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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9화 〉209. 광신의 흔적(1) (209/730)



〈 209화 〉209. 광신의 흔적(1)

“내일 일 하나만 하자.”

“일?”

“일인가요?”

객실 숙박을 하루 더 연장을 하고 객실로 들어온 은현이 느닷없이 말을 꺼냈다.
은현에 제안에 일리아나와 엘레노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묻는다.
신혼여행 차, 가벼운 기분으로 있었던 두 아내들에게는 뜬금없는 제안이었다.

“방금 여관 주인에게서들은 건데. 마을에서 실종자가 생기고 있데.”

“실종자요?”

“어. 인원수는  세 명. 어린애 하나, 젊은 여성 하나, 노년의 남성 하나.”

“아….”

사람의 직접적인 피해의언급에, 엘레노아가 얼굴을 굳혔다.
반면 일리아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걸  갑자기 너한테?”

“내 행색을 보고, 혹시 우리가 모험가가 아니냐고 묻더라고.”

“딱히 모험가의 행색을 하고 오지는 않았는데….”

일리아나와 엘레노아는 가만히 있어도 주위의 이목을 끄는 성숙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로브를 푹 눌러쓰고 외모의 노출은 최대한 피하며 마을 안으로 들어왔었다.
무기나 제대로 된 장비 하나걸치지 않고 활동하는 세 명을 모험가라고 판단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딱히 모험가처럼 보여서 말을 건  아니라, 모험가이길 바라고 말을 걸었다는 표현이 맞겠네.”

이런 인구수가 적은 한적한 마을의 여관을 찾아오는 손님의 상인이 아니라면, 대부분은 모험가다.
짐꾸러미나 마차의 행렬도 보이지 않고, 남자 하나에 여자 둘이라는 특징은 도저히 상인이라고 볼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모험가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 것이라, 은현은 추측했다.

“원래 사람이란 건 자기 좋을 대로 편향된 생각을 하기 마련이잖아.”

인구수가 100명도 되지 않는 작은 촌락의 마을에서는 3명에 불과한 실종자도 마을 전체의 입장에서는 큰일이었다.
마을 주민인 여관 주인도 그 입장이 적용되는 것은마찬가지.
때문에 마을에 생긴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모험가의 등장이 굉장히 간절했을 것이다.

“흐응. 네가 이 일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나는 딱히  말이 없어.”

일리아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은현은 엘레노아를 바라보았다.

“저도 마을 사람들을 돕고 싶어요.”

“알았어.”

결의가 섞인 목소리로 자신의 의사를 밝히는 엘레노아의 얼굴을 보고 은현이 미소지으며 화답했다.

“그래도 무슨 생각이야? 네가 보수 같은 원해서 이런 일을 받아들였을 리도 없고, 이유가 있는 거지?”

애초부터 돈이 궁한 삶을 살아왔던 게 아니다.
이런 시골 마을에서 마련해줄 수 있는 적은 액수의 보수가 탐나서 은현이 의뢰를 받아들였을 것이라고는, 일리아나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작정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 바보 같은 호인도 아니다.
언제나 은현의 행동에는 제대로 된 이유가 존재했다.

“신경이 쓰였던 점은 사람들이 실종된 방식이야.”

“방식?”

밤중에 잠이 덜  채로 느닷없이 휘청이며 밤길을 걷고 있는 노인을 보았다.
자고 일어났더니, 아내가 보이지 않았다.
저녁 전까지 놀다가 돌아온다던 아이가 아예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마치 자기 발로 걸어가 존재를 감춘 것 마냥, 흔적조차 남기지 않았다고 하더라.”

한 명도 아니고 세 명씩이나 사라졌다는 것은 틀림없이 누군가의 의도가 개입된 사건의 결과라고 봐야 한다.
하지만 그 의도가 개입된 사건의 흔적이 보이지가 않는다.
만약 도적 떼나, 마수의 습격이 있었다고 한다면, 그 습격의 여파가 마을에 남아있어야 하는 것처럼, 누군가가 마을 사람들을 셋이나 납치를 행하였다면, 누군가가 그것을 목격하였거나, 저항의 흔적이 남아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흔적 자체가 남아있지 않았다.
정말로 실종자들이 스스로 발걸음을 옮겨 사라지기라도 한 것처럼.
그만큼 납치를 실행한 범인이 흔적을 남기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자일 수도 있었지만, 그것은 또 그것대로 의문이다.
굳이 마을을 습격하지 않고, 소수의 마을 사람들을 몰래 빼내는 것에 무슨 이득이 있을까.

“은현은 그러면, 실종사건이 범상치 않다고 여기고 있는 건가요?”

“맞아. 단순히 마수의 습격이나, 납치범죄의 종류라면 당장이라도 모험가 길드에 연락해서 신고를 하는 게 맞지만, 느낌이 영…꺼림직 하네. 게다가 이곳은 페르니아스 왕국의 영토가 아니기도 하고.”

엄밀히 말하자면 은현 부부들이 현재 향하고 있는 장소는 인간들 사이에서는 누구도 알려지지 않은 엘프의 영역이다.

“게다가 특수한 마법이나 어떤 수단을 통해서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람들을 납치를 했다고 치더라도, 그걸 우리가 감지하지 못했다는 것도 신경 쓰였고.”

“그건 솔직히 말하면 난 너랑 엘레노아랑노는데, 너무 열중해서 다른 건 신경쓸 여력이 없었는데?”

“…….”

당당하게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 일리아나의 태도에 은현이 할 말을 잃었다.
내심 은현도 자신은 그러지 않았다고 부정하기가 힘들다.

“사, 사실 저도….”

“…엘레노아도?”

“네….”

엘레노아는 민망한 표정으로 조심스레 손을 들어 올려 자수를 했다.
아침까지 즐겼던 역할 놀이를 마치고 어느샌가 청초한 성녀의 모습으로 돌아온 그녀가 은현의 시선을 피했다.

“뭐…어쩔 수 없었지….”

그만큼 자극적이고 강렬했던 밤이었다.
은현은 헛기침을  번 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애써 분위기를 전환시켰다.
이내 일리아나가 입을 열어 은현에게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행동할 건데?”

“일단은 일리아나는 마을 전체에 결계를 쳐줘. 접근을 방해하거나 감추는 결계가 아니라, 그냥 마력의 간섭을 감지하는 결계면 충분해.”

“덫을 쳐두고 기다리려는 거구나?”

“맞아. 순전히 이 마을을 지키는 결계를 설치해준다고 사건이 해결되지 않으니까.”

설치된 결계는 일리아나가 일정 거리를 두게 되는 순간, 곧바로 효력을 잃고 해제가 된다.
은현 부부들이  마을을 떠나게 되고, 다시 실종사건이 벌어지게 된다면, 그것은 사건을 해결했다고 볼  없다.
원인 자체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차라리 놈들이 기어 나오도록 판을 깔아두고 붙잡는 것이 나았다.

“실종되는 시간대는 해가 지고 밤 시간대야. 일단은 감지 계열의 결계를 설치하자.”

“전에 사령술사를 찾아다녔을 때랑 방식은 비슷하네.”

“아, 그때인가요….”

엘레노아는 조금 거북한 기억을 떠올리고 얼굴을 굳혔던 때.
지도를 통해서 마을의 좌표를 타고 텔레포트를 타고 다니며 수많은 마을에 결계를 설치하고, 사령술사가 접근하기를 기다렸던 과정에서 엘레노아는 잦은 텔레포트의 사용으로 멀미를 하고 구토를 할 뻔 했던 민망한경험을 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엔 그냥 이 마을에만 결계를 쳐둘 거야. 애초에 이 마을의 주위에  감지가 닿는 범위 안에서는 다른 마을의 존재는 느껴지지 않아. 게다가 이 주변의 정확한 지리도 모르고.”

“그렇네요….”

또다시 그런 연속 텔레포트를 경험하고 싶지 않았던 엘레노아가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고개를 끄덕인 일리아나가 계속해서 은현에게 물었다.

“그 다음엔?”

“그 다음엔…. 후우.”

작게 한숨을 쉰 은현이 더러워진 침대를 역소환시켜 없애버리고, 새로 만들어낸 침대 위에 그대로 침대에 드러누웠다.

“일단 잠부터 자자. 진짜 어젯밤부터 쥐어짜여서  죽을 것 같다. 진짜로.”

◆ ◆ ◆

“…….”

소년은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길을 걸었다.
무언가의 목적지를 정해두고 옮기고 있는 발걸음이 아니다.
몸을 움직여 한걸음 한걸음을 앞으로 내딛어 앞으로 전진하고 있는 소년에게는 제대로 된 의식조차 없는 몽유 상태.
휘청거리며 위태로운 걸음걸이로 어디론가를 향하고 있는소년의 그 행동은 마치 강한 자기장에 이끌리는 자석처럼, 자기 자신의 개인의 의지가 결여되어 있는 일방적으로 강제된 행동에 가깝다.

“…….”

마을을 나와 홀로 숲길을 걷기까지 약 30분.
보통이었다면 심상치 않은 마을 분위기로 마을을 나가기 전에 누군가가이상한 행동을 보이는 소년을 제지했을 터.
하지만 소년이 몽유병의 증상을 보이고 집을 나와 마을 밖을 걸을 때까지, 소년은 그 누구도 마주치지 않았다.
마을 사람은 물론, 소년의 부모들까지.
모든 주민들이 일을 마치고 깊은 잠에 빠져있는 새벽의 시간대로  안에서 수면을 취하고 있었다.
100명도 안 되는 작은 규모의 마을은 치안을 지키는 자경대나 경비의 인선조차도 존재하지 않았다.
마침내 소년은 어떤 강렬한 이끌림에 끌려와 한 동굴 안에 들어왔다.

“왔군.”

걸어오는 소년의 발소리가 동굴 안쪽까지 울리자, 동굴 안에 있던 이들이 반응하여 몸을 움직였다.

“곧바로 시작하지.”

“예.”

“알겠습니다.”

가장 앞장서서 주도하고 있는 남자의 말에 다른 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분주히 움직였다.
후드와 복면으로 전신을 가리고 피부 자체를 들어내지 않는 검은 복장을 하고있는 이들은 총 여섯.
그 중, 동굴 안으로 들어온 소년과 가장 가까이에 있던 검은 후드가 소년에게 다가갔다.
손을 내뻗어 소년의 손목을 붙잡고 물건을 다루듯 거칠게 이끌어 동굴 안쪽으로 데려갔다.
검은 후드의 보폭과 속도를 미처 따라잡지 못했던 소년은 이윽고 그대로 넘어졌고, 검은 후드에 의해서 바닥에 질질 끌려가야만 했다.

“…….”

땅에 쓸리면서 살갗이 벗겨지고 피가 나오고 있었음에도, 소년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마침내 동굴의 가장 안쪽, 많은 횃불들로 시야가 밝혀져 있는 가장 깊숙한 곳에도착했다.
꺼림직하고 음침한 그림이 그려져 있는 벽화와 앞에 놓여 있는 제단.
검은 후드는 제단 위에 소년의 몸을 올려두었고, 자신과 같은 검은 후드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시작하지.”

“네.”

우우웅

검은 후드들이 마력을 활성화시키자, 소년의 몸이 올려져 있는 제단을 중심으로 바닥에 동그란 마법진이 생겨 심상치 않은 기운을 뿜어냈다.

“여왕이시어…. 부디 우리에게 비원을 성취할 수 있는 힘을…!”

“““힘을!”””

한 검은 후드가 간절한 염원을 담아 외친 기도에, 다른 이들이 동조하여 간절히 외쳤다.
이윽고.

[브류나크 창술]
[껍질 꿰뚫기]

콰아앙!

“크아악!”

허공을 날아오는 한줄기의 창이 제례를 올리면서 께름직 한 기운을 내뿜고 있던 벽화를 쳐부순 순간이었다.

쿠웅!

분쇄되어버린 벽화의 잔해가 허무하게 바닥으로 추락하면서, 검은 후드들이 올리고 있던 제례는 강제적으로 취소가 되어버린상태.
힘의 근원이었던 벽화가 파손이 된 상태로는, 다시 제례를 올리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
이내 벽화가 있던 자리에 꽂혀 거대한 크레이터를 만들어낸 장창(長槍)을 보고, 검은 후드는 누군가가 자신의 제례를 방해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도대체 어떤 자식이…!”

“수장님…. 입구 쪽에….”

“뭐?”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입구 쪽을 가리키는 부하의 손가락을 따라, 디라트가 고개를 돌렸다.

“…인간?”

밝은 달빛을 받아 밝게 빛나는은백색의 머리카락과 그 머리카락 사이로 자신들을 응시하고 있는 새빨간 두 개의 눈동자.
달빛 속에서 너무나도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 남자를 발견한 검은 후드들이 은백색의 머리카락과 핏빛 적안을 가지고 있는 남자와 눈을 마주치고 모두 몸을 움찔 떨었다.
본능적으로  있다.
절대로 평범한 인간이 아니다.

“아직도 다크엘프가 남아있었구나. 그때의 전쟁에서 모두 죽은 줄 알았는데.”

“……!?”

“너희들은 350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났어도, 아직도 그대로구나. 전혀 변하지 않았어.”

검은 후드에게는   없었다.

‘350년이라고? 설마…? 어떻게 인간이 우리 종족을!?’

100년도  되는 짧은 생을 살다가 안식을 맞이하는 필멸자의 존재가 350년 전,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는 듯한 말투.

“네놈…누구냐!”

한 검은 후드가 은색 머리카락의 남자를 바라보며 거칠게 추궁했다.

“…….”

하지만 남자는 그런 검은 후드의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자신들은 신경 쓰지 않고, 고개를 옆으로 돌려 허공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음에도불구하고, 무언가가 있다고 확신하고 있는 태도.

“누구냐고 물었다!”

재차 외치는 목소리에 마침내 남자가 정면의 검은 후드들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너희 ‘다크엘프’들을 모두 쓸어 버릴 사람.”

정확히 자신들의 정체를 알아맞히는 은현의 말에 몇몇 다크엘프들이 어깨를 움찔 떨었다.

“어, 어떻게 인간이 우리 종족을…!”

“그딴 거 너희가  필요 없고.”

은백색 머리카락의 남자의 양손에 두 자루의 검이 각각 소환되어 손에 쥐어졌다.
살기가 짙은 붉은 안광이 흉흉한 기세로 다크엘프들을 쏘아보았다.

“방금 나의 여신께서 너희들의 형벌을 결정하셨어.”

“무슨 개소리를….”

“너희 모두….”

“……!”

앞에서 들려온 것이 아닌,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다크엘프들의 피부에 소름이 돋는다.
소리가 먼저 들리고, 뒤늦게 남자의 모습이 신기루처럼 사라져갔다.

서걱

이형환위를 꿰뚫어 보지 못한 한 다크엘프의 목이 너무나도허무하게 잘려나가 바닥에 떨어졌다.

“사형이야.”

신의 사도가 내리는 사형선고는 너무나도 조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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