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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7화 〉247. 모험가 에린(1) (247/730)



〈 247화 〉247. 모험가 에린(1)

크르륵!

허공에 떠올라 자신에게 달려드는 코볼트의 복부를, 에린의 레이피어가 정확히 관통했다.
복부가 터져나가며 끊어져 버린 코볼트의 상체와 하체가 바닥으로 떨어지며 검붉은 피들이 분출하여 바닥을 더럽혔다.
에린은 주위를 둘러보며 작게 숨을 내쉬었다.

“후우…이걸로 끝….”

백귀들에 의해 처리된 코볼트 무리들의 전멸을 확인하고, 이제는 공작령으로 돌아가 모험가 길드에서 수주한 ‘코볼트 무리’의 소탕을 완료하였음을 보고하면 된다.
실질적으로 소탕했다는 것을 증명해주기 위해, 에린은 바닥에 널브러진 마수의 사체들의 해체를 백귀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백귀님들! 사체의 처리  도와주세요!”

거의 스무 개체나 되었던 마수의 사체들을 모조리 해체하는 것은 도저히 에린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너무 많은 양의 작업이다.
백귀들은 에린의 정중한 부탁에 에린을 따라서 주섬주섬 코볼트들의 해체를 시작했다.

[계약을 통해, 나를 따라온 고결한 전사의 영혼들을…한낱 저급한 마수 따위의 사체들의 헤체로 일손을 돕게 만들다니….]

‘…미호야.’

[친한  나의 이름을 부르지 마라. 나는  수 없는 많은 시간을 살아오면서 요력을 쌓아온 영험한….]

‘도와줄 거 아니면 조용히 있어.’

[이런 건방진 것이!]

단호하기까지 한 에린의 말에 구미호가 분개하여 호통을 쳤다.
최근 들어서 에린은 구미호를 상대하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었다.
자신의 몸속에 깃들어 있는 구미호의 잔류사념은 굉장히 자존감이 높았다.
틈만 나면 자신에게 시비를 걸고 다시 의식의 심층 깊숙한 곳으로 사라져 잠을 자기  수였는데, 한 번은 에린이 열이 받아서 대뜸구미호에게 ‘야!’라고 마음속으로 소리친 적이 있었다.
버르장머리 없이 감히 누구한테 소리치는 거냐고 격노하며 의식의 수면 위로 올라와 에린에게 호통을 쳤던 것이 둘 사이에 있었던 첫 대화의 시작이었다.
구미호는 천년이나 넘게 명맥을 유지해온 영험한 존재로서 남에게 무시 받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는 경향이 있었으며, 스스로 굉장히 높은 자존감이 높은 영혼이었기 때문에 자신을 무시하는 발언을 했던 에린에게 호통을 쳤던 것이다.

[…쯧.]

에린이 미호의 말을 전혀 듣지 않고, 허리에 차고 있던 해체용 칼로 마수의 해체를 시작했다.
이러니저러니, 투닥거리면서도 끝에는 백귀들과 구미호는 에린을 돕는 것을 거부하지 않았다.
그것은 한 소녀가 숙녀가 되기까지, 근 2년이라는 시간 가까이 지나면서 그녀의 모습을 빠짐없이 지켜 봐왔던 그들만이 표현하는 존중의 방식이다.
살벌하기 짝이 없는 몰골인 마수의 사체들의 모습에 인상을 찡그리면서도 묵묵히 작업에 임하며 해체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모두 은현의 교육 덕분이다.

‘이제는 이것도 익숙해졌네…. 처음에 칼을 쥐고 사체 앞에 섰을 때는 바닥에 토를 하기까지 했는데….’

가녀린 소녀에게 단검을 쥐어주고 마수의 사체를 직접 해체해보라고 말했던 때의 은현의 모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진짜 나빴어. 어떻게 나한테 이런  시킬 수가 있어.”

뱃속을 가르자 안에서 흘러나오는 내장과 검붉은 피들, 얼굴을 찡그리게까지 만드는 고약한 피 냄새, 살을 가르는 칼날의 감각.
그저 검을 휘둘러 마수들을 처리하는 것보다 이 해체의 과정이  끔찍하고 기분이 나쁘다.
혼자서 궁시렁거리며 잔뜩 투덜거리고 있는 에린의 말을 들은 구미호가 속으로 조소하며 에린에게 비아냥댔다.

[그렇게 싫어하는 것 치곤, 꽤나 능숙해지지 않았나?]

“그야…몇 번이고 하면, 적응돼서 손이 자연스럽게 움직이는걸. 그리고 어떻게 싫다고 말해….”

에린은 은현의 교육에 대해, 반항을 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은현이 내리는 교육은 힘들고 고될지라도, 그 효율과 결과들은 이론이 없을 정도로 철저히합리적이다.
게다가 혹시라도 반항을 했다가, 지금까지 혹독하면서도 상냥하게 보듬어주며 행복한 일상을 안겨주었던 것의 반동이라도 오듯 자신을 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에린은 그럴  없었다.
이미 쌓일 대로 쌓여버린, 은현에 대한 과도한 의존적인 성향은 하나의 강박관념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그렇다고 에린이 은현에 대해 서운하거나 불만의 감정을 아예 품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내가 불만인 건 그런 게 아니야. 어떻게 가련한 소녀한테 이런 걸 가르칠 수가 있냐구.”

은현에게 잔뜩 불만을 품은 에린의 입술이 삐죽이며 앞으로 튀어나왔다.
에린이 처음으로 해체를 배웠던 것은 결혼식을 올리기전, 작년의 봄으로 딱 이맘때 즈음이다.
모험의 일환으로 자주 둘이서 사냥을 나왔던 은현은 에린에게 모험의 기초와 다양한 지식들을 가르쳤다.
마수의 소재들은 무기나 방어구, 연금술 시약 등, 여러 방면으로 도움이 되기 때문에, 파티 안에서 해체 기술을 보유한 기술자는 필수 요소였다.
때문에 에린에게 가르친 교육 중에 모험에 필요한 기술  필수적인 것이나 다름없는 마수의 해체 또한 포함된 것은 당연하다.

[그 녀석은 너를 소녀나 가녀린 존재로 보고 대하는 것이 아니니까 그런 것이겠지.]

“그게 문제라는 거야. 나를 여자로 보고 있지 않잖아.”

[…그게 중요한가?]

“나, 나한텐 중요해!”

자신도 모르게 언성을 높이며 자신의 내면에 말을 걸고 있는 구미호에게 소리치자, 해체 작업을 진행하고 있던 백귀들이 일제히 작업을 멈추고 에린을 바라보았다.

“아, 아하하…. 죄, 죄송해요. 소리 질러서…. 다시 진행해주세요.”

민망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 재개의 명령을 내리자, 백귀들의 시선이 거두어지며 일제히 작업에 들어갔다.

[…….]

구미호는 에린이 어째서 자신에게는 친숙한 태도로 반말을 섞어오면서 자신의 종복들이나 다름없는 백귀들에게는 깍듯이 예의를 차리며 존중을 보이는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일반적이라면 정반대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성인이 되어가는 어린 소녀의 머릿속은, 구미호에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고방식이었다.

“나한테는…중요한 문제야. 현이는…정말로 나를 여자로 보고 있지 않은 걸까?”

[당연하지.]

“…….”

[그 녀석에게는 이미 훌륭한 배우자가 둘이나 존재하는데, 성인도 아닌 너 같은 핏덩이를 누가 좋아하겠느냐. 게다가….]

그의 곁에는 언제가 운명을 함께하고 있는 신의 존재를 구미호는 떠올렸다.
과거 에너지 드레인을 통해서 은현의 과거의 기억을 잠시나마 엿보았을 때, 그를 사도로 삼았던 세 여신  하나가 은현에게 특별한 감정을 품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게다가?”

[아니, 이것까지 네가 알 필요는 없지.]

“응?”

[아무튼, 네가  녀석에 품고 있는 감정은 힘든 시기에 손을 내뻗어준 것에서 시작된, 단순한 나이 어린 소녀의 동경에 불과하다.]

에린은 구미호의 지적에 단검을 움직여 마수를 사체를 해체하던 손을 멈췄다.

“동경해서 마음을 품은 게…잘못이야?”

[잘못은…아니지. 하지만 이 세상에 남자라는 생물이  녀석만이 있는 것도 아닐 텐데?]

에린은 구미호의 질문에 인상을 찡그렸다.
멈췄던 손을 다시 움직여 마수의 해체 작업을 재개했다.

[어째서 굳이 그 녀석에게 목을 매려는 거지? 주위에는 너에게 호의를 보이고 있는 녀석들이 양 손가락으로  세고도 남을 정도인데.]

사실 최근 들어, 올해 초부터 에린에게 호의를 보내오는 남성들의 숫자는 부쩍이나 늘었다.
기본적으로 에린과 같이 훈련을 받았으며 자주 대련의 상대에 종종 어울려 주었던 아르미타스 기사들.
모험가로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친목이라는 명목으로 자주 말을 걸었던 모험가들.
그리고 모험가 길드의 직원들이나, 길거리에서 무의식적으로 흘리고 다니는 구미호의 요력에 홀려 그녀를 쫓아다녔던 무수한 남성들이 존재했다.
처음에는 매우 부담스러웠지만, 점차 익숙해진 에린은 그런 시선들에서 자신의 신경을 제거하는 방법을 점차 이겨나가고 있었다.

[사실 너를 쫓아다니는 남자들의 입장에서는 너와 친해지는 것만으로도 혜택을 받을 수 있을 지도모른다는 기대감으로 접근해오는 남자들도 수두룩할 테지.]

“그 사람들은  내가 좋아서 나한테 접근하는  아니잖아.”

공작령 안에서 현재 에린의 입지는 매우 중요하다.
그녀의 신분은 평민에 불과하지만, 공작 가문의 사위가 되었으며, 페르니아스 왕국 안에서매우 시끄러운 화제의 인물인 ‘수은의 뱀’이라고 불리우고 있는 남자의 제자다.
공작 가문과 연줄을 가지고 있는 소녀인 만큼 여러모로 활용될 여지 또한 존재하는 친해져서 나쁠 것이 없는 그런 속물적인 마음으로 접근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승산이 있지도 않은 것에 매달려서 헛된 노력과 시간을 사용하지 말라는 뜻이다.]

“…….”

[네가 아무리 노력하고 열심히 해도, 미움을 받지 않고, 예쁨을 받기 위해 필사적으로 행동한다고 해도, 네가 그 녀석에게 보내는 감정에그 녀석이 긍정적인 답변을 해줄 거라는 기대는 버려라.]

“그래도 괜찮아.”

에린은 구미호의 충고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거절했다.

“나한테는 현이 밖에 없어.”

아이테르의 옥상에서 떨어지면서, 소망의 나무에 의해 시간의 결계 속에 갇히고, 유령의 상태와 다름없었던 자신을 처음으로 찾아내준 게 은현이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을 때, 손을 내밀어 준 게 은현이다.
암울하기 짝이 없던 칙칙한 자신만의 세상 속에서, 자신을 바깥의 밝은 세상으로 이끌어주며 행복을안겨준 게 은현이다.
이미 에린의 마음속에 ‘다른 남자’라는 선택의 여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 남자가 아니면 안 된다.

“보답 받지 않아도 괜찮아.”

자신을 받아들여 달라고, 자신의 마음을 전할 결심을  것이 아니다.

“현이는 내 영웅이니까.”

[…그래. 네 녀석이 그것을 원한다면.]

소녀의 결심을 들은 구미호는 더 이상의 말을 덧붙이지는 않았다.
구미호의 충고를 듣고, 에린이 기쁘다는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

[무슨 소리지?]

“날 걱정해준 거잖아?”

[흥, 하찮은 소리를. 승산도 거의 보이지 않는 싸움을 계속 질질 끌고 이어나가고 있는 것이 너무나도 한심해서 연장자로서 충고를 해주려던 것이었다.]

“그래. 그래. 고마워.”

[…네 녀석은 언제나 나에 대한 태도가 불손하군. 그래서, 네 녀석의 그 ‘마음’이라는 건 도대체 언제 전할 생각인 거냐?]

“그건….”

갑작스레 아픈 곳을 찔러오기라도 한 구미호의 지적에, 에린이 해체 작업을 멈칫하고 몸을 떨었다.

“원래는 내년 초에 하려고 했어. 기사님들과의 모의 대련을 통해서 10연승을 채우면 현이가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었거든. 그때 말을 하려고 했는데….”

신혼여행을 떠나기 전, 자신에게 직접 제작한 레이피어를 선물로 주며, 10연승을 채우면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이야기한 것을 떠올렸다.
자신이 성인이 되는 내년에 당당하게 10연승을 채우면서 소원을 말하고 일리아나와 엘레노아처럼 자신도 받아줬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려고 했다.

“갑자기 이렇게 마수들로 주위가 소란스러워졌을지, 누가 알았겠어….”

덕분에 공작령 내부도 현재로서는 매우 시끄럽고, 훈련을 통해서 자신의 기량을 갈고 닦았던 아르미타스의 기사들은 최근, 눈코 뜰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모의 대련 같은 것으로 에린과 어울려 줄 여유가 전혀 없었다.
에린도 그렇게 자신의 실력을 향상시킬 방안을 강구하다가, 모험가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쓴웃음을 지으며 아쉬운 마음을 토로했다.

“읏차! 다 모았네! 감사해요! 백귀님들!”

뼈와 내장을 분리하고, 구미호의 요술로 오염된 마나가 정화된 코볼트 가죽과 이빨, 그리고 공작령으로 복귀하면서 먹을 소량의 고기들.
모든 것을 일제히 자루 안에 쓸어 담은 에린은 자신의 키만 한 거대한 자루를 기운차게 들어 올렸다.
아무리 많은 질량과 무게를 가진 물건들을 모두 쓸어 담아도, 찢어지기는커녕 끄덕도 않는 자루는 은현이 특수 가공으로 제작한 마법의 자루로서의 효능을 톡톡히 보였다.
활짝  미소로 손을 흔들어 백귀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보내자, 6구의 백귀들이 모두 에린의 행동에 맞춰 손을 흔들어주었다.

[저것들은 또….]

자신에게는 충성스러우면서도 절도있는 자태로 경례를 하던 백귀들이,새로운 주인으로 맞아들인 에린에게는 정겹게 손을 흔들어 작별의 인사를 건내고 있는 것에 어이가 없음을 느꼈다.

“자, 그럼. 집에 가볼까!”

야영용 텐트와 모험가 세트가 들어간 배낭을 짊어지면서도, 해체한 코볼드들의 소재가 들어가, 거대한 무게를 자랑하는 자루를 운반하고 있는 에린은 힘든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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