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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화 〉191. 기사들의 지옥(1) (191/730)



〈 191화 〉191. 기사들의 지옥(1)


“저부터 갈게요!”

호기롭게 나타난 젊은 기사가 앞에 나서며 에린을 마주했다.

“…….”

생각보다 나이가 어려보이는 남자는 에린보다는 연상처럼 보였지만, 그렇다고 나이가 많아 보이지도 않았다.
에이라와 비슷한 또래에 아이테르를  졸업한 것으로 보이는 혈기 왕성한 남자가 의욕적으로 나오며 목검을 쥐고 자세를 취했다.

“뭐야. 시작 안 해?”

“…네.”

아직까지도 자세를 취하지 않고, 미묘한 표정으로 젊은 기사를 쳐다보던 에린은 자신을 재촉하는 목소리를 듣고서야 목검을 쥐며 자세를 잡았다.

“잘 부탁드립니다.”

“흥.”

에린의 말에 젊은 기사는 시큰둥한표정을 지었다.

“자, 그럼.”

두 사람이 자세를 쥐고 준비의 동작을 취하자, 은현이 호령을 넣는다.

“시작!”

“하아!”

짧고 강하게 울려 퍼지는 신호와 동시에 기사가 에린을 향해 돌진을 해왔고, 깔끔한 내려베기를 통해 에린의 머리를 가격하려 했지만.

‘…느리네.’

마력을 통해 신체의 강화도 하지 않았던 에린은 목검을 비스듬히 들어 올려 기사의 목검을 받아내면서, 궤도를 비틀어 공격을 흘려내었다.

“어?”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연약한 소녀가 능숙하게 검을 흘려버린 것에 잠시 당황하고 있을 때,그 의문에 멍한 표정을 짓던 젊은 기사의 관자놀이에 에린의 발차기가 날아왔다.

“크윽!”

머리가 찡하게 울리는 강렬한 타격을 받은 젊은 기사가 인상을 쓰며, 다리가 휘청였고, 정신을 가다듬어 바닥에 무릎을 꿇을 뻔했던 것을 가까스로 버텨낸다.
다시 목검을 들어 올려 에린을 공격하려던 기사는 자신의 목을 겨누고 있는 나무 목검을 바라보고 행동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자신보다 나이가 어리고 여자라는 것에서 방심을 했던 기사의 깔끔한 패배였다.

“흐음?”

에린의 움직임이 범상치 않을 정도로 빠르고, 깔끔했다는 것을 알아본 몇몇 기사들이 흥미로운 기색을 띄우기 시작한다.
짧은 시간 동안 보여준 판단과 깨끗하고 유려한 동작을 보여준 소녀가 적어도 평범한 실력을 가진 것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는 생각을 하고, 눈빛을 빛낸다.

“뭐야? 무슨 일이야?”

훈련장의 중심에서 갑작스레 기사들이 몰려들고 웅성거리고 있는 소란스러움에 뒤늦게 훈련장에 도착한 기사들이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소란의 중심 속으로 합류했다.

“아….”

에린은 점점 불어나는 기사들의 부담스러운 시선을 받으며 은현을 흘끗 바라보았다.
피식 웃으며 손가락 10개를 모두 펴서 제시하는 것을 보고, 그 의미를 알아듣고 한숨을 쉰다.
10승을 채우면 대련을 끝나게 해주겠다는 의미.
미성년자인 에린에게 10명의 기사를 이기라는 것도 터무니없었지만, 에린은 이곳에 있는 기사들 전원을 이기라고 한 것이 아니라는 것에 다행이라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은현이라면 이런 말도  되는 조건을 내걸 수도 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빨리 끝내고 밥 먹고 싶다….’

결국 에린은 머릿속을 비우기로 결심했다.

◆ ◆ ◆

“많이 좋아 보이시네요.”

“그렇게 보이십니까?”

“크라시르에 있을 때는 항상 마음 어딘가가 불편해 보이셨죠. 그런데 기사단을 나오신 지금은…몸은 좀 피곤해 보이셔도 이전만큼 마음은 힘들지 않으신  같으셔서요.”

“확실히…그런 게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공작령을 향하고 있는 마차 안에서, 유리아의 지적에 알렉스는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저를 마중 나오려고 직접 나오셔도 괜찮았던 건가요?”

“왕녀님을 맞이하는 일을 다른 이에게 맡길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요. 급한 안건의 정무는 모두 마쳐두고 오는 길입니다.”

“소공작의 업무가 많이 고단하셔도 그렇게 싫으신 건 아닌 것 같아 보이네요.”

“힘들긴 해도, 집안을 물려받아야 하는 입장인 이상, 이건 제 의무와도 같으니까요. 게다가 마음이 편해 보이시는 건…아마 제 동생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엘레노아 말인가요?”

“네.  그 녀석이 결혼을 하거든요.”

“…….”

“비슷한 나이 대의 남자들이라고는 짧은 시간을 함께 했던 공작가문의 기사들이 전부였는데, 저 녀석을 누가 데려 가려나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마음이 있던 남자에게 시집을 가게 되어서,오빠의 입장에서는 한시름 덜었다는 생각이 강하네요.”

엘레노아의 최근 소식은 유리아도 들어서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유리아 뿐만이 아니라, 현재 엘레노아의 결혼 소식은 페르니아스 왕국 안에서가장 뜨거운 이야기거리이다.
그도 그럴 것이, 엘레노아의 결혼 상대가, 검은 마녀의 연인인 남자이기도했고,  마녀가 남편이 될 남자를 따라서 페르닌을 떠나 이주할 계획이라는 것을 밝혔기 때문이다.

“왕녀님은 은현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인상을 굳히시는 군요.”

“…티가 많이 나나요?”

자신으로써는 최대한 티가 나지 않도록 표정을 숨기려고 노력을 했는데, 알렉스의 입장에서는 그녀의 그 억지스러운행동이 부자연스러운 티가너무 많이 났던 모양이었다.

“너무 억지로 숨기시려고 하시는 표정이 티가 납니다.”

소공작의 지위를 물려받기 위해 크라시르를 나오기 전, 평소에도유리아의 얼굴을 자주 보고 있었던 알렉스가 유리아의 그 미묘한표정의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할 리가 없었다.

“저는…솔직히  사람이 어째서 그 남자에게 호의를 갖고, 연심을 품을 수가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아요. 하지만 분명 제가 모르는 곳에서 제가 모르는 일을 겪었던 거겠죠. 엘레노아가 험한 꼴을 당할  했던 것처럼. 게다가…가끔가다가 정말로 무서운 사고방식을 보여주기도 하고요.”

알렉스는 대답하지 않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가끔가다가 은현이 보여주는 비인간적인 면모에는 섬뜩함을 느낄 때도 없지 않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 남자가 적이 아니라는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 사람은 누군가를 위해서 움직인다기보다…어떠한 목적이나 행동원리를 가지고 거기에 맞춰 행동하는 사람처럼 보여요. 그건….”

“자신의 목적이나 행동원리에 반한다면, 누구라도 치워버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죠.”

“…….”

담담하게 대꾸하는 알렉스의 말에 유리아는  말을 잃고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데도…그 사람을 신용 할 수가 있나요?”

“네.”

“어째서죠?”

“왕녀님. 저와 엘레노아는 어떠한 계기를 통해서, 그 남자의 비밀의 단편을 알았습니다.”

“……!”

“어째서  녀석이 지금 이 자리에 이렇게 우리의 앞에 존재하고 있는지, 무엇을 위해서 다양한 일들을 벌이고, 그 계획의 일환으로 우리 공작가문을 이용하고 있는지, 저와 엘레노아, 심지어 아버지까지도 모두 그 이유를 납득한 끝에 은현에게 협력을 하고 있는 겁니다.”

은현은 유리아가 자신에 대해서 무언가 착각을 하고 있다고 알렉스에게 말해준 적이 있었다.
때문에 알렉스는 은현이 ‘신의 사도’이자, 불로장수의 불멸자에 가까운 존재라는 것을 밝히지 않으면서 단편적인 정보 만을 제공하여 말을 이어나갔다.

“저는 물론,엘레노아와 아버지도, 은현이 생각하고 있는 그 목적과 행동원리에 깊이 공감하고, 앞으로도 지원을 아끼지 않을 생각입니다. 게다가 엘레노아는…은현에게 도움이 될  있다는 사실에 큰 만족감을 느끼고 있기도 하고요.”

알렉스의 설명을 들은 유리아는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그 남자가 전생자라는 것 이외에 다른 비밀이 있는 건가?’

생각을 마치고 고개를 들어 올려 다시 알렉스에게 묻는다.

“그 비밀의 단편이…뭐죠?”

“그건…죄송하지만, 왕녀님께도 말씀드릴  없습니다.”

굉장히 송구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알렉스는 은현의 비밀에 대해서 털어놓는 것을 거부했다.
 반응에 유리아는 알  없는 답답함과 서운함을 느꼈다.

“내가…믿을 수 없는 건가요? 다른 누구에게  사실을 떠벌리거나 할 것 같아요?”

“아뇨. 그런 게 아닙니다. 지금은…왕녀님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 할  있을 것 같군요.”

“제 마음이요?”

“저는 이전, 왕녀님께서 가지고 계셨던 비밀을 저에게 털어놓지 않으셨을 때, 서운함을 느꼈던 적이 있었습니다.”

“아, 그, 그건….”

알렉스의 느닷없는 자백에 유리아가 뜨끔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은현과는 비밀을 공유하시는 것처럼 느꼈었죠.”

“…….”

“어째서 나에겐 상담을 해주지 않으셨을까. 내가 그렇게도 못 미더우셨던 걸까. 스스로 고민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미, 미안해요. 나는 알렉스가 그렇게 서운해 할 줄은….”

유리아는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민망한 기분을 느끼며 급하게 입을 열었다.

“괜찮습니다. 이제는 왕녀님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 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그 뜻은…?”

“확실히 말할 수 없는 비밀이란 건…존재하는 법이네요.”

이런 비밀을 누군가에게 털어놓는다고 해서, 상대가 그것을 믿어 주리라는 보장도 존재하지 않았다.
알렉스나 아브로스도 대영웅인 아니에스의 발언이 없었다면, 은현이 신이라는 존재와 깊은 연관이 있는 남자라는 것을 믿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이제는 모종의 이유를 통해서엘레노아 마저도 은현의 곁에 존재하는 ‘여신’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더 부정할 수 있을 수도 없다.
게다가 알렉스는 이런 비밀과 엮이게 하여 유리아를 곤경에 빠뜨리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은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그래서 말씀 드릴 수 없는 점, 왕녀님께 정말로 죄송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알겠어요.”

비슷한 이유로 비밀을 털어놓지 않으려 하는 알렉스의 행동에 유리아가 불만을 표하는 것도 우스운 상황이다.
거의 내로남불의 끝판왕이 아닌가.
서운함을 표시했던 자신의 말에 괜히 부끄러워진 유리아는 황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때마침 저택에 도착한 마차 안에서 내린 알렉스는 유리아에게 손을 내밀어 그녀를에스코트하면서 저택 안으로 그녀를 안내했다.

“선배애애애!”

“…아이샤?”

저택의 정문을 지나고 길을 걷던 도중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아이샤의 모습을 발견하고 알렉스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선배! 그냥 저도 기사시켜주면 안 되나요? 잘못했어요! 비서 같은 거 안 할게요!  그냥 공작가문의 기사단에 입단시켜주세요! 제발!”

“…무슨 일이 있었지?”

느닷없이 달려와 알렉스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애원하는 아이샤를 보고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알렉스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 남자요! 사람이 아니에요! 완전 귀신이라구요! 악마에요! 어떻게 그렇게 피도 눈물도 없을 수가 있죠? 제가 갖은 고생해서 만든 서류를 훈련장에서 대충 훑어보고, 3초 만에 찢어버리질 않나, 완전 무표정으로 ‘다시 만들어오세요.’라고 하잖아요! 저거 사람 아니에요! 게다가 잘못된 점을 일일이 전부 지적해오는 것도 모자라  맞는 말이라 더 열 받는다구요! 그 사람이랑 대화하고 있으면  멘탈이 3초마다 깎여나가는 기분이에요!”

감정이 실린 말들을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아이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알렉스는 뒤에 멀뚱하게 서있는 유리아의 눈치를 보며 아이샤에게 말했다.

“…은현은 지금 훈련장인가?”

“네에! 제발!  그 남자한테 비서 교육 받기 싫어요! 인간이 아니야! 면상에 오리하르콘을 쳐바른  마냥 얼굴 표정 하나 안 바뀌고 얼마나 빡세게 가르치는지! 선배, 저 그냥 기사할게요!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너  녀석이 지금 기사들을 어떻게 훈련을 시키는지 알고 하는 얘기야?”

“그, 그건….”

흠칫 놀라며 표정을 굳히는 아이샤는  말을 잇지는 못하고 우물쭈물한 태도를 보였다.

“…일단 알았어. 내가 이야기 해볼게.”

“아아아…. 고마워요. 선배! 진짜로!”

“일단 넌 들어가서  쉬고 있어. 나 없는 동안 고생 많았어.”

“헤헤. 알겠습니다!”

알렉스의 칭찬에 금방이라도 죽을 것만 같았던 아이샤가 얼굴이 순식간에 활짝 피면서 두 사람의 곁을 떠났다.
작은 폭풍처럼 휘몰아치고 떠난 아이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유리아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아이샤는…정말 활기가 넘치네요. 특히 이곳으로 와서는 더더욱….”

“좀 그런 면이 없지 않아 있죠. 계속 안내하겠습니다.”

알렉스는 쓴웃음을 짓고 발걸음을 옮겼다.

“아이샤가 말한 ‘그 남자’는…그 남자를 말한 건가요?”

“네. 최근 아이샤는 은현에게 비서의 업무를 배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그게  생각보다 혹독했던  같네요.”

아이샤와 메르딘은 몇 주 전에 크라시르를그만두고, 알렉스에게 힘을 보태고 싶다고 갑작스레 그를 찾아왔다.
지난 사건에서 공작가문과 알렉스를 돕지 못했던 것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끄아악!”

유리아는 미묘한 표정을 지으면서, 알렉스의 뒤를 따라 훈련장을 향하던 도중, 남자들의 비명소리에 몸을 움찔 떨고 발을 멈췄다.

“이 소리는….”

불길한 상상을 머릿속으로 그리면서, 유리아의 귀속으로 훈련장에 있는 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13번, 인성 문제 있습니까?”

“끄으으! 어, 없습니다!”



날이 선 목소리로 묻는 은현과 비명을 내지르면서도 화들짝 놀라며 황급히 대답하는 남자의 목소리.

“그런데왜 멈추시는 겁니까? 지금 여기서 13번이 멈추고 쓰러지게 된다면, 13번이 속해있는 레드팀은 블루팀에게 패배하게 됩니다. 13번의 편하게 쉬고 싶다는 안일한 생각 때문에, 팀원 전체가 패널티를 받게 되는 불이익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멈추지 않겠습니다!”

“9번! 왜 팀워크를 발휘하지 않습니까! 개인주의이십니까!?”

“아닙니다!”

“어서 움직이세요!”

“끄으아아아!”

많은 사람들의 비명이 섞인 목소리들과 그들을 닦달하는 한 남자의 목소리.
그 목소리와 비명들이 유리아의 머릿속 깊숙이 박혀있던 과거의 기억을 상기 시키고 있다.
이전 아르키스 대미궁 안의 훈련장에서, 일리아나의 마법 수업을 미끼로 은현에게 낚여 강제로 받았던 끔찍한 육체 훈련의 기억.
아직도 그때를 떠올리면 유리아는 공포스러운 것을 직면이라도  듯 전신을 오슬오슬 떨었다.

“…왕녀님?”

두려움에 떨며 부들부들 떨리고 있는 전신을 진정시키기 위해 양팔 붙잡고 억지로 진정시키려는 유리아의 행동을 보고, 알렉스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저, 정신 나갈 것 같아….”

“…예?”

“당장 훈련  중지시켜주세요.”

느닷없는 유리아의 요청에 알렉스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그게 무슨….”

“트라우마 때문에 정신병 걸릴  같으니까, 당장 멈춰줘요.  훈련 좀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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