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50화 〉250. 긴급 의뢰(1) (250/730)



〈 250화 〉250. 긴급 의뢰(1)

“와아! 에린 언니가 왔어!”

“정말?”

“진짜로?”

“응! 맛있는 빵을 잔뜩 사왔어!”

“와아아아!”

한 소녀가 에린을 발견하고, 두 손에 쥐어져 있는 커다란 빵 봉투를 확인한 어린아이들이 환호하며 에린에게 모여들었다.

“얘, 얘들아…. 진정해! 다 나눠줄 테니까!”

일제히 몰려들어 아우성거리고 있는 모습이 마치, 어미새가 모이를 던져주기를 기다리는 아기새들의 웅성거림으로 혼잡하다.
순식간에 시끄러워지면서 질서를 잃은 아이들의 모습에 에린은 당황했다.

“꺄악! 누구야! 방금! 내 엉덩이 만진 거!”

악의가 섞여 있지 않은, 그저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소녀가 곤란한 모습을 보고 싶어 못된 장난을 치는 소년들의 나쁜 손에 비명을 지른다.
그것이 모험가길드에서 있었던 해프닝으로 자신을보고 음탕한 생각을 품었던 남성 모험가와는 다른, 그저 장난을 좋아하는 어린아이의 치기에서 비롯된 행동이기에 정색하고 화를 내기에도 뭐하다.

“다들 조용!”

그런 아이들에게 노성을 질러 단숨에 침묵의 분위기를 형성한 것은 어마어마한 노기를 뿜어내고 있는 릴리였다.

“너희들이 이러면 에린이 빵을 나눠줄 수 없잖아! 지금부터 일렬로 나란히 서! 새치기하지 말고!”

“네에!”

릴리의 호통이 떨어지자, 그제서야 통제가 잡히고 무작정 에린에게 엉겨 붙었던 아이들이 하나둘씩 떨어져 나가며 일렬로 줄을 서기 시작했다.
조금씩 질서가 확립되어가자, 에린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릴리를 보고 미소지었다.

“언니. 고마워요.”

“아니야. 도와줄게. 자, 얘들아 차례대로 와서 빵 받아가렴.”

“어째 전보다 인원이 더 늘어버린 것 같아요….”

“그야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으니까….  흑랑단이라는 쪽에서 받아들인 고아들도 섞여 있기도 하고.”

보육원의 설립과 동시에, 이곳으로 들어온 아이들은 모두 릴리처럼 제국의 잔당 흑마법사에게 악의적인 인체실험을 받았던 노예들이거나, 다양한 사정으로 부모를 잃고 갈 곳이 없어진 고아들이 대부분이었다.
그중에는 은현이 흑랑단을 자신의 수하로 사용하게 되면서조건으로 받아들였던 흑랑단 쪽의 고아들도 대다수였다.
에린은 잔뜩 기대의 찬 시선으로 자신과 릴리를 바라보고 있는 아이들을보고는, 흘끗 고개를 뒤로 돌려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제라드에게 말을 걸었다.

“제라드님! 저희 좀 도와주시겠어요?”

“예. 기꺼이.”

“…에린, 저 사람 알아?”

거리낌 없이 제라드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에린의 태도를 보고, 릴리가 미심쩍은 눈초리로 에린에게 물었다.

“네? 아, 아하하…. 일단은…알아요.”

어색하게 웃으며에린이 말을 이었다.

“저도 제라드님께 언니와 비슷한 경험을 해봤거든요.”

“뭐!? 너한테?”

자신 또래의 여성이 아닌, 미성년자의 소녀에게 구애를 했다는 제라드의 만행을 들은 릴리가 경악을 동반한 다양한 표정으로 제라드를 노려보았다.
그 시선을 받은 제라드가 쓴웃음을 지으며 손을 내저었다.

“그때 저는 에린 양이 10대의 소녀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저도 하마터면 큰일  뻔했다니까요.”

리오드가 중간에서 잘 중재해주지 않았다면, 하마터면 이후에 은현에게 대차게 까일 뻔했으리라.
에린은 애매모호한 표정을 지으며 가능한 최대한의 옹호의 발언을 펼쳤다.

“이, 일단 나쁜 사람은 아닌데….”

하는 행동이  매우 별나다.

“이런…아직 제대로  제 소개도 아직이었군요.  이름은 제라드. 모험가를 생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입니다.”

“생각해보니 자기소개도 안 하고 대뜸 구애부터 해온 거였네. 이 인간?”

그 행동에 릴리는 기가 찬 표정을 지었을 뿐이었다.

“저어…언니. 그리고 제라드님은….”

과거에 일리아나와 은현과 함께 팀을 짰던 동료이며, 현 여섯 명의 대영웅 중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아이들이 듣지 못할 작은 목소리로 속닥거리며 릴리에게 전달했다.

“뭐, 뭐어!? 이 변태가!?”

믿을  없다는 시선으로 릴리가 제라드의 얼굴을 시작으로 전신을 훑어보고 이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최근까지 그 존재가 숨겨져 있었던 자신의 주인님인 은현은 그렇다 치고, 여덟 자릿수의 고위마법사인 검은 마녀나, 베스타의 성녀, 페르니아스 최고의 기사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영웅의 존재가 눈앞에 있다는 사실이 믿겨 지지 않았다.
게다가 그 대영웅이 적나라하게 자신에게 구애를 해오며 성희롱을 해오는 변태 신사라는 것이 더더욱 충격적이다.

“지, 진짜예요. 저도 한 번 도움을 받았는걸요.”

페르니아스 왕국 내부에 마약을 풀었던 제국의 잔당 흑마법사를 처리하는 것에 큰 도움을 주었던 것이 바로 제라드다.
 흑마법사는 릴리와 많은 아이들을 노예로 사들여 악마로 변이시키는 인체실험을 진했었던 악인.
릴리와 고아들을 구해낸것은 은현이었지만, 란델이라는 흑마법사에 대해서 공통의 연결점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제라드는 구태여 그 사실을 일부러 밝히지 않았다.

“그런데 언니도 알고 계신 거 아니었어요? 그럼 어째서 언니의 정체를….”

대뜸 잘 알지도 못하는 관계였으면서, 어째서 릴리는 자신의 절반이 악마라는 사실을 제라드에게 고백했던 것일까.

“그, 그거야 주인님의 집에서  번  적이 있었으니까, 주인님 쪽의 사람이라, 사정도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것 정도로만 알고 있었지! 저 변태가 그런 훌륭한 사람이라는 걸 누가 짐작할 수 있었겠어!”

일리아나와 엘레노아가 공식적으로 은현과 결혼식을 올리기 전, 한 차례식사차 제라드를 불러 요리를 대접했던 적이 있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릴리는 제라드가 은현과 그저 친분이 있는 남자로만 알고 있었다.
공작 가문에 사정을 설명하고 은현의 몸종이자, 메이드로 있는 것을 허락받은 릴리의 사정은 은현의 지인들은 모두 알고 있는 문제였기에, 주위의 눈치를 보면서도 제라드를 설득하기 위해 작은 목소리로 밝힌 것이다.
생각해보면 은현과 관계된 사람들은 모두 하나같이 신분이 높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냥 그러려니 하며 자세한 신분을 묻지 않았던 것이 화근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그의 이름과 내력을 은현에게 물어보면서 기억을 해둘 걸 그랬다고 릴리는 크게 후회했다.

“하하! 그때의 요리는 정말 맛있었습니다! 릴리님은 정말로 훌륭한 여성이시군요!”

“아니, 그게….”

“현이 형님의 그 던전 주택의 관리를 하시면서, 동시에 이 보육원의 운영을 하고 계시다니! 정말로 릴리님의 행동은 누가 보더라도 존경받아 마땅한 일을 하고 계십니다.”

“그, 그건 정말로 감사한데….”

“그러니 부디  아이를 낳아, 이 보육원의 아이들처럼 따뜻한 모성과 애정으로 품어주시고 저와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가지 않으시겠습니까?”

“또 시작이네. 진짜!”

아이들에게 빵을 모두 나눠주자마자, 또다시 시작된 열정적인 구애는 애써 가라앉혔던 릴리의 기분을 짜증으로 다시 화르륵불타오르게 만들었다.

“후우우….”

릴리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치밀어오르던 짜증을 다시 가라앉히고, 아까와는 다른 높은 신분의 윗사람을 대하는듯한 냉정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제라드의 정체를 알게 된 이상, 아까처럼 무작정 욕을 내뱉을 수도 없는 상황.
엘레노아의 소개로 공작 가문의 메이드장으로부터 교육을 주입 받은 기품과 격식을 차린 태도를 선보이며, 입을 열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저는 평생에 걸쳐 제 몸과 마음을 모두 바치기로 한 분이 계세요. 그러니 제라드님의 구혼은 저로서는 받아들일  없어요. 정말로 죄송합니다.”

‘릴리 언니, 설마….’

릴리가 자신과 같은 대상에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한 생각을 에린이 가질 즈음.

까앙! 까앙!

종을 강하게 내려치며 영지 전체에 울려 퍼지는 소리를 들은 에린과 제라드의 눈빛이 매섭게 뒤바뀌었다.

“이건…제라드님?”

“…안 좋은 예감이 드는군요.”

릴리에게 청혼을 하고 있었던 아까까지의 한심한 모습과는 다른, 모험가이자 전사로서의 눈빛을 발하는 제라드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모험가들의 긴급 소집령입니다. 당장 길드로 가봐야 할  같습니다.”

“저도 따라갈게요. 릴리 언니 차 잘 마셨어요.”

“어, 응. 조심해야 해.”

에린이 릴리에게 인사를 마치고 일어서자, 맛있게 빵조각을 뜯어먹으며 꺄르륵 놀고 있던 아이들의 시선이 에린에게 집중되었다.

“에린 언니. 벌써 가?”

“누나. 우리랑 놀다가 가!”

“미안. 갑자기 바쁜 일이 생겨서…다음에 꼭 놀러 올게!”

“으응…. 알았어!”

먼저 앞서서 뛰어가고 있는 제라드의 뒤를 에린이 쫓아갔다.
마력을 통한 신체 강화를 이룬 상태에서 전속력은 아니더라도, 매우 빠른 속도로 뛰어가고 있는 제라드의 움직임을 뒤따라오는 에린의 수준은 도저히 1년 차의  신참 딱지를  모험가라고는 생각이 되지 않을 정도다.

“대단하군요.”

“어…그런가요?”

“1년 만에 은위계 등급을 승급했다고는 들었지만, 도저히 에린 양의나이 대의 소녀가 이뤄낼 있는 경지가 아닌 것만은 확실합니다.”

“헤헤. 다 현이랑 기사님들이 많이 도와주신 덕분이죠.”

자신의 실력을 인정해준 것에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대꾸하는 소녀의 모습에 제라드도 피식 웃어 보이며 전방을 주시했다.

“슬슬 보이는군요.”

신체 강화를 통해 빠른 이동으로 모험가 길드에 접근한 제라드와 에린은 긴급 소집령으로 모여든 모험가들의 인산인해로 매우 혼잡한 상태였기 때문에 건물 내부로 들어가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무슨 일이 생긴 걸까요?”

급작스러운 상황의 변화에 모험가 길드가 긴급 소집령을 내렸을 정도로 긴급한 상황이 무엇일지를 생각해보던 에린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제라드에게 물었다.

“…우려했던 일이 터져버린거겠죠.”

“우려했던 일인가요?”

“비스트 스탬피드의 건 말입니다.”

“아…하지만, 공작령은 이제 안정을 되찾은 게 아니었나요?”

“아뇨. 공작령이 아닙니다.”

제라드는 굳은 인상을풀지 않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몬스터 스탬피드는 이곳, 페르니아스 왕국의 영토에만 일어나는 것이라고는 단정 지을 수 없습니다. 모험가 길드의 통제하에 왕국 영토 안에 있는 던전들에서 마수들이 범람하는 것을 억제할 수는 있었어도, 정작 진짜 문제는 다른 부분에 존재하니까요.”

에린도 제라드가 하는 말의 의미를 깨닫고, 안색을 굳혔다.
왕국 영토 내부에 있는 던전들은 모조리 제압되어 대규모의 마수들이 범람하여 지상으로 나오는 문제는 이미  많은 모험가들과 왕국 기사들을 비롯한 군대를 동원해서 어느 정도 정리가 된 상태였다.
하지만 제라드가 우려하는 부분은 왕국 영토의 내부가 아니었다.

“외부에서 오는 마수들….”

“정답입니다. 페르니아스 왕국은 대륙의 서쪽에 위치한 국가로서, 서쪽의 끝에는 바다가, 북쪽과 남쪽은 에레니아 신성국과 소국인 렌디르 왕국이 인접해 있습니다. 에린양은 왕국의 동쪽 끝에는 무엇이 있는지 알고계십니까?”

“아뇨. 저도 잘….”

“20년 전에 멸망해버린 미르바빌라 제국의 영토이죠.”

“…….”

“아마도 지금 소집령이 내린 이유는….”

[지금부터 아르미타스령의 주인이신 아르미타스 공작 가문에서 모험가 길드로 하달된 긴급 의뢰를 공지하겠습니다!]

몰려드는 모험가들의 인파들 사이에 껴서 간신히 제라드와 에린이 길드 건물 내부로 들어왔을 때, 마법을 통해 증폭된 목소리로 모험가 길드의 책임자가 의뢰 내용을 읽어 나갔다.

[‘비스트 스탬피드’로 인한 공성전이 한창인 모그라프 변경의 지원 요청입니다! 의뢰의 달성 조건은 변경을 위협하는 대규모의 마수 군단의 섬멸! 보수는 금화 10닢!]

길드의 책임자가 읽고 있는 공지의 내용을 들은 모험가들이 안색이 굳어지고, 웅성거리는 소리는 조금씩 혼란을 야기하기 시작했다.

[출정일은 3일 뒤입니다! 신청자는 접수대로 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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