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58화 〉258. 마수 전선(1) (258/730)



〈 258화 〉258. 마수 전선(1)

“끄아악!”

하늘을 날아다니는 수백, 수천 발의 화살의  아래에서, 사람들의 비명은 끝도 없이 울려 퍼져나가고 있다.
거대한 발에 짓밟혀 뼈와 살점들이 찌그러지며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병사가 있는가 하면, 마수에 둘러싸여 팔다리를 뜯어먹혀 참담한 몰골로 생을 마감하는 병사들까지, 죽음의 형태들은 다양하면서도 잔혹하기 짝이 없다.
마수들과의 교전은  보름을 맞이하면서도 도저히 끝이 보이지 않았다.
마수의 군단들을 처리하면, 다음날 또다시 마수의 군단들이 쳐들어오고, 그 다음날 또다시 마수의 군단들이 쳐들어오면서 끝이 보이지 않는 무한 반복의 연속.
하루가 지나갈수록 철벽을 수호하는 모그라프의 병사들의 소모는 가속화되고, 하루에 죽어 나가는 사망자의 숫자는 점점 늘어만 갔다.
아무런 사망자도 나오지 않았던 첫째 날, 첫 주까지는 피해도 경미 하며 해 볼만 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끝을 모르는 마수 군단들은 3~4일을 간격으로 계속해서 철벽의 문을 뚫기 위해서 침공해왔고, 시간이 지날수록 병사들의 피로는 누적되며 소모는 더욱 가속화되었다.
뿐만이 아니라, 무기들은 계속해서 내구를 다해 소모되어가고, 식량의 소모 또한 어찌할 방법을 찾지 못해 암울하다.

‘지원요청을 너무 늦게 보낸 것일까?’

마수들의 침공이 시작된 지 11일째 되는 날, 낌새의 이상함을 느끼고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은 생각을 가지고 모그라프 백작은 왕가와 공작 가문에 지원요청을 보냈다.
너무 늦었다고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원이 오기 전에 변경이 뚫려버린다면, 그것은 자신의 판단이 틀린 것이 되어버린다.
더 빨리 사태를 예상하고,  빨리 지원의 요청을 보냈다면 병사들의 피해는 지금보다  줄어들었을지도 모른다.
오늘도 치열한 하루의 공성전을 끝내고, 병상에 누워 처참한 몰골로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수 많은 병사들의 모습을 두 눈에 담았다.

‘이렇게 끝나는가….’

모그라프 백작은 속으로 탄식했다.
건국 이래 단 한 번도 뚫리지 않았던 ‘모그라프의 철벽’은 마침내 한계를 맞이하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인연이 있었던 아르미타스 공작 가문과 페르니아스 왕가에 구원 요청의 전령을 보내두긴 했지만, 구원이 오기 전까지 버틸 수 있을지의 여부도  수 없다는 지금의 상황이 너무나도 참담했다.
조용히 두 눈을 감으며 계급과 체계를 무시하고 자신에게 질문을 해온  병사의 말을 떠올렸다.

-우리는 살아남을 수 있는 것입니까?

한쪽 절단된 한쪽 팔과 처참하게 짓뭉개져 잃어버린 한쪽 눈.
이미 생기를 잃어버려 절망으로 물든 병사의 상태는 목숨줄이 붙어있다고 해서 ‘살아있다.’라고 표현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병사로서, 인간으로써의 생은 마감을 선고받고 언제 죽을  있을지도 알 수 없었던 병사가 물어본 ‘우리는 살아남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자신의 전우들과 마을에서 자신의 생환을 간절히 기도하고 있을 가족들의 생사를 걱정한 질문이었다.
천천히 패배라는 결말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것은 모그라프 변경을 책임지고 있는 지휘관인 자신, 모그라프 백작뿐 만이 아니다.
자신의 지휘 아래에서 치열하게 목숨을 불태우며 싸우고 있는 병사들.
마을에서 병사들의 생사를 걱정하고 있는 가족들.
변경령의 영민들.
모두가 패배의 나락으로 조금씩 빠져들고 있었다.
그 상황 속에서 모그라프 백작은 그 근본적인 병사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말단 병사에 불과했던 그 병사가, 군대의 계급 체계를 무시하고 최고위의 지휘관에게 직접 말을 거는 무례를 저질렀음에도, 그 병사를 나무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물어본 병사도, 그 질문을 들은 병사들도, 지휘관들도,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대답하지 않아도 결과는 뻔히 예상할  있었다.

-…….

모그라프 백작은 처참한 몰골을 한 말단 병사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불가능하다고, 현실을 말해줄 수 있는 냉혹함을 가지지 못했다.
요청한 지원이 올 때까지 목숨을 불태우며 최대한 버티라고, 버티면 희망이 찾아올 거라는 거짓된 희망을 불어넣을 뻔뻔함조차 가지지 못했다.
자신은 유능한 지휘관인가?
의문이 든다.
아니면 1개월이라는 시간이 다 되어가는 동안 변경을 지켜낸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자기 위로를 해야 할까?
많은 병사들의 목숨을 불태우고서 지켜낸 변경에, 무슨 의미가 있다는 것일까.
모든 것이 부질없다.
가족을 잃은 영민들의 슬픔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패배를 하게 되면,  슬픔마저도 느낄 새도 없이 모든 것이 끝나버린다.

“오랫동안 이어온 철벽의 명예가…나의 대에서 깨지는 것인가….”

그것이 너무나도 통탄하다.

“영주님!”

“…….”

“영주님!”

회한에 잠겨 있던 모그라프 백작의 정신을 일깨운 것은 한 가신의 외침이었다.

“…무슨 일이지?”

“지원이 왔습니다!”

“…뭐라고?”

“아르미타스 공작 가문에서 지원을 보내왔습니다!”

암울하기 짝이 없는 마른하늘에 단비가 내리듯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모그라프 백작이 가신을 보며 되물었다.

“그게…정말인가!?”

“예. 그것도 공작 가문에 새로운 소공작으로 취임한 알렉스님께서 직접 사병들을 이끌고 성을 방문했습니다!”

“그럴 수가….”

금방이라도 통탄스러움에 잠겨 죽음을 받아들이려던 모그라프 백작이 어둠 속에서 찾아낸 한 줄기의 희망의 빛에 조금씩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신은 아직 우리를 버리지 않으셨구나.”

자신은 확실히 유능한 지휘관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죽어간 병사들을 생각하고, ‘우리는 살아남을 수 있는가?’라는 한 병사의 질문에 자신 있게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지휘관이라도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설령 자신의 능력 밖의 조력에 기대한 일일지라도,  희망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그의 가슴이 시키고 있다.
모그라프 백작은 아직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을 다시 가슴에 새기며 발걸음을 옮겼다.

  ◆

모그라프 변경령에 도착하자마자, 에린과 모험가 무리는 변경의 인솔자의 안내에 따라 곧바로 성문을 향했다.
인솔자는 자신들의 영지를 지원하기 위해 와준 모험가들에게 환영 인사를 해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고, 대단히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만큼 변경의 상황은 시간이 지날수록 최악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붕대랑 약이요!”

“이 다리는 더 이상 쓰지 못해요! 당장 절단해야 합니다!”

곧바로 성벽 요새로 이동한 에린은 요새 내부 안에 펼쳐진 참혹한 광경에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다.

“…으.”

끔찍하다.
절단된 팔다리에서 흐르는 피들을 억지로 지혈시켜 출혈을 멈추고, 간신히 숨을 붙여놓은 병사들의 몰골들.
숨만 붙어있을 뿐이지, 그것을 ‘살아있다.’라고 정의하기엔 너무나도 무리가 있다.
수많은 죽음의 향기가 가득한 요새의 내부는 19살의 어린 소녀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참혹한 광경이었다.

“우읍…!”

사람이 죽는 것을 보는 것은 처음이 아니다.
하지만 이 참혹한 광경을  눈으로 보고, 피냄새와 시체의 냄새가 섞여 진동하는 끔찍한 악취들, 고통에 몸부림치며 울부짖는 병사들의 비명.
모든 것들이 피부로 전해져오며 전신을 오싹하게 만들고 뱃속에서 위액을 역류시켜 구토를 유발한다.
하지만 에린은 필사적으로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려는 구토를 막아내고,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 참상을 함께 멍하니 바라보았던 지스가 에린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가씨?”

“돕고 싶어요.”

그 말을 끝으로, 에린은 병상에 누워있는 병사의 상처를 치료하고 있는 한 의사에게 다가갔다.

“마취! 마취약을 가져와!”

“크아악!”

고통이 심해 몸부림을 치고 있는 환자를 진정시키기 위해 의사는 억지로 그의 몸을 고정시키느라 애를 써야만 했다.
의사의 외침을 듣고 마취제를 가져다주는 이가 한 명도 없을 정도로, 요새 내부의 상황은 혼잡하기 짝이 없고 일손도 턱없이 부족한 상황.

“잠시만요.”

에린은 병사에게 접근하고 자신의 마력을 이용해 구미호의 요술을 펼쳤다.

[호족요술(狐族姚術)]
[현혹]

“으…그으…!”

미친 듯이 발광하던 병사의 신체가 에린의 손길이 닿자마자, 스르륵 힘이 풀리며 조금씩 진정이 되기 시작했다.
사람의 감정과 신체 감각을 강제적으로 조작하는 것은 완전히 악마의 능력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에린은 구미호의 요술을 통해서 그 능력이 일부를 재현해낼  있었다.
이것도 대상의 저항에 따라 먹히는 효과의 범위는 천차만별이지만, 처참한 몰골의 상태인 병사의 정신을 장악하는 것은 에린에게 손쉬운 일이다.

“어, 어…!?”

급작스러운 병사의 상태에 놀란 의사가 고개를 뒤로 돌려, 에린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 그쪽이 한 겁니까?”

“네.”

에린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감각을 차단시키고 억지로 잠에 빠지도록 만들었어요. 오래 끌 수는 없으니까, 빨리 조치를 취해주세요.”

“아, 알겠습니다!”

에린의 설명을 들은 의사는 어떻게 병사의 상태를 잠재웠냐 등,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었지만, 그것을 따질 때가 아니다.

“도와드릴게요.”

에린은 주위에 굴러다니는 나무 막대를 몇  주워와 더러운 먼지들을 털어냈다.
그대로 부러진 다리 부분에 막대를 가져다 대어 부목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끈으로 동여매어 골절 부위를 단단히 고정시켰다.
생각보다 막힘이 없고, 정확한 대처에 의사가 살짝 눈을 동그랗게 뜨며 에린을 바라보았다.

“…의사이십니까?”

“아뇨. 모험가예요. 오늘 이곳으로 지원 왔어요.”

“지원…아!”

의사는  눈을 번뜩이며, 고개를 돌려 요새 내부로 들어온 모험가들을 확인했다.
이내 다시 시선을 거두어 병사의 응급처치를 위해 손을 움직였다.
에린은 그 이후로 의사의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의사의 치료 행위를 보조했고, 중상을 입은 병사들의 상태를 케어하며 바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전체적인 병사들의 처치가 끝나고 나서야 기진맥진한 몸을 바닥에 주저앉히며 크게 한숨을 쉬었다.

“후우….”

“고생했어.”

“응?”

자신에게 생수통을 건내는 익숙한 여성의 목소리에 에린이 고개를 올려다보며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했다.

“에이라 언니!”

에린은 반가운 얼굴을 보게 되자 반색하며 에이라의 몸을 끌어안고는 미소지으며 온몸으로 반가움을 표현했다.

“그런데 언니도 이번 지원 원정에 참여하신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네 앞에 있는 거 아닐까?”

땀으로 젖어 흐트러진 에린의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가지런히 정리해준 에이라는 미소지으며 답했다.

“후작님께서 허락해주신 거예요?”

아무리 공과 사를 확실히 구분하며 딸인 에이라를 자신의 기사단 내부에 입단시키는 것을 허락했다고는 하지만, 자신이 딸을 위험한 전장에 내모는 것을 아버지가 간단히 허락할 리가 없었다.

“설득하느라 정말 고생했거든. 이번 일은 아버지뿐 만이 아니라, 어머니도 심하게 반대를 하셔서….”

“당연하잖아요.”

“그래도 여기서 빠지면 나는 정말로 ‘후작가의 여식’으로써 아버지의 연줄로 기사단에 들어온 것밖에 되지 않아. 나는 아르티아의기사로서  모습을 아버지에게 보여드리고 싶어.”

“저야 언니가 괜찮다면 상관없지만….”

“그리고 에린, 그 소식 듣지 못한 거니?”

“네?”

“아버지에게서 들은 이야기인데, 현재 모그라프령의 상황을 전해 듣고, 이곳으로 올 예정이라고 하시던데?”

누가?
라는 질문을 할 필요도 없었다.
에이라의 말을 듣고, 에린의 머릿속에 떠오른 사람은 단 한 명밖에 없었다.
꽉 끌어안았던 에이라와의 허그를 풀고 번뜩이는 눈빛 속에 기대감으로 가득 차오르면서 가슴의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았다.

“현이가 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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