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4화 〉214. 달의 마을(3)
“마법에서…정령을 창조하셨다고요…?”
은현과 일리아나의 설명을 들은 앨리스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두 사람에게 되물었다.
그만큼 두 사람이 한 일에 대해서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녀석을 정령이라고 표현하는 건 정령들에게 조금 미안한 일이지.”
인간들의 유전자로 만들어진 복제인간을 과연 인간으로 부를 수 있는가와 비슷한 문제.
하지만 마땅히 부를 수 있는 종족의 특정도 불가능하고, 그나마 유사한 형태를 띄우고 있는 ‘정령’이라는 이름과 표현을 빌려 쓰고 있는 것에 불과한 상태다.
꽤나 무례한 표현에 가까웠지만, 이미 인간이 아닌 자신의 상태를 자각하고 있는 엘빈은 전혀 개의치 않은 표정으로 묵묵히 서 있었다.
“도대체 뭘 만들어내신 건가요….”
“뭐, 조금 터무니없는 방식을 사용하긴 했지만, 그때는 사정도 사정이었던지라.”
“앨리스. 그냥 포기해. 얘가 이러는 거 어디 한두 번이어야지.”
오히려 일리아나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이미 인간으로써의 존엄과이성을 잃어가던 엘빈을 한차례 죽이고, 자아만을 남겨 정령으로 만들겠다는 발상을 처음 들었을 때는 일리아나도 미친놈을 보는듯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이건….”
마법으로 정령과 비슷한 존재를 창조한다니, 앨리스로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발상이다.
자연 속에서 태어나는 정령들을 중요히 여기는 앨리스의 입장에선 화를 낼 수도 있는 부분이기도 했지만, 엘빈의 사정을 들어보고, 그의 남은 인생을 구원하기 위한 조치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화낼 마음도 생기지 않았다.
무엇보다 은현이 지금 하려는 것은 인공적으로 정령을 창조하여 무언가 야심을 이뤄내려는 검은 속내보다는 파탄나버린 남매의 인생을 다시 구원하기 위함이라는 것이 앨리스의 마음을 움직였다.
“일단…무슨 말씀이신지는 알겠어요.”
“고마워.”
“감사드립니다.”
인간의 영혼과 정령의 개념이 뒤섞여 돌연변이나 다름없는 자신의 현 상황을 인정해주었다는 것에 꾸벅 고개를 숙였다.
“…힘든 시간을 보내셨을 것 같습니다.”
누군가가 자신의 고된 시간을 이해해주고 위로해준다는 것은 자신에게 있어 정말로 큰 힘이 된다는 것을, 엘빈은 은현을 통해서 깨달았다.
“저보다는 동생이 겪어야 했을 고행이 더 컸을 겁니다.”
엘빈은 그리 말하면서 은현과 일리아나를 바라보았다.
에린을 거두어주지 않았다면, 지금즈음 에린은 어떻게 되었을까.
자신은 어떻게 되었을까.
절대로 하고 싶지 않았던 상상이 마음과 머릿속의 수면 위로, 자꾸만 떠오른다.
그런 생각을하고 있던 와중에, 은현이 입을 열었다.
“현 상황에서 나와 일리아나가 마력의 공급을 해주지 않아도 반영구적인 자립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싶어. 그래서 너에게 조언을 듣고 싶어. 정령술사인 너의 관점에서 지금의 엘빈은 어떤 상태인지, 의견을 들려줘.”
“…….”
앨리스는 생각에 잠겼다.
허공을 보는 듯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여졌지만, 엘빈은 자신의 영체를 빠짐없이, 구석구석 관찰하는 시선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반투명한 나비 날개를 퍼덕이는 작은 존재들의 모습.
두 눈에 정확이 보이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렴풋이 그들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는 이유는 엘빈이 절반은 정령과 유사한 영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
“당장은…힘들겠지만, 시간을 두고 방법을 찾아볼 수 있을까요?”
“일단은 시간은 넉넉하게 두고 체류할 거야.”
신혼여행이라는 이유를 두고 최대 반년이라는 시간을 제시하고 왔다.
대처할 수 없는 사건이라도 터진다면 급히 연락을 하고 저쪽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조치를 해두긴 했지만, 은현은 이번 여행에서 불안정한 엘빈의 상태를 완전히 개선 시킬 생각이기도 했다.
“네. 그리고 이분의 존재는….”
“알아. 엘프들에게는 비밀로 해야겠지. 엘빈, 다시 들어가.”
“그러지.”
“…….”
명령에 따라 다시 수정구슬 속으로 들어가는 엘빈이 모습이 뜬금없이 우습다고 생각하고, 은현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마치 포켓몬 같네.’
“갑자기 뭘 웃고 있어?”
“아니, 그냥 추억 생각. 그것보다….”
고개를 끄덕인 은현은 멈췄던 말을 재차 이었다.
“그리고 일단 확인 차 묻겠는데, 지금 현재 엘프들은 정령술을 사용하지 않고 있어?”
“아뇨, 그것은….”
직접적인 엘프의 영역에 들어서고, 엘븐 가드 엘프들과 마주치면서, 은현은 엘프들이 정령술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던 것을 떠올리고 물었던 것이다.
직접 현 상황의 핵심을 찌르는 은현의 질문에 앨리스는 난감한 입 모양을 입가에 걸치며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었다.
“말을 꺼리는 걸 보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기는 한가 보네?”
머뭇거리는 앨리스의 반응을 보고, 일리아나가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중얼거렸다.
은현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이야기를 정리했다.
엘프를 남편으로 맞이하여 가정을 꾸렸다고는 하지만, 인간인 그녀가 엘프들의 사정을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는 사정이 있다는 것을 읽었다.
“됐어. 곤란한 거면 말하지 마.”
“…죄송해요.”
“아니. 이건 엘프들의 문제일 테니까. 그리고….”
처음 데르킨이 자신을 확인했을 때, 혹시 아예 복귀를 한 것이냐고 반색하며 묻는 것이, 은현은 이상하게 꺼림직했다.
“…….”
“흐응.”
작게 혀를 찬 은현이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 눈치챈 일리아나와 엘레노아가 조용히 은현의 말을 기다렸다.
“앨리스, 내일 다시 오도록 할게. 일단은 너에게 용건이 있던 것도 사실이었지만, 진짜 이유는 성묘라서.”
“성묘? 아, 그렇군요.”
앨리스는 살짝 고개를 갸웃하다가 납득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을 만나기 이전부터, 300년도 더 된 이전의 시간대에도 은현이 지금과 다름이 없는 모습으로 살아있었다면, 과거의 엘프들과 인연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정말로 그런 긴 시간을 살아올 수 있는 인간이 있을 수가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은 어느새인가 사라져 버린 지 오래다.
“가자.”
“응.”
“네.”
은현을 뒤따라 자리에서 일어나는 두 아내들과 함께, 앨리스가 세 사람을 배웅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됐어. 눈도 불편한데.”
“후후, 괜찮아요.”
일리아나의 배려에도 불구하고, 앨리스는 미소지으며 세 사람을 배웅하기 위해 함께 집을 나섰다.
“어? 벌써 가시는 겁니까?”
집을 나서 앨리스에게 인사를 건내고 뒤를 돌자, 은현 일행은 돌아오던 데르킨과 마주쳤다.
그리고 데르킨의 다리 뒤에 숨어서 흘끗 자신들을 살펴보고 있는 한 어린아이를 보고, 일리아나가 미소지었다.
“어머….”
처음 보는 사람에 대한 경계심으로 두 귀를 쫑긋거리고 있는 작은 소녀를 보고, 일리아나가 반색하는 얼굴로 다리를 쪼그려 앉아 소녀와 눈높이를 맞췄다.
“아가가 앨리스의 딸이니?”
“네에….”
“후후, 귀엽기도 하지.”
일리아나는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이 뭐니?”
“에리스에요…. 아줌마는 누구세요?”
“아줌….”
반대로 물어오는 에리스의 질문에 일리아나의 얼굴이 돌덩이처럼 굳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내 일리아나가 애써 미소를 지으며 다시 물었다.
“후, 후후…. 아가?다, 다시 한번 말해볼래?”
“아, 아줌….”
우우웅
“히이익!”
주체하지 못하는 감정의 상태를 대변해주는 일리아나의 마력이 방출되며 위험한 분위기를 뿜어내자, 에리스가 기겁을 하며 더욱 깊게 자기 아버지의 뒤로 숨었다.
“…일리아나. 애한테 지금 뭐 하는 거야.”
“하지만 지금 얘가 나한테…!”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잔뜩 항의를 해오는 일리아나의 어깨를 토닥여주고, 은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에리스에게 말을 걸었다.
“많이 놀랐니? 미안해.”
“괘, 괜찮아요….”
“뒤의 저 누나는 일리아나라고 해.”
“네에…. 혹시…아저씨가 은현이라는 아저씨예요?”
“…….”
“푸흡!”
“후후.”
“에, 에리스!”
은현이 자신과 비슷한 취급을 받게 되자, 웃음을 참는 일리아나와 엘레노아를 뒤로하고, 은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데르킨은 자신을 훈련시켰던 은현이라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딸 아이에게 자주 들려줬던 모양이었다.
솔직하기 짝이 없는 딸의 언사에 데르킨이 화들짝 놀라며 딸의 이름을 불렀다.
“데르킨, 괜찮아. 사실이긴 하니까.”
나이 순서대로 말하자면, 사실 이 중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것은 은현이다.
엘프들의 외모는 대부분 20대의 나이대에서 노화가 멈춘다.
그렇기 때문에 엘프의 관점에서 다른 누군가의 본질을 알아보는 것은 대상의 외모가 아니라, 내면에 있는 무언가다.
외모가 아무리 20대 초반에서 고정이 되어 머물러 있다고 하더라도, 40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축적된 마음속의 내면을무의식적으로 꿰뚫어 본 어린 엘프의 눈썰미에는 씁쓸함보다 감탄이 나오게 만들었다.
“크게 될 아이네.”
“하, 하하! 그, 그렇습니까!?”
당황했던 데르킨이 느닷없는 딸아이의 칭찬에 헤벌쭉해져 이마를 긁적였다.
피식 웃은 은현은 에리스의 머리를 한차례 쓰다듬고는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린 이만 가볼게.”
“아, 저녁 식사라도….”
“해가 지기 전에 실비아의 성묘를 할 생각이야. 내일 다시 오도록할게.”
은현의 계획을 듣고는 데르킨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이내 아쉬운 표정을 진지한 표정으로 바꾸며 입을 열었다.
“그렇군요…. 저어, 은현님?”
“왜?”
“한 가지…상담 드리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
외지인에 가까운 것도 모자라, 엘프도 아닌 인간인 은현에게 상담하고 싶은 일이라고 해봐야, 떠오르는 것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순간 머릿속으로 근처의 작은 마을을 습격했던 다크엘프 무리들의 존재를 떠올렸다.
그것과 연관이 있는 일일 것이라고, 생각한 은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 쪽에서도 한 가지 얘기하고 싶은 게 있었어. 안 그래도 앨리스에게 부탁한 일도 하나 있어서 내일 점심때 찾아갈 예정이었어. 그때 얘기를 나누도록 하자.”
“…알겠습니다. 그럼 조심히 가십쇼.”
“응.”
세 사람은 그렇게 엘프와 인간 부부의 배웅을 받으며 발걸음을 옮기려 할 때였다.
“언니는 이름이 뭐예요?”
“…어머?”
느닷없이 순백의 치마를 붙잡힌 성녀는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은현과 일리아나의 눈치를 살폈다.
자신을 언니라고 불러준 것에 대해서는 굉장히 기뻤다.
하지만 어째서 두 사람은 아저씨와 아줌마라고 부르면서, 자신은 언니라고 불러주는 것인지, 쓴웃음을 짓는 은현의 모습은 둘째치고,몹시 심기가 불편해 자존심이 상한 것을 티 내지 않으려는 일리아나의 눈치를 보게 될 수밖에 없었다.
“에, 엘레노아라고 해.”
“우음…. 엘레노아 언니….”
“으, 응?”
“내일 또 와요?”
“아마…그럴 것 같은데….”
“같이 저녁 먹고 놀아요!”
“그래. 그러자.”
엘레노아는 해맑게 웃으며 자신에게 저녁 식사를 권해오는 눈부신 소녀에게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여보, 금방 다녀올게.”
약간의 트러블은 있었지만, 아무리 엘프의 마을 안으로 들어왔다고 하더라도, 면식이 거의 없다시피 한 인간 셋이 달의 마을 안을 활보하는 것은 또 다른 트러블을 야기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했다.
그렇기에 데르킨은 스스로 나서서 은현 일행의 신분 보증인과 안내역을 자처했다.
“네. 세 분의안내, 잘 부탁드릴게요.”
“아빠! 다녀오세요!”
모녀의 배웅을 받으며 세 사람과 한 엘프는 다시 그렇게 발걸음을 옮겼다.
“…이해가 안 돼.”
“네?”
“왜 엘레노아는 언니고, 나는 아줌마야?”
마녀의혈통으로 노화가 멈춰 20대 초반의 외모를 유지하고 있는 일리아나는 지금껏 살아보면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아줌마’라는 단어에 크게 충격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