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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0화 〉210. 광신의 흔적(2) (210/730)



〈 210화 〉210. 광신의 흔적(2)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건지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와중, 다크엘프들이 바닥을 떨어져 구르는 머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사형이야.”

너희들 모두.
차갑게 내려지는 사형선고가 멍하니 바닥을 굴러다니는 머리를 바라보던 다크엘프의 정신을 일깨운다.

“크윽!”

전신에 소름이 돋음과 동시에, 황급히 몸을 돌려 뒤를 바라보았다.

“…언제?”

방금까지 먼 거리에 있는 동굴 입구에  있었던 남자가 순식간에 동굴 가장 안쪽의 자신들의 뒤를 점거하고 있는 기이한 사태.
저항  번 해보지 못하고 목이 베어져 버린 동족에 대해 감상을 품을 겨를도 주지 않는다.

“죽여!”

이형환위를 통해서 뒤를 점거한 은현과 그 움직임을 포착하지 못했던 다크엘프들의 사이에는 명확한 실력 차가 존재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크엘프들이 품에서 단검을 꺼내 들고 은현에게 대적하는 행동을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은 머릿속에 계속해서 울리는 생존본능의 경종 때문이다.
순식간에 접근을 해오고 대화도시도해보지 못하고 동족의 머리를 베어버리는, 그 단호한 행동 속에 담겨 있는 증오를 읽고 다크엘프들의 생존본능은 강하게 외쳤다.
가만히 있어도 죽는다.
항복해도 죽는다.
그렇다면 저항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어떻게 해도 죽는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으면서도, 공포로 가득 찬 생존본능이 어떻게든 발버둥을 치라고 강하게 명령을 하고 있었다.

서걱

단검을 쥐고 있던 다크엘프의 팔이 은현의 검에 베어져 바닥에 떨어졌다.

“끄아악!”

팔이 바닥에 떨어지고 나서야 뒤늦게 찾아오는 고통에 다크엘프가 비명을 지른다.
잘린 자신의 손목을 부여잡고 절망 어린 표정을 짓던 다크엘프의 얼굴을 다리로 올려 차고, 머릿속에 칼을 박아넣어 있는 힘껏 아래로 내려 베었다.
순식간에 반으로 갈라져 두 동강이 나버리는 동족의 처참한 최후를 본 다크엘프들이 몸을 굳힌다.

‘이렇게 되면…!’

한 다크엘프가 시선을 제단 위에 잠든 상태로 올려져 있는 소년에게로 옮겼고, 곧바로 몸을 움직였다.
무슨 수법을 사용하여 자신들을 찾아냈는지, 그 수단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지만, 은현의 목적이 제단 위에 잠들어 있는 소년을 구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추측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렇다면 저 소년을 인질로 삼아서라도 어떻게든 은현의 빈틈을 만들어 내야 한다고, 다크엘프는 생각했다.
그리 생각하여 몸을 움직여, 제단으로 향하던 도중.

[네 자릿수 마법]
[윈드커터(Wind Cutter)]

위이잉

공기를 가르며 날아오는 매서운 삭풍의 칼날이 제단으로 향하던 다크엘프의 다리에 직격했다.

“어?”

제단으로 달려가던 다크엘프의 몸이 순식간에 앞으로 고꾸라지고,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뒤늦게 눈치채 시선을 아래로 옮긴다.
절단된 자신의 발목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는 붉은 피들이 동굴의 바닥을 적셔가고 있는 상황.

“으, 으아악!”

두 다리의 발목이 절단된 동족의 모습을 보고, 어마어마한 양의 마력이 느껴졌던 마법의 발현 장소인 동굴 입구 쪽을 응시했다.

“뭐야, 이것들은?”

“…기분 나빠요.”

검은 색조의 마녀 옷을 입고 있는 여성과 하얗고 밝은 색조의 신성한 사제복을 입고 있는 여성이 인상을 찡그리며 동굴 안쪽을 바라보았다.
은현이 부숴버린 벽화와 제단에서 풍겨오는 이질적인 기운을 느끼고, 두 여성은 인상을 찡그렸다.
일반적인 마력과는 다르면서도, 전신에 소름을 돋게 만드는 기분 나쁜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기운.
그러면서도  반년 전즈음, 느껴본 적이 있었던 기운이다.

“나 저 기운, 전에 한  느낀 적이 있었는데. 엘레노아 너는 어때?”

“…저도 마찬가지에요.”

“이거, 미친년이 흘렸던 기운 맞지?”

의식이 거행되면서 제단 쪽에서 느껴졌던 기운의 정체를 일리아나는 단박에 알아맞혔다.
도저히 잊을 수 없는 더러운 경험 속에서 느꼈던 기운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망자의 여왕, 사령술의 근간이 되었던 사악한 죽음의 기운들.
짙은 사기(死氣)의 기운이 느껴지는 것을 일리아나가 확인차 엘레노아에게 질문했다.

“…그런 것 같은데요.”

굳은 얼굴로 긍정하는 엘레노아의 얼굴을 보고, 일리아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인상을 찡그렸다.

“…이상하네.  기운이 다시 대륙에 퍼지는 일은 없을 거라면서?”

- 이 땅에 사령술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거야. 이건 내가  아이에게만 전수한 거거든. 그러니까 저 아이의 시체를 내가 데려가는 이상, 이 땅에 사령술 따윈,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거야. 내가 다시 너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기까지는 말이지.

다른 누구도 아니고, 공허의 저편에서 정신체만으로 대륙에 현현했던 메디아가 떠나면서 직접 말했던 내용이다.
이상하다 못해, 맛이 가버린 형태로 은현에게 뒤틀린 애정을 갈구하던 그 미친 여자의 말을 믿는다는 게, 정말로 부아가 치미고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지만, 그 메디아가 허투루 거짓말을 내뱉었을 리 없다고 생각하는  또한 사실이다.

“아, 정말로 뭐가 어떻….”

카앙!

무방비의 두 여성에게 날아오던 단검이 공격을 감지하고 자동으로 펼쳐진 마력의 장벽에 가로막혀 강한 금속음을 만들어 냈다.
은현이 아내들에게 주었던 자동 발동형 마력 장벽 아티팩트가 주인인 둘의 위기를 감지하고 활성화되어 공격을 막아낸 것이었다.

“…….”

생각을 멈춘 일리아나가 말없이 단검을 투척한 다크엘프를 응시했다.
이윽고 손을 들어 올려 구현된 술식을 통해 마력을 주입시켜 마법을 발동한다.

[세 자릿수 마법]
[아이스 니들]

싸늘한 공기가 응축되면서 형성된 얼음 가시들 수십 개가 허공에서 목표물을 꿰뚫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들어 올린 일리아나의 손이 전방을 향해 내려지자, 목표를 포착한 얼음 가시들이 일제히 단검을 투척했던 다크엘프의 몸을 사정없이 관통했다.

“크…아아…!”

전신에 얼음 가시들이 박히면서 고통에 몸부림을 치며 비명을 지르던 다크엘프의 목소리가 갑작스레 뚝 끊겼다.
뒤늦게 날아오던 얼음 가시 하나가 다크엘프의 목에 박히면서 그대로 성대를 뚫어버렸기 때문이다.

“으….”

전신이 관통되어 그대로 죽음을 맞이한 다크엘프의 시체는 너무나도 처참했다.
난잡해진 고깃덩이의 시체가 되어버린 눈앞의 참상을 버티지 못하고 엘레노아가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돌렸다.

“잔인하다고 생각하니?”

“네? 아니, 그게….”

“괜찮아. 솔직하게 말해도. 이런 걸로 엘레노아를 뭐라 할 리가 없잖니.”

“…….”

조금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던 엘레노아가 입을 열었다.

“솔직히…그리 기분이 좋지만은 않아요. 너무 참혹한 시체의 모습에 속이 좀 메스꺼워져서 저도 모르게 그만….”

“그렇구나. 확실히 엘레노아에게는  잔인한 광경이었을지도 모르겠네.”

일리아나는 담담히 엘레노아의 말에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엘레노아는 인간과 인간 간의 싸움에 익숙하지 않다.
공작 가문의 여식으로써, 베스타 신전의 사제로써, 던전을 답파하고 마수를 토벌하는 원정에는 몇 번이고 참여를 하여 싸움 자체에는 그럭저럭 익숙하다.
하지만 인간과 인간의 싸움, 전쟁은 겪어보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런 주저도 없이 잔인하게 사람을 죽이는 것에 대해서 자신도 모르게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머리로는 알고 있다.
하지 않으면, 이쪽이 당한다.
지금 죽여서 막지 않으면, 나중에   피해가 생겨날 수도 있다.
그런 사고방식에 대해서 납득도 하고, 엘레노아 자신도 그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이성과 마음이 그렇다고 생각을 하고 있어도, 처음 보는 잔인한 광경을 보고 제정신을 유지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앞으로도 이런 광경은 굉장히 자주 있을 거야. 이 부분은 네가 익숙해져야 할 수밖에 없어. 특히나 현이를 곁에서 받쳐주기로 결심했다면 더더욱.”

대부분의 사건의 중심에서, 필요하다면 위험한 일도 마다하지 않는 은현의 주위에는 이보다도 잔혹한 광경들이 즐비하고 있을 것이라고.
일리아나는 엘레노아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네.”

“그렇다고 굳이 너에게 이런 잔혹한 일을 시킬 생각은 없어. 그냥…네가 곁에 있어 주기만 해도, 현이와 나한테는 큰 위로가 될 테니까.”

무엇보다 타인의 생명을 취하고 없애버리는‘죽인다.’라는 행위를 한 번도해본 적이 없었던 엘레노아에게는 힘든 일이다.
일리아나나 은현이나 그것을 굳이 엘레노아에게 강요시킬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무엇보다 엘레노아는 그렇게 잔인해질  없는, 천성부터가 성녀의 기질을 타고났다.
자신을 강간할 뻔했던 건달들에게 경멸과 혐오의 감정을 가지고 있고, 자신의 가문 전체를 무너뜨리려고 했던 배다른 오빠인 애슈턴에게 증오와 분노의 감정을 품고 있었음에도, 엘레노아의 손에 칼을 쥐어주고 그들을 직접 살해할  있는 상황과 기회를 만들어준다고 하더라도.
엘레노아는 결코 그들을 자신의 손으로 죽일  있는 결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여러 가지 관계를 쌓아 올리면서 엘레노아를 괴롭히는데 맛을 들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잔인한 부분에 억지로 익숙해질 필요는 없다고, 일리아나는 생각했다.
그것은 은현 또한 마찬가지.

“하지만…아니에스님께서는 아니시잖아요. 저도 아니에스님처럼 전선에 나서서….”

“…걔를 예시로 드는 것은 굉장히 안 좋은데.”

일리아나는 눈썹을 꿈틀거리며 자신과 엘레노아를 둘러싼 마력 장벽의 상태를 점검했다.

“걔의 경우에는 좀 특수하잖아. 넌 걔처럼 될 필요 없어.”

아니에스는 누구보다도 많은 신성의 축복을 받아 최강의 육체를 가지게 된 특이한 케이스다.
신성을 부여받은 순간부터, 16살의 어린 나이에 신체의 성장이 멈춘 육체는 질병이나 독에도 면역이 되고, 그 무엇도 상처를 입힐 수 없는 최강의 육체를 가지고 있는, 사제들의 정점에  있는 여성.
동시에 은현의 고된 훈련을 받아 맨손으로도 마수들을 찢어발길 수 있는 전투능력을 과시하며 전선 중의 최전선에서 싸우던 아니에스의 전투방식은 명백히 사제의 전투방식이 아니다.

“아마도 너에게는 너만의 방식이 있겠지. 그 방식을 찾아내고, 만들어봐.”

“네. 감사해요. 일리아나님.”

“후후. 그래. 그것보다….”

일리아나는 피식 웃으며, 동굴의가장 안쪽에서 문답무용으로 다크엘프들을 학살하고 있는 은현의 모습을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쟤는  왜 저렇게 화를 내고 있는 거야?”

“…그러게요.”

보기 드물게 분노의 감정을 내비치고 있는 은현의 모습을 엘레노아가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바라보았다.
다크엘프들이 치르고 있던 의식 속에서 흘러나온 기운이 메디아와 관련이 있다는 것에 화를 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일리아나의 눈에 지금 은현은메디아를 보며 지었던 혐오스러운 감정이 아닌, 짜증과 분노를 표출하고 있는 것에 가까워 보였다.

“과거에 이것들하고 뭔가 엮인 게 있었나?”

“조금 걱정되네요….”

전투의 과정에서 은현이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굉장히 드문 일이다.

쿠웅

“크으윽!”

은현이 마지막으로 남은 다크엘프의 로브의 멱살을 휘어잡고 거칠게 동굴의 벽에 밀쳤다.
거세게 흔들리면서 얼굴에 쓰여져 있던 검은 복면이 풀려버리고, 검은 피부와 뾰족한 귀를 가진 잿빛 회색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의 얼굴이 드러났다.
반대쪽 손에 쥐고 있던 검을 바닥에 꽂고 남성 다크엘프의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기억견문을 통해 다크엘프의 기억을 읽어 들인 은현이 짧게 중얼거렸다.

“빙의라…너희들다운 수법이네.”

“그, 그걸 어떻…커허윽!”

자신들의 수법을 너무나도 간단하게 간파당한 것에 경악스러운 표정을 짓던 다크엘프는 끝까지 말을 잇지 못했다.
은현이바닥에 꽂았던 검을 다시 뽑아 들고, 다크엘프의 급소에 검을 찔러 넣었기 때문이다.
이내 멱살을 쥐던 손을 풀고, 그의 목을 베었다.
허무하게 떨어진 머리가 붙어 있던 목에서 피분수가 솟구치며 힘을 잃고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

피가 튀는 것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 멀찍이뒤로 몸을 뺏던 은현은 검을 역소환시키고 제단 쪽으로 다가가 눕혀져 있는 소년의 몸을 조심스레 안아 들어 올렸다.
소년의 몸속으로 미약한 마력을 흘려보내어 상태를 체크한 뒤, 은현은 그대로동굴을 나왔다.

“애는 어때?”

“좋은 상태는 아니지만, 찰과상과 골절뿐이니, 엘레노아의 신성마법으로 어떻게든  것 같아.”

“그런가요….”

엘레노아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은현의 품에 안겨 잠들어있는 소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직 어린아이인데….”

“일단은 돌아가자.”

“응. 알았어.”

고개를 끄덕인 일리아나가 텔레포트를 발동시켰고, 은현은 텔레포트로 전이 되기 직전에 동굴 안을 향해 유탄형 포션병을 집어던졌다.

콰아앙!

텔레포트로 은현 일행이 전이되고, 다크엘프들의 시체만이 남은 동굴 안이 폭발하면서 거센 진동을 일으키며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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