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3화 〉203. 신혼여행(2)
“마차 안이 흔들리지도 않고, 이렇게 편안할 수가 있다니….”
거친 도로 위를 빠른 속도로 달리면서도, 덜컹거리지도 않고 안락한 내부의 환경에 엘레노아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동안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상식이 실시간으로 무너지고 있는 중인 그녀는 그 원흉인 은현을 바라보았다.
운전석에서 핸들을 잡고 차를 운전하고 있는 은현이 백미러를 통해 설명을 해주길 바라는 엘레노아의 표정을 읽고,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궁금한 거라도 있어?”
“이 마차는…도대체 어떻게 만든 건가요?”
“마차(馬車)라기엔 애매하네. 말이 끄는 차도 아니니까. 하지만 마력으로 기동하는 아티팩트니까 마차(魔車)라는 표현도 맞으려나?”
“마력으로 기동하는…아티팩트?”
은현의 설명에 엘레노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즉 마력을 이용해서 이 마차를 이동시키고 있다는 뜻인가요?”
“그렇지.”
“…그게 가능한가요?”
“지금 이렇게 움직이게 만들고 있잖아.”
“…….”
당당하게 말하는 은현의 태도에 엘레노아가 할 말을 잃고 벙 찐 표정을 짓는다.
“엘레노아. 포기해.”
“일리아나님?”
“쟤가 알고 있는 거, 생각하고 있는 거, 하려고 하는 거, 일일이 다 이해하려고 하면 굉장히 피곤해지니까. 솔직히 이 자동차라는 거. 만드는데 나도 거들긴 했는데. 무슨 원리로 만들어진 건지 나도 이해하지 못했어.”
“…일리아나님도요?”
“응.”
일리아나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마력을 동력원으로 삼아서 규칙적으로 반복된 움직임과 운동을 만들어내는 기관이 될 엔진을 제작하기 위한, 복잡하면서도 정교한 마법들의 술식들을 부여하는 작업을 맡았을 뿐.
부품들을 조립하고 자동차를 만드는 공정의 작업은 은현과 에밀리아가 맡았었다.
“난 여기에 들어가는 부품들에 마법을 부여해서 아티팩트를제작하기만 했을 뿐이지. 구체적으로 그 부품들로 이런 걸 만들었을 때는…정말이지. 나도 어이가 없었다니깐. 게다가….”
“게다가?”
“아니…. 아니야.”
순간적으로 거대한 지하 공방 안에서 에밀리아의 강력한 요청으로 제작되고 있는 거대한 크기의 강철 골렘을 떠올리고 말을 멈췄다.
엘레노아의 옆에서 다리를 꼬고 창문에 머리를 기대어 한숨을 내쉬는 일리아나를 보고, 엘레노아는 어느 정도는 납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마법에 대해서 정통해 있다고 제작할 수 있는 수준의 아티팩트는 아니라는 거군요….”
“뭐, 그렇지 않을까?”
현재 아르케나 대륙에는 ‘공학’이나 ‘과학’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의 개인, 육체적인 한계가 명확했던 지구에서는 이 한계를 극복하고 효율적인 노동을 통한 생산을 위해서 공학이라는 분야를 발달시켜왔다.
체내의 마력량에 따라서 개인이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의 한계가 각기 다른 아르케나 대륙은 개인이 가지고 있는 마력이라는 에너지원을 활용하는 방식을 갈고 닦는 것으로써 문명을 구축해온것으로, 지구의 문명과는 큰 차이가 존재한다.
게다가 이번에 제작한 마차(魔車)는 이 아티팩트의 설계도와 부품들의 작동원리, 관계, 구조 등을 정확히 알고 있지 않으면 제작할 수 없는 기술의 집합체와도 같은 것.
제대로 된 지식도 갖추지못한 사람이 제작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아르케나 대륙인들에게는 은현처럼 공학지식을 이용하여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에는 큰 한계가 존재했다.
“그렇…네요…. 이제 와서 일일이 이렇게 놀라는 것도….”
생각해보면 던전 안에서 몇 시간 만에 5층짜리 주택을 만들어냈던 것이나, 뜨거운 물이 콸콸 쏟아져 나오는 거대한 크기의 대욕탕 시설을 제작한 것 등, 이제 와서 이런 것에 놀라는 것도 새삼스러운 부분이기도 하다.
‘정말로 엄청난 사람한테 시집을 와버린 걸지도….’
이런 생각 또한 새삼스럽기 그지없다.
하지만 이미 은현의 다양한 면모를 보고 알고 있다고 생각을 하였음에도, 그가 가진 다재다능한 능력들을 알게 될 때마다 놀라는 감정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슬슬 마을이 보이네. 여기부터는 걸어서 이동하도록 하자.”
“아, 왜. 편하고 좋은데. 그냥 이대로 가자.”
움직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일리아나가 인상을 팍 찡그리며 은현에게 항의했다.
“이 마차를 다른 사람들한테 보여줄 리가 없잖아. 나중에 귀찮아질지도 모른다고.”
아무리 작은 소규모의 마을을 지나친다고 하더라도, 소문이 퍼질 수도 있는 가능성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곤란하다.
“내가 가진 이 기술력은 최대한 비밀로 해야 해.”
혹시라도 타국이나 왕국에서 은현이 제작한 아티팩트의 존재를 깨닫고 계속해서 접근하여 집요하게 캐물을 가능성도 염두 해둬야 한다.
가능하면 자신이 원하는 타이밍과 형태로 기술과 아티팩트들을 공개하고, 최대한의 이득을 챙기고 싶었다.
“그럴 거면 아예 보여주지를 말지…아~나가기 싫어어.”
일리아나는 그대로 축 늘어지며 투정과도 비슷한 말을 늘어놓았다.
“그랬으면 우린 공작령에서부터 발로 걷는 여행을 해야 했어.”
이번만큼은 일리아나의 텔레포트 마법에 의지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정확한 목적지를 아는 것도 아니었기에 이동에 필요한 좌표도 몰랐던 것이 원인이었다.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니까. 빨리 마을에 도착해서 쉬자. 노숙하는 거보다는 낫잖아.”
“아.”
“응?”
갑자기 무언가가 떠올랐다는 듯 작게 탄식하는 일리아나의 목소리에 은현이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후후, 아니야. 아무것도.”
“…….”
일리아나의 표정이 굉장히 음흉했기에, 은현은 두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보통 저런 표정을 지을때는, 언제나 제대로 된 생각을 하고 있었던 적이 없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절대로 자신의 생각을 말해줄리 없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기에, 은현은 그냥 신경을 끄기고 했다.
마차에서 내린 뒤, 마차를 역소환하고 은현이 앞장서서 길을 걷던 도중, 일리아나가 엘레노아에게 말을 걸었다.
“엘레노아. 잠깐 귀 좀 대봐.”
“네?”
이윽고 손으로 입과 귀를 가리고 속닥거리는 일리아나의 말을 들은 엘레노아의 표정이 다채롭게 변한다.
“그게 정말인가요?”
“그럼. 정말이지.”
“하, 하지만 그건 좀….”
“잘 생각해봐.”
이윽고 다시 작은 목소리로 속닥거리는 일리아나의 목소리를 더 자세히 듣기 위해, 엘레노아가 귀를 기울여 집중하는 것이, 대화를 들을 수 없는 은현의 입장에서는 몹시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이 또 터무니없는 걸 꾸미고 있구나.]
‘여신님은 둘의 목소리가 들리세요?’
[들리기는 한다만….]
‘도대체 뭘 꾸미고 있는 건데요?’
신경을 끄려 했음에도, 도저히 신경을 끌 수 없었던 은현이 자신의 여신에게 물었지만, 베르단디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말해 줄 수 없구나.]
‘…여신님?’
언제나 은현이 부탁을 해오면 흔쾌히 부탁을 들어주었던 베르단디가 처음으로 거절의 의사를 내보여왔다.
그것에 은현이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베르단디를 응시했다.
[그, 그렇게 쳐다 보지 말거라. 이것은 아이의 업보이기도 하니….]
‘아,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더 신경이 쓰이잖아요….’
괜히 업보라는 단어를 사용하니까, 은현이 더더욱 민감하게 반응했다.
[나는 이만 신계로 올라가 보도록 하겠다.]
‘아니, 저기….’
황급히 붙잡을 새도 없이, 반투명했던 베르단디의 몸이 신기루처럼 스르륵 사라져 형체를 감추었다.
‘…도망치셨다고?’
급하게 자리를 떠나려는 행동이 몹시 이질적이었기에, 은현은 주위의 이상한 낌새에 굉장히 찜찜한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이윽고 세 사람은 가장 작은 마을에 도착했고, 곧바로 허름한 건물의 여관으로 향했다.
“손님이신가?”
은현의 은색머리카락을 흘끗 바라보고, 그의 뒤에 후드를 깊게 눌러쓴 두 사람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3명, 방 하나요.”
“은화 20닢이요.”
“여기요.”
“식사는 어떻게 할 예정이신가?”
“괜찮습니다.”
“2층 복도의 가장 안쪽 끝 방이요.”
“감사합니다.”
곧바로 돈주머니 속에서 은화 20닢을 꺼내어 건 내고, 상투적인 대화 끝에 세 사람은 방으로 들어왔다.
“이런 방이…은화 20닢이라고요?”
침대매트는 딱딱하여 폭신함이란 존재하지 않고, 이불도 세탁자체는 되어있었지만, 사용한지 굉장히 오래되어 헤진 흔적들이 보였다.
아무리 엘레노아가 공작가문의 여식이라 금전적인 부분에서 크게 구애를 받지 않는 인생을 살아왔다고는 하지만, 이런 시설의 질 떨어지는 방이 은화 20닢이라는 것에는 납득이 가지 않았다.
“뭐, 이런 한적한 시골 마을의 여관이란, 원래 다 이런 법이야.”
“그러게. 나도 이런 여관을 사용해본 적은 굉장히 오랜만이야.”
팀 동료들과 여관을 전전하며 긴 여행을 해왔던 과거의 생활을 회상하며 일리아나가 추억에 잠긴 말을 중얼거렸다.
“원래 이런 한적한 시골 마을 여관의 주 수입원은 저희 같은 여행객이나 모험가들이야. 대부분 하루만 숙박을 하고, 곧바로 떠나는 만큼 장기 숙박이나 고정 고객 같은 요소도 전혀 존재하지 않지. 이런 곳에서는 그냥 비바람을 피하고, 마수의 습격을 걱정할 필요 없이 마음 편하게 잠을 잘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을 하는 게 좋아. 어차피 하룻밤만 묵고 떠날 곳이기도 하니까.”
“…그렇군요.”
“그래도 정기적으로 침구류들을 세탁하고 신경 쓰고 있는 흔적이 있는 걸로 봐선, 이 여관은 그나마 나은 편에 속해. 심한 데는 제대로 된 관리도 하지 않아서, 침구류에 곰팡이가 피어있는 곳도 있으니까.”
엘레노아는 곰팡이라는 말에 어깨를 움찔 떨고, 표정을 굳혔다.
“그래도 기왕이면 푹신한 매트 위에서 자고 싶을 테니까. 이건 갈아 끼우도록 하자.”
은현은 그렇게 말하고 커다란 사이즈의 침대 매트를 들어 올려, 옆에 비스듬히 세워두고 자신이 소환한 매트와 침구류들을 세팅했다.
이윽고 인벤토리 마법 안에 각자가 챙겨와 넣어두었던 배낭들을 꺼냈다.
“현아. 나 여기서 해보고 싶은 게 있는데.”
“해보고 싶은거?”
은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내 은현이 소환한 짐 보따리 속에 일리아나가 손을 집어넣고 안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
순간 그녀의 행동을 지켜보던 은현이 아까 전, 그녀가 엘레노아와 속닥거렸던 때를 떠올리고 애써 모른 척 하고 있었던 위화감을 다시 자각하기 시작했다.
“찾았다.”
그리고 일리아나가 배낭 속에서 꺼낸 물건을 확인한 은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책?”
도대체 이 타이밍에 책을 꺼내서 뭘 어쩌자는 건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책의 제목을 읽은 은현의 표정이 싹 굳어졌다.
“실버의…50가지 조교 기술…?”
그녀의 손에 쥐어져 있는, 자신이 개발하였던 다양한 도구들이 시선에 들어오자, 일리아나가 무엇을 해보고 싶다는 것인지를 깨달았다.
“설마 엘레노아도…?”
무심코 그녀에게로 시선을 돌리자, 엘레노아가 얼굴을 붉히며 은현의 시선을 피했다.
“저, 저는…당신의…그거니까요….”
“…후우.”
은현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허공을 응시했다.
평소라면 언제나 허공에서 자신을 지켜보았을 여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측하고서 하계에 있기 불편해질 것이라 생각하고, 이미 진즉에 신계로 도망을 쳐버린 상태.
‘…도망치신 이유가 이거였습니까?’
도망치더라도, 미리 알려주고 도망을 쳐주면 좋았을 것을, 매정하게 그냥 신계로 올라가버린 베르단디에게 서운한 감정을 품었다.
신혼여행 속에서의 첫날밤은 그렇게 시작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