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13화 〉213. 달의 마을(2) (213/730)



〈 213화 〉213. 달의 마을(2)

“신….”

“좀 뜬금없는 이야기지?”

“솔직히 좀 당황스러워요.”

앨리스는 신이란 존재에 대한 신앙심을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 상위 차원의 애매모호 한 존재가 떠받들어지고, 인정을 받고 있는 이유는 신성의 힘을 받아 기적을 일으키는 사제들이 신의 존재를 증명해주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아르케나 대륙에서 베스타 여신의 존재를 부정한다는 것 자체가 신성모독이나 다름없으며, 함께 싸워왔던 사제인 아니에스의 힘의 근원인 신성을 비웃거나 부정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죽은 사람을 되살릴 수 있다니….”

그것은 베스타 여신의 은총을 가장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 아니에스 조차도 불가능한 기적이다.

“나도 처음에는 어떤 미X놈이 장난질을 친 게 아닌 걸까, 의심이 들었어.”

일리아나는 처음 은현이 자신이 있는 메르비스 마법도서관의 관장실을 찾아왔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는 정말로 눈앞에 나타난 은현이 가짜가 아닐까, 자신의 마음과 추억을 가지고 누군가가 수작을 부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은현의 목소리, 얼굴, 느껴지는 마나의 기운, 모든 것이 20년 동안 잊지 못했던 남자의 모습 그대로라는 것을 깨닫고, 그때가 되어서야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렇군요….”

모든 것을 납득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앨리스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는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다시 이렇게 만날 수 있게 되어 정말 기뻐요.”

은현의 생환 소식에 앨리스는 그냥 순수히 기뻐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눈이 보이지는 않지만, 나름의 방법으로 실명을 극복해내고 정확히 은현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고 손을 내뻗어 악수를 청했다.

“그래. 나도.”

피식 미소지으며 옛 동료와의 인사를 마치고, 은현은 앨리스의 정확한 현 상태에 대해 물었다.

“눈은 어떻게 된 거야?”

“그때, 싸우던 도중에 황제의 공격을 받았어요.”

“치료할 수는 없었던 거야?”

“눈이 직접 오염된 마나에 오염되고 있던 상황이었으니까요. 아니에스님이 아예 제 두 눈을 뽑아버리고, 신성 마법으로 눈을 아예 복구까지 시켜주셨지만, 시력이 회복되는 일은 없었어요.”

아마 오염된 마나가 원인일 것이라고, 앨리스는 추측했다.

“정화로도…어떻게 해결을 볼 수 없는 문제인가요…?”

“정화로 해결될 수 있는 수준이라면, 아니에스가 이미 시도를 해보았겠지.”

엘레노아가 생각해 보았던 방법을 같은 사제이자, 더욱 뛰어난 신성의 힘을 가지고 있던 아니에스가 시도해보지 않았을 리가 없다.
결국 아니에스 조차도 앨리스의 두 눈은 고치지 못했다.

“저는 전쟁이 끝나고, 이렇게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요.”

오히려 당시의 상황을 고려해보면, 두 눈을 침식했던 오염된 마나가 전신으로 퍼지는 것을 막은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겨야 했다.

“눈이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 거야?”

“정령들의 힘을 빌리고 있거든요.”

“정령…?”

엘레노아는 애매모호 한 정령이라는 개념에 대해 생각해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앨리스가 마력을 운용시키자 방 안에 시원한 바람이 들어선다.
이내 허공에서 앨리스의 마력으로 형성된 작은 바람의 요정이 허공을 날아, 앨리스의 왼쪽 어깨 위에 사뿐히 앉았다.

“와아, 저게…정령인가요?”

“정령이…보이시는 건가요?”

“네? 어, 네.”

놀란 반응을 보이는 앨리스의 물음에 엘레노아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이윽고 일리아나도 손을 들어 올리고 말했다.

“나도 보이는데?”

“일리아나님까지…? 하지만 일리아나님은….”

20년 전, 함께 여행했을 당시의 일리아나는 앨리스의 정령을 인식하지 못했었다.
정령이라는 신비한 생명체가  눈으로 목격이 되었던 것에 당혹스러운 것은 일리아나도 마찬가지.

“어떻게…?”

“한 가지 원인이라면 짐작이 가는 게 있는데 말이야.”

일리아나는 자신의 눈에 특별한 존재가 보이게  계기가 어떤 특정 시점을 계기 이후라는 것을 떠올리고  계기의 원인인 은현을 흘끗 바라보았다.

“아….”

일리아나의 은현을 바라보는 시선의 의미를 눈치챈 엘레노아도 그녀가 어떤 부분을 원인으로  집었는지 알아챘다.
눈에 보이지 않던 신비한 존재가 눈에 보이게 된 것의 계기는 모두 은현과의 관계를 가진 이후부터 생긴 일이다.

“…….”

은현은  아내들의 시선을 받고 이내 하늘에 떠 있는 자신의 여신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후후, 왜 그러느냐?]

‘…아뇨. 좀 기분이 복잡해서요.’

지금껏 자신에게만 보였던 여신의 존재가 이제는 두 아내들에게도 인식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 은현에게 형용할 수 없는 미묘한 기분을 느끼게 만들고 있었다.

‘뭔가 부끄러운 비밀을 들키게  것 같아서 좀 그래요.’

[아이는 내가 부끄러운 것이냐?]

‘아뇨. 그렇다기 보다는….’

베르단디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현재 상황이 굉장히 쑥스럽다는 표현이 옳았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이 직접적으로 베르단디의 존재를 지각하게 된 이유는.

“우리 쟤랑 결혼했잖아.”

“그렇…죠?”

“응.”

“결국, 소원을 이루셨네요.”

“그러게. 후후.”

일리아나의 웃음소리를 들은 앨리스는 자신의 입을 가리며 작게 웃었다.
그토록 염원했던 것을 쟁취해냈다는 것에 순수히 기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싸늘하고 처참한 주검이 되었던 은현의 시체를 잡고 울부짖던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니, 더더욱 축하하는 마음이들었다.

“아무튼…나나 엘레노아가 그 정령이라는 존재들을 눈으로 볼 수 있게 된 거에는 아마 현이의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 싶어. 쟤는 예전에도 정령의 존재를 두 눈으로  수 있었잖아.”

“그랬죠.”

“나랑 엘레노아는 현이랑 관계를 가지게 되면서 평소엔 인식할 수도 없었던 존재를 인식할 수 있게 되었거든.”

“…….”

 ‘존재’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앨리스는 굳이 묻지 않았다.
그리고 어떤 관계를 가지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대강 짐작이 갔다.
성인 남녀들이 결혼을 하고 가지게 될 관계라고 해봐야, 앨리스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넌 뭘 그렇게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어?”

“아니…. 그냥 뭐, 생각보다 거리낌 없이 얘기하길래.”

“흥, 앨리스가 뭐 애도 아니고, 성관계  맺었다는 거 오픈하는  뭐 부끄러울 일이야? 결혼도 했는데.”

그렇게 말하면 또  말도 없어진다.
은현은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이야기를 다시 되돌렸다.

“아무튼…그 정령들이 지금은 네 눈을 대신해주고 있는 거야?”

“네. 맞아요. 계약한 정령의 시야를 빌려서 지금은 멀어져 버린 시력을 대체하고 있어요.”

하지만 이것조차도 완벽하게 잃어버린 시력을 대신할 순 없었다.
앨리스가 사용하고 있는 방식은 어디까지나 정령들이 바라보고 있는 시각을공유하고 있는 방식으로 자신의 눈으로 보는 것과는 크게 틀리다.
시점이 정령의 시선에 따라 확 달라지기 때문에, 본인은 가만히 있는데 하늘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거나, 아래에서 위를 보거나, 왼쪽을 보려 하는데 오른쪽을 보고 있다거나 등, 시점의 전환이 자유롭지가 못하다.
지금은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아마 앨리스도 이 방식에 적응하는데, 큰 노력을 쏟아부었을 것이라 은현은 추측했다.

“이것도 마력의 소비가 적지 않아서 그리 오래 쓸 수 있는 방식은 아니지만요.”

정령의 눈을 통해서 은현과 일리아나의 천천히 얼굴을 응시하며 바라본 앨리스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정말로…하나도 변하지 않으셨네요.”

“너는 많이 변했구나.”

“이제는 팀의 막내라고는 할  없는 나이이긴 하죠.”

은현이 부활하고 다시 조우한  동료의 정령술사 소녀에게서는 18살의 어린 소녀의 모습을 찾아볼  없었다.
그만큼세월이 많이 흘렀다는 것을 재차 실감했다.
리오드와 만났을 때는 다짜고짜 일리아나가 자신의 가랑이를 걷어 차버리는 해프닝때문에 제대로 된 감상에 젖어있을 여유가 없었는데, 소녀가 한 남자의 아내가 되고, 애 엄마가 되어버린 것을 목격하고 감상에 젖었다.

“아무튼…저는 시력을 잃긴 했지만,지금의 생활에 그렇게 불편하지는 않아요. 남편과 딸도 저를 도와주고 있기도 하고요.”

“그래.”

은현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엘레노아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당신에게도…불가능한가요?”

엘레노아는 눈치를 살피며 은현에게 물었다.
항상 어떤 방식으로던 해결책과 길을 제시하던 은현이라면, 혹시 앨리스의 두 눈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하지 않을까.

“미안하지만, 나한테도 방법은 없어.”

사람의 신체적 결손을 완벽하게 고치는 것은 지구에서도 불가능한 일이다.
오히려 마력이나 신성력 같은 기적의 힘을 활용하여 치료하는 것이 불가능한데, 은현이라고 뾰족한 수를 내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엘레노아도 알잖아. 신성 마법은 만능이 아니라는 거. 상처를 고칠 수는 있어도, 질병을 없애는 것은 불가능해.”

강인한 육체로 면역력이 탑급에 속해 병원균 조차도 침입하지 못하는 아니에스의 질병면역이라는 특성이 정말로 특이한 케이스다.
하지만 신성 마법은 육체의 기초 대사 능력을 활성화시키거나 잃어버린 결손부위를 복구시킬 수는 있어도, 체내의 병원균을 없애고 잃어버린 면역기능을 다시 활성화시키는 것은 어디까지나 연금약학의 범위이다.

‘하지만 찾아본다면 방법을 강구해 볼 수는 있지만….’

은현은 확실한 방법이 나타나지도 않았는데, 지금의 생활을 만족하고 있는 앨리스에게 무작정 고쳐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군요….”

안타까운 표정을 지은 엘레노아가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보다…은현님은 혹시 달의 마을과 접점이 있으셨던 건가요?”

“뭐, 조금은.”

“…그렇군요.”

“왜?”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앨리스의 반응을 보고 일리아나가 물었다.

“아뇨. 남편이 인간의 손님을 데려온 건 제가 이 마을에 체류하게 되면서 처음 있던 일이었거든요. 지금까지인간이 이 달의 마을을 방문한 사례가 극히 드물기도 했고요.”

게다가 초면인 줄로만 알았던 은현과 데르킨이 서로구면이었다는 것이 앨리스의 입장에서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던 부분이다.
이윽고 남편이 과거의 이야기를 해주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300년도 더 된 과거에 자신을 단련시켜주었던 인간 은인이 계셨다고 했었는데…설마…?”

어떻게 인간이 300살이 넘는 긴 시간을 살 수 있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애초에  번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나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다는 것부터가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더욱이 쓴웃음을 짓고 있는 은현의 반응을 보고, 앨리스는 확신을 얻었다.

“사실…이군요….”

“앨리스. 그 얘기는 나중에.”

“…알겠어요.”

단호하게 말을 끊어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막은 은현의 행동에 앨리스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대단한 분이셨지. 그렇게 떠나실 줄은 몰랐는데….

은인에게 받았던 교육과 추억들을 늘어놓으면서, 밝은웃음을 짓던 데르킨이 끝에 가서는 잔뜩 그리움과 아쉬움을 토로했던 것을 떠올렸다.
 은인이 은현이라는 것을 가정해본다면, 은현과 엘프들 사이에 있었던 문제는 자신이 섣불리 다가가거나 나설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앨리스는 생각했다.

“앨리스. 우리가 달의 마을을 찾아온 이유는 내 개인적인 용무를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네가 이곳에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하기도 했기 때문이야.”

“절 찾으신 건가요?”

“너한테 조언을 얻고 싶었던  있었거든.”

“은현님이…저에게?”

자신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게 도대체 무엇이 있을까?
앨리스는 은현의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응.”

작게 고개를 끄덕인 은현은 품에서 검은색의 기운을 품고 있는 수정구슬을 꺼냈다.
검은 안대를 차고 있는 앨리스는 수정구슬 쪽을 응시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정령의 눈을 통해 그 수정구슬의 정체를 정확히 확인했다.

“그건….”

“엘빈. 나와.”

짧은 한마디에 부르르 떨던 수정구슬 속에서 검은 그림자들이 흘러나오며 형체를 이루고 사람의 형상을 갖춰나갔다.
이윽고  시간을 잠들어있던 그림자 정령이 낯선 환경의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탐색하고는 상황을 파악했다.

“도착한 건가?”

“맞아.”

은현은 엘빈을 한차례 보더니, 잔뜩 굳어 있는 앨리스에게로 시선을 다시 옮겼다.

“정…령? 아니, 이건….”

정령이 아니다.
정령은 저렇게 실체를 가지고 있지 않고, 실체와 성대가 없기 때문에 목소리도 낼 수 없으며, 게다가 의사 표현은 계약한 정령술사 본인이 아니면, 제대로  의사소통도 나눌 수 없다.
적어도 앨리스의 기준에서는 은현이 등장시킨 엘빈이라는 그림자 정령은 정령의 틀을 벗어난 이레귤러 같은 존재였다.

“앨리스, 우리가 널 찾아온 이유는 하나야. 녀석, 엘빈을 ‘자립형 마법’으로 만들고 싶어.”

“자립형…마법.”

간단한 은현의 부탁에 앨리스는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도움이 필요해.”

정령이라는 존재에 관해서는 그 존재만 알고 있을 뿐, 제대로  정령계약조차 맺어본 적이 없는 은현에게는 도저히 메꿀 수 없는 지식의 공백을 앨리스라면 채워줄 수 있을 것이라고, 은현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사실 반은 도박에 가까운 수다.
정령과 친교를 다지고 정령들을 신성시 여기고 있는 앨리스의 입장에서 엘빈이라는 존재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정령과 비슷한 이질적인 존재에 가깝다.
정령에 대한 모독이라고 분개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았다.
은현과 일리아나, 엘레노아는 조용히 앨리스의 답변을 기다렸다.
마침내 앨리스의 입이 열린다.

“사정…설명해주실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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