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1화 〉251. 긴급 의뢰(2)
“…‘스탬피드’라고?”
“저건 참여하면 개죽음 아니야?”
“하지만 보수가 쎈데? 금화 열 닢이잖아.”
“야. 저것도 끝나고 살아있어야 받을 수 있는 거야. 일개의 던전 하나에서 일어난 스탬피드와는 차원이 틀리다고!”
던전의 스탬피드가 아닌, 오염된 마나로 득실거리는 멸망한 제국 영토에서 흘러나온 마수들의 스탬피드.
그것은 그 규모도, 질도 전혀 틀리다.
위험의 수준을 비교하는 것조차도 우스운 수준.
일개의 모험가가 이 전선에 참여해서 목숨을 보존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정도다.
에린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생각에 잠겨 있는 제라드의 눈치를 살짝 보고는 주위를 둘러보아 다른 모험가들의 분위기를 살폈다.
“분위기가….”
음성 증폭 마법을 통해 의뢰의 내용을 들은 모험가들의 표정은 제각기 달랐다.
의뢰의 금액에 눈을 빛내는 자들도 있지만, 그런 자들은 극소수일 뿐이었다.
압도적인 수의 다수가 회의적인,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긴급 의뢰를 공지한 길드의 접수원들과 모험가들 사이에 어색하면서도 소란스러운 기류가 흘렀다.
아무리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일을 하는 직업이 모험가라지만, 개죽음을 당할 확률이 높은 지역으로 자기 스스로 발을 들이밀고 싶어하는 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누구도 접수대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지 않는 상황 속에서, 한 모험가가 손을 들어 발언을 요청했다.
“네. 말씀하세요.”
“지금의 이 긴급 의뢰는…강제입니까?”
“강제는 아닙니다. 하지만…모험가 길드의 입장에서는…모험가 여러분들께서 꼭 받아 들여주셨으면 합니다. 모그라프 변경의 최초 방어선이 뚫리게 되면…다음으로 위험한 곳은 이곳, 아니, 이곳뿐 만이 아니라 다른 지역에까지 피해가 확산될 우려가 있으니까요.”
트리샤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질문을 해온 모험가의 질문에 솔직하게 답변했다.
그렇기에 어떻게든 모험가들을 모그라프 령으로 지원을 보내기 위한 수단으로 금화 10닢이라는 비싼 금액을 보수로 내걸었다.
왕국의 일반 병사의 급여가 금화 2닢이라는 것을감안한다면, 금화 10닢은 절약만 해도 2~3개월의 생활비로 사용할 수 있는 거금이다.
하지만 이러한 거금이라도 과연 자신이 목숨과 저울질을 해서 사지로 나설 수 있는 자가 몇이나 될까.
영웅 취급을 받고 있는 백금위계나, 모험가들 사이에서 이름을 알린 금위계, 아니면 자신의 실력과 운을 믿고 처세에 능한 은위계의 모험가들이라면 걸어볼 법한 도박이지만, 적어도 동위계나 신참 모험가들에게는 도저히 넘볼수 없는 영역과도 같다.
“어쩌지? 너 갈 거야?”
“미쳤냐? 개죽음 확정인데.”
“아 X발, 금화 10닢이 어디 집 개 이름도 아니고 엄청 큰 돈인데.”
“병X아, 니 수준이면 그냥 가서 마수들밥 신세라고 주제도 모르고 욕심을 부리네.”
웅성거리며 각자의 동료들과 의견을 나누고 있는 목소리들로 소란스러워진 가운데, 트리샤를비롯한 모험가 길드 직원들은 조마조마한 심정을 애써 숨기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길드는 이번 건에 한해서 모험가들에게 긴급 의뢰를 강제로 수주시킬 수 없다.
내용의 경계 자체가 굉장히 애매하기 때문이다.
공작령의 위기로 긴급 의뢰 공지가 뜬 것이라면, 금화 10닢이 아니라, 금화 2닢으로도 모험가들에게 그 긴급 의뢰를 강제할 수가 있다.
이 영지 자체의 위험은 곧 모험가 길드 지부의 위험으로 이어지며, 모험가들은 자신들의 일터를 잃어버리게 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이 긴급 의뢰의 내용이 아르미타스 공작령으로 밀려 들어오는 마수 군단의 섬멸이었다면, 모험가들은 싫어도 반강제적으로 이 의뢰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길드의 법안으로 제정이 되어있기 때문.
하지만 이 경우는 틀리다.
아르미타스 공작령이 아닌, 모그라프령으로 보내는 지원군이 이 의뢰의 내용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우리가 공작 가문과 맺은 계약 내용에 이 부분은 포함이 되어있지 않았으니까.”
애초에 공작 가문과 계약을 통해 공작령으로 이주해온 이름 있는 중상위계의 모험가들도 공작 가문과 맺었던 계약의 조건은 ‘공작령에서의 활동’으로 마수의 범람화를 억제하는 것이었지, 모그라프령의 지원과는 별개의 문제다.
그렇기에 모험가 길드와 공작 가문 측이 내건 조건이 보수로 내건 금화 10닢이다.
“아니, 그래도 말이지. 진짜로 모그라프 변경이 뚫릴까?”
“하지만 이렇게 지원 요청 긴급 의뢰까지 뜬 상황이라면, 변경 쪽도 버티는 것도 한계라는 뜻 아니냐?”
“거기 뚫리면 진짜 답도 없는 건 맞는데. 그런데 타영지의 지원을 긴급 의뢰로 보내는 경우가 있었나?”
“모르지. 공작과 변경백이 어떤 연줄을 가지고 있는지.”
결정을 해야 하는 것은 모험가들 자신이며, 그에 대한 목숨을 걸고 책임을 져야 하는 것도 자신이기에, 모험가들은 신중하고 또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많은 모험가들의 상황을 추측하고, 고민하고, 결정을 내리기 위해 서로의 의견을 묻고 답하고 있을 때.
“제라드님.”
“에린 양?”
“저 좀 가봐야 할 곳이 있어요.”
“흐음? 가봐야 할 곳입니까? 어디죠?”
이 혼잡한 상황 속에서 소녀는 갑자기 어디를 가보겠다는 것인지, 호기심이 동한 제라드가 물었다.
“공작님 저택에요.”
“흠?”
◆ ◆ ◆
“그래서, 나에게 왔다는 건가.”
“…네.”
에린은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펜이 움직이는 서걱거리는 소리와 종이 서류들을 넘기는 소리만이 가득한 집무실 안에서, 알렉스의 대답을 기다렸다.
책상에 앉아 묵묵히 서류 작업을 처리하고 있는 알렉스는 에린의 기다림에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에린, 차 마실래?”
“네? 아, 네. 감사합니다.”
알렉스와 에린 사이에 아무런 대답도 오 가지 않고 조용한 침묵이 이어지자, 무거운 분위기에 견디지 못한 아이샤가 에린에게 홍차를 권했다.
“그…제라드님? 도 한 잔 드릴까요?”
아이샤는 처음 보는 아르티아의 단장이자, 대영웅 중 하나인 리오드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던 남성을 올려다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리오드 이외엔 대영웅의 존안을 한 번도 보아왔던 적이 없었던 아이샤였지만, 은현의 결혼식 이후로 일리아나와 아니에스를 영접하게된 이후로는 가슴의 두근거림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와, 와아…엄청 잘 생겼네. 뭐야. 진짜 완전 미중년이잖아?’
“감사합니다.”
정갈하고 단정한 정장과 맵시를 살려주는 잘 단련된 신체의 라인이 정장과어우러져 고급스러운 기품을 연출한다.
싱긋 웃어 보이며 화답하는 남성은 이전까지 한 여성에게 정열적으로 청혼을 했던 변태신사가 아닌, 기품과 격식으로 무정한 중년의 신사다.
“…….”
그 급격한 변화를 눈앞에서 목격한 에린이 두 모습의 차이에서 느껴지는 괴리감을 느끼며 어이를 상실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로 가만히만 있으면 이만큼 미중년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훌륭한 남성이라는 느낌을 그대로 표현하는 듯한 인상을 가졌지만, 자신의 반려를 찾았다 싶으면 저돌적으로 들이대는 모습을 한 번 보게 된다면 확 깨게 된다.
심지어 그 에린마저도 한 번 깜빡 속아 넘어갈 정도.
“왜 여기를 왔지?”
“네…?”
아이샤가 따라준 홍차를 홀짝이던 에린이 기다렸던 알렉스의 대답을 듣고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순간 자신이 제대로 설명을 하지 못한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어, 에린은 다시 입을 열어 설명했다.
“그러니까…모험가 길드에서 모그라프령이라는 곳으로 지원을 가줄 모험가들을 모집한다는 긴급 의뢰를 들어서….”
“그 긴급 의뢰를 발행한 게 나였으니까. 나를 찾아왔다는 건가?”
“네.”
“그래서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거다. 왜 나를 찾아왔지?”
“네?”
또다시 같은 질문과 같은 대답으로 돌아오자, 에린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흐음.”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때마침 서류 작업을 마친 알렉스가 펜을 내려놓고 고개를 올려다보며 에린을 응시했다.
“아이샤. 나도 홍차.”
“넵.”
이미 준비하고 있었던 듯 홍차를 따라둔 찻잔을 곧바로 옮겨 알렉스의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나한테 무슨 대답을 듣고 싶어서 온 거지?”
“어, 저는….”
무슨 대답을 요구하는 것인지, 묻는 알렉스의 질문에 에린은 문득 말문이 막혀 곧장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왜 곧장 이곳으로 왔을까?’
스스로도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았다.
공작 가문에서 긴급 의뢰를 발행할 정도로 큰일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이 무언가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싶어 무작정 찾아왔다.
“상황은 알고 있나?”
“네. 모그라프령이란 곳에서 마수 군단의 침공을 막기엔 역부족이라 아르미타스령의 모험가들에게 그곳으로 지원을 가줬으면 좋겠다고…알고 있어요.”
“제대로 알고 있군. 나는 그곳으로 지원을 가줄 모험가들과 선발된 아르미타스의 기사들으 이끌고 3일 뒤에 출정할 예정이다.”
“아, 알렉스님이 직접요?”
“그래.”
알렉스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모그라프 백작 가문과 아르미타스 공작 가문은 지금의 세대 이전부터 오랜 교류를 이어온 가문이야. 게다가 그곳의 철벽이 마수들에 의해 뚫리게 된다면 그 피해는 순식간에 주변의 페르니아스 왕국 영토를 집어삼키게 될 게 뻔하다.”
“맞습니다.”
홍차를 마시고 있던 제라드가 알렉스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제라드님께서는 이번 긴급 의뢰에 대해 어떻게 행동하실 예정이십니까?”
“저야 당연히 참가할 예정입니다만, 구체적인 소공작의 계획을 들어보고 싶군요.”
“저희 원정에 참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뇨. 저도 소공작의 의견에는 동의하는 바입니다. 가문과 가문 사이의 인연이나 교류 같은 부분은 둘째 치더라도, 그곳이 뚫리게 된다면 정말로 답도 없는 상황이 연출될 테니까요. 민간인들에게 끼칠 수 있는 위험은 최소화해야 하는 게 맞겠죠. 물론 금화 10닢이라는 보수도 쏠쏠한 부분입니다만.”
제라드는 익살스레 어깨를 으쓱였다.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 사지로 들어가는 것에도 여유를 보일 수 있는 이유는 많은 사선을 넘어오면서 단련된 영웅들만이 가질 수 있는 담력과 배짱으로 다져져 있기 때문이다.
“감사합니다.”
알렉스는 고마운 결정을 내려준 제라드를 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감사의인사를 전하며, 이내 에린을 보며 물었다.
“그래서 상황은 이렇다.너는 어떻지?”
“저는….”
“굳이 참여하지 않아도 괜찮다. 아무리 네 실력이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이건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특히나 모험가로써의 일을 시작한지 1년 차 밖에 되지 않은 네가 이 원정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해서, 누구도 너를 비난할 수는 없어.”
참여하지 않더라도, 굳이 도와주지 않더라도 괜찮다는 알렉스의말은 배려인 걸까, 아니면 자신의 실력을 믿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둘 다 일지도 모른다고 에린은 생각했다.
자신을 생각해주는 존중과 배려가 섞여 있는 말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에린은 서운함을 느꼈다.
“에린.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선배의 말은 너를 믿지 못 해서 그런 게 아니야.”
“네…?”
“선배도 참…그렇게 뭉툭하게 말씀하시면 애가 오해하잖아요!”
“…내가 뭘 어쨌다는 거지?”
알렉스가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묻자, 아이샤는 고개를 홱 돌리며 알렉스의 물음을 무시하고는 에린에게 말했다.
“에린. 선배의 말의 뜻은 부담을 가지지 말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결정을 하란 뜻이야.”
“부담…이요?”
“응. 무섭거나 하고 싶지 않다면, 하지 않아도 돼. 하지만 그래도 참가하고 싶다면, 확실하게 네 의견을 말하면 되는 거야.”
“아….”
“그런데 그걸 ‘너까지 나올 필요 없어. 약하니까 나와봤자, 개죽음이니까.’라는 투로 말하니까 애가 상처받은 표정을 짓는 거잖아요!”
“…그렇게까지 이야기하지는 않았는데.”
알렉스는 아이샤의 핀잔에 인상을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심지어 제라드님에게 의사를 묻고 에린의 차례로 넘어오니까 그게 더 비교되어서 그 점이 부각 되었잖아요. 말주변 진짜 없네!”
제라드의 경우에는 참가만 결정된다면 큰 전력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에 물어볼 수밖에 없던 부분이 있었지만, 그 이후에 에린에게 곧바로 말을 걸었던 것은, 소녀의 입장에서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었음은 명백했다.
“에린.”
“네, 네!”
다시 한번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알렉스의 목소리에 에린이 퍼뜩 정신을 차리며황급히 대답했다.
“지금 이곳에는 은현이 없다.”
“…네.”
“언제나 앞에서 길을 만들어주고 이끌어줬던 그 녀석이 없으면, 너는 네 스스로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는 건가?”
“그, 그건….”
“지금 네 행동은 그런 방황이 적나라하게 보이는군.”
에린은 정곡을 찔린 듯 어깨를 움찔 떨었다.
평소라면 길을 제시해주는 은현의 말에 따라, 자신은 그저 그 길을 따라 걷기만 하면 됐었다.
그것이 절대로 잘못된 길 일리가 없다는 굳건한 믿음과 신뢰는 은현에게 과하게 의존하고 있는 에린의 성향에서 비롯된 것이다.
1년을 가까이 지나면서 은현이 없는 지금, 에린은 다른 의미로 방황을 하고 있었다.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거나 중요한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1년이 넘도록 에린이 해왔던 것은 그저 모험가의 활동을 하면서 주어진 의뢰를 달성하고, 기사들이나 마수들과의 전투를 통해서 경험을 쌓는 자기단련의 일환이었을 뿐, 정신적인 성장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아무것도 정하지 못하고, 방황을 하면서 무작정 알렉스를 찾아온 것이다.
-왜 여기를 왔지?
-나한테 무슨 대답을 듣고 싶어서 온 거지?
그저 시키는 것을 하러 왔을 뿐이다.
모험가 길드의 마수 퇴치 의뢰를 수주했을 때처럼.
“아….”
뒤늦게 알렉스의 지적을 깨닫고 부끄러운 마음에 얼굴을 붉혔다.
“너는 그 녀석이 없으면 스스로 아무것도 정하지 못하는 어린애인가?”
곧 성인이 되어가는 성숙한 숙녀가 될 예정인 소녀는 아직도 은현이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어린 소녀의 티를 벗어나지 못했다.
아무리 신수의 힘을 능숙하게 다룰 수 있게 되더라도, 기사들이나 마수들과 많은 전투 경험을 쌓았더라도, 소녀의 정신적인성장은 하나도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소녀는 깨달았다.
“저는….”
얽히고설킨 복잡한 실타래를 하나하나 풀어내듯, 조금씩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해나가고, 자신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하나의 작은 열망을 찾아낸다.
은현이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주었던 것처럼, 자신을 구원의 길로 이끌었던 것처럼, 작은 열망은 점차 하나의 꿈으로 변해갔다.
“사람들을 구하고 싶어요.”
“나쁘지않은 대답이군.”
알렉스는 만족한 듯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