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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4화 〉234. 검술의 계승(2) (234/730)



〈 234화 〉234. 검술의 계승(2)


결과는 시에테의 패배였다.
시에테는 목숨을 잃었고, 구시온은 자신의 신체 절반을 잃어 많은 힘이 깎여나간 것으로 싸움은 끝이 났다.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지하 벙커에서 나온 은현은 폐허가  집과 주위를 보고, 시에테의 시체를 발견하고 눈물을 흘렸다.
은현은 황무지로 변해버린 시에테의 집이 있었던 땅 위에, 그녀의 시신을 정성스레 매장하여 묘비를 세우고, 기절하기 전 시에테가 말했던 마지막 유언을 가슴속에 새겼다.

-잊지 마. 네가 이 미친 세상 속에서 찾아낸 내 유일한 희망이니까.

자신에게 모든 걸 걸었다고 이야기하고 작별을 고한 스승이 자신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검을 가르쳤는지는 끝끝내 알지 못했다.

“잊지 않겠습니다.”

은현은 다시 여행을 계속했다.
그리고 사망한 시에테의 영혼은.

[흐응? 이게 그 검성이라는 여자의 혼이야?]

[그렇다.]

[그런데 굳이  여자의 영혼은 수거한 이유가 뭐야? 그냥 먹어버리면 될 것을.]

구시온은 상급 악마들 중에서도, 별종에 속하는 악마다.
‘무(武)’를 중시하는 특수한 성향을 지니고 악마로서의 능력 뿐 만이 아니라, 개인의 단련을 게을리하지 않는 꾸준함과 집착, 강자와 싸워보고 싶다는 열망을 통해서 욕구를 채우는 성격은 인간들이 말하는 ‘호승심’과도 비슷한 부분을 가지고 있었다.

[이 여자가 나에게 예언을 했기 때문이지.]

[예언?]

담담한 표정은 어느새 미소로 번지고 강렬한 열망을 품은 기대감이 서린 구시온의 얼굴을 보고, 아스모데우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여자의 제자가 나를 죽일 것이라고.]

[…….]

시에테의 그 말이 있었기 때문에, 구시온은 그녀의 제자였던 은현의 목숨을 거두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 여자는 나와 그 제자라는 녀석이 싸우게  날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봐야 할 의무가 있다.]

인간들이 말하는 ‘호승심’과 비슷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구시온의 본질이 악마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악마는 타인의 절망과 공포, 분노, 슬픔, 증오 등의 부정의 감정을 양식으로 자신의 힘을 키워나가는 존재.
시에테의 영혼을 수거한 것은, 은현의 감정을 바닥으로끌어내려 무너지게 만들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동시에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는 영혼의 상태에서, 제자가 찢겨 죽는 광경을 시에테에게 직접 보여주기 위한 의도도 존재했다.
무인으로 성장하여 자신의 앞에 도달했을 때, 자신을 얼마나 즐겁게 해줄 것인지를 기대하였지만, 최종적으로 구시온의 그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은현과 그의 동료들이 모종의 수단을 이용하여 지구상에 존재했던 모든 악마들을 공허의 저편 너머에 있는 마계로 밀어 넣고는 지구로 이어지는 통로를 닫아버렸기 때문이다.

[흐음, 이건 어쩌지?]

무작위로 공허의 저편의 통로에 휩쓸려버린 아스모데우스는 구시온이 수거했던 시에테의 영혼을 놓쳐버리면서 본의 아니게 시에테의 영혼을 주워버렸고, 이것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던 도중이었다.

“뭐야. 이건?”

[…인간? 아니, 이 기운은…?]

스스로에게서 ‘죽음’이라는 개념을 제거하고 불사의 존재에 가까운 초월자가 된 망자의 여왕, 메디아와 아스모데우스가 조우한 순간이었다.
힘의 차이로는 아무리 초월자라고 하더라도, 메디아는 아스모데우스를 상대로 우위를 점할 수 없었지만, 이미 ‘죽음’이라는 개념을 제거한 메디아의 존재 자체를 지워버릴  없는 것은 아스모데우스 또한 굉장히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위해를 가해봤자, 결착이 나지 않는 긴 시간 속에서, 메디아와 아스모데우스는 어느샌가 말을 트고 대화를 나누게 되었고, 의외로 죽이 잘 맞아, 광활한 마계에서 유일했던 두 존재는 말벗이 되었다.

[메디아.넌 사령(死靈)들을 조종할 수 있다고?]

“그런데?”

[내가 너에게 선물을 주도록 할게.]

그곳에서 아스모데우스는 시에테를 포함한, 자신이 가지고 있던 대량의 영혼을들 메디아에게 넘겼고, 메디아는 그 영혼들을 이용하여 다양한 언데드들을 만들었다.
영혼이 종속되어 언데드가 되어버린 시에테는 죽지도 못 해서 영원히 고통을 받는 처지가 되었다.
1개월이 지났을까, 1년이 지났을까, 10년이 지났을 지도모르는, 시간 감각이 마비되어 가는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았던 고통.
그나마 다행이었던 점은 주인인 메디아에게 반항의 의사가 섞인 움직임을 취할 수는 없었지만, 반대로 행동의 자유의지를 구속해두지 않았던 것이 큰 변수를 불러일으켰다.
마계에 갑작스레 나타난 소환진.
어째서 그 소환진 속으로 갑작스레 뛰어들었는지, 데스나이트가 된 시에테는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단지 영원히 지속될 것 같았던 지옥, 마계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소환진에서 강렬한 이끌림이라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을까.
그 의문은 소환진을 통해서 전이된 ‘하계’에 나타났을 때 풀렸다.
어쩌면 자신은 눈앞의 남자를 다시 한번 보기 위해, 이곳에 뛰어든 것이 아니었을까.
 시간이 지났음에도, 저 은백색 머리카락과 붉은 눈동자는잊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에 시에테는 감격했다.
언젠가 이렇게 죽지 못해 추한 몰골이 되었음에도,  번즈음 다시 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그리운 얼굴.

‘많이 컸구나.’

은현의 외적인 성장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년을 함께 살며 검을 가르치면서, 은현의 몸이 전혀 나이를 먹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얼굴을 포함한 신체의 변화가 전혀 없었음에도, 무의식적으로 짓는 얼굴의 표정, 몸의 동작, 습관, 모든 것들이 자신과 살았을 때와는 다른 것에서 기억 속에 있는 은현의 모습과 지금의 은현의 모습 사이에서 심각한 괴리감을 느끼고 있었다.
서로의 검을 맞부딪치고, 서로의 공격을받아치면서 검을 나누면 나눌수록, 은현이 쌓아 올린 지금의 경지를 몸으로 체감했다.

‘재능도 없는 녀석이 이렇게까지 강해지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그 시간의 무게를 짐작하는 것은 시에테에게도 쉽지 않은 부분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검을 주고받으면서 시에테가 은현의 수준을 가늠하듯이, 은현 또한 자신이 느끼고 있는 기시감을 통해 꺼림직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설마 싶은 표정은 점점 진짜로 바뀌고, 불확신은 점점 확신으로 바뀌어 가면서, 마침내 은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어째서 당신이….”

‘젠장….’

보통이라면 자유의지를 통해 공격을 멈출 수 있어야 했지만, 자신의 영혼을 종속시킨 메디아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던 시에테는 공격을 멈추지 못했다.
메디아가 내린 명령은.

[저 표정을  짓게 만들어. ‘사랑’으로 가득 찬 감정들을 나에게 부딪치도록 계속 자극해. 나에게 사랑을 보내줘!]

은현의 경멸, 혐오, 분노, 증오 등의 다양한 감정들을 표출하도록,그를 자극하는 것을 멈추지 못하게 자신의영혼에 속삭이는 소름이 끼치는 광기 어린 여자의 목소리.
거부하고 싶어도 영혼에 간섭하여 강제되는 명령에 움직여야만 했다.

[시에테 검성술]
[백화참수(百花斬首)]

데스나이트의 정체를 깨달은 은현이 멍한 표정을 지으면서 생긴 작은 빈틈을 비집고, 시에테의 검이 은현의 팔을 관통했다.

“크윽!?”

황급히 정신을 차리고 팔을 관통한 시에테의 검날을 맨손으로 붙잡아 꽉 움켜쥐고, 은현은 말했다.

“당신이…왜 그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났는지…나는 몰라요.”

어째서 느닷없이 시에테가 나타났는지, 어째서 시에테가 데스나이트가 되어버린 것인지, 은현은 이해하지 못해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혼란의 눈빛이 결심으로 굳어져 갔다.

“내가…구해줄게요.”

군센 은현의 결심을 들은 시에테는 생전에 자신의 운명을 예언했던 점쟁이 노파의 말을 다시 떠올렸다.

-구원받는 것도, 희망도 모두  아이 하나에게 기대야만 하는 꼴이라니. 자네 팔자도 참 기구하구먼. 끌끌.

점쟁이는 미래에 벌어질 자신의 운명을 예언했었다.
그 예언은 총  가지.
자신의 죽음.
자신의 구원.
자신의 희망.
이미 자신의 죽음을 예언하여 구시온에게 죽임을 당했던 시에테는 이름도 모를 노파의 예언이 사실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지금 이 상황도 노파의 예언의 일부였다면.

‘정말로 나를 구원할 수 있다는 거냐?’

시에테는 죽어서도 자신의 영혼을 사령술사에게 평생을 농락당하고 있는 처지의 자신을 정말로 구원할 수 있는 건지, 은현에게 그렇게 묻고 싶었다.
하지만 영혼과 사기(死氣)만으로 이루어진 데스나이트의 신체는 입은 물론, 성대를 포함한 발성기관조차도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스스로도 설명할 수 없는,  수 없는 강렬한이끌림에 이끌려 다크엘프가 만들어낸 소환진 속으로 몸을 던지면서 벌어진 지금의 상황이 자신의 구원으로 이어지리라는 추측은 구원을 바라고 있는 시에테의 바람이기도 했다.

‘나를 구원하는  가능하다면.’

점쟁이 노파의 세 번째 예언이었던 희망 또한 은현이 될 수 있다는 기대도 해볼  있다.
시에테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은현이 자신의 팔을 관통하고 있던 시에테의 검을 맨손으로 꽉 쥐었다.

[주현성 극원류]
[호접발경(胡蝶發勁)]

카아앙!

반대쪽 손으로 왼쪽 옆구리에 충격파를 흘려 데미지를주고, 시에테가 데미지에 몸을 경직시킨 틈을 타, 은현이 자신의 팔을 잘라버리고 몸을 뒤로 빼면서 시에테와의 거리를 벌렸다.
이내 상처를 입기 전으로 절단된 팔 부위를 복구시키고, 시에테를 응시하고 있던 은현이 입을 열었다.

“…괜찮아요.”

그것은 자신에게 하고 있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누구에게 말을 걸고 있는지도, 시에테는 그렇게 궁금하지 않았다.

“제가 해야만 하는 일이에요.”

‘그래. 네가 해야만 하는 일이지.’

다름 아닌 자신을 구원하는 것은 은현만의 역할이다.
시에테는 검을 들어 은현을 향해 겨눴다.
은현도 마찬가지로 두 자루의 검을 소환해 시에테를 향해 겨눈다.
그 자세에는 자신이 가르쳤던 검술의 일부가 확실하게 새겨져 있었다.
많은 시간이 흘러, 자신이 가르친 검술을 계속 생각하고, 단련시켜 꾸준한 보완을 통해, 보다 더욱 완성도를 높여왔다는 것이 전해져 오고 있었다.

‘정말로 그 노파의 예언이 사실이라면.’

지금 언데드가 되어버린 자신의 영혼을 구원해주는 것이 은현이라면.

‘네가 나의 희망이야.’

말을 할 수 없는, 그저 사령(死靈)에 불과한 지금의 시에테에겐 은현에게 자신의 말을 전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의지를 전하는 것이 아예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시에테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저주받은 마검을 손에 꽉 쥐었다.
의지를 전하는 데 필요한 것은 오로지 검뿐.
은현에게 검을 겨누며, 그의 얼굴을 응시했다.
고인이 되어버린 스승을 언데드로 만들어버리고 영혼을 농락하고 있는 분노.
도움도되지 못하고,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지 못했다는 것에서 느껴지는 죄책감.
검을 가르친 스승에게 제자인 자신이 검을 겨눠야 한다는 슬픔.

‘그런 표정 짓지 마라.’

시에테는 그런 은현의 얼굴을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지금 이 순간, 이렇게 너와 검을 나누게  것이 나에게는 구원의 시작이니까.’

그리고 이 순간, 자신의 희망을 만들어내기 위해, 그 의지를 확실하게 전달하기 위해, 자신을 향해 검을 휘둘러오는 은현의 동작에 맞추어, 시에테도 검을 휘둘렀다.
시에테는 지구에서 가장 강한 검사라는 칭호를 부여받았음에도, 자신의 검술이 ‘완성’된 검술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시에테의 소망은 그 경지의 끝에 도달해 자신의 검술을 ‘완성’시키는 것.

-머지않아 죽어. 그게 자네 팔자지.

-구원받는 것도, 희망도 모두 그 아이 하나에게 기대야만 하는 꼴이라니. 자네 팔자도 참 기구하구먼. 끌끌.

점쟁이노파는 자신의 죽음을 예언했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소망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시에테의 검술의 끝을 완성시키는 것은 시에테 자신이 아니라는 뜻.
그렇다면, 그렇기에.

‘나의 희망.’

그렇기에 재능도 없이 노력과 시간을 불태워 성장해가는 자신의 제자, 은현을 떠올렸다.

‘나의 모든 걸, 이번에야말로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배우고, 가져가라. 그리고….’

카앙!

‘나의 검이자, 너의 검을 완성 시켜라. 못난 제자 녀석아.’

못난 제자를 향한 스승의 마지막 가르침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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