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12화 〉212. 달의 마을(1) (212/730)



〈 212화 〉212. 달의 마을(1)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거대하고 울창한 나무들의 굵은 가지들 위에서, 조금이라도 수상한 기색을 보인다면 망설임 없이 화살을 쏘아 은현 일행의 미간을 뚫어버리기 위해 자세를 잡고 있는 엘프들.

“…….”

은현은 경계의 기색을 띄우고 있는 엘프의 외침에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 일행을 향해 활을 겨누고 있는 엘프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확인해보며, 오른쪽부터 왼쪽으로 고개를 옮겼다.

‘모르는 엘프들 뿐이네.’

자신을 알아보는 이가 없다면, 폐쇄적이고 타 종족을 배척하는 성격을 추구하는 엘프들의 성격상 교전이 시작되는것도 염두 해야 할 일이다.
교전이 시작된다면, 승패를 떠나서 일이 더 복잡해져 귀찮아지는 것은 충분히 예상해볼 수 있다.
발길을 끊었던 이곳에 다시 찾아왔던 이유는 그저 성묘를 위해서다.
이제 와 엘프들의 마을을 위해 무언가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정체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은현 일행이 아무런 대답도 하고 있지 않자, 활을 겨누고 있던 엘프 하나가 인상을 찡그리며 은현에게 외쳤다.

“흐음.”

“…….”

은현이 아무런 대답도 하고 있지 않아서, 일리아나와 엘레노아는 이 사태를 가만히 관망하는 쪽을 택했다.
거기에 두려움이나 낯섬 같은 감정은 없었다.
엘프라는 종족과 엮여본 적도 없고, 최근까지만 해도 책이나 이야기 속의 지식으로만 접했었던 엘프라는 존재들을 처음 맞닥뜨린 것에서 일리아나와 엘레노아는 긴장감보다는 흥미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은현이 곁에 붙어있었기 때문인지, 은현과 일리아나가 제작한 아티팩트의 효과를 믿기 때문인지,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공격에 대한 불안감은 가지고 있지 않았었다.

‘…뭐야. 도대체?’

그렇게 전혀 경계의 태세를 취하고 있는 기색을 보이고 있지 않는 세 사람의 모습이 엘프들에게는 이상할 뿐이었다.
엘프들은 미심쩍은 표정을 지으며 조금이라도 빈틈을 보이지 않으려고 더욱더 활을 꽉 쥐며 은현 일행을 겨누었다.
이내  엘프가 겨누던 활을 살짝 내리고,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른 위화감을 해소시키기 위해 은현의 얼굴을 천천히 뜯어보듯 확인했다.

“저 분은 설마….”

“데르킨수색조장님…?”

긴가민가, 한 표정으로 300년 넘게 보지 못했던 얼굴이었지만, 기억 속에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인간들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설마…설마 정말로…?”

“수색조장님? 저 인간을 아십니까?”

“전원! 활을 내려라!”

“…예?”

많은 엘프들이 데르킨의 느닷없이 내려진, 이해할 수 없는 명령에 인상을 찡그리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 명령에 따라 겨누고 있던 활들을 내리고 경계의 태세를 풀었다.
허공에 올린 손동작으로, 부하 엘프들에게 ‘전원 대기’의 명령을 내린 뒤, 데르킨은 울창한 나무 위에서 뛰어내려 바닥에 착지했다.

“은현님…이십니까?”

“오랜만이야. 데르킨.”

은현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미심쩍은 표정을 짓던 데르킨의 질문에 대답했다.
긍정의 표시를 확인하고, 그제 서야 데르킨의 표정이 안도의 기색으로 밝아져 갔다.

“혹시 다시 복귀를….”

“아니, 그건 아니야.”

“그렇습니까….”

기대에  시선으로 물어보던 데르킨의 질문에, 은현이 단호하게 부정하자, 데르킨은 아쉬운 기색을 띄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성묘하러 왔어. 실비아에게.”

“그, 그러시군요….”

실비아라는 이름을 은현이 거론하자, 은현의 거절 의사로 아쉬운 기색을 감추지 않았던 데르킨의 표정이 더욱 무거워졌다.
이내 데르킨은 도망치듯 은현의 뒤에 있는 두 여성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뒤의 두 여성분은 누구십니까?”

“내 아내들.”

“…예?”

“나 이번에 결혼했거든.”

“……?”

데르킨은 순간무슨 소리를  것인지, 이해를 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결혼이라는 단어를 몰라서 그런 표정을 지었던 것이 아니다.
다름 아닌 은현이 결혼을 했다는 소식을 접함으로써 생기는 당혹감 때문이었다.
순간 은현의 뒤에 서 있는 일리아나와 엘레노아를 번갈아 보고, 다시 은현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지, 진심이십니까?”

“왜? 뭐가, 이상해?”

“아, 아니요. 그런 것은….”

데르킨은 황급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애써 떨떠름한 시선을 숨겼다.

“내 집은 그대로 있어?”

“예, 예. 혹시라도 언제 돌아오실지 몰라, 여왕님께서 정기적으로 청소를 시키고 있었습니다!”

“…쓸데없는 짓을.”

은현은 뜻밖의 알고 싶지 않았던 정보를 들었던 탓에 쓴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아이야.]

‘…여신님.’

[좋은 목적으로 온 것이 아니냐.]

은현의 사정을 알고, 기분을 헤아려주던 베르단디는 은현의 머리를 상냥하게 쓰다듬으며 그를 위로했다.

‘네.’

은현은 짧게 대꾸하고는 작게 한숨을 쉬고, 기분을 전환 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현아.”

“응?”

“나 다시 업어.”

“…….”

다시 이동해야 한다는 사실에 일리아나가 재차 은현의 등에 자신의 가슴을 밀착시켜 왔다.
물컹하고 부드러운 감촉이 등에 짓눌리자 은현은 한숨을 쉬며 일리아나를 다시 업고 이동했다.
엘프 영토의 수호대인 ‘엘븐 가드’ 소속의 엘프들이 주위를 둘러싸며 발걸음을 옮겼다.
호위를 명목으로 감시를 하는 형태로, 마을 안으로 이동하던 도중, 은현은 입을 열었다.

“데르킨, 혹시 최근에 인간 하나가 이곳을 방문하지 않았어?”

“예? 예. 한 명, 있습니다.”

“혹시 20년 전 즈음에 여자가 방문한 거야?”

“…어떻게 아셨습니까?”

데르킨이 깜짝 놀란표정을 지었다.

“내가 아는 사람이거든. 혹시 이곳에 있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겸사겸사 찾아왔지.”

“아, 그렇군요…. 어떻게 그런 신기한 인연이….”

은현과 데르킨의 대화를 듣던 일리아나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헐…. 최근이라는 게 20년 전 도 최근이 될  있어?”

“그러게요….”

시간의 관념이 틀려도, 너무 틀리다.

“하하, 저희 엘프들의 입장에서는 20년이라는 세월은 그렇게 긴 시간이 아닙니다. 그러니 최근이라는 표현도 틀린 표현은 아니죠.”

거리낌 없이 자신들에게 말을 걸어오는 데르킨의 반응에 일리아나와 엘레노아가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생각보다…거리낌 없이 말을 걸어오시네.”

엘프라는 종족이 굉장히 폐쇄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은현에게 들었기 때문인지, 약간의 선입견을 가지고 있던 일리아나는 인간인 자신에게 허물없이 대하는 것이 의외였다.

“확실히…다른 엘프들에 비해서 제가 좀 특별한 건 맞습니다.”

신기하게 이런 부분을 스스로 자각하고 있기까지 했다.

“그도 그럴 게,  아내는 인간이거든요.”

“…엉?”

느닷없는 개인정보의 공개에 일리아나와 엘레노아가 발걸음을 멈추고 멍한 표정으로 은현과 함께 앞장서 걷고 있던 데르킨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런 데르킨의 말에 놀란 것은 두 여성 뿐 만이 아니었다.

“…뭐라고?”

은현 또한 놀라기는 마찬가지.

“데르킨, 설마 네 아내가….”

“예. 그러니까 신기한 인연이라고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그 말은….”

이윽고 데르킨의 말뜻의 의미를 이해하고일리아나도 작게 중얼거렸다.

“설마 앨리스가…?”

“네. 앨리스가 제 아내입니다.”

◆ ◆ ◆

“앨리스 나왔어.”

“오셨어요? 어머…?”

남편의 귀가를 맞이하던 앨리스는 이내 남편 이외의 발소리를 듣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인간의 발소리…?”

“하하, 앨리스! 앨리스의 친우분들이 찾아오셨어!”

“친우라니….”

느닷없는 데르킨이 가져온 소식에, 앨리스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앨리스?”

“이 목소리는….”

데르킨의 뒤에서 들려오는 한 남자의 목소리에, 앨리스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놀랍기는 은현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전 함께 팀을 만들어 전란의 시대를 헤쳐나갔던 정령술사 여성은 나이가 들어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받아들인 모습이었다.
하지만 은현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던 것은 따로 있었다.

“눈이….”

검은 안대를 착용한 모습을 보고, 그녀의 두 눈이 멀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너는 그러고 보니 전쟁이 끝난 이후의 상황을 모르고 있었지?”

“…일리아나님까지?”

뒤늦게 들려오는 일리아나의 목소리에 앨리스는 더욱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오랜만이야. 앨리스. 근 20년 만이네.”

“어, 어떻게….”

상황을 아직도 받아들이지 못한 앨리스가 아직도 입을 다물지 못하고 당혹스러운 기색이었다.

“하하, 아내의 반응을 보니, 정말로 은현님과 친구의 사이가 맞았군요.”

“여보…? 은현님이라니….”

게다가 데르킨이 처음 보는 것이나 다름없을 터인 은현을 ‘님’자를 붙여 깍듯이 대하는 것이 더욱 앨리스를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달의 마을의 엘프들과 은현 사이에 있었던 300년도 더  이전의 이야기를 모르는 앨리스에게는 이해할  없는 일이다.

‘인연이라는 게 어떻게 이렇게 엮일 수 있는 건지….’

[후후, 정말 신기하구나.]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은현의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베르단디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하하, 저는 딸아이를 데리러 잠깐 나갔다 오겠습니다. 앨리스, 저녁 전까지는 들어올게. 느긋이 얘기를 나눠.”

“아…후후, 고마워요. 그럼 다녀오세요.”

“응.”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다시 집을 나서는 데르킨의 뒷모습을 보고, 일리아나가  눈을 가늘게 뜨며, 앨리스를 바라보았다.

“…아이도 있어?”

“네. 8살이에요.”

“…에린보다 나이가 어리네.”

“에린?”

처음 들어보는 이름에 앨리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있어. 최근에 현이가 키우고 있는 애가 하나.”

“…정말로 은현인가요?”

“응. 맞아. 오랜만이네. 못 본 사이에 시간이 많이 지났구나.”

“그렇죠.”

앨리스는 쓴웃음을 지으며 은현의 말에 답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그때 분명 은현은….”

눈을 다쳐, 흐릿해지는 시야 속에서 남아있던 마지막 기억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은현의 시체를 억지로 흔들어 일으켜 세우려는 일리아나의 울부짖는 모습이었다.

“그 전에 한 사람, 소개를시켜주고 싶은 사람이 있어.”

일리아나의 눈짓으로 앞으로 나온 엘레노아가 정중히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엘레노아 아르미타스라고 합니다. 은현의 두 번째 아내예요.”

“두 번째…? 설마?”

첫 번째가 누구를 의미하는 것인지는,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간단히 추론해낼  있었다.

“맞아. 나야.”

싱긋 웃어 보이는 일리아나의 표정이 두 눈이 멀게 된 앨리스에게는 보이지 않았지만, 굉장히 행복하다는 것을 남김없이 표현하고 있는 밝은 목소리에, 일리아나의 미소가 머릿속으로 자연스레 그려졌다.
앨리스는 헛웃음을 지었다.

“즐거운 이야기가 될 것 같네요.”

이야기를 경청하기 위해 앨리스는 일리아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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