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26화 〉226. 죽음의 기사(1) (226/730)



〈 226화 〉226. 죽음의 기사(1)


“어머?”

“왜 그러세요?”

느닷없이 놀란 목소리를 내는 메디아의 목소리에, 레나트가 물었다.

“최근에 아스모데우스에게서 받은 영혼들로 데스나이트들을 만들어 두었는데, 그중 하나가 하계로 소환이 되었어.”

“데스나이트를…말인가요?”

공허의 저편에 존재하는 마계에 둥지를 트고 있는 메디아의 기사를 소환시켰다는 것은 그를 위해 하계의 많은 생명들을 희생시켰다는 뜻이다.

“흐응, 아무래도 누군가가 저주의 인을 통해서 강제로 공허의 통로를 비집어 열어버리고, 기사를 소환한 것 같은데…쯧.”

메디아는 작게 혀를 찼다.

“언젠가 현이를 만나게 되면 보여줄 예정이었던 ‘깜짝 선물’이었는데….”

“…….”

정말로 아쉽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메디아를 바라보며 그녀를 모시고 있는 종복, 레나트는 정말로 자신의 주인의 감성을 이해할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얼굴을 굳혔다.
상대방이 보내오는 혐오, 경멸 등의 감정들을 ‘사랑’이라고 착각하고, 그 ‘사랑’을 더욱 갈구하기 위해 상대방을 자극시키는 것을 서슴지 않는다.

‘그때  남자인가….’

레나트는 자신의 옆구리에 칼을 박아 넣고, 주먹으로 사정없이 후려치던 은현을 떠올렸다.
깔끔하게 목을 베어지면서, 머리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그 순간 확실히 자신은 죽었다.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순식간에.
은현이 메디아에게 보내고 있는 경멸과 혐오의 감정은 진짜다.

“하아…이래서는 현이한테 그렇게 호언장담을 하고 떠났는데. 면목이 없어지잖아.”

다시는 하계에서 사령술의 잔재가 등장하지 않을 것이라, 메디아 본인이 은현에게 선언을 했었는데,  선언이 깨져버렸다는 것에 메디아가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
마치 진짜로 연인과 했던 약속을 깨버린 것에 대해 면목이 없다는 것만 같은 표정을 짓는 것이 더더욱 가관이다.

“어쩌지? 혹시라도 현이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나한테 실망을 하면 어떻게 해?”

“…….”

“레나트, 네 생각은 어떠니?”

‘그자는 이미 당신을 충분히 경멸하고 있습니다만?’

“하아…혹시라도 나를 싫어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굉장히 가슴을 졸이게 돼….”

‘이미 싫어하고 있다고요. 세상에서 제일.’

멋대로 은현의 감정을 오인하고 있는 메디아에게 그 사실을 전할 용기가 레나트에게는 나지 않았다.

“어쩔  없지…. 일단은 하계로 내려간 데스나이트를 다시 마계로 역소환을…어머?”

자신에게 종속되어 있는 사령의 위치를 추적하여 데스나이트가 소환된 장소를 특정해내고, 사령의 시각에 동조하여 하계의 상황을 파악한 메디아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새된 소리를 내뱉었다.

“이게 어떻게  거지? 어째서 현이가 저기에?”

데스나이트의 사령의 시각을 통해서 보인 사령기사와 대치를 하고 있는 은백색 머리카락의 검사의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하아….”

분노로 일그러져 경멸과 혐오가 잔뜩 담긴 은현의 시선을 느끼고, 메디아는 끈적한 교성을 내뱉었다.

“……?”

상황을 모르고 있는 레나트는 느닷없이 이상한 신음 소리를 흘리고 있는 자신의 주인을 보고, 의문이 담긴 채로 인상을 찡그렸다.

“전혀…실망하지 않았구나…. 오히려….”

데스나이트의 사령에 간섭하여 감각을 공유하고 있는 지금의 메디아에게는, 은현이 데스나이트에게 보내고 있는 경멸과 혐오가 담긴 시선이 마치 자신에게 향해오는 정열적인 구애의 감정처럼 느껴졌다.

“내 깜짝 선물을 기뻐해 주고 있어…?”

뒤틀린 착각의 모순덩어리로 가득했던 메디아의 마음속이 은현에 대한 깊은 사랑으로 점점  가득 채워져 나갔다.

“후후, 후후후.”

그의 연인으로써 약속을 깨버린 것에 대해 실망을 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이 준비해주고 있던 깜짝 선물에 기뻐해 주고 있는 것처럼.
그것이 절로 미소를 짓게 만들 정도로, 참을 수 없이 기쁘다.
메디아의 시각에서 바라본 은현의 모습은 심각하게 뒤틀려있는 상태.

“좋아…. 네가 그렇게 기뻐해 주기만 한다면….”

“…….”

“난 더한 것도 해줄 있어.”

결국 레나트는  눈을 질끈 감고 일방적인 메디아의 사랑에서 눈을 돌려 외면했다.

◆ ◆ ◆

고민할 틈도 없이, 은현은 돌진하여 우뚝 서 있는 데스나이트의 목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카앙!

[은현 고유능력]
[시간 가속]

목을 향해 휘두른 은현의 검이 데스나이트의 검에 간단히 막혔지만, 은현은 처음부터 자신의 기습이 쉽게 통할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기습을 통한 검격은 시작에 불과하다.
시간 가속을 통해 남들보다 빠른 배속의 움직임을 선보일 수 있는 은현의 검이 춤을 추며 데스나이트를 위협했다.

카앙!카앙! 카아앙!

남들이 눈으로도 쫓을 수 없는 격렬한 싸움이 시작된 가운데, 은현은 자신의 여신에게 급하게 말을 걸었다.

‘여신님!’

[알았다!]

은현의 머릿 속의 사고를 읽은 베르단디는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았음에도, 고개를 끄덕이며 은현의 곁을 떠났다.
이내 싸움이 시작된 은현을 원호하기 위해, 각자 술식을 짜고 기도를올리려 했던 일리아나와 엘레노아에게 말을 걸었다.

[여긴 나의 아이에게 맡기고 어서 움직여야 한다.]

일리아나는 눈썹을 꿈틀거리며, 짜고 있던 마법 술식의 진행을 멈추고, 베르단디를 올려다 보며 되물었다.

“…움직여야 한다고요?”

“하지만….”

데스나이트와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고 있는 은현을 놔두고 자리를 떠야 한다는 것이 일리아나와 엘레노아에게는 그리 달갑지 않은 말이었다.
하지만 그 명령을 내린 것은 인간이 아닌 상위 차원의 여신이라는 존재이자, 은현이 믿고 따르고 있는 베르단디다.

[주위를 둘러보거라.]

“……? 아.”

걱정스레 은현을 바라보던 엘레노아는 베르단디의 말에 주위를 둘러보며 상황을 파악하고, 작게 탄식했다.
일리아나 또한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 작게 신음한다.

“이건….”

대지가메말라가고, 주위의 풀과 나무들이 생기를 잃어 급속도로 썩어들어가고 있는 것을 파악해, 자연의 모든 생기가 한곳을 향해 빨려 들어가며 집중이 되고 있다.

[저 ‘죽음’을형상화한것 같은 기사 하나를 하계로 부르기 위해,  영역 전체를 뒤덮은 진의 존재를, 아이들이라면느낄 있을 테지.]

“…….”

지금도 계속 사망한 다크엘프들의 원혼이 은현과 교전을 벌이고 있는 데스나이트에게로 몰려와 흡수되고 있는 상황이다.
레디아가 자결을 하면서 발동시킨 저주의 인의 매개체는 다름 아닌 그녀의 심장이었지만, 저주의 범위는 자신들의 종족이 살고있던 이 숲의 영역 전체다.
이미 패배를 인정하고, 사망한 자신의 동족들의 원혼조차 주저 없이 복수에 사용한그 집착과 광기는 숲의 영역 전체를 썩어 문드러지게 만든다.

[이대로 계속 두다간, 계속해서 사망한 다크엘프들의 원혼이 저 사령 기사에게로 흡수되면서 악순환의 고리가 될 뿐이다.]

지금도 계속해서 다크엘프들의 원혼을 흡수하여 강화되고 있는 데스나이트를 막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이 영역 전체에 걸린 저주의 인을 해주 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은현을 가장 아끼고 우선시하는 베르단디가 자신들에게 다가와, 이 이야기를 전한 이유도 알아챘다.
다름 아닌 은현이 내린 지시를 전달한 것이다.

“…가자. 엘레노아.”

“네?”

“지금은  저주를 먼저 해주 하는 게 우선이야. 현이도 지금 그걸 우선시하고 혼자서 필사적으로 저걸 막고 있는 거니까.”

“…네.”

일리아나는 엘레노아의 손을 잡고, 텔레포트를 발동시켰다.
좌표는 데르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숲의 영역의 입구 부분.
엘프들에게 상황이 급격하게 뒤바뀌었음을 엘프들에게 전하고, 통솔을 하기 위함이다.

[여덟 자릿수 상위마법]
[텔레포트]

마법이 발현되어 설정한 좌표로 전이가 되려던 도중, 일리아나는 흘끗 데스나이트와 격전을 벌이고 있는 은현의 등을 바라보았다.

“…죽으면 진짜로 가만 안 둘 거야.”

◆  

카아앙!

“……!”

서로의 검이 부딪치면서 목숨을 깎아내리기 위한 살벌한 일격이 막히고, 은현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각을 떠올리고 눈썹을 꿈틀거렸다.

‘이상해. 뭐야. 이건?’

데스나이트는 은현의 공격을 방어해내기만  뿐, 적극적인 공격을 해오지 않았다.
소환되자마자, 뿜어내고 있는 짙은 사기를 활용하여 날뛸 줄  알았던 데스나이트의 모습은 굉장히 차분하고, 고요하다.

‘느껴지는 건 틀림없이 메디아의 기운이야. 그런데 왜 공격해오지 않지?’

데스나이트가 소환되었던 바닥의 검은색 물웅덩이는 어느새 데스나이트의 몸으로 스며들어 한 줌의 흔적도 남기지 않고 흡수되었다.
더더욱 짙어진 죽음의 기사의 사기에 은현은 인상을 찡그리고 검을 겨누면서 경계의 태세를 취하며 대치했다.
이내 은현을 응시하고 있던 데스나이트의 투구 속에서 시퍼런 푸른 안광이 번뜩였다.

철컥

가만히 서 있던 데스나이트가 검을 들어올려, 은현을 향해 겨누고, 마침내 행동을 개시했다.
다리를 구부려 허리를 낮추고, 잔상을 남길 정도로 빠른 움직임으로 돌진해와, 은현의 바로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죽음의 기사의 몸놀림은 묵직한  플레이트 메일을 착용한 기사의 몸놀림이 아니었다.

[은현 고유능력]
[사고 가속]

그 움직임을 순간 놓쳤던 은현은 본능적인 위험을 감지하여 사고 가속을 발동시키고, 뒤늦게 포착한 데스나이트의 검격에 대응하여 검을 휘둘렀다.

카앙!

“…크윽!?”

오른쪽에서 팔을 베기 위해 들어오는 큰 횡베기를 검으로 막아낸 은현이 신음을 내뱉는다.
날렵한 몸놀림과는 다른 묵직한 검격에 다리가 밀려나고, 체중의 중심이 크게 휘어질 것만 같던 것을 하체에 힘을 주어 억지로 버텨낸다.

‘빠르다.’

본능적으로 사고 가속을 발동하지 못했더라면 미처 대응하지 못하고, 자신의 상체가두 동강이 났을지도 모른다는 감각이 은현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싸늘한 감각을 지우고 냉정을 찾을 시간도 주지 않고, 데스나이트의 검격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카앙 카앙 카아앙!

밀려났던 몸의 자세를 억지로 가다듬고, 감지와 사고 가속으로 예민해진 흐름 속에서, 은현은 차근차근 데스나이트의 공격에 대응을 해 나갔다.

‘평범한 사령이 아니야.’

과거 생전의 메디아가 조종했던 그런 종류의 데스나이트와는 차원이 다른 무언가가 존재한다.
1초라는 시간을 절반으로 쪼개고, 또 절반으로 쪼개면서, 남들보다 몇 배는 다른 시간의 흐름을 살고 있는 은현이 아니었다면, 데스나이트의 일방적인 맹공을 버텨내는 것은 불가능했으리라.
그리고 검을 나누면 나눌수록 은현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알 수 없는 의문.
감지와 사고 가속을 통해서 면밀하게 데스나이트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분석해나갈수록 머릿속에 피어오르는 기시감.
평범한 데스나이트와는 차원이 다른 압도적인 맹공을 받으면서도 은현이 그 공격들을 모두 대처할 수 있었던 이유는 순전히 감지와 사고 가속 때문만이 아니다.
너무나도 익숙한 공격과 움직임.
하나하나의 동작들이 예술과도 같았던 검무는 과거 수십 번이고 나눠보았던 대련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설마? 아니, 그럴 리가…? 하지만….’

 가능성을 떠올리는 것조차, 가정하는 것조차 싫어서, 애써 외면했지만, 서로의 검을 부딪치기를 반복하고, 교전이 계속되면 될수록 가슴 속에 피어오르는 그리운 기분.

“어째서 당신이….”

보통이었다면 절대로 잃어버리지 않았을 냉정을 잃어버리고 은현의 검에 망설임이 깃든 아주 짧은 순간.

[아이야!]

[시에테 검성술]
[백화참수(百花斬首)]

백 송이의 꽃을 모조리 베어버리는, 날카로우면서도 아름다운 단  번의 검격이 은현의 왼팔을 관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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