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9화 〉259. 마수 전선(2)
“우리는 철벽의 수비 임무 쪽에 배치될 거야. 아마 이건 조만간 모험가들 쪽에도 전달 될 내용이니까. 에린, 너도 숙지해둬.”
“우리는요? 그럼 어떤 다른 분들이 별도의 임무를 받게 되나요?”
“응. 아버지와 제라드님, 그리고 아니에스님이 모여서 토벌대가 편성되었어. 끊임없이 마수들이 생성되고 있는 영토로 직접 조사를 하러 가실 생각이신가 봐.”
베스타 신전 쪽에서도 다수의 사제들을 파견해주었다는 사실을 추가적으로 듣게 되자, 에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제가 한 명 있는 것만으로도 파티의 원정이 얼마나 큰 안정을 가져다주는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영웅분들이 세분이시나…. 그래도 괜찮으실까요?”
아무리 영웅들로 편성된 토벌대라지만, 이렇게 대규모의 마수 군단을 단 세 명의 팀으로 감당해낼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나도 아버지가 걱정이 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아버지를 믿고 싶어.”
아버지의 기사의 모습을 동경해서 에이라는 기사가 되었다.
자신의 마음속에서 가장 큰 동경을 차지하고 있는 아버지가 질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기사가 아닌 딸로서의 걱정하는 마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믿어야 한다.
“이야기에 따르면, 마수들은 모두 낮에 출현해서무리를 지어 변경을 침략해오고 그한 번의 침략을 막아내면 다음 날 같은 시간까지는 잠잠하다는 모양이야.”
즉 어떠한 원인과 규칙을 통해서, 일정의 주기로 마수들이 매일 양산이 되고 있다는 뜻이다.
토벌대는 그 원인을 조사하고 해결함으로써 마수의 양산을 막는 것이 최종 목적이다.
“토벌대는 마수의 출현이 보고되지 않은 옆쪽의 산맥을 우회해서, 마수들과의 조우를 최대한 피하고 곧바로 중심부로 잠입할 예정이래. 요새의 수비 쪽에는, 이 모그라프령의 영주이신 변경백님과 유리아 왕녀님, 그리고 알렉스 소공작님의 병사들과 모험가들 쪽이 전담하게 될 거야.”
“현이는 그러면….”
“아마도 바로 저쪽 토벌대 쪽에 합류를 하시겠지.”
“역시 그렇겠죠…?”
“후후, 왜? 오랜만에 얼굴을 보게 되는데, 가장 먼저 얼굴을 보여주지 않아서 서운하지?”
“그, 그런 거 아니에요!”
에린은 정곡이라도 찔린 듯 얼굴을 붉히며 황급히 부정했다.
확실히 서운하기는 했지만, 지금이 자신의 개인의 감정을 우선시할 수 있을 만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모를 정도로 철이 없지는 않았다.
에이라는 쓴웃음을 지으며 속내를 들킨 것에 부끄러워하고 있는 에린의 몸을 끌어당겨 꽉 끌어 안아주었다.
“끝나면.”
“네?”
“끝나면 뵐 수 있잖아.”
“…그렇죠.”
에이라의 말을 들은 에린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닥에 주저 앉아 벽에 기대고 있던 몸을 일으켰다.
“고마워요. 언니.”
“후후, 뭘 겨우 이 정도로.”
“아! 아직 계셨군요!”
에린은 자신을 향해 허겁지겁 달려오고 있던 의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까는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모험가님께서 도와주지 않으셨다면 환자들을 제때 조치하지도 못하지도 못할뻔했어요.”
“아뇨. 저도 배우기만 했었지, 이 지식을 제대로 활용해본 건 처음이었어요. 의사 선생님의 적절한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죠.”
“그렇군요…. 정말로 훌륭하신 분에게 배우신 것 같습니다.”
“…네. 제가 정말로 존경하는 제 스승님이에요.”
에린은 자신을 가르친 은현을 칭찬하는 의사의 말에 기쁜 듯 미소를 지었다.
◆ ◆ ◆
“보입니다! 마수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다급함이 가득 담겨있는 병사의 외침과 함께, 종탑 위에서 울려 퍼지는 종소리는시끄러움을 요새 전체에 전파 시키며 위기 상황임을 알렸다.
“……!”
요새 내부에 마련된 간이침대 위에서 선잠을 자고 있던 에린은 시끄러운 종소리를 듣자마자 두 눈을 퍼뜩 뜨며 몸을 일으켰다.
망설임 없이 곧장 두 자루의 레이피어를 왼쪽 허리춤에 채우고, 곧장 방을 나와 사전에 공지 받았던 집합장소를 향했다.
에린의 반응은 다른 모험가들에 비해 매우 빠른 편이었다.
집합장소에는 열댓 명의 모험가들밖에 없었으며, 도착한 에린을 뒤따라 많은 모험가들과 병사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중앙의 단상에 서 있는 알렉스를 앞에 두고 오와 열을 맞춰 대기하고 있는 병사들, 그리고 무질서한 혼잡함으로 밀집되어 웅성거리고 있는 모험가들은 천천히 자신들의 상사이자, 고용주인 알렉스의 말을 기다렸다.
“첫 출진이다.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용맹하게 싸우되, 다쳐도 좋으니 절대로 자신의 목숨을 가벼이 여기지 말고 물러나야 할 때는 망설임 없이 물러나라.”
“““예!”””
어찌 보면 알렉스가 내린 두 가지의 명령은 서로가 모순되는 명령이나 다름이 없었지만, 아르미타스의 기사들과 병사들은 우렁찬 목소리로 알렉스의 명령에 답했다.
이내 자신이 모험가 길드에 발행한 긴급 의뢰를 통해서 이 사지로 기꺼이 따라와준 모험가들을 응시한다.
“의뢰금을 무사히 받으려면, 일단은 목숨줄은 붙어있어야겠지?”
“하하! 쓸데없는 걱정을!”
“댁이나 몸조심하쇼! 고용주 나리!”
영지의 차기 후계자나 다름없는 소공작에게 보이는 태도에는 도저히 기품과 격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몰상식함과 난폭함이 내포되어 있었다.
하지만 알렉스는 그것을 나무라지 않았다.
이 자리에 있는 모험가들과 알렉스는 ‘귀족과 평민’ 간에 존재하는 신분의 차이에서 비롯된 예의와 존중으로 맺어진 관계가 아니다.
철저한 이해관계로 이루어진 ‘고용주와 고용인’의 관계.
그 이상을 모험가들에게요구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말해야 할 것은 고용주로서 짧은 한마디뿐이다.
“죽지 마라. 절대로.”
“““우오오오오오!”””
기합과 패기로 가득 찬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요새 내부를 가득 채워 진동했다.
“각자! 고지했던 위치로! 한 마리의 마수도 왕국의 영토 안으로 들여보내서는 안 된다!”
“““알겠습니다!”””
사람들은 흩어졌다.
성문이 열리고 외곽으로 나온 에린은 뒤를 돌아 자신이 나왔던 거대한 철문과 성벽을 멍하니 응시했다.
“쩐다….”
사람을 몇십 명을 나란히 세워놓아도 닿지 않을 법한 아득한 높이.
저 높이의 성벽을 쌓는데 얼마나 많은 자원과 사람들의 노동이 들어갔을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말로만 들었던 ‘모그라프의 철벽’의 위용에는 자신도 넋을 놓고 바라볼 정도다.
“아가씨! 뒤를 보고 있을 때가 아니야! 앞을 보라고!”
“아…네!”
멍한 에린의 정신을 일깨운 것은 이전부터 왠지 모르게 말을 트게 된 지스라는 전직 포션 사기꾼 모험가였다.
황급히 정신을 차리고 전방을 주시하며 에린은 몸속의 마나를 끌어올려 신체를 강화하고 임전 태세에 들어갔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지.’
아직 마수의 군단이 시야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인지, 자신이 전장에 와있다는 실감이 나지 않아 긴장을 하고 있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반성했다.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며 아군 쪽의 진영을 두 눈에 담으며 상황을 살폈다.
‘…에이라 언니나 아르티아 쪽 분들은…저쪽이구나.’
자신과 함께 전선에 나와 있는 것은 모험가들과 아르미타스의 병력들.
유리아 왕녀를 선두로 지원해온 왕국의 병력들은 자신의 진영과 꽤 멀리 떨어져 있었다.
각자가 이끌고 온 병력을 지휘해야 하는 입장이니, 이러한 진형이 되었을 법도 하다고 에린은 생각했다.
쿵! 쿵! 쿵!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기다리고 있던 마수의 무리들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어마어마한 몸집을 자랑하는 마수들부터, 몸집이 작고 개체수가 상대적으로 굉장히 많은 마수들까지.
굉장히 많은 종류의 개체들이 산을 넘어 모습을 드러내어 변경 요새를 향해 일제히 걸어오기 시작한다.
“발사!”
[네 자릿수 하위마법]
[파이어 볼]
유리아 왕녀의 호령 아래, 수십의 마법사들이 캐스팅해둔 화염 계열의 마법을 일제히 퍼붓기 시작했다.
하나가 아닌 수십 개의 화염의 구체들이 발사되면서, 하나로 합쳐져 거대한 화염의 구를 만들어냈다.
콰아앙!
많은 마법사들이 한데 모아 쏘아진 마법들은 연쇄적인 폭발을 일으키며 대지를 불태우고, 마수들을 휩쓸며 집어삼킨다.
폭발로 인해 땅이 뒤흔들리고, 귀를 먹먹하게 만드는 소음은 그만큼 마법사들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간접적으로 표현해주고 있다.
하지만 이미 그보다 더한 마법을 한 번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일까, 에린은 이 상황 속에서도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일리아나님이 보여주셨던 마법보다 약하네….’
과거 서큐버스의 수작 때문에, 강제적으로 꿈의 세계에 끌려갔을 때, 아무렇지도 않게 상위 마법들을퍼부으며 서큐버스를 가지고 놀았던 일리아나를 생각하면, 지금의 광경은 사실상 일리아나가 얼마나 대단한 수준의 마법사였는지를 간접적으로 깨닫게 해주는 것에 불과했다.
그 광경에 잠시나마 감상을 생각했던 에린은.
“돌겨억!”
“““와아아아아!”””
알렉스의 호령을 시작으로 많은 모험가와 병사들과 함께 돌진했다.
허리춤에서 두 자루의 레이피어 중 한 자루를 뽑아 든 에린은 신체의 강화를 자신의 양다리에 집중시켜 돌진하는 것으로 자신의 이동 속도를 한 단계 더 높이 가속시켰다.
모험가가 되고 1년이라는 시간 동안 꾸준한 단련을 통해서 마력의 조작이 능숙해진 에린은 전체의 신체 강화를 넘어서, 특정 부위에 마력을 집중시켜 더욱 높은 강도의 신체 강화 효과를 이끌어 낼 수 있게 되었다.
이 자리에 있는 그 어떤 모험가보다 뒤쳐지지 않는 속도를 손에 넣은 에린이 땅을 차고 질주를 할 때마다, 하나의 선풍이 소녀의 뒤를 따라붙었다.
‘빠르게.’
추구하는 것은 오직 속도뿐.
‘더 빠르게.’
바람 그 자체가 되는 것을 상상하며 질주를 하고 있는 와중에도, 꽉 쥐고 있는 레이피어에 마력을 싣고 자세를 잡았다.
레이피어를 쥔 손을 살짝 뒤로 당기고, 다른 손으로 수평 상태를 유지하는 칼날의 끝을 엄지와 검지 사이에 걸친다.
정확히 전방에서 걸어오고 있는 커다란 덩치를 가진 오크의 머리를 조준하는 ‘사격’과도 같은 자세.
자신에게 세검술의 기초를 가르쳤던 세검사 백귀, 갤러해드의 기술.
검과 강화된 신체를 이용해 만들어낸 이 기술은 ‘사격’의 위력을 능가하는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세검술의 극의다.
[갤러해드 세검술]
[질풍사(疾風射)]
가속도라는 흉악한 무기를 덧씌워진 극한의 찌르기.
마침내 에린의 레이피어가 가장 선두에 서 있었던 오크의 머리를 관통시켰다.
퍼엉!
흉악한 마력의 폭풍이 휘몰아치는 레이피어의 공격을 직격당한 오크의 머리가 마치 부풀어 오른 풍선처럼 터져나갔다.
동시에 찌르기의 여파로 머리가 터져나간 오크의 뒤쪽 진열의 마수들에게까지 여파가 미치는 어마어마한 위력에 그 광경을 두 눈으로 직관한 모험가들이 감탄했다.
“휘유~!”
“어린 게 제법인데!?”
“역시 그 양반의 제자라는 건가!?”
“아재들도 지고 있을 수만은 없지!”
신체 강화를 통한 가속으로 누구보다 빨리 질주하여, 유리아 왕녀의 선공에 이은 압도적인 위력을 선보인 에린이 가장 먼저 포문을 열었다.
에린의 퍼포먼스는 성공적이었으며 경악과 동시에 감탄, 경쟁심 등의 감정을 부추겨 아군들의 사기를 단숨에 끌어 올렸다.
인간들과 마수들의 전쟁이 마침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