, 목숨을 불태우며 싸웠던 죽기 전의 자신을 떠올렸다.
그때와는 명백히 다르다.
[아이가 성장한 것이지.]
시간 가속을 통해 체력의 소모가 가속화되면서, 마수들이 물밀 듯이 밀려 들어오는 상황은 20년 전의 그때와 똑같았다.
하지만 그때와 다른 점이 존재했다.
‘나의 성장.’
그때와 달리, ‘아, 이제 끝이 보이는구나.’가 아닌, ‘아직 더 할 수 있어. 해야만 해.’라고 생각하게 되는 자신의 마음가짐.
아직 더 움직일 수 있다고 호소하는 자신의 몸.
‘불카누스의 망치’, ‘아이기스’, ‘코르누코피아’에서 제공되는 신력으로 인해 강화된 영혼.
기술의 극치를 보여주고, 강렬한 열망과 목표를 심어주었던 시에테가 남긴 검술.
그리고 가장 가까운 곁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여신.
신기하게도, 아무리 움직이고 검을 휘둘러도 전혀 지치지 않는다.
은현은 새삼 400년이지난 지금에서도 아직도 자신은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이 참을 수 없이 기쁘고 고양으로 가득한 충족감을 불러일으켰다.
은현의 감정을 읽은 베르단디가 미소지었다.
[그런 아이의 지금이 너무나도 좋구나.]
그리고 그때와는 다른 마지막 차이점은.
콰아앙!
“이 몸, 등자아아앙!”
“무사한가?”
“아이고야! 이 마수의 시체들은 다 뭡니까. 형님!?”
“괜찮으신가요!?”
“은현 님!”
늦지 않게 자신의 앞에 당도한 팀원들의 존재.
은현은 피식 미소지었다.
“빨리도 왔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