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4화 〉264. 황금 사자(2)
던전으로 진입한 리오드의 팀의 진행은 더할 나위 없이 순조로웠다.
그 이유는 최선봉에서 마수들의 침입을 절대로 허용치 않고 있는 두 명의 전위 때문이다.
검으로 마수들을 베어가며 차례차례 앞으로 전진을 시키는 리오드의 검에는 한평생을 바쳐 단련시킨 기술의 정수가 담겨있다.
단 하나의 공격조차 허용시키지 않고, 모든 마수들을 처리해나가며 압도해나가는 과정에는 기사로서 쉬지 않고 단련시켜 쌓아 올린 거대한 탑과도 같다.
[올리비온 검술]
[태산 가르기]
대량의 마나가 검 속에 집약되어, 형성된 검기를 일제히 해방시키자, 검에서 뿜어져 나온 강렬한 빛이 던전을 잠식했다.
해방된 검기가 전방의 마수를 휩쓸어버리고, 그들의 신체를 갈가리 찢어버린다.
가문 대대로 전승되어오는 비전기술의 발현에는 리오드의 집안인 올리비온 후작 가문의 시간이 고스란히 쌓여있었다.
“하앗!”
반면 리오드와 함께 전위를 담당하고 있는 작은 체구를 소녀의 외관을 가진 아니에스의 경우에는 리오드와는 정반대다.
그저 신성력으로 구현된 황금색 건틀릿을 무장한 주먹을 꽉 쥐고, 있는 힘껏 마수들을 향해 주먹을 내지를 뿐이다.
[아니에스 기본기]
[정권 지르기]
하지만 그 단조롭기 짝이 없는 공격의 여파는 절대로 평범하지 않았다.
아니에스의 권격을 정통으로 맞은 마수의 머리가 터져나가고,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하는 압도적인 폭력.
거기에는 쌓아 올린 기술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가 쌓아온 것은 그저 끊임없는 동작의 반복으로 다져진 ‘기본기’ 뿐이다.
신성의 축복을 받은 최강의 육체를 가지고 있기에, 그 육체를 공격에 활용하기 위한 끊임없는 반복의 수련.
발끝부터 손끝까지, 모든 일련의 동작들에 남김이 없도록, 흘림이 없도록 최대한의 힘을 실은 공격을 할 수 있도록, 아주 작은 낭비의 자세마저도 철저한 교정을 통해서 완성된 ‘기본기’.
그 기본기만으로도, 아니에스가 흉악한 마수를 압도할 수 있는 이유는 그녀가 가진 육체가 신성의 축복을 받은 최강의 육체이기 때문이다.
크르륵!
단순한 정권 지르기에 동족의 몸이 터져나간 것을 목격하고, 위축되어 주춤한 마수들이 일제히 아니에스에게 돌진했다.
하지만 강신(降神)을 통해서 이곳에 현현한 황금의 사자는 현재 아니에스의 또 다른 강력한 무기이자, 방패다.
매섭게 들이대며 물어뜯으려던 라이칸스로프의 이빨을, 등 뒤의 황금사자를 조작하여 팔로 막아냈다.
공격이 막힌 라이칸스로프의 몸통을 반대쪽 황금사자의 커다란 손으로 붙잡았다.
한 손에 단번에 움켜쥐어지는 마수의 몸통을 옆으로 패대기쳐버리고는, 계속해서 황금사자의 화신을 조종하여 마수의 무리를 헤집어 놓았다.
취이익!
오크의 몸통을 붙잡아 양쪽을 붙잡고, 거칠게 뜯어버리자 두 쪽으로 찢겨 나가는 마수의 참상은 그야말로 ‘압도’ 그 자체다.
동작이 큰 공격으로 인해, 황금사자의 양팔이 휘둘러지면서 훤히 열렸을 때, 몸집이 날렵한 라이칸스로프의 무리가 일제히 아니에스의 아니에스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크르륵!
“이런…!”
아니에스의 양팔과 다리, 허리와 어깨 등을 여러 마리의 라이칸스로프가 물어버린 상황.
“아, 뭐…괜찮습니다.”
“무슨 말을…?”
그것을 보고, 깜짝 놀라 아니에스에게 달라붙은 마수들을 향해 활을 겨누던 데르킨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후열에 접근한 마수들을 정리하던 제라드의 말에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저분은 당신의 동료가 아닙니까? 어떻게 그렇게 태연한….”
“아니, 저 누님 상태를 잘 보세요.”
“……? 아!”
걱정은커녕 시큰둥한 표정을 짓는 제라드의 손가락을 따라, 아니에스의 상태를 자세히 살핀 데르킨은 이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많은 라이칸스로프들에게 물린 아니에스의 몸에서는 한방울의 피도 흐르지 않았다.
상처조차도 나지 않았으며, 마수들의 이빨이 그녀의 몸에 생채기를 하나 내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었다.
“어떻게…?”
뒤늦게 생각을 해보니, 데르킨의 눈에 들어온 아니에스의 위화감은 한둘이 아니다.
전위에서 격렬한 싸움을 벌이면서, 마수의 피가 갑옷과 옷에 튀고, 움직일수록 장비의 내구도가 손실을 입고 있는 리오드와는 달리, 아니에스는 너무나도 깨끗하다.
리오드처럼 빠른 순발력과 판단력으로 모든 마수들의 공격을 피하고, 처리하는 것도 아니며,그저 돌진해오는 마수들을 일방적으로 구타하고 힘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무식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음에도, 그녀의 외향은 싸움으로 인해 생길 수 있는 흔적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저게 저분이 현 인류 최강이라고 불리고 있는 이유에요. 신성의 축복을 받고 있는 아니에스님은 전신을 감싸고 있는 저 신성이 사라지지 않는 한 절대로 상처를 입지 않아요.”
날카로운 송곳과도 같은 마수들의 이빨은 아니에스의 살을 관통하지 못하고 물리적인 데미지는 전혀 줄 수가 없었다.
심지어 찢겨 나간 마수의 오염된 피조차도 그녀의 몸에 닿으면 곧바로 정화되어 증발하고, 새하얀 사제복은 마수의 공격에 의해 손상되기는커녕 공격을 받은 흔적조차 남지 않아 깨끗하다.
세상에 저런 인간이 정말로 존재할 수가 있구나, 싶을 정도로 불합리함의 그 자체.
“…….”
그 존재를 보고 데르킨은 할 말을 잃었다.
이내 다시 입을 연다.
“세상에는…아직도 내가 모르는 신비로 가득하군.”
태어나서 400년을 넘게 시간을 보내왔던 자신의 고향을 떠나고, 아내의 눈을 치료하기 위해 나온 바깥의 세상은 숲의 종족인 데르킨에게 호기심을 가져다주었다.
“이곳이 당신이 있던 세상이구나.”
마수들은 들끓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위험한 것들로 가득한 바깥의 세상에 대한 미지는 데르킨에게 두려움을 가져다주면서, 강렬한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었다.
특히나 싸움터의 중심에서 강하게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는 두 사람을 보고, 그 호기심은 더욱 자극을 받았다.
“에리스와 함께 당신을 따라 나오길 잘했어.”
“그렇게 말해주면 저도 기뻐요.”
무심코 중얼거린 데르킨의 말에 앨리스는 기쁜 표정을 지으며, 소환한 정령들로 전위의 리오드와 아니에스를 지원했다.
“…젠장.”
생사를 오가는 던전의 안에서, 꽃이 핀 두 부부의 대화를 실시간으로 옆에서 듣고 있자니, 제라드는 괜히 더 우울해진 기분이었다.
“나에게 봄은 대체 언제즈음 찾아오는 거냐….”
멍하니 허공을 올려다보며 외로움을 토로해낸 제라드는 이를 갈며 정령사 부부를 지키기 위한 후위직의 임무를 수행해야만 했다.
◆ ◆ ◆
시간 가속을 통해서 신체를 한층 더 강화한 은현은 질주를 멈추지 않았다.
마수와의 교전을 최대한 피하면서,던전의 최심부를 향해 달리던 은현은 뒤에서 느껴진 신성의 기운을 느끼고 작게 중얼거렸다.
“아니에스가 시작했나 보네.”
“그러게? 오랜만이라고 신나게 날뛰고 있나 본데?”
허공을 날아서, 질주하고 있는 은현을 뒤따라 붙어오고 있는 일리아나가 은현처럼 아니에스의 신성력을 느끼고 헛웃음을 지었다.
“너는 어때? 아직까지 따라올 수 있겠어?”
“흥, 나를 뭘로 보고.”
일리아나는 코웃음을 치며 은현의 질문에 대답했다.
“내가 말했잖아.”
“응?”
“이제는 절대로 너 안 놓친다고.”
“…….”
뜬금없이 무슨 소리인가 싶어 은현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그거, 지금 이 상황에 맞는 이야기야?”
“맞는데? 지금 널 따라가고 있잖아.”
그것도 맞기 때문에 딱히 할 말이 없다.
우오오!
직선상에 나타나, 전방을 막아선 미노타우로스의 거센 포효를 정면으로 맞은 은현은 검 한 자루를 소환하여 자세를 잡았다.
질주하는 속력을 감속하기는커녕 더욱 가속하여 순식간에 미노타우로스와 거리를 좁혔다.
거대한 배틀액스를 들어 올려 자신의 머리를 두 쪽으로 쪼개기 위해 있는 힘껏 내려찍은 살벌한 공격을, 은현이 몸을 옆으로 틀어버리면서 피해냈다.
콰앙!
허공을 벤 배틀액스가 바닥에 내려 찍히면서 바닥을 분쇄시킨다.
이후 커다란 빈틈이 생긴 미노타우로스의 양팔과 상체를 절단시키는 한줄기의 일섬이 그어졌다.
[시에테 검성술]
[매화참선(梅花斬線)]
일섬이 그어지고, 뒤늦게 생긴 균열 사이로 절단된 미노타우로스의 상체가 스르륵 바닥으로 떨어졌다.
미노타우로스의 공격이 행해지는 것을 옆으로 피해내고, 마수의 상체를 절단시키기까지 1초도 걸리지 않았다.
기술이 들어간 미노타우로스의 생사조차 확인하지 않은 은현은 다시 중심부를 향해 질주했다.
“검, 한 자루만 썼네?”
“스승님의 기술. 연습 중이거든. 그런데 좀처럼 완벽히 재현하기가 쉽지 않네.”
사실 신계에서 베르단디의 조력으로 오랜 시간을 통해 수련에 매진했지만, 이뤄내었던 성과를 생각하기보다는,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다.
지금도 꾸준한 연습을 통해서 시에테의 기술을 사용해보았지만, 그 완성도는 은현에게 만족스럽지 못할 정도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 기술을 펼친 은현의 감상일 뿐, 검술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던 일리아나에게는 의외의 말이다.
“…그게?”
일리아나의 눈에는 검을 휘두르는 것조차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은현의 검에 베어진 미노타우로스의 몸도 깨끗하게 절단되어, 뒤늦게 바닥으로 떨어지는 광경은 그의 검이 얼마나 매섭고 빠른지를 알려주고 있었다.
방금의 검격의 수준을 리오드라면 재현할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마법사인 일리아나에게 검사들 간의 무력의 수준을 가늠하여 비교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며 둘에게 무례한 생각이다.
하지만 은현의 수준이 대륙의 검사들 사이에서는 결코 뒤질 수준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며, 자신의 실력 향상을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했다.
언제나 상황에 맞춰가며, 필요한 조건에 부합하는 행동만을 해왔던 사고방식과는 명백히 틀린 마음가짐과 행동이었다.
자신이 사랑해 마지 않는 남자는 지금도 지금의 자신의 수준에 만족하지 않고, 위를 보며 정진하고 올라가고 있었다.
“멋지네. 내 남편.”
“……?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아니, 아무것도.”
그것이 그의 스승이 그에게 남기고, 부여했던 반강제적인 목적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위해 자신의 단련을 게을리하지 않으며 위를 바라보고 있는 남자의 영혼은 눈이 부시고 아름답다.
‘나도 지고 있을 수만은 없지.’
그런 그를 따라가기 위해서는 자신도 이 자리에서 뒤처져 있을 순 없다고, 일리아나는 다시금 다짐했다.
“도착했어.”
이윽고 거대한 문 앞에 도착한 은현과 일리아나는 자신들의 키의 세배는 넘는 거대한 문을 올려다보았다.
“이 문 너머에 있는 거지?”
“그렇지.”
은현은 감지를 펼치고 내부의 상황을 살폈다.
“생각대로야. 안에 있는 건 악마 하나뿐이네. 그리고….”
양쪽에 설치되어있는 거대한 포탈들의 존재를 확인했다.
종류가 다른, 다양한 개체의 마수들이 포탈 너머로부터 이곳으로 넘어오고 있는 상황은 은현의 예상대로였음을 의미한다.
“쯧, 네 예상대로 그 ‘마계’라는 곳에서 소환되고 있던 게 맞네.”
일리아나는 항상 기분 나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것에 작게 혀를 찼다.
크르륵!
우오오오!
취이익!
라이칸스로프, 미노타우로스, 오크.
이외에도 고블린, 그렘린, 리자드맨 등 다양한 종류의 마수들이 일제히 은현과 일리아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들어가. 가서 처리하고 나와.”
애초부터 은현의 목적은 일리아나를 무사히 던전의 최심부 안까지 데려오는 것이다.
최심부에 존재하는 던전 마스터를 쓰러뜨리지 않으면 이 던전의 기능은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이 최심부의 구조상, 한번 문이 열리면 최심부의 던전마스터와 교전을 벌이면서, 포탈을 통해서 소환된 마수 무리에 뒤를 점령당해 앞뒤로 쌈싸먹히기 좋은 구조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일리아나가 던전마스터의 제압에 전념할 수 있도록 판을 만들어주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은현의 판단이었다.
“…나보고 널 또 혼자 남겨두라고?”
일리아나는 20년 전과 비슷한 데자뷰를 느끼고 인상을 찡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