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3화 〉233. 검술의 계승(1)
“…아주 드러운 팔자네.”
“…….”
“애를 키우는데, 이 애가 아주 별의별 기구한 일은 다 겪게 될 예정이라, 여기에 엮여서 처자도 좋은 꼴은 못 보겠네.”
“이봐, 할매. 나 결혼한다는 소리야?”
애를 키우게 된다는 소리에 시에테는 인상을 찡그리며 맞은 편에 앉아있는 노파를 추궁했다.
다짜고짜 지나가는 길의 자신을 불러세우고, 점을 보지 않겠냐는 끈질긴 권유에 이끌려 골목길 의자에 앉은 시에테는 ‘이 미친 노파가 지금 무슨소리를 지껄이는 거지?’라는 표정을 지었다.
무료로 점을 봐주겠다는 점쟁이 노파의 말에 그냥 장단이나 맞춰주면서 시간이나 보내자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아니. 자네 팔자에 결혼은 없는데?”
태연한 투로 대꾸하는 노파의 말에 시에테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노파를 노려보았다.
“애를 키우게 된다며?”
“그렇게 말하긴 했지. 그런데 결혼은 아니야. 그냥 애만 키워.”
“이게 대체 무슨 개소리….”
“아, 애라는 것도 그냥 비유적인 표현이지나이는 그냥 성인인데. 그리고 자네는 딱히 결혼 생각도 없지 않나? 필요한 건 젊은 재능뿐이면서.”
“…….”
마지막 노파의 말을 듣자마자, 시에테는 찡그렸던 인상을 풀고 표정을 굳혔다.
짜증이나 이상하다는 생각을 한다기보다는, 허를 찔렸다는 반응에 가깝다.
“…뭐야. 당신?”
“끌끌, 그저 다른 사람의 운명을 들여다보기를 좋아하는 늙은이일 뿐이지.”
시간이나 때우자는 가벼운 태도로 임했던 점보기에서 자신의 소망을 정확히 알고 있다는 투로 낄낄거리며 얘기하는 노파를 노려본다.
“당신 설마 헌터야?”
“끌끌. 글쎄?”
미심쩍은 표정으로 노려보며 묻는 시에테의질문에, 점쟁이 노파는 그저 웃으며 어깨를 으쓱일 뿐, 구체적인 대답을 하지는 않았다.
세상이 미쳐 돌아가면서, 이 세상에 악마와 몬스터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하고, 인류를 위협하는 미지의 존재들에 대항하기 위해, 특별한 능력을 각성한 인간들.
시에테도 마력을 각성하고 헌터가 된 여성이기에, 점쟁이 노파의 몸을 구석구석 살폈다.
“…….”
노파의 몸에서는 한 줌의 마력조차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암시하듯 이상한 분위기를 흩뿌리고 있는 것이 범상치 않다.
마력이 느껴지지는 않는 것으로 보아, 헌터는 아닌데, 그렇다고 힘없는 일반인이라고 하기에는 또 미묘하다.
시에테, 본인이 가지고 있는 감이 결코 평범한 노파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뭐하는 노친네야. 도대체?’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미심쩍은 의문을 제쳐두고, 일단은 노파가 언급한 점에 관한 걸 다시 물었다.
“그래서? 내가 내 소망을 이루기 위해 적합한 애 하나를 주워서 키우게 된다고?”
“그렇지.”
“재능은 있고?”
“아니. 전혀. 검이란 건 잡아본 적도 없는 초짜 중에 초짜인데.”
“…지금 나랑 장난해? 그런 놈을 어디다 써먹으라고?”
검도 한 번 잡아보지 못한 초보자를 데리고 도대체 어떻게 자신의소망을 실현시킬 수가 있을까.
이제는 이 노파가 자신을 놀리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어 짜증이 치밀어오르기 시작했다.
“끌끌. 하지만 이 세상에서 그 누구도 가지고 있지 못한 걸 가지고 있지.”
“그게 뭔데?”
“나는 그 아이만큼 운명에게 사랑을 받는 존재를 본적이 없어.그건 그 누구도 가지지 못한 특출난 진짜 ‘재능’이니까.”
“뭐래는 거야. 이 할매가 진짜.”
“머지않아 죽어. 그게 자네 팔자지.”
“…….”
“구원받는 것도, 희망도 모두 그 아이 하나에게 기대야만 하는 꼴이라니. 자네 팔자도 참 기구하구먼. 끌끌.”
느닷없이 자신의 미래에 사형선고를 내리는 노파의 뜬구름을 잡는듯한 말에 시에테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자신이 죽는다는 것도, 구원받는다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었지만, 시에테의 머릿속에 남는 단어는 하나뿐이었다.
‘희망.’
한참을 고민한 뒤, 그녀는 다시 입을 열어 노파에게 물었다.
“나는…내 소망을 이뤄?”
“끌끌, 글쎄올시다.”
“이 할매가 미쳤나. 진짜?”
의미를 알 수 없는 말들을 늘어놓으면서 사람을 궁금하게 만들어 놓고, 끝에는 두루뭉술한 대답으로 진짜로 자신의 원하는 대답은 해주지 않는다.
낄낄거리며 시에테의 반응을 즐기고 있는 노파의 반응에 짜증이 났던 시에테는 더 이상 화를 내봤자 의미가 없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쯧, 개소리에 더는 못 어울려주겠네.”
낡은 접이식 철제 의자에 앉아있던 시에테는 인상을 잔뜩 찡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료니까. 돈은 안 받는 거 맞지?”
“그럼. 시작할 때부터, 그렇게 말했지 않나.”
“그래. 시간 잘 보냈수다. 돈 많이 버슈.”
몸을 돌려서 등을 보이고, 손을 흔들며 점쟁이 노파에게 작별인사를 건냈다.
멀어져가는 시에테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노파는 낄낄거리는 웃음을 멈추지 않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낄낄”
마트에 들러서, 언제나처럼 일주일 치의 식량을 구매하고, 핸드폰으로 현재의 시간을 확인한 시에테는 보법을 밟아 몇km나 되는 장거리를 한 시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안에 이동하여 집에 도착했다.
“응?”
장바구니 속에서 빵의 귀퉁이를 꺼내고는 큼지막하게 뜯어 입속에 던져놓고 천천히 집 앞의 마당을 걷던 도중.
마당에 있는 통나무 의자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하고 의문에 찬 소리를 냈다.
차디찬 눈으로 뒤덮인 스페인의 통나무집의 마당에서 하얀 입김을 내뿜고 있는 남자가 이내 시에테의 모습을 발견하고 천천히 몸을 일으켜 자리에서 일어났다.
몇 시간을 통나무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는지, 은백색 머리카락의 정수리 위에는 눈덩이가 수북이 쌓여있었다.
남자의 보석 같은 빛을 발하는 붉은색 눈과 시에테의 눈이 마침내 마주쳤다.
“뭐야. 넌?”
“은현이라고 합니다. 당신이…시에테 로페즈가 맞나요?”
“그런데?”
“당신에게 검을 배우고 싶어서 이렇게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
“부디 저를제자로 받아 들여주실 수 있나요?”
그 말은 들은 시에테는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팍 쓰며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은현은 시에테의 표정의 변화를 직접 보고도, 담담하게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시에테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딱 하나뿐이었다.
-애를 키우는데, 이 애가 아주 별의별 기구한 일은 다 겪게 될 예정이라, 여기에 엮여서 처자도 좋은 꼴은 못 보겠네.
“X발…왜 여기서 그 할매 말이 떠오르는 거야….”
“예?”
“아니, 아무것도.”
작게 중얼거리는 시에테의 말을 들은 은현이 담담하게 기다리던 태도를 깨고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이내 생각을 마친 시에테가 은현의 모습을 위아래로 훑어보고, 입을 열었다.
“이름이 특이하네. 한국인?”
“한국을 아세요?”
“알지. 게임 잘하는 나라로 유명하잖아.”
“이제는 다 쓸모없어졌지만요.”
은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구에 악마와 몬스터들이 출몰하게 되면서, 인류는 더이상 스포츠나 게임 같은 유희 산업에 많은 재화를 투자할 여유를 잃었다.
각국의 정부는 헌터를 육성하고 몬스터들의 위협에 대비할 수 있는 방위체계를 만들어 국민들의 안전을 도모하는 것에 중점을 두기 시작했고, 많은 기업들이 망하는 것과 동시에 새로운 기업들이 생겨나는 시대.
한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은 모두 헌터들과 관련된 산업을 빠르게 키워나갔고, 거기에 연관되지않은 다른 분야들은 모두 빠르게 도태되어 갔다.
한국이 ‘게임을 가장 잘하는 나라’라는 타이틀도 지금에 와서는 구시대의 유물과 가까운 과거의 영광이나 마찬가지.
“외국어를 배우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스페인 말은 어떻게 배웠어?”
“독학으로 익혔습니다. 시에테님을 뵙고 싶어서요.”
“…….”
생각보다 말에 거침이 없는 남자라는 것을 머릿속에 담아두면서, 시에테는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들어와. 바깥에서 도대체 몇 시간을 기다렸던 거야?”
“점심부터 기다렸으니까. 한 다섯 시간 정도네요.”
눈이 내리는 와중에 같은 자리에 앉아서 하염없이 자신을 기다리는 미련한 짓을 저지른 남자라는 것을 추가적으로 머릿속에 담아두며, 시에테는 은현을 자신의 집 안으로 들여보냈다.
우여곡절 끝에, 시에테는 은현을 제자로 받아들였다.
이후 그에게 검을 잡아보게 하고, 직접적인 실력을 테스트 해보았을 때, 정말로 검 한 번 잡아보지 않았던 초보자의 티가 나서 시에테는 인상을 찡그렸다.
‘재능은 진짜로 없네.’
누군가의 밑에서 체술의 기초를 배워서 기초적인 몸 자체는 만들어져 있었지만, 체술을 배웠다고 해서 검을 다룰 수 있게 되는 것도 아니다.
‘하나를 가르치면 하나를 알기는커녕, 열을 가르쳐야 하나를 깨우칠 정도의 성취.’
게다가….
“그런데 스승님.”
“뭐.”
“가르쳐주신 자세는 그렇다 치고, 붙이신 기술들의 이름들, 너무 구린데요. 그냥 제 식대로 개명해서 써도 되나요?”
재능도 없는 주제에 못 배워먹겠다고포기하기는커녕, 자신의 네이밍 센스를 지적해온다.
“…니 마음대로 해.”
은현의 건방짐에 기분이 팍 상한 시에테는 내심 그 불만을 표출하지 못했다.
‘그렇게…구린가?’
이후에도 은현은 시에테의 가르침을 묵묵히 받아들였고, 성취가 곧바로 드러나지않는다고, 초조해하지도 않았다.
그저 묵묵히, 주어진 숙제를 처리하고 하나하나 공을 들여 정성스러운 탑을 쌓는 것처럼, 단련하고 단련할 뿐이었다.
아무리 힘들고, 오래 걸릴지라도, 하나의 목표를 향해 한 걸음을 내딛고 있는 그 모습에는 광기와 집착이 보이기까지 했다.
“넌 나한테 검을 배워서 뭘 할 생각이냐?”
“복수하고 싶은 악마가 있어요.”
“…악마?”
“저한테 체술을 알려준 형을 죽인 악마를 죽이고 싶습니다. 그리고…아닙니다.”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망설인 은현의 곤란해보이는 태도를 보고, 시에테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스승님께선 어째서 저를 제자로 받아들이셨어요?”
“그건 왜 물어.”
“솔직히 말하면 저 재능 없잖아요.”
“알긴 아네.”
“현성이 형도 그랬는걸요. 저한테 무술에 대한 재능은 없다고.”
처음에는 상처였지만,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은현은 은현 나름대로 자신의 실력을 쌓아 올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 집착과 광기가 섞여 있는 열정만큼은 시에테조차 놀라게 만들 정도다.
“글쎄다….”
실제로 시에테조차도 어째서 자신이 은현을 받아들일 생각을 했는지, 몰랐다.
단지 자신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던 점쟁이 노파의 말이 큰 영향을 미쳤던 건지도 모른다.
반즈음은 호기심이다.
‘이 무능의 끝판왕인 노력파 덩어리가 정말로 내 소망을 이뤄줄 수 있을까?’
점쟁이 노파는 자신이 주워서 키운 제자가 자신의 소망을 이뤄줄 것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의미심장하게 넘어가면서 확실한 대답을 피했다.
그래서 은현을 받아들인 것은 단순한 호기심에 불과한 선택이었다.
“내가 어떤 미친 할매한테 홀려서 그냥 반즈음 미친 짓을 하고 있는 거지.”
“……?”
그 말의 의미를 이해 할 수 없었던 은현은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은현이 시에테의 밑에서 검을 배우고, 3년이 지났을 때.
느닷없는 불청객이 찾아왔다.
콰앙!
기습으로 인해 시에테의 집이 무너져 가던 와중, 시에테는 직감적으로 또다시 자신의 운명을 예언했던 점쟁이 노파의 말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아이 때문에 죽는 게 자네 팔자지.
‘…결국 그 노친네의 말이 맞았다고?’
습격을 걸어온 어마어마한 기척을 숨기기는커녕, 당당하게 걸어오고 있는 악마의 존재를 느낀 시에테는 얼굴을 굳혔다.
자신의 전력을 다하더라도, 이길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신이 서지 않는 수준을 본능적으로 깨닫고, 자신의 죽음을 떠올렸다.
“…제자야. 튀어라.”
“하지만…!”
“네가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의 상대가 아니야!”
“저한테는 아직 스승님의 가르침이 필요합니다. 차라리 함께….”
“멍청하긴 여기서 네가 죽는다면 네 목표도, 내 목표도 모두 허사가 된다.”
시에테는 무너진 건물의 잔해로 자욱해진 연기 속에서, 은현의 멱살을 붙잡아 앞으로 끌어당겨 얼굴을 마주하고 은현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잊지 마. 네가 이 미친 세상 속에서 찾아낸 내 유일한 희망이니까.”
“그게 무슨….”
“내가 몇 년이나 너와 함께 살면서, 너의 비밀을 눈치채지 못할 줄 알았어?”
“……!”
“이런 등신 같은 제자를 봤나.”
어째서 들키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는지도, 우스운 일이다.
사도로 임명받으면서 여신들이 내려준권능을 제대로 사용하지도 못하고 있던 은현의 안일한 판단이었다.
“네가 어떤 사연으로 나한테서 검을 배우고 싶어 했는지, 나는 몰라. 하지만 나는 너한테 기대를 걸고 있어.”
“스승님 그게 무슨…크윽!?”
제대로 저항을 해보기도 전에, 시에테의 손날이 은현의 목덜미를 가격하여 기절시키고, 보법을 이용해 은현을 안전한 지하 벙커 안에 쳐박아두고 무너진 집 바깥으로 나왔다.
[왔군.]
“…날 기다렸다고?”
[도망치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팔짱을 끼고 있던 근육이 우락부락한 거대한 덩치를 가진 악마가 담담한 표정으로 시에테를 내려다보았다.
그 체형과 균형이 잡혀있으며 절도 있는 동작들은 굳이 싸워보지 않더라도 눈앞의 악마가 ‘무(武)’를 중시하는 기술을 단련시킨 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내 이름은 구시온. 지구에서 가장 강한 검사라는 여자를 찾아와 실력을 겨루기 위해 찾아왔다.]
담담하게 자신의 목적이 순수한 대련이라는 것을 밝힌 구시온의 태도를 보고, 시에테는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들어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생각대로의 인상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구시온을 바라보며 시에테가 입을 열었다.
“한 가지 부탁이 있다.”
[뭐지?]
“창고에 있는 저 녀석은 살려줘.”
당돌한 인간 여성의 요구에 구시온은 피식 웃었다.
강자의 축에 속하는 자신이 굳이 약자의 부탁을 들어줄 이유는 전혀 없었지만, 검을 겨누며 흉흉한 안광을 발하는 인간 여성은 인간이기 이전에, 검사이자 ‘무인(武人)’의 모습이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타입의 존재에게는 한없이 관대한 구시온이었지만, 구태여 곧바로 시에테의 부탁을 들어주는 시늉을 보이지는 않았다.
[내가 굳이 네말을 들어줘야 할 이유가 있나?]
“들어주면 재미있을 텐데.”
[흠?]
“내가 손수 키워낸 제자야. 언젠가 강해져서…반드시 네 목을 베게 되겠지.”
[…하하하하!]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순간 이해를 하지 못했던 구시온이 이내 폭소를 터뜨렸다.
[좋아! 아주 좋아! 그 날을 기대하게되는군!]
그 말을 끝으로, 검성과 악마가 격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