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5화 〉255. 과거의 응어리(3)
-꺄아악!
순식간에 자신의 뒤를 점거하고, 자신의 팔을 붙잡아 뒤로 꺾어 관절기술을 걸어버리는 은현의 냉혹함에, 저항하지 못하던 에린이 비명을 질렀다.
-아파! 아파아! 진짜로 아프다고!
은현이 조금만 힘을 줘도 관절이 역으로 꺾이고 뒤틀린 근육들이 비명을 지른다.
울상을 지으며 붙잡혀 있는 상체를 이리저리 흔들며 에린은 은현에게 관절기술을 풀어달라고 애원했지만, 은현은 풀어주지 않았다.
그 상태 약 5초가 지나서야 팔을 풀어주자, 은현의 손에서 황급히 벗어난 에린이 꺾였던 팔의 상태를 점검하고는 울상을 지으며 은현에게 원망의 눈빛을 쏘아 보냈다.
-이 관절기술, 할 수 있겠어?
-몰라! 안 해!
인정사정없는 은현의 가르침에 잔뜩 토라진 에린의 소심한반항의 의사를 내비쳤다.
조금만힘을 줬으면 팔을 아예 쓰지 못하게 되어버렸을지도 모르는 극심한 통증에 눈물을 찔끔 흘리고 있는 에린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은현이 쓴웃음을 지었다.
-한 번 더할까?
-시, 싫어!
-그럼 이번엔 나한테 걸어봐. 아까 내가 보여준 기술.
-…내가?
더 이상 아픔을 겪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에린의 기분이 조금씩 누그러지며 솔깃한 반응을 드러냈다.
에린은 다시 체술을 배우면서, 문득 떠오른 궁금증에 은현에게 물었다.
-그런데 현아. 굳이 이 체술이라는 것도 배워야 할 필요가 있어? 나 검술 배우고 있잖아.
-그건 검으로 적의 목숨을 없애는 방식이니까. 지금 이 기술들은 목숨을 빼앗는 게 아니라, 적을 제압하는 걸 목적으로 만들어진 거야.
-제압? 어째서? 그냥 검으로 쓰러뜨리면 되잖아?
무기를 놔두고 굳이 주먹을 써야 하는 상황이 자신에게 찾아올까.
에린은 그런 만약의 상황을 머릿속으로 상정을 해보았다.
마수들을 눈앞에 두고 자신의 레이피어가 부러졌다면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할까.
아예 다른 무기를 찾아들거나, 도망을 쳐야지 맨손으로 대적을 하는 경우의 수 자체는 생각도 하기 싫었다.
-쓰러뜨릴 수 있는 것도 상대 나름이지. 에린, 잘 들어. 내가 너에게 이것들을 가르치는 이유는 마수들을 상대할 때 쓰라고 가르치는 게 아니야.
-그러면?
-사람.
-…사람?
-응. 사람.
이때의 에린은 제국의 잔당인 흑마법사와 그를 따르는 사냥개라는 싸움에 미친 미치광이 집단을 만나기 이전의 시점이다.
사냥개들처럼 에린의 역량을 뛰어넘는 기량을 가진 인간들을 적으로 만나게 된다면, 어쩔 수 없이 검을 들고 싸움에 임해야겠지만, 에린보다 약한 대상들에게까지 검을 쓰는 것은 너무 과한 처사다.
심지어 귀족들에게는 함부로 검을 들이대는 것조차 트집이 잡혀 재판을 받게 될 여지조차 있다.
그렇기에 마수가 아닌 인간과의 교전을 염두해두며, 은현은 에린에게 검술뿐만이 아니라, 체술을 가르쳤다.
인간의 목숨을 빼앗지 않고, 그들을 무력화시켜 제압할 수 있는 기초적인 기술들.
-너에게 싸움을 걸고, 너를 해하려는 사람들이 아예 없을 거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는 거, 너도 알고 있지?
-…응.
-사람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건, 마수들만이 아니야. 사람의 적에는 마수뿐만이 아니라, 사람도 포함이 된다는 걸 명심해.
◆ ◆ ◆
퍼억!
“커흑!”
에린의 주먹이 정통으로 꽂히면서, 빌라드의 고개가 옆으로 세차게 돌아간다.
그의 입속에서 튀어나온 세 개의 이빨이 허공을 날아 포물선을 그리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일련의 과정들이 너무나도 순식간에 벌어져 에린의 공격을 아무도 제지하지 못했다.
“내, 내….”
얼굴에서 전해져오는 묵직한 통증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던 빌라드가, 이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내 자신의 입속에서 바람이 새는 허전함을 느끼며 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이빨들을 알아보고는 점차 분노의 표정으로 뒤바뀌어갔다.
“내 이빨이이이이!”
“저게 감히!”
빌라드의 절규를 시작으로, 그의 뒤에 앉아있던 세 명의 남자 기사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에린에게 달려들었다.
자신에게 달려드는 기사들을 응시하며, 에린은 생각했다.
‘갑옷을 입은 기사들을 상대로는 맨손 타격은 소용없겠지?’
마력을 이용해 신체 강화를 한다면, 데미지를 줄 수 있겠지만, 상대로 마력으로 신체 강화를 한다면 그 위력은 경감되기 마련이다.
상대 기사들의 수준보다 자신의 마력 조작 능력이 뒤떨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그리 좋은 상책이 아니라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었다.
‘그러면….’
공격해야할 부위는 정해져 있다.
갑옷으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얼굴이나, 갑옷을 입고 있어도 공략이 가능한 관절의 부위들.
판단을 마친 에린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자신에게 달려드는 세 명의 기사들을 응시하며 행동을 개시했다.
뒷걸음질을 치며 거리를 벌리는 자신의 얼굴에 날아오는 주먹을 옆으로 피하고는 주먹을 내지른 팔의 어깨 부위를 양손으로 휘감았다.
우드득
“크아악!”
손목을 붙잡아 고정시킨 상태에서 팔을 어깨 뒤로 있는 힘껏 꺾어버리자, 한 기사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이게!”
에린에 의해 팔이 꺾인 기사와 함께 에린에게 달려들었던 기사들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에린에게 위해를 가하려 했지만, 에린은 자신의 손에 붙잡혀 팔이 꺾인 기사를 앞세워 방패막이로 사용했다.
“컥!”
추가적인 지원으로 위해를 가하려 했던 기사의 주먹이 에린이 방패막이로 내세운 기사의 얼굴에 직격을 하면서, 정작 주먹을 내질렀던 기사가 동료 기사를 공격했다는 사실에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기사들이 주춤거리는 그 짧은 순간을 에린은 놓치지 않았다.
“크아악!”
방패막이로 사용한 기사의 무릎 뒤, 오금을 사정없이 걷어차 버리자, 동료 기사에게 얻어맞은 격통을 느낄 새도 없이 그의 다리가 바닥에 꿇려지면서 비명을 내질렀다.
그렇게 손에 쥐고 있던 방패막이 기사의 팔을 옆으로 내팽겨치고 옆으로 치워버리고는, 주춤한 태도를 보였던 두 기사 중 하나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크윽!”
공격적으로 파고드는 에린의 행동에 조급해진 동료 기사가 다급히 주먹을 내질렀지만, 에린에게 통할 리가 없는 단조로운 공격에 지나지 않았다.
상체를 낮춰 품으로 파고드는 자신의 얼굴에 내지르는 주먹의 손목을 손등으로 쳐내 튕겨냈다.
이윽고 허리를 비틀어 회전을 실은 에린의 팔꿈치가 동료 기사의 턱을 깔끔하게 가격한다.
퍼억
“커헉!”
턱에 들어온 엘보의 충격으로 잠시간 시야가 흔들리고 가벼운 뇌진탕으로 동료 기사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휘청이고 있는 상태.
에린은 그의 기사 갑옷 목가리개 부분의 빈틈을 손으로 붙잡고 아래로 끌어당겼다.
단숨에 상체가 아래로 숙여지면서 무방비 상태의 머리 이마에 니킥을 꽂아 넣었다.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에린의 무릎에 적중한 동료 기사가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끄으으!”
한쪽 팔이 꺾이고, 오금을 짓밟혀 타격을 입었던, 맨 처음 에린에게 달려든 기사가 바닥에 드러누운 상태로 에린의 한쪽 다리를 붙잡았다.
“…….”
비교적 멀쩡한 팔로 자신의 한쪽 다리를 붙잡고 죽일 듯한 표정으로 올려다보는 기사의 시선을에린의 무심한 시선으로대응했다.
“건방진 년이!”
퍼억!
마지막으로 남았던 기사의 주먹이 에린의 얼굴에 직격했다.
무거운 힘이 실린 일격에 에린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지만, 에린의 눈은 올곧게 자신의 얼굴을 강타한 마지막 기사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게 다야?’
항상 매섭고 묵직한 힘이 실린 은현의 주먹에 대한 기억이 너무 강렬했기 때문일까, 은현의 공격과 기사의 공격을 비교해보고, 너무나도 볼품없는 위력에 되려 허무한 감정까지 들었다.
자신의 얼굴을 가격한 기사의 팔을 한쪽 팔로 휘감아 단단히 고정한 상태에서, 에린은 발끝에서 시작해 허리와 어깨의 모든 부위를 총동원하여 반대쪽 주먹에 힘을 실었다.
“…잠…!”
자신의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에린의 주먹에 기겁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의 행동을 제지하려 했지만.
퍼억!
“크허억!”
기사의 말보다 빠른 에린의 주먹이 기사의 얼굴을 강타하면서 그의 고개가 옆으로 꺾였다.
이후 빠르게 자신의 주먹을 회수한 에린은 다시 한번 주먹을 내질러 휘청이는 기사의 얼굴에 추가타를가했다.
퍼억!
그것도 한 발이 아닌, 여러 발로.
퍼억! 퍼억!
숨을 토해낼 여유조차도 없이, 한쪽 팔을 붙잡혀서 도망치지도 못한다.
계속해서 한쪽 옆얼굴을 속수무책으로얻어맞고 있으면서도, 기사는 혼미해진 정신을 되찾지도 못해, 제대로 된 저항 한번 해보지 못했다.
퍼억! 퍼억!
“그만! 그만! 아가씨!”
이제는 일방적이기까지 한 압도적인 폭력의 현장으로 변질이 되어가려 하자, 보다 못한 지스가 에린의몸을 끌어당겨 바닥에 쓰러진 기사들과 억지로 거리를 벌려놓아야만 했다.
“아.”
지스의 난입에 의해서 무아지경으로 기사의 얼굴을 패던 에린이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리고 눈앞의 기사의 모습을 살폈다.
이미 퉁퉁 부어오른 한쪽 얼굴과 입속에서 줄줄 흐르는 피와 함께 우수수 떨어져 나가는 대여섯 개의 이빨들.
에린이 붙잡고 있는 팔을 풀어주자, 진즉에 다리에 힘이 풀린 기사가 스르륵 바닥에 얼굴을 쳐박았다.
“…….”
지스는 한 소녀가 벌여놓은 참담한 현장의 모습에 살짝 기가 질린 표정을 지었다.
“휘이~!”
그 상황을 관전하고 있던 한 모험가가 감탄이 섞인 휘파람을 불었다.
빌라드를 포함한 기사들넷이 단 한 명의 소녀에게 일방적으로 얻어맞아 패배한 모습은 상황을 관전하며 밥을 먹고 있던 다른 모험가들에게도 꽤나 인상적이었다.
“젠장…젠장!”
스르릉!
순식간에 자신의 동료 기사들 셋이 정리를 당하자,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빌라드가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감히…감히 내 얼굴을…! 내 이빨을…!”
빌라드가 거리를 벌린 에린에게 달려들어 검을 휘두르려는 찰나.
“무슨 소란이냐!”
기사들의 비명과 소란스러워진 분위기를 감지하고 크라시르의 기사들이 대거 몰려왔다.
“이건…!”
이내 그들 중에서 가장 높은 지위를 가진듯한 기사가 상황을 살펴보고, 바닥에 쓰러져 있는 세 명의 기사들의 참상을 발견하고, 얼굴을 굳혔다.
모두 무기를 쓰지 않은 맨몸으로 만들어낸 참상들.
누가 자신의 기사단원들을 이런 꼴로 만들었는지 다시 고개를 돌려 주위를 확인했다.
고위기사는 위치상 쓰러진 기사단원들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었던 에린과 지스를 쳐다보며물었다.
“너희 둘이 한 짓인가?”
매섭게 날이 선 목소리로 묻는 고위기사의 목소리에, 에린을 붙잡고 있던 지스가 황급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부정했다.
“나, 나는 아니외다! 모두 이 아가씨가…! 크, 크흠!”
어쩌면 이 상황에서는 에린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우고 자신은 발뺌하려는 듯한 상황의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지스가 황급히 말을 아꼈다.
사실상 모두 에린이 혼자서 한 일은 맞지만, 그녀를 변호해주기는커녕 나몰라라하는 태도에 에린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뒤늦게 염려가 된 것이다.
이윽고 지스는 뒤늦게 에린에게 자신에게 내걸었던 조건과 부탁을 깨닫고 급하게 입을 열었다.
-나중에 증언 하나만 해주세요.
-지금부터 시비는 저쪽에서 먼저 걸었다고요.
“저, 저들이 먼저 시비를 걸었수다! 이쪽 아가씨한테!”
황급히 바닥에 쓰러져 있는 기사들을 가리키며 지스는 아까 전 에린이 했던 부탁을 착실히 수행했다.
“…….”
하지만 정작 기사들을 때려눕힌 사건의 당사자인 에린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후우….”
“아, 아가씨! 뭐라고 말이라도 좀….”
작게 한숨을 내쉰 에린은 다급하게 말을 거는 지스의 목소리조차도 들리지 않았다.
이윽고 소녀의 입가가 호선을 그리며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아, 후련해!’
에린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던 무거운 응어리 중 하나가 스르륵 녹아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