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1화 〉211. 광신의 흔적(3)
“빙의…요?”
여관 객실로 돌아와, 침대에 눕힌 소년의 상태를 살피며 엘레노아가 놀란 눈치로 되물었다.
아직 해가 뜨기도 전의 새벽의 시간대는 마을 사람들 모두가 잠에 든 시간대로 굉장히 고요했다.
“어.”
은현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몸에 빙의해서 육체의 제어권을 차지하고, 빙의한 몸을 조작하여 자신들이 있는 동굴로 옮긴 거지.”
공통적인 점은 실종자들이 모두 제 발로 사라졌다는 점이다.
특히나 마법에 대한 저항능력이 전혀 갖춰지지 않은 일반인들에 경우에는 이런 정신계열의 마법에 저항할 수도 없다.
“정신계열의 마법은 특수하다고 하지 않았나요? 악마들만 쓸 수 있다고 하셨던 것 같은데…?”
“빙의술은 예외야.”
“…일리아나님?”
일리아나는 떨떠름한 시선을 지으며 엘레노아의 질문에 답해주었다.
“빙의술과 악마들이 사용하는 정신계열의 마법은 좀 틀려.”
악마들이 사용하는 정신계열의 마법은 대부분 대상의 정신에간섭하여 그 정신과 마음을 무너뜨리는 위험한 마법이다.
대표적으로 서큐버스들이 사용하는 세뇌가 그러하다.
특히나 정신에 간섭하여 꿈을 보여주고 환각을 일으키는 하급 서큐버스들과는 차원이 틀리다.
상급 서큐버스들의 정신지배는 애정으로보듬어 키운 자신의 아이를 처참하게 찢어 죽이고 인육을 먹게 만드는 것조차 거리낌이 없게 만들 정도로 위험한 사상개변을 실행할 수 있는 수준.
“사용하는 것만으로 해악을 끼치는 악마들의 정신계열과는 달리 이 빙의 마법은 그저 상대방의 몸을 차지하여 육체의 제어권을 강탈하는 것에 불과하니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위험한 마법이지만, 빙의한 영혼이 그대로 육체에서 나가기만 한다면, 피해를 입은 육체에는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는다.
“쯧….”
“……?”
엘레노아가 기분이 나쁜 듯 혀를 차고 있는 일리아나의 눈치를 살핀다.
“껄끄러운 점은 이 ‘빙의 마법’도 흑마법의 카테고리에 들어가는 부류의 마법이라는 거지.”
“아….”
일리아나의 심기가 불편했던 이유를 깨닫고, 엘레노아는 작게 탄식했다.
흑마법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에 조심스레 눈치를 살피며 중얼거린다.
한 가지 꺼림직한, 신경 쓰이는 점을 느꼈기 때문.
“영혼을 다루는 특징에 흑마법….”
게다가기분 나빠하고 있는 일리아나의 반응을 연관 지어 생각해 보고, 그 추측을 입에 담는다.
“혹시 이 빙의술이라는 건….”
“맞아. 그때 보았던 사령술과 비슷하지.”
망자(亡者)가 된 타인의 영혼을 조작하여 영혼과 함께 시체를 농락하는 사령술.
자신의 영혼을 조작하여 타인의 육체를 빼앗고살아있는 자의 몸을 농락하는 빙의술.
사용 방식과 그 효과는 매우 다르지만, 영혼을 다룬다는 점에서는 비슷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아까 그 제단에서 흘러나왔던 기운, 그 미친년이 연관된 것 같은데. 맞아?”
“…아직은 잘 모르겠어. 사기(死氣)를 이용한다고 해서 그 모든 원인이 메디아와 연결되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연관의 가능성이 높은 것도 사실이지.”
메디아의 이름을 자신의 입으로 꺼내는 것 자체가 은현의 입장에서도 그리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하, 진짜 가지가지 하네.”
일리아나는 짜증을 내며 인상을 찌푸렸다.
실제로 벌어진 일에 대해서 재차, 확인을 하는 것도 우습다.
다른 이들이 말했다면 코웃음을 치며 그리 생각하는 근거부터 물어봤겠지만, 타인의 기억을 읽어 들일 수 있는 은현의 경우에는 굳이 확인하는 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다.
연정이라는 감정을 떠나서, 그만큼 일리아나가 은현에게 가지고 있는 신뢰의 감정 또한 굳건하다.
게다가 자신이 직접 피부로 체감한 소름 끼치는 기운의 존재를 직접 감지하고 난 뒤라, 은현보다도 더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그곳에서 이 아이의 몸으로 뭘 하려 했던 걸까요?”
“글쎄, 무슨 목적으로 그러고 있던 건지는 알 수 없지만…. 그곳에서 어린애의 몸의 사용 용도는 정확히 알겠는데.”
“그건….”
일리아나의 추측에 엘레노아도 인상을 찡그렸다.
“엘레노아의 생각이 맞아. 인신공양이지.”
적나라한 은현의 표현에 엘레노아가 거북한 표정을 짓는다.
“인신공양, 제물…그러면 이 아이 이전에사라졌다던 세 명의 실종자는 이미….”
“죽었겠지.”
“아….”
안타까움이 묻어나오는 탄식이 방안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사라진 목숨에대해서 애도를 표할 만큼, 은현의 지금의 머릿속은 그리 여유롭지 못했다.
“문제는 그 인신공양의 의식을 통해서, 도대체 뭘 꾸미려고 했는지가 문제인데….”
딱 봐도 정상적인 목적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인간의 육체와 영혼을 공양함으로써 진행되는 의식이 좋은 결과를 불러일으킬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특히나 다크엘프들에게 이상하리만치 짙은 분노의 감정을 표출하던 은현이 다크엘프들을 가만히 둘리도 없다.
“이젠 어떻게 할 건데? 그 다크엘프들이 사람들을 납치해서 뭔가 일을 꾸미고 있는 거잖아. 이대로 둘 거야?”
“엘프의 마을에 가는 거, 좀 더 서두르자.”
“거기 가서 이 사실을 전하려고?”
“전하는 것 보다, 이런 강한 사기(死氣)를 흘리는 의식을 세계수가 감지하지 못했을 리가 없어. 아니면 뭔가가 문제가 생긴 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시급히 엘프의 마을을 방문해,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닌지, 확인해봐야 한다고 은현은 생각했다.
“흐응. 알았어.”
그렇게 이야기가 일단락이 마무리되고,날이 밝았다.
은현은 아침이 되어 카운터로 나온 여관 주인에게 새벽에 갑작스레 사라진 소년의 신변을 인도하고 의뢰는 해결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사실상 소년을 납치했던 다크엘프들의 무리들은 모두 정리하여 문제의 원인을 제거한 셈이 맞았지만, 뜬금없이 다크엘프의 존재를 설명한다고 제대로 된 납득이 될 리도 없었고, 그들의 존재 자체를 굳이 발설할 생각도 없었다.
애초에 소규모 마을의 푼돈을 모아 마련한 의뢰비도 받을 생각도 없었던 은현에게는 의뢰를 실패했다는 소식을 전하여, 여관주인이 자신을 실망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한들, 별로 개의치 않았다.
“그렇수…?”
여관 주인은 은현의 보고를 듣고,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
“일을 해결해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니요. 그렇지 않수다.”
여관 주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을을 나가기 전에, 이 마을에 장벽을 설치해두도록 하겠습니다. 모든 위협을 막아줄 수는 없지만, 적어도 마수들이 마을의 주변을 기웃거리는 것 정도는 배제시켜 주겠죠.”
“고맙수…. 이건 의뢰비외다.”
카운터 접수대 위에 올려진 뭉툭한 돈주머니를 보고, 은현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손을 내저었다.
“아뇨. 저는….”
“그냥 받으쇼.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나도 눈치가 있수다.”
“…….”
“왜 거짓말을 하는 건진 모르겠지만, 여관에 저 아이를 데려왔다는것은 정말로 무슨 일이 일어났었다는 뜻 아니유?”
게다가 멀쩡히 돌아온 것은 그 사건을 해결하고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 들게 만든다.
여관 주인은 이 마을에서 벌어졌던 실종 사건의 자세한 내막을 모르면서도, 은현이 그 사건을 해결했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내가 이 조그만 마을에서 여관을 운영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마을과 내 여관을 들렀던 모험가들과 손님이 무언가 다르다는 것은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당연히 눈치를 챌 수밖에 없지.”
애초에 스스로가 의뢰를 해결하고 의뢰를 해결하지 못했다고 거짓말을 하고 보수를 받지 않으려는 행동을 보이고 있는 은현의 행동은 여관 주인 입장에서는 다른 모험들과는 다른 신선한 반응이었다.
“상관없습니까?”
“그냥 가져가쇼. 촌장한테는 내가 얘기해 둘 테니.”
“…감사합니다.”
너무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었기에, 은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여관 주인이 제시한 돈주머니를 품 안에 집어넣었다.
“잘 쉬다 가요.”
“안녕히 계세요.”
뒤따라 일리아나와 엘레노아가 손을 흔들거나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를 전하는 것으로 각자의 인사를 건냈다.
“부인들도 잘 가시라고, 저 양반은 참 복 받았구만.”
눈호강을 했다는 칭찬을 받으며 여관을 나선 은현 일행은 그대로 마을 전체를 보호해줄 결계를 설치하기 위해 지정한 포인트로 이동했다.
“현아. 들었어? 우리를 보고 너한테 복 받았다잖아.”
“알아. 들었어.”
지금까진 남이 칭찬하는 외모에 별 감흥이 없던 일리아나는 보기 드물게 여관 주인의 칭찬에 만족스러운 웃음을 띄우며 으스대고 있었다.
엘레노아 또한 얼굴을 붉히면서 길을 걷고 있는 것이 그리 싫지는 반응이다.
은현은 품속에 넣어두었던 돈주머니의 내용물을 살폈다.
무게 자체는 제법 묵직하여 꽤나 어마어마한 무게감을 자랑했지만, 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것들은 모두 동화다.
값을 세어보아도 그렇게 큰 액수는 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일리아나.”
“응?”
“보호 결계에 사용하려던 마석 말이야. 중급 말고 최상급으로 바꾸자.”
“흐응?”
은현이 내린 결정에 순간, 의외라는 듯 두 눈을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이내 미소를 짓고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좋아.”
[후후.]
베르단디는 기쁘다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은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 ◆
“하아, 하아. 현아. 아직도 멀었어?”
험준한 산속을 걷던 도중, 체력이 방전되어 가던 일리아나가 결국 참지 못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거의 다 왔어.”
산 위를 응시하며 계속 걷고 있던 은현은 일리아나의 질문에 몇 번이고 똑같은 대답을 담담히 입에 담을 뿐이었다.
“…너 지금 그 얘기만 네 번째인 거 알아?”
“너가 5분 간격으로 그 말을 꺼내니까 그렇지.”
“5분이면 솔직히 물어볼 수도 있잖아!”
화를 낸 일리아나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 몰라! 이젠 진짜로 힘들어! 다리도 아파!”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멈춘 은현은 가만히 일리아나를 내려다보았다.
‘슬슬 정말로 한계인가?’
은현은 목적지까지 거리를 가늠했다.
‘한 3/4 정도 왔는데.’
엘레노아를 통해서 축복의 기도로 기초적인 신체 능력의 향상의 덕을 보았다고 하지만, 그 기초 체력이 평소에도 운동을 전혀 하지 않아 매우 저질적인 것을 감안을 한다면, 일리아나가 여기까지 온 것도 굉장히 노력한 결과라는 것은 은현도 부정할 생각이 없었다.
그럼에도 두 눈을 가늘게 뜨고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유는.
‘저게 어딜 봐서 나이가 42이냐고.’
바닥에 주저앉아 앙탈과 투정을 잔뜩 부리고 있는 20대 초반의 성숙한 외모의 여성이 내용물은 40살이 넘은 여자라는 것을 누가 믿을 수 있을까.
“너 지금 속은 완전 아줌마면서 하는 짓은 완전 애가 따로 없다고 생각했지?”
“…그렇게까지 생각은 안 했어.”
“이 X끼가? 아무튼 그런 비슷한 생각은 했다는 거네?”
“엘레노아는 어때?아직 걸을 만해?”
“야! 무시하지 마!”
엘레노아는 쓴웃음을 지으며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내고 상태를 살피는 은현의 걱정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
“저는 아직 괜찮아요.”
평소에도 자주 다녀본 원정으로 행군의 경험에 그나마 익숙한 엘레노아는 이런 면에서는 일리아나보다 나았다.
“그래. 알았어.”
은현은 고개를 끄덕이고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일리아나에게 등을 보이며 무릎을 굽혔다.
“업혀.”
“응?”
“업히라고. 마을에 도착할 때까지 업어다 줄게.”
“진짜로?”
“싫으면 그냥 다시….”
“아니야! 업힐게! 업힌다고!”
다시 무릎을 피며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은현의 등에 일리아나가 냅다 업혔다.
“후후.”
기분이 좋은 표정을 지으며 양손으로 은현의 목을 꽉 끌어안고 은현의 왼쪽 목덜미에 얼굴을 묻으며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스으으….”
이윽고 잠시 그 공기를 음미하듯 하더니, 들이쉰 숨을 크게 내쉰다.
“하아아….”
“야, 남의 등에서 뭐하는 거야.”
“후후, 너가 왜 내 목덜미에 그렇게 집착하는지 좀 알겠어.”
“…내가?”
은현은 금시초문이라는 듯 처음 듣는 말에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하, 자각도 못하고 있던 거야?”
관계를 가질 때마다 끈질기게 자신의 냄새에 집착을 해오던 그 행동에 대해 자각이 없다는 것이 일리아나는 더더욱 어이가 없다.
“그러게요. 설마 자각이 없으셨을 줄은….”
“…엘레노아까지.”
쓴웃음을 지으며 일리아나의 말에 동조하는 엘레노아의 반응까지 생각해 보면, 이 부분은 인정해야 하는 부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리고 뭔가 대꾸를 하려던 순간, 습관적으로 일정 시간마다 사용하던 감지에 걸린 기척을 느끼고 발걸음을 느꼈다.
“일리아나.”
“응?”
“내려야겠다.”
“…칫.”
등에 업힌 지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내리라는 것인지 항의를 하려 했지만, 그의 진지한 표정을 읽고 작게 혀를 차며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숲속에서 나타난 수십 명의 엘프들이 일제히 은현 일행에 활을 겨누고 외쳤다.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